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브랜드들의 세상
완결

새로운 브랜드들의 세상

새 브랜드를 출시하는 일은 쉬워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13년경 제프 레이더(Jeff Raider)와 앤디 카츠-메이필드(Andy Katz-Mayfield)는 시장에서 틈새를 발견했다. 많은 남성들이 과도하게 많은 면도날을 포함한 값비싼 면도기 세트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기술과 세계화된 상거래 시장을 바탕으로 양질의 면도기를 저렴하게 공급할 방법을 찾았다. 백오피스(back-office)업무를 아웃소싱하고, 노래를 만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상품을 광고했다. 쇼피파이(Shopify)같은 다국적 전자 상거래 플랫폼과 스트라이프(Stripe) 등 지불 결제 서비스 덕분에 상품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었다. 시장 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 기업 해리스(Harry’s)는 창업 6년 만에, 22억 달러(2조 5900억 원) 규모의 미국 남성 면도기 시장의 4.3퍼센트를 차지했다. 2009년 이후 점유율이 73퍼센트에서 53퍼센트로 떨어진 질레트 같은 기업의 고객이 이동한 것이다.

이런 성공담은 소비자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 리더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P&G는 2005년 570억 달러(67조 890억 원)에 인수한 질레트가 80억 달러(9조 4160억 원)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상황을 인정했다. 거의 모든 산업군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브랜드들이 기존 브랜드들의 시장을 잠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15년 된 회사 초바니(Chobani)는 미국에서 소비되는 요거트 5개 중 1개를 판다. 2012년에 탄생한 저칼로리 아이스크림 브랜드 할로 탑(Halo Top)은 5년 만에 미국에서 하겐다즈(Häagen-Dazs)와 벤앤제리(Ben & Jerry’s)를 제치고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로단+필즈(Rodan+Fields)는 2008년 브랜드를 다시 론칭해 3년 연속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킨케어 브랜드로 성장했다. 2015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1만 9000여 개의 새로운 비식품 상품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이는 지난 10년의 연간 1만 1000여 개, 그전 10년의 연간 3500여 개에서 크게 증가한 결과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리서치 회사 이리(iri)에 따르면, 2013~2018년 사이 중소형 소매 업체들의 개인 상표 브랜드는 대형 경쟁사들로부터 약 200억 달러(23조 5400억 원) 매출을 빼앗아 왔다.

도전자들의 성공은 대부분 성공적인 브랜딩의 결과다. 브랜드는 명확한 출처와 일관된 품질을 보여 주는 수단이다. 브랜드는 기업이 신뢰를 쌓고 신뢰성에 대한 프리미엄을 받게 해주는 동시에, 고객의 재구매를 독려한다. 오늘날 많은 경쟁 상품들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차이점은 상품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혁신적인 제품을 생각해 내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아디다스에서 자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아는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주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신상 브랜드를 출시하는 일이 엄청나게 쉬워졌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신생 기업들이 빠르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현실이다. 그러나 기성 기업들이 구조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신생 브랜드의 공세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자. 레이더와 카츠-메이필드는 뉴욕 맨해튼의 유행에 밝은 지역인 노호(NoHo)의 브랜드 에이전시 미쏠로지(Mythology)에 브랜드와 관련한 이야기를 제작해 달라고 의뢰했다. 미쏠로지는 이름, 로고, 독창적인 포장과 목소리를 제공했다. 미쏠로지의 앤서니 스퍼두티(Anthony Sperduti) 사장은 “명확히 이 작업은 협업”이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해리스는 면도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단순성(온라인 가입 후 면도날 배송)과 좋은 분위기(이 회사는 매출의 1퍼센트를 남성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를 판매한다. 레이더는 미쏠로지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이 “사람들이 해리스를 믿으려면, 창립자인 우리를 개인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해리스의 첫 번째 광고는 레이더와 그의 파트너 카츠-메이필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신생 기업 브랜드의 진정성을 만들어 내는 일은 뉴욕에서 번창하는 소규모 산업이 되었다. 미쏠로지의 사무실에서 도보 거리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대행사 진 레인(Gin Lane)은 해리스뿐 아니라, 트렌디한 샐러드 체인점 스위트그린(Sweetgreen), “철저한 투명성”을 약속하는 의류 제조업체 에버레인(Everlane)과 함께 일했다. 브루클린 동쪽 강 건너편에 있는 레드 앤틀러(Red Antler)는 매트리스 회사인 캐스퍼(Casper), (예쁘지 않을수록) 인기 있는 운동화를 만드는 올버즈(Allbirds), 브랜드와 관련이 없는 일들만 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담은 브랜드를 내세운 소규모 온라인 전자 상거래 기업 브랜드리스(Brandless)를 포함한 수십 개의 스타트업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다.

