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끝나지 않은 악몽
2화

샌더스의 혁명은 성공할 것인가?

1970년대 유럽식 사회주의자

야심 차고 의욕이 충만하지만 약간은 긴장한 듯한 초선의 민주당 하원의원이 버니 샌더스를 처음 만난 건 새 사무실에서 기대를 안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당신도 여기가 완전히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달았군요, 그렇죠?” 버몬트주의 무소속[1] 상원의원인 그가 캐피톨 힐(Capitol Hill)[2]에 입성한 신참을 환영하면서 불평했다. 샌더스의 진실하고 솔직한 말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과 샌더스 본인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공정할 것이다. 시간 낭비는 샌더스의 입법 활동 기간을 요약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말이다. 샌더스는 무너진 의료 체계와 불평등한 대학 교육으로 대표되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줄기차게 불만을 드러내 왔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거의 아무런 진전을 이뤄 내지 못했다. 의회에서 활동한 30년 동안 그가 지원한 주요 법안 중 실제 법률로 제정된 것은 7개에 불과했는데, 그중 2건은 버몬트주 우체국의 이름을 바꾸는 것과 관련된 법안이었다. 냉혹한 관찰자라면 허풍쟁이의 기록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샌더스는 연설하는 것을 선호해 왔다. 간혹 중단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대관식을 망치기로 결심한 이래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해왔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자인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것에서 거의 바뀌지 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번 대통령 선거 경선을 치르고 있다(차이점이라면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정도다). 판타지에 가까운 개혁안과 방대한 지출들로 가득한 해결책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드는 데다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크지 않지만, 그런 정책을 좋아하는 민주당 내의 열성 분파들 덕분에 샌더스는 명실상부한 선두 주자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초반의 중요한 경선에서 그는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도박 업계에서는 그가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을 60퍼센트로 예측하고 있다. 14개 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치러져 대의원의 3분의 1이 할당되는 3월 3일 ‘슈퍼 화요일’에도 선전한다면, 그는 독보적인 후보가 될 것이다.

많은 민주당원들은 바로 그 점을 걱정하고 있다. 78세의 자칭 사회주의자인 그는 중도 진영이 넓게 분포한 선거에서 민주당을 왼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샌더스 열기를 느끼는(feel the bern)[3] 사람들은 그가 워싱턴 정가에서 보낸 30년간 이념적인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는 점을 먼저 언급한다.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의 지지자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총선에서 노동당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4] 어떤 면에서는 샌더스의 정책이 코빈보다 더 급진적이다.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불법 이민자들까지 포함해 미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상으로 의료, 자녀 돌봄, 주립 대학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보호되는 가운데 기업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대기업의 지분 20퍼센트를 받게 될 것이다. 억만장자들은 부유세를 징수당하면서 영향력이 꺾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두 가지의 장애물이 있다. 우선은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야 한다. 그다음에는 의회를 장악해야 한다.

골리앗 기업들이 시장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타트업들을 먹어 치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샌더스 역시 최근 들어 제기되는 새롭고 진보적인 아이디어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은 주로 미국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이나 영국의 코빈에게서 빌려 오고 있다. 워런에게 빌려 온 대표적인 아이디어로는 부유세(최고 세율 구간 세율은 8퍼센트로 샌더스가 워런보다 더 높게 설정하고 있다), 노동자의 기업 이사회 의결권 참여와 대기업이 준수해야 할 연방 헌장 제정 등이 있다. 코빈에게 빌려 온 아이디어로는 부동산 임대료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제, 기업 자산 몰수 후 노동자 분배가 있다(코빈은 기업 지분의 10퍼센트를 제안했지만, 샌더스는 그 두 배인 20퍼센트를 넘겨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기후 활동가들이 제안하고 초선의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지지하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도 샌더스의 공약에 포함되었다.

이 공약들을 이행하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이코노미스트》의 추산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52조 달러(6경 1926조 8000억 원)의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 연방 정부의 일자리 보장 제도처럼 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정책들도 있다. 그는 세수를 증대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부유세와 함께 중산층에 대한 소득세를 상당 수준 인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필요한 비용 중 24조 달러(2경 8581조 6000억 원) 정도만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낙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샌더스 측은 친환경 전기를 민간에서 사들이지 않고 관련 시설을 국유화하면 6조 4000억 달러(7621조 7600억 원), 부자들은 조세 회피에 아주 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럽의 사례로 잘 알려진 부유세 도입으로 4조 4000억 달러(5239조 9600억 원), 금융 거래세로 2조 4000억 달러(2858조 1600억 원)의 세수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싱크탱크인 세제 정책 센터(Tax Policy Centre)는 금융 거래세를 최대한 끌어모아도 샌더스가 추산한 규모의 4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린 뉴딜 정책이 대규모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20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샌더스가 제시하는 셈법대로라면, 그는 현재 미국 국내 총생산(GDP)의 13퍼센트에 해당하는 2조 8000억 달러(3335조 800억 원)의 재정 적자가 매년 발생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금융 이론(modern monetary theory)의 지지자로, 《재정 적자의 신화(The Deficit Myth)》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인 스테파니 켈튼(Stephanie Kelton)이 그의 수석 경제 자문 위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샌더스에게 재정 적자는 걱정거리가 아닐 것이다.

