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식탁
4화

베이컨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베이컨이라는 발암 물질


내가 가끔 들르던 작은 카페에서 파는 베이컨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부드럽고 폭신한 하얀 빵 사이에 베이컨이 들어 있었다. 동네 정육점에서 두툼하게 잘라 온 베이컨의 식감은 바삭함과 쫄깃함의 중간쯤이었다.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작은 유리병에 담긴 케첩과 HP소스가 함께 나와서 원하는 만큼 뿌릴 수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빵과 베이컨, 소스. 몇 주에 한 번씩 들러서 진한 커피와 함께 먹는 샌드위치는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샌드위치가 내게 위안을 주지 못하게 됐다. 2015년 10월의 몇 주 동안, 내 주변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베이컨을 먹으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뉴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뉴스를 모르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모든 신문과 인터넷에서 대문짝만하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저널리스트는 《와이어드(Wired)》 매거진에 이렇게 썼다. “지금 인터넷에서 가장 뜨거운 두 단어는 베이컨과 암이다.” BBC 웹사이트는 조금 무미건조했다. “가공육이 암을 유발한다.” 반면에 《더 선(The Sun)》은 “죽이는 소시지”와 “주방의 살인마”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이야기는 WHO가 가공육을 1급 발암 물질로 분류하면서 시작됐다. 즉, 가공육이 암을 유발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WHO는 대장암에 대해서는 연관성이 더 확실하다고 밝혔다. WHO가 지적한 대상은 영국의 베이컨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살라미 소시지, 스페인의 초리조, 독일의 브라트부르스트 등 엄청나게 많은 식품들이 지목되었다.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흔해 빠진 일이지만,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WHO의 발표는 10개국 암 전문가 22명의 조언을 받은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가공육에 관한 400여 건 이상의 연구들을 검토했고, 검토 대상이 된 연구들에는 수십만 명으로부터 얻은 역학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가공육을 적게 먹어야 한다’는 말은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근거가 확실한 식단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이목을 끄는 건강 열풍이 아니라는 의미다. 모든 뉴스에서 이를 집중 보도했고, 가공육은 알코올, 석면, 담배와 같은 120가지의 발암 물질 목록에 포함되었다. 베이컨이 담배만큼이나 해롭다고 말하는 뉴스들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WHO의 권고안을 살펴보면, 가공육을 매일 50그램(베이컨 몇 조각 또는 핫도그 1개에 해당하는 양) 섭취하면 대장암 발병 가능성이 18퍼센트 증가한다. 더 많이 먹으면 그만큼 위험성이 커진다. 무언가를 먹어서 암에 걸릴 가능성이 5퍼센트나 6퍼센트 정도 증가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음식을 당장 멀리 치워 버릴 만큼 경각심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가공육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매년 3만 4000명이 암에 걸려 죽는다고 하면, 훨씬 더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영국 암 연구소(Cancer Research) UK에 따르면, 영국에서 아무도 가공육이나 붉은색 육류를 먹지 않는다면, 암 환자는 연간 8800명 줄어든다(영국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의 네 배를 살려낼 수 있는 셈이다).

이 뉴스가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영국인의 식단에서 햄과 베이컨은 모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루크 예이츠(Luke Yates)와 앨런 워드(Alan Warde) 연구원이 2012년 수집한 데이터에 의하면, 영국 성인의 약 4분의 1이 점심으로 햄 샌드위치를 먹는다. 소비자들에게 베이컨은 단순히 식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며, 가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잔디 깎는 냄새, 신선한 빵 냄새와 함께 베이컨 굽는 냄새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베이컨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심정은 마치 우리가 매일 아침 먹던 토스트에 할머니가 몰래 독약을 끼얹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았다.

채식주의자들은 베이컨 샌드위치가 어떻게 위안을 주는 음식이 될 수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대부분 좁고 불결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돼지들에게는 확실히 위안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사랑하는 음식 때문에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소식이 충격적이었다. WHO의 보고서가 보도된 다음 주에는 베이컨과 소시지 판매량이 급감했다. 단 2주 만에 영국 슈퍼마켓 체인의 매출액은 300만 파운드(47억 원) 줄어들었다[막스 앤 스펜서(Marks and Spencer, M&S)의 육류 생산 담당자인 커스티 애덤스는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고 말한다].