 

광고에 반하다


미쏠로지의 스퍼두티는 매달 100개의 의뢰를 받아 그중 2건 정도를 선정한다고 한다. 레드 앤틀러의 J.B. 오스본(J.B. Osborne) 사장은 매월 150명의 잠재 고객 중 4명 정도의 의뢰를 수락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서비스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스타트업들은 협업의 대가로 기꺼이 지분을 제공한다. 진 레인이 새롭게 브랜딩해 탄생한 회사 패턴 브랜즈(Pattern Brands)는 직접 상품 레이블을 만든다. 패턴 브랜즈의 첫 번째 레이블 이퀄 파츠(Equal Parts)는 8월에 출시되었다. “주방에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면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리 도구를 판매하는데, 당연히 지역 사회 단체에 수익의 1퍼센트를 기부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이런 “브랜드 목적(brand purpose)”에 관심을 갖는다. 브랜드의 목적을 보여 주기 위해 이퀄 파츠 같은 많은 신생 기업들은 수익의 일부를 좋은 목적으로 기부한다. 안경 제조업자인 와비 파커(Warby Parker)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품을 무료로 제공한다. 다른 브랜드들은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거나 원재료를 지역 내에서만 구입한다. 세기가 바뀌면서 브랜드는 활동가들과 논객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브랜드가 스스로 활동가이자 논객이 되었다.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노 로고(No Logo)”라는 복음을 설파했다. 이제 당신은 “노 로고” 고정 바퀴 자전거를 살 수 있다. (로고 없는 자전거 업체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받을 것이다.)

PR 마케팅 기업 에델만(Edelman)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영국, 중국, 인도를 포함한 8개국의 응답자 중 3분의 2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브랜드의 입장에 따라 구매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절반 이상은 기능 장애를 겪는 것으로 보이는 정부보다 브랜드들이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홍보 회사인 콘 커뮤니케이션스(Cone Communications)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분의 3은 이민, 총기 규제, 동성애자 권리 같은 찬반이 엇갈리는 주제와 관련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브랜드를 버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적과 진실성은 모두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노동자를 학대한 역사적 과오가 없는 젊은 브랜드들과 더 쉽게 어울린다. 젊은 브랜드들은 보편적인 호소력으로 기성 거대 기업에 도전장을 내민다. 대기업 입장에서 목적을 담은 메시지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질 에이버리(Jill Avery)는 이에 대해 “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쟁자로 남아 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향은 라이프스타일 판매와 관련이 있다. 카우보이 모자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양심과 관련한 라이프스타일 말이다. 잘 알려진 브랜드 가운데 도브 비누, 립톤 티, 벤앤제리 등을 소유한 다국적 소비자 제품 기업 유니레버의 새로운 경영자 앨런 조프(Alan Jope)는 지난해 이렇게 말했다. “목적 없는 브랜드들에게는 유니레버와 함께하는 장기적인 미래는 없을 것이다.” 조프는 또 통신으로 연결된 소비자들이 즉시 감지하는 위선(woke-washing)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17년 펩시는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인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를 미화한 광고를 내놨다가 방영 직후 철회해야 했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는 미덕을 담은 메시지가 비용을 수반하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일부 기성 브랜드들은 이 점을 잘 파악하는 것 같다. 월마트가 매장 근로자에게 평균적으로 지불하는 시간당 15달러의 일부는 마케팅 비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저가 항공사 이지젯이 탄소 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1년에 3000만 달러(353억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항공사 델타와 렌터카 기업 허츠는 2018년 플로리다의 학교에서 발생한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수백만 명의 소총 애호가들의 불매 운동을 감수하면서 미국 총기 협회(NRA) 회원에게 제공했던 할인 정책을 폐지했다.