 

김미, 김미, 김미[5]


이런 모든 계획에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의회는 국내 문제에서는 대통령의 손을 묶을 수 있지만, 외교 문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민주당원들 중에는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의 책임에 대한 샌더스의 생각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구식 좌파들이 그러하듯, 샌더스 역시 연대라는 미명하에 외국의 좌파 정부들이 자국민에 자행한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된다면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는 1980년대에 “자본주의의 철폐”를 외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선거 운동을 했다. 샌더스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Sandinista) 민족 해방 전선을 칭송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니카라과를 방문했던 1985년에는 “이곳, 저곳, 모든 곳에서, 양키들은 죽을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최근 샌더스는 공개적으로든 은밀하게든, 미군을 체제 변화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미국의 안정적인 석유 공급 수단으로 활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직 의회의 승인에 의해서만 군대를 활용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트럼프 대통령과 일치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를 좌파 고립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실 그가 고립주의자는 아니다. 선거 유세나 홍보 자료들을 보면 샌더스는 인권, 경제적 공정성, 민주주의, (군사력이 아닌) 외교적 해결 방안과 평화에 중점을 둔 외교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특정 연령대의 유권자들이라면 인권에 초점을 맞춘 외교 정책을 펼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연상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샌더스의 자문 위원들 중에는 그의 외교 정책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더 유사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에서 제안된 좌파 성향 정책들/ 2019년 7월부터 12월, 해당 정책에 대한 지지율(%)*/ 부유층 세금 인상/ 공립 대학교 무상 교육/ 메디케어포올(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의료 보험)/ 그린 뉴딜/ 민간 의료 보험 폐지/ 노예제 보상금 지급/ 불법 이민자 무상 의료 제공/ 출처: 민주주의 펀드, UCLA 네이션스케이프, 이코노미스트/ * 의견을 밝히지 않은 성인들은 제외.
그는 미국에 맞서는 세력들과 대화한다는 오바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 재개도 원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러시아 및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운했던 관계를 재정립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른 민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파리 기후 변화 협약에 미국이 재가입할 것을 약속했고,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적대적이었던 트럼프와는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는 최근 국방 예산을 국가 GDP의 2퍼센트 이하로 조정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국가들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에 대해 조약 5조(안보 동맹의 핵심인 집단 안보 원칙)를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은 무역 정책에서도 비교적 제한을 덜 받고 있는 편이다. 샌더스도 트럼프처럼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무역 협정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할 방안을 찾아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을 세계 무역 기구(WTO)에 가입시키는 협정에 반대표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WTO를 완전히 탈퇴한다는 법안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그는 최근에 체결된 새로운 북미 무역 협정(USMCA)을 “즉각” 재협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외부로 넘기는 것을 막고 임금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이 체결한 모든 무역 협정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작성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샌더스는 트럼프보다도 더 보호주의자에 가깝다. 그가 USMCA에 비판적인 데에는 협정문에 기후 변화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다는 이유도 있다. 샌더스는 과거의 무역 협정들이 노동, 환경, 인권의 기준에 대해서 자신이 우려하는 부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다. 비록 그가 트럼프만큼 변덕스럽지 않고 순수한 의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무역 정책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수도 있다.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 국내 기업들은 보다 쉽게 이윤을 챙기겠지만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들이 시장 제한 조치로 보복할 경우엔 미국 노동자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샌더스의 임기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지속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샌더스가 행사할 수 있는 특권 중에는 다른 정책 결정권도 있다. 행정 조치는 내수 산업에서 상당한 수준의 재량권을 줄 수 있다. 민주당 정부 시절의 대표적인 정책들이 다시 시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 행정 조치의 상당수는 철회될 것이다. 느슨해진 환경 보호 규제, 건강 보험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시도, 이민 규제 강화 조치들이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샌더스는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원유 수출을 금지하고,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서 처방약의 수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연방 기관 수장 자리에 민주당의 주류가 아닌 이들을 지명할 것이다.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내각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 중에는 엘리자베스 워런이 있다. 독점 금지와 소비자 보호, 노동 관련 기관에는 워런의 정책들을 열성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이들을 임명할 수도 있다.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Take a chance on me)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선거 필패로 이어질 ‘자살 행위’가 아니라 뛰어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와의 일대일 대결 여론 조사에서 샌더스는 전국적으로 3.6퍼센트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미시간과 위스콘신과 같은 분수령이 되는 주들에서 근소한 차로 트럼프에게 패배했는데, 샌더스는 이들 두 곳에서 각각 5퍼센트와 1퍼센트씩 근소하게 앞서 있다.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그가 선거인단의 규모를 늘려서 새로운 부동층 유권자들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세 군데의 경선에서 그가 얻은 결과를 보면, 많은 유권자들이 몰려들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정치학자인 버클리대의 데이비드 브룩먼(David Broockman)과 예일대의 조슈아 칼라(Joshua Kalla)가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샌더스는 트럼프를 상대로 한 본선 경쟁력이 온건 성향의 다른 민주당 후보들보다 떨어진다. 원인 중 하나는 샌더스가 투표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유권자들의 투표 의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런 손해를 만회하려면, 그는 청년층 투표율을 11퍼센트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다시 말해, 2008년에 오바마를 지지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상승했던 것보다 더 큰 폭으로 청년층의 투표율이 상승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투표율 상승폭은 사상 최대치였다.