2015년 10월, SNS에서는 베이컨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해시태그들이 유행했다. #베이컨겟돈(Bacongeddon)은 그중 하나였다. 그만큼 아마겟돈 같았던 당시 상황에 두 번째 파장이 밀어닥쳤다. 한 가지는 베이컨과 담배를 비교하는 것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가공육을 먹는 것이나 해롭기는 마찬가지지만, 해로운 정도까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폐암의 86퍼센트는 흡연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가공육이나 붉은색 육류 섭취가 대장암 발병에 미치는 영향은 21퍼센트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발표 몇 주 후, WHO는 소비자들에게 가공육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내용의 해명 자료를 발표했다.

한편, 육류 업계는 둘 사이에 연관성이 없음을 주장하기 바빴다. 로비 단체인 북미 육류 협회(North American Meat Institute)는 WHO의 보고서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약간의 두려움 때문에 기름진 고기 식단을 버리는 것은 섣부르고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주장을 전체적으로 상식적인 어조의 문건에 담았다.

이후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공육 업계는 평상시처럼 보인다. 우리는 초기의 경각심을 대부분 떨쳐 버렸다. 영국 내 베이컨 매출은 2016년 중반까지 2년 동안 5퍼센트 상승했다. 2017년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의 식품 생산 담당자를 인터뷰했을 때는 초리조가 포함된 신제품이 영국인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베이컨과 암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증거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다. 2018년 1월에는 영국 여성 26만 2195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매일 (한 조각도 되지 않는) 9그램의 베이컨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이후에 유방암이 발병할 위험성이 상당히 증가한다. 연구의 대표 저자인 글래스고대학교 건강 복지 연구소(Institute of Health and Wellbeing)의 질 펠(Jill Pell)은 이러한 과학적 증거로 인해 보건 당국이 베이컨 섭취 중단이 아니라 안전한 섭취 권장량을 설정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가공육을 완전히 끊으라고 요구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베이컨의 진짜 문제점은 건강에 해롭다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WHO를 포함해 업계와 기관들이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제조 방법은 항상 있었다. 이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육류 업계의 막강한 힘 때문이다. 육류 업계는 지난 40년 동안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책임을 거대 담배 기업들에게 전가하고, 가공육의 해로움을 은폐하는 작전을 펼쳐 왔다.

 

위험한 분홍색


사람들은 베이컨을 구매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할까? 우선 여러 겹의 지방층이 있는 것과 등 쪽의 살코기 중에서 하나를 고를 것이다. 그다음에는 훈제한 것과 훈제하지 않은 것 중 하나를 고른다. 양쪽 진영의 지지자들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곤 한다(나는 훈제하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돼지가 자유 방목이나 유기농 방식으로 길러졌는지 살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예산이 빠듯해서 특별 할인 상품을 고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됐든, 베이컨을 장바구니 안에 넣기 전에 사람들은 고기가 핑크색인지 확인한다.

우리는 눈으로도 음식을 먹기 때문에, 주로 색상을 보고 보존 처리된 고기의 품질을 판단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쿠드레 기욤(Coudray Guillaume)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색깔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2017년 출간된 《코쇼너리(Cochonneries)》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코쇼너리는 프랑스어로 ‘돼지우리’를 뜻하며, ‘쓰레기’나 ‘정크 푸드’를 의미하기도 한다. 책의 부제는 ‘돼지고기는 어떻게 독이 되었는가’다. 《코쇼너리》는 마치 범죄 소설처럼 읽힌다. 범인이 가공육 산업이라면 피해자는 평범한 소비자들이다.