대형 브랜드들에게는 현대 브랜딩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다른 방법들도 있다. 하나는 기성 고객군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인종 차별에 항의하다가 실직한 혼혈의 미식 축구 선수인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을 나이키가 광고 모델로 기용한 것은 위험한 전략으로 보였다. 늙은 백인 보수주의자들도 운동화를 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키 구매자는 젊고 백인이 아니며 그래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캐퍼닉을 지지하는 사람들 쪽에 쏠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전략은 신생 기업 인수다. 진정성을 보여 주는 힘든 일을 경쟁자들이 먼저 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쉬크(Schick) 면도기와 영국의 윌킨슨 소드(Wilkinson Sword) 면도기를 만드는 에지웰(Edgewell)은 해리스를 14억 달러(1조 6478억 원)에 인수했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브랜드 구축”을 언급하면서 해리스의 창업자 레이더와 카츠-메이필드에게 허우적거리는 미국 사업을 맡겼다. 유니레버는 2016년 해리스의 라이벌인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을 10억 달러(1조 1770억 원)에 인수했다. 캠든 타운(Camden Town)이나 구스 아일랜드(Goose Island) 같은 수제 맥주들은 현재 세계 최대 맥주 생산 업체인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nheuser-Busch InBev) 소유다.

개인 상표 분야의 새로운 흐름의 일환으로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독립적으로 보이는 브랜드들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존은 의류 브랜드 굿스레드(Goodthreads)나 생활 필수품 브랜드 솔리모(Solimo) 같은 독립적인 브랜드를 십여 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월마트는 캐스퍼의 맥을 잇는 매트리스 회사 올스웰(Allswell)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월마트의 대형 매장이 아닌 올스웰 브랜드 웹사이트에서 판매한다.

 

인스타그램 리스크


대형 브랜드는 재력으로 신생 기업과 경쟁한다. 재력이 기성 광고와 판로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수단인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자본 부족으로 텔레비전 방송이나 옥외 광고판에 광고를 못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예측 불가능한 온라인 인플루언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달 캐스퍼는 계획된 기업 공개(IPO)에 앞서 내놓은 사업 설명서에서 “소셜 미디어와 인플루언서의 활용”을 “실질적으로 우리의 명성에 부정적 요인을 끼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미국의 37조 달러(4경 3549조 원)의 소매 지출 가운데 85퍼센트가 오프라인에서 발생하고 있다. P&G의 최고 경영자인 데이비드 테일러(David Taylor)는 P&G가 인수한 네이티브 데오도란트(Native Deodorant)의 경우처럼 빠른 성장이 빠른 이익 창출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재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은 여전히 고객 눈앞의 슈퍼마켓 진열대에 제품을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P&G는 월마트(Walmart)와 월그린스(Walgreens)에서 네이티브 데오도란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해리스는 2016년부터 타겟(Target)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최신 브랜드들 역시 주목받기는 쉽지 않다. 해리스의 브랜딩을 담당한 스퍼두티는 2013년 해리스가 채택한 기부금 같은 목적 주도 전략의 일부가 이제 진부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쏟아지는 새로운 상표들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브랜드들의 위상은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2001년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가장 가치 있는 100대 글로벌 브랜드 가운데 37개가 2010년에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0년 100대 브랜드 중에서는 단 24개가 2019년 순위에서 사라졌다. 일단 설립되면, 대형 브랜드들은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페이스북은 무수한 이미지 악화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브랜드 선정 순위에서 14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7~2009년의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JP모건체이스(25위), 골드만삭스(53위), 모건스탠리(69위) 등 투자 은행 집단의 위상은 이어지고 있다.
로고 폭탄/ (왼쪽)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1조 달러)/ 상위 10개사(하늘색)/ 나머지 기업들(파란색)/ (오른쪽) 세계 브랜드 상위 10개사의 시가 총액 대비 브랜드 가치 비율(%)/ 출처: 인터브랜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의 소유주들이 새롭게 부상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라는 조심스런 낙관을 하는 마지막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상표와 로고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투자자의 눈에는 그런 것 같다. 2008~2010년 사이 상위 10개 브랜드의 가치(가격 같은 요소가 아닌 브랜드의 영향을 받은 상품의 현재 수익과 예상 수익으로 측정)는 브랜드 소유 기업 시가 총액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2017년부터는 이 수치가 5분의 1에 가까워지고 있다(표 참조). GE는 2017년 이후 시가 총액의 60퍼센트가 떨어졌지만 브랜드 가치는 40퍼센트만 하락했다. 2000년 당시 1위였던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시가 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최고인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2340억 달러(275조 4180억 원)로, 시가 총액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들은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브랜드 가치 평가 방식의 문제점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결과가 시사하는 것처럼 무형 자산의 시대에도 주주들은 상표의 모호한 매력보다는 시장의 규모와 지배력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새롭게 등장하는 브랜드들은 기성 브랜드들이 긴장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이 거인의 허를 찔러 무너뜨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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