지금까지 샌더스가 프라이머리(예비 선거)와 코커스(당원 대회)를 치르는 동안 경선에 참여한 민주당의 동료 후보들은 그의 성품에 대한 비판이나 동의하지 않는 정책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비교적 신사적으로 그를 상대하고 있다. 트럼프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고 자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깎아내리기 위한 광고에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퍼부으면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민주당을 후원하지만 부유하다는 이유로 샌더스가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과연 트럼프의 디지털과 텔레비전 광고 맹공격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을 샌더스에게 지원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샌더스가 신혼여행을 갈 정도로 소비에트 연방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이나, 셰일가스 추출 금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나(이는 치열하게 경합 중인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에는 치명적인 정책이다), 민간 의료 보험을 폐지하고 세금을 인상해서 불법 이민자들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정책 등은 모두 네거티브 공세의 뇌관을 터뜨릴 수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골칫덩어리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보도되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에게 샌더스에 대한 정보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다. 즉, 현재 전국 여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소한 우세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본선의 판세를 점친다는 것은 추정일 수밖에 없지만, 민주당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샌더스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그가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11월 대선에서는 미국을 1970년대의 스웨덴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에 맞서 위대한 미국을 지키고자 하는 권위주의적 성향의 이민자를 배척하는 우익 세력들이 결집할 것이다. 정치학에는 말굽 이론(horsesho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극좌 세력과 극우 세력은 생각보다 서로 닮은 경우가 있다는 이론이다. 샌더스가 트럼프처럼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엘리트를 싫어하는 포퓰리즘적인 성향에서는 비슷하다. 트럼프도 그렇지만, 샌더스도 당내의 충실한 일꾼들로부터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 그들이 지지하는 캠프와 샌더스 진영 사이에서는 비방이 오가고 있다. 네바다주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기 하루 전날, 샌더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공화당의 기득권층에게 알려 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기득권층에게도 알려 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온건 성향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되면 의회 장악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올해 선거를 치를 상원의원 지역구들을 보면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6] 민주당은 2018년 메디케어포올(Medicare for All) 대신 오바마케어를 지키고 확대하는 등의 연성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온건 성향의 후보들을 내세워 하원을 장악한다는 계획을 가동했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던 지역 31곳을 비롯해 36석 더 많은 다수당이 되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그렇게 얻은 의석들을 저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에 버니 샌더스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도 성향의 싱크탱크인 제3의 길(Third Way)의 맷 베넷(Matt Bennett)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한다는 샌더스의 메디케어포올 정책으로 인해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의료 정책 부문이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도시 지역과 대학가에서는 사회주의적 정책이 통할 수 있지만, 교외 지역으로 나가면 그렇지 않다. 교외 지역은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하원의 핵심이다.[7] 이미 발언을 시작한 이들도 있다. 1978년을 끝으로 민주당 당선자가 없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2018년 승리하며 하원에 입성한 조 커닝엄(Joe Cunningham)은 이달 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들은 사회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상대로 세금을 인상하겠다는 버니의 제안”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샌더스가 지난 2월 23일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하자,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플로리다의 거의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샌더스는 늘 정치적으로 변방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물론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는 쿠바식 사회주의 정책에 대해 거침없이 칭찬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이 민주당원들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큰 트럼프에 대한 국민 투표 성격의 선거를 민주당의 패배 가능성이 큰 사회주의에 대한 투표로 바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SOS