베이컨(또는 가공 햄이나 살라미)이 분홍빛을 띠는 것은 화학 약품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질산염과 아질산염으로 처리되었다는 표시다. 가공된 고기가 가공되지 않은 고기보다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이유도 바로 이런 화학 물질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드레 기욤은 이런 제품들을 가공육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질산 처리된 고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iutto di Parma)는 1993년부터 질산염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쿠드레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왔다. “완전히 정신 나간,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입니다.” 그는 지금도 가공육 업계에서 사용되는 질산염과 아질산염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미쳤다고 말하는 이유는, 발암 가능성이 낮은 방법으로 베이컨과 햄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보존 처리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소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소금 알갱이를 칠 수도 있고, 소금물에 담글 수도 있다. 그리고 가만히 두고 기다리면 된다. 쿠드레의 말에 따르면, 햄이나 베이컨 제조업체들은 이런 낡은 보존 처리 방식이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체들이 소금을 사용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소금을 사용하는 방식은 가공육에 풍미가 생기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이윤을 깎아 먹는다.

가공육의 의미에 대해서는 혼란이 있다. 이는 베이컨 산업이 유도한 것으로, 소비자들이 생고기를 갈아 만든 양고기 코프타(kofta)와 질산염 가공 페퍼로니를 듬뿍 얹은 피자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가공육은 정확하게는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소금에 절이거나 보존 처리한 것을 말한다. 훈제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갈아 놓은 신선한 쇠고기 1파운드는 가공육이 아니다. 보존 처리된 단단한 살라미 덩어리는 가공육이다.

베이컨이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은 주로 두 가지 첨가 물질 때문이다. 질산칼륨[초석(硝石)이라고도 한다]과 아질산염이다. 바로 이 첨가물들이 살라미와 베이컨과 가공 햄을 매혹적인 분홍빛으로 만들어 주는 물질이다. 초석은 고대부터 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용도로 여러 조리법에서 사용되어 왔다. 《돈육 식품과 프랑스 돼지 요리(Charcuterie and French Pork Cookery)》라는 책에서 제인 그릭슨(Jane Grigson)은 전통적인 햄 제조 과정에 초석이 쓰였다고 설명한다. “초석을 쓰면 매력적인 장밋빛이 살아나고, 그렇지 않으면 탁한 회갈색을 띠게 된다.”

20세기 이전에 초석을 이용해서 베이컨을 만들던 사람들은 고기가 보존 처리되면서 초석이 아질산염으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질산염은 다른 박테리아들을 억제하고 특유의 풍미를 만들어 내는 박테리아들을 더 빨리 생겨나게 만든다. 그리고 20세기 초가 되자, 육류 업계는 돼지고기에 순수한 아질산염을 첨가하게 되면 가공육 생산이 더 간단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60년대의 업계 소식지를 보면, 아질산염 판매 업체들이 가공육 사업의 이윤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밀은 바로 제조 속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60년대 프랑스에서 탄생한 어느 아질산염 브랜드의 이름은 비토호제(Vitorose)였는데, ‘빠르게 분홍색으로’라는 의미다.

질산 화합물은 소비자들에게 별다른 이득을 주지 않는다. 질산 화합물 자체가 발암 물질은 아니다. 사실 아질산염은 셀러리나 시금치 같은 각종 푸른 채소에서도 자연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베이컨 제조업자들은 쾌재를 부르면서 이 사실을 들먹이곤 한다. 영국의 베이컨 제조업자 한 명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추에도 아질산염이 들어 있지만, 그걸 먹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지만 아질산염을 사용한 가공 과정에는 자연적인 방식과 다른 일이 일어난다. 아질산염이 붉은 육류 안에 들어 있는 특정 성분(헴 철분, 아민, 아미드)과 반응해 N-니트로소 화합물이 생성되는 것이다. 바로 이 물질이 암을 유발한다. 이런 화합물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니트로사민이다. 쿠드레 기욤이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니트로사민은 “아주 적은 양의 섭취만으로도 암을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베이컨이나 햄을 비롯한 가공육을 먹는 사람들은 니트로사민을 소화 기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 물질은 내장의 세포들을 손상시키고, 이것이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베이컨을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이 사실을 모를 수 있지만, 과학자들은 니트로사민이 발암 물질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60여 년 전인 1956년에 피터 마지(Peter Magee)와 존 반스(John Barnes)라는 영국의 두 과학자는 쥐에게 디메틸니트로사민을 먹이면 간에 악성 종양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70년대에는 동물을 대상으로 소량의 니트로사민과 니트로사미드를 반복해서 투여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사람이 매일 아침마다 베이컨을 먹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실험 결과 간, 위, 식도, 창자, 방광, 뇌, 폐, 신장 등 다양한 기관에서 종양이 나타났다.

