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사람
2화

부고; 거셈 솔레이마니, 1월 3일 암살당하다

이란의 확장과 파괴, 살상의 지휘자

베일에 싸인 은둔의 지도자로 유명했던 거셈 솔레이마니는 때때로 깜짝 놀랄 정도로 눈에 띄게 행동했다. 그는 시리아에서 군용 트럭 짐칸에 올라 지친 병사들을 격려했다. 이라크에서는 로켓탄 발사대 옆에서 웃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보이기도 했다. 이란을 위협하는 트윗을 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도박꾼, 바텐더라고 부르면서 이란으로 직접 와서 누가 이 싸움의 진정한 승자인지 가려 보자고 응수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백악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지시하는 듯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 사진에는 아랍어로 “우리는 미국을 우리의 발밑에 깔아뭉개 버릴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솔레이마니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이미지.
솔레이마니가 은둔의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이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신중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습관, 짙은 눈썹에 살짝 가려진 눈은 상대를 떨게 만들었다. 그는 회의 자리에서 혼자 앉겠다고 하거나, 대화 중에 침묵하거나, 마치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단순한 단어들을 내뱉었다. 이런 습관은 아프가니스탄 인근 산악 지대 소작농의 아들이라는 그의 출신에 어울린다. 그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공사 현장에서 돈을 벌며 어린 몸을 혹사했던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런 습관은 또 1998년 이후 이슬람 혁명수비대 군대의 엘리트 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을 역임한 그의 이력과도 맞아떨어진다. 솔레이마니는 쿠드스군에서 역대 가장 강력했던 이란의 영향력 확대, 파괴, 살육을 이끌었다.

솔레이마니는 늘 자신의 직업을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에 검은 셔츠와 재킷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더라도 그의 소명은 군인이었다. ‘성스러운 방어전(the Sacred Defence)’이라 불리는 이란-이라크 전쟁 중 8년간 복무하며 부상을 당하고 화학 무기에 숨이 끊길 뻔했던 그는 전쟁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솔레이마니는 전쟁에서 민병대에 잠입하고, 국경을 넘고, 동맹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이런 경험은 유용한 자산이 됐다. 전쟁은 또 이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웃 국가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줬다. 그는 수백만 명이 사망한 성스러운 방어전에서 경험한 참호를 파고 잠복하면서 싸우는 소모전이 전쟁을 수행하는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그는 다른 방법들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의 무기는 쿠드스군이었다. 2만 명에 달하는 이 군대의 첫 번째 목적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정신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쿠드스(아랍어로 ‘신성한 곳’이라는 뜻), 즉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일이다. 20대를 모두 바친 혁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중해부터 아라비아해에 이르는 수니파 지배 지역에 대항하는 이 연대(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바레인)의 축을 폄하하는 세력들은 시아 초승달 지대(Shia Crescent)라고 부른다. 그의 군대는 전쟁뿐 아니라 병사 및 스파이 양성, 뇌물 제공, 계약 협상 그리고 테러 모의를 위해 중동 안팎의 지역에 파견된다. 바꿔 말하면, 그는 적들에게 “수많은 이란”이 사방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솔레이마니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침투할 수 있었다.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를 지지하며 내전에 참여할 때 그는 수도 다마스쿠스의 평범한 건물에서 일했다. 이라크에서는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정부를 친이란 시아파 추종자들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면서 갑자기 한 장관의 집무실에 나타나 무기 운송을 위한 영공 진입 협상을 벌이고는 장관의 이마에 키스한 뒤 사라졌다. 2006년 레바논에서 도로의 폭발물 설치와 표적 사살을 시도하는 헤즈볼라의 무장을 지휘할 때는 “베이루트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말하며 미국을 자극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고, 어디에나 있었다. 살인 혐의에 대한 무죄를 자연스럽게 주장하면서도, 신문에 실릴 만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유능한 스파이 리더 같았다.

쿠드스군은 솔레이마니가 구축한 네트워크의 극히 일부였다. 네트워크의 대부분은 민병대 동맹과 지지 세력이었다. 시아파 민병대는 이란과 엮여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적 어디에서든 군대를 모집한다. 이들은 부인하지만, 때때로 헤즈볼라와도 연대한다. 민병대는 동기만 부여돼 있다면 빠르게 구성하고 훈련할 수 있다. 그는 이란 동남부 케르만(Kerman)의 동네 체육관에서 규합한 부대의 책임자로서 ‘성스러운 방어전’에 참여하면서 직접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는 시리아군처럼 쓸모없는 정규 군대보다는 민병대가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다수의 시아파 민병대 조직이 활동하고 있어서 통제가 어려운 이라크 같은 지역에서도 솔레이마니는 민병대를 활용해 길을 따라 흩어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유연성과 인력을 확보했다. 수백 명의 미국인을 죽일 수 있는 정교한 폭발 장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솔레이마니는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표적으로 삼기 위해서라면 수니파 세력인 하마스와도 기꺼이 연대한다. 심지어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 정보 요원에게 탈레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과의 협업을 기쁘게 여겼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을 때 바로 생각을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벌어진 이슬람 국가(IS)와의 전쟁 기간, 솔레이마니의 군대는 미군과 함께 폭격에 가담했다. 쓸모가 있는 적이라면, 그는 처단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솔레이마니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의 무자비한 방식이 이란에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테헤란에는 쿠드스군과 경쟁 관계인 정보부 관계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솔레이마니 비판 세력이 있다. 그들은 또 솔레이마니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친밀함이 최고 지도자와 군대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솔레이마니가 궁극적으로는 대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솔레이마니는 이러한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군인일 뿐이었다. 그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전장이고, 순교는 가장 고결한 소명이었다. 그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필사적으로 싸웠던 알포(Al-Faw) 반도 같은 곳에 참전 용사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싸운 많은 이들은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그는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그 명단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슬퍼했을 것이다. 솔레이마니가 전사자들의 자녀를 끌어안아 주었다면, 아마도 아이들에게 남아 있는 순교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바그다드에서 보디가드 없이 돌아다니거나, 방탄조끼를 입지 않고 전장을 방문하면서 노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그림자 같았던 솔레이마니의 캐릭터와 맞지 않는 행동이 아니었다. 솔레이마니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총알, 또는 드론을 불러낼 수 있었다. 그에게 진정한 승리는 순교 없이는 쟁취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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