처음 만나는 일본

2023년 11월 23일, explained

일본 경제가 꿈틀댄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국 경제가 긴장해야 한다.

2023년 5월 일본 미즈호 증권사의 전광판 앞을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최근 일본은 33년 만에 닛케이지수 3만 3000을 뛰어넘었다. 사진: James Matsumoto, Getty Images
NOW THIS

일본 증시가 날고 있다. 33년 만에 최고점을 연이어 갱신하고 있다. 호황이다. ‘서학 개미’에 이어 ‘일학 개미’가 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경제 성장률을 보면 상황이 다르다. 올해 상반기 성장세를 기록했던 일본 경제가 3분기 들어 역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성장률은 지난 3분기 연간 환산 -2.1퍼센트를 기록했다.

WHY NOW

혼란스럽다. 일본 경제는 살아나고 있는 것일까,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일본 경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갇혀 있었다. 성장도 변화도 없이 아주 느리게 늙고 낡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2023년의 일본은 낯설다. 일본인들도 본 적 없는 일본이다. 펜데믹 이후 세계 경제를 흔들었던 주체가 미국 연준이었다면, 이제 일본 중앙은행의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시점이 온다.

PIVOTmedia.co.jp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이 있다. 〈PIVOT〉이라는 매체다. 우리나라의 삼프로TV와 비슷하다. 투자 조언부터 업무 스킬, 자기 계발, 국제 정세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론칭 1년 만에 유튜브 채널 구독자 111만 명을 달성했다. 이런 BM은 ‘알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잘 알고 시장에 뛰어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유지된다. 일본 경제는 그동안 너무 얌전했다.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당연히 똑같았다. 그런데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일본인들이 현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

스타트업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스타트업 신(scene)이다.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GDP 규모 대비 작은 편이다. 그러나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2013년 880억 엔에서 2022년 8770억 엔으로 증가했다. 일본의 VC 펀드의 수도 같은 기간 4배로 늘어났다. 이와 함께 이직도 늘어났다. 특히 40대 이상의 이직이 두드러진다. 2022년 일본의 이직자 중 40대는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서른다섯이 넘으면 이직은 힘들다는 일본 사회의 통념이 깨진 것이다. 신생 기업의 등장과 성장이 ‘종신 고용’이라는 담을 허물고 있다.

상승장

주식 시장도 호황이다. 전 세계가 기준 금리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돈을 풀고 있는 선진국이 바로 일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지난 1년간 일본 증시 주요 지표는 다른 선진국 대비 압도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도 활발하다. 증시를 밀어 올려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탓이다. 33년 만의 3만 3000이라는 닛케이 지수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처음 만나는 세계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낮은 금리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자리한다. 사실 일본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보다는 안온한 현재를 지키는 사회에 가까웠다. 물건값도 그대로, 내 월급도 그대로인 사회다. 일본의 40대는 그런 경제를 어린 시절부터 쭉 겪어 왔다. 즉, 그들의 세계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플레이션이 찾아온 것이다. 물가가 오른다. 임금도 오른다. 주가도 집값도 처음 보는 숫자가 찍힌다. 그야말로 처음 만나는 일본이다. 알아야 하고 도전해야 하는 시대가 처음으로 왔다. 다만, 일본의 도전이 성공으로 끝날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임금 상승

사실, 평범한 일본의 직장인들은 지금 가난해지고 있다. 월급이 오르긴 올랐다. 그것도 20개월 연속으로 명목 임금이 증가했다. 그런데 물가는 더 올랐다. 급격하게 모든 것이 비싸지고 있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이 위험 수위라면 보통 긴축 정책을 쓰는 것이 교과서적 해법이다. 금리를 올려 시장에 풀려 있는 돈을 빨아들인다. 돈이 귀해지면 물가는 잡힌다. 지금 미국 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전략은 조금 다르다. 돈을 그만 풀 생각은 없다. 대신 기업이 임금을 올리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최대 노동조합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정기 대회에 참석했다. 우리로 치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노총 정기 대회에 직접 참석한 셈이다. 이례적이다. 기시다 총리는 렌고의 투쟁으로 임금이 크게 올랐다며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슈퍼 엔저

일본 정부가 긴축 정책을 쓰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슈퍼 엔저’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엔화가 저렴한 덕분에 얻게 되는 효과가 있다. 100엔짜리 물건이 예전에는 1000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850원이면 살 수 있다. 엔화 환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인플레이션 시대에 일본 상품이 잘 팔린다. 실제로 일본의 대표 제조 기업 도요타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 2조 엔을 달성했다. 가격 경쟁력이 주요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으로 향하는 관광객도 늘어난다. 일본 경제에 활력이 돈다. 지난달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63만 1100명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0월 대비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윤전기를 멈출 시간

하지만 재화와 용역이 아무리 잘 팔려도 국민이 가난해지고 있다면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올해 들어 성장세를 이어 왔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은 지난 3분기 -0.5퍼센트를 기록했다. 1년 단위로 환산하면 -2.1퍼센트다. 슈퍼 엔저 효과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엔화가 저렴하니 100엔 주고 사 왔던 원자재 가격이 125엔으로 올랐다. 물가가 오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 개인도 버틸 도리가 없다. 즉, 사라진 것은 소비다. 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니 개인들이 지갑을 닫은 것이다.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은 내수 시장의 침체다. 이제 변곡점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과연 이 슈퍼 엔저 시기를 끝낼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닥쳐오고 있다.

IT MATTERS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돈은 이자가 높은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일본이 해외에 투자해 뒀던 돈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규모가 만만치 않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약 1경 1875조 원이다. 전 세계 경제의 구조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투자가 집중된 호주나 동남아시아 국가 등을 중심으로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에서 저금리로 빌린 자금이 만만치 않다. 일본 기준 금리가 오르면 우리 경제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

일본이 기준 금리를 올린다면 미국 국채 금리도 움직인다. 일본은 미국이 발행한 채권의 최대 보유국이다. 투자자들은 일본에서 돈을 저금리로 빌려 미국 국채를 매입해 왔다. ‘엔 캐리’다. 그런데 일본 금리가 오르면 미국 국채를 살 동력이 줄어든다. 국채가 덜 팔리면 이자를 더 쳐줘야 한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른다. 글로벌 돈맥 경화가 올 수 있다. 사실, 일본의 금리 상승은 지난 7월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 시장 금리 상승을 1퍼센트까지 허용한 것이다. 일본 경제에 활력 징후가 보인다. 시장도 좋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 중앙은행의 결심뿐이다. 그 결심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 경제를 직접적으로 흔들 것이다. 아니, 세계 경제를 직접적으로 흔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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