쥐나 다른 동물들을 암에 걸리게 한 물질이 반드시 인간에게도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암 연구자인 윌리엄 리진스키(William Lijinsky)는 이미 1976년에 베이컨과 같은 육류에서 발견되는 N-니트로소 화합물이 “인간에게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막대한 양의 증거들을 수집했다. 니트로사민과 암의 관련성에 관한 수백 건의 논문 중 하나만 살펴봐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1994년에 미국에서 유행병을 연구하던 두 명의 연구원은 1주일에 1회 이상 핫도그를 먹게 되면 소아 뇌종양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비타민이 별로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식단을 섭취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경향이 더 강했다.

1993년, 이탈리아 파르마 지역의 햄 제조업자들은 질산염을 모두 빼고 옛날 방식처럼 오직 소금만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기로 집단 결의했다. 26년 동안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iutto di Parma) 생산에는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을 사용하지 않고도 파르마산 햄은 여전히 짙은 장밋빛 분홍색이다. 우리는 이제 파르마산 제품들이 띠는 색깔이 무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색상은 햄이 18개월간 숙성되는 동안 효소 반응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 내는 햄이 질산염 없이 느린 보존 처리를 거친다면, 대량 생산 육가공품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핫도그를 만들려고 18개월 동안 기다릴 수는 없다”고 식품 과학 전문가인 해롤드 맥기(Harold McGee)는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질산염을 넣지 않고 오직 물과 허브만을 이용해서 베이컨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영국의 가공육 제조업체에 자문을 해주는 양돈업체 콰이어트 워터스 팜(Quiet Waters Farm)의 존 가워(John Gower)에 따르면, 질산염은 베이컨의 필수 성분이 아니다. “살라미처럼 다져서 만드는 육류 제품과는 다르게, 단단한 살코기 제품에는 안전을 이유로 질산염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팔려 나가는 베이컨은 오래되고 익숙한 것이라면 해롭다고 밝혀져도 계속 안주하려 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베이컨 제조업자들이 질산염을 선호하는 건 대부분 “문화적인” 요소 때문이라고 가워는 말한다.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기법으로 보존 처리된 베이컨에서는 가워가 말하는 “금속 맛이라고도 할 수 있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특유의 풍미”가 나지 않는다. 영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베이컨스러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산염 처리가 되지 않은 베이컨은, 가워의 말에 의하면, 그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일 뿐이다.

질산 처리된 고기의 위험성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왜 그런 위험성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걸까? 런던 시티 대학교의 식품 정책 교수인 코리나 혹스(Corinna Hawkes)는 가공육의 미래가 설탕처럼 될 것이라고 몇 년 전부터 예견해 왔다.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 부처가 개입해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혹스 교수는 조만간 소비자들이 암과 가공육의 연관성을 분명히 깨닫고, “왜 아무도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라고 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베이컨을 지켜라


2015년의 베이컨 패닉 사태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가공육이 좋지 않다는 공공 보건 권고안이 나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런 권고안은 40년 전에 나올 수도 있었다. 가공육 업계가 심각하게 위태로웠던 유일한 시기는 1970년대였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질산염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랠프 네이더(Ralph Nader)[1] 방식의 소비자 행동주의가 활발한 시대였고, 베이컨에 맞서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당시 어느 저명한 공공 의료 과학자는 베이컨을 “슈퍼마켓에서 가장 위험한 식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73년, 미국 식품 의약국(FDA)의 수석 독물학자였던 레오 프리드먼(Leo Freedman)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니트로사민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베이컨을 좋아한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미국의 육류 업계는 베이컨을 발암 물질로 보는 시각에 시급하게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첫 번째 대응은 과학자들이 과민 반응하는 것이라며 가볍게 비웃는 것이었다. 《파머스 위클리(Farmers Weekly)》는 1975년에 〈베이컨 공포의 실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기사는 보통 체중의 남성이 매일 11톤 이상의 베이컨을 먹는다고 해도 암에 걸릴 위험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다.