민주당의 상원 승리는 이미 요원한 일이지만, 과격분자의 이름이 투표용지의 맨 위에 적혀 있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대선 후보와 거리를 둘 수는 있다. 그러나 공화당 후보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공화당 소속의 애리조나주 현직 상원의원인 마사 맥샐리(Martha McSally)는 최근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마크 켈리(Mark Kelly)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그녀는 최근에 켈리를 “버니의 형제”라고 지칭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불법 이민자들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샌더스의 인기 없는 정책에 켈리를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인 더그 존스(Doug Jones)의 승산은 제로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트럼프는 인기없는 후보이고, 샌더스가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승리하고 의회에 들어서는 순간, 혁명의 진군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민주당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치 혁명을 준비하라
샌더니스타(Sandernista)[8]들은 자신들의 의제가 아메리칸 드림을 복원하기 위한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길이라는 생각과 의회에서 협상의 포문을 열기 위한 과격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생각 사이에서 종종 혼란을 겪는다. 그들의 계획은 메디케어포올이 아니라 메디케어(노인 의료 보험) 수급 자격이 없는 중산층에게 공공 의료 보험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을 만드는 선에 그칠 수도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진척을 이뤄 내지 못한 이유는 과감하게 부딪히지 못하고 스스로 타협했기 때문이었다. 실용주의자이지만 그렇게 알려져 있지는 않은 정치인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뭐냐고요? (메디케어포올이라는 이슈에 대해) 우리가 아주 많이 타협해서 결국엔 공적인 옵션을 마련하는 것이겠죠(시민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 보험을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게 그렇게 악몽인가요?” 같은 질문을 샌더스에게 던지자, 그는 메디케어포올 자체가 “이미 타협한 것”이라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버니가 하원과 상원, 경선에서 싸웠던 목표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서 싸우게 될 목표, 더 중요하게는 백악관에서 싸우게 될 목표 사이에는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다.” 샌더스의 오랜 경제 정책 자문역 워런 거널스(Warren Gunnels)가 쓴 글이다.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셈법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샌더스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는 심각할 정도로 설득력이 낮다. 그는 쟁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공화당의 상원들을 창피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지역구 유권자를 위한 법안에 투표하게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30년 경력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치 초보들이나 할 법한 발언이다. 상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공화당의 원내 대표인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은 필요하다면 몇 년 동안은 모든 입법 활동을 기꺼이 중단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샌더스의 혁명도 그의 결심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샌더스 정권이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수많은 야심 찬 법안들을 맥코넬 원내대표가 신나게 거부하는 상황일 것이다. 정치 혁명은 그를 백악관에 입성시키고는 거기에서 멈출 것이다. 아마도 4년의 임기를 마친 샌더스는 의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후임 대통령에게 백악관은 형편없는 일터라고 불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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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선거 #외교 #정책 #권력 #이코노미스트
[1]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에 정식으로 입당한 당원은 아니다.
[2]
미국 의회 건물이 위치한 장소로, 미국 의회의 별칭이다.
[3]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 슬로건은 열기를 느낀다는 의미의 feel the burn을 변형한 ‘Feel the Bern(버니를 느껴 보라)’이다.
[4]
브렉시트가 핵심 쟁점이었던 2019년의 영국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은 집권 보수당에 밀려 참패하고 말았다. 제레미 코빈은 책임을 지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현재 노동당은 신임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5]
스웨덴의 혼성 그룹 아바(Abba)의 노래 제목. 이 기사는 북유럽의 복지 국가 스웨덴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기 위해 아바의 노래 제목들을 활용하고 있다.
[6]
총 의석수가 100석인 미국 상원에서 민주당은 현재 45석, 공화당은 53석을 차지하고 있다(2석은 무소속). 2020년 11월 3일에 대통령 선거와 함께 선거를 치르는 지역구는 모두 35곳인데, 민주당 지역구 12곳, 공화당 지역구 23곳이 대상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판세를 역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7]
2020년 11월 3일에는 대통령 선거, 상원 100석 중 35석, 그리고 하원 435석 전체에 대한 선거가 치러진다.
[8]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Sandinista) 민족 해방 전선과 샌더스의 이름을 합쳐서 샌더스를 지지하는 집단을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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