이후에 육류 업계는 더 현명한 방식으로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 육류 협회(AMI, 북미 육류 협회의 전신)는 질산염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서만 사용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존 처리되지 않은 식품에서 생성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성인 보툴리누스 식중독균을 억제하기 위해 질산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MI의 과학 담당 책임자는 보툴리누스균은 한 컵 분량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해로운 생물체를 제거함으로써 베이컨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1977년, FDA와 미국 농무부는 육류 업계에 석 달의 시간을 주고, 질산염과 아질산염이 무해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지시했다. 쿠드레의 책에 적혀 있는 바에 따르면 “만족스런 설명을 하지 못할 경우, 이 첨가물들은 36개월 안에 발암 물질을 만들지 않는 제조 방식으로 바뀌어야만 했다.” 육류 업계는 니트로사민이 발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 니트로사민이 발암 물질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질산염과 아질산염은 베이컨을 만드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라는 주장을 만들어 냈다. 그 물질을 첨가하지 않으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툴리누스 식중독에 걸려 죽게 된다는 것이다. FDA의 도전에 맞서서, AMI의 대표인 리처드 링(Richard Lyng)은 1978년에 가공육에 들어가는 아질산염이 “빵에 들어가는 이스트”와 같다고 주장했다.

베이컨을 지키기 위한 육류 업계의 전략은 “담배 산업의 전술 교본과 똑같았다”고 뉴욕대학교 식품 영양학 교수 매리언 네슬레(Marion Nestle)는 말한다. 교본의 첫 번째 전략은 과학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 AMI는 주로 위스콘신대학교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재정 지원을 했다.[2] 이들 육류 연구자들은 질산염의 유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산염으로 보존 처리되지 않은 햄들이 보툴리누스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음을 과장하는 글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질산염 처리를 하지 않은 햄은 보툴리누스 식중독을 일으킬까? 그게 사실이라면 이상한 점이 있다. 지난 25년 동안 질산염 처리 없이 생산된 파르마산 햄은 보툴리누스 식중독과 관련된 사고를 단 한 차례도 일으키지 않았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보존 식품이 일으킨 보툴리누스 식중독 사례의 대부분은 완벽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존 처리한 채소(그린빈, 완두콩, 버섯 등의 병조림 제품)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보툴리누스 식중독에 대한 주장은 연막작전이었다. 사람들이 베이컨이나 햄 안에 들어 있는 질산염과 아질산염의 유해성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소비자들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속해서 평소처럼 구매했다.
미시건주의 한 식당에서 판매하는 베이컨 샌드위치.
보툴리누스균을 핑계로 댄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AMI는 아질산염의 무해성을 3개월 내에 입증하라는 FDA의 명령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었다. 그러던 중 1980년에는 FDA 위원장이 새로 임명되었는데, 이번에는 핫도그에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질산염 규제안은 선반에 처박혔다. 업계에서 유일하게 양보한 사항은 가공육에 첨가되는 질산염의 함량에 제한을 두는 것과 비타민C를 첨가한다는 것이었다. 비타민C는 니트로사민 형성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니트로실-헴(nitrosyl-haem)이라는 또 다른 발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베이컨의 위험성을 반박하는 메시지들은 점점 기이해지기만 했다. 위스콘신대학교의 육류 과학 및 살코기 생물학 연구소에서 내놓은 설명 자료는 아질산염이 사실은 “혈압을 조절하고, 기억 손상을 막고, 부상 회복을 빠르게 하기 때문에 인간 건강의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육류 업계 웹사이트 ‘info-nitrites.fr’는 햄을 만드는 과정에 “올바른 양”의 아질산염을 사용하는 것은 제품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 주며, 햄은 아이들에게 정말로 좋은 음식이라고 말한다.

베이컨 업계의 로비는 놀라워서, 천연 식품 군단 내에서도 동맹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구글에 “아질산염 암 베이컨”이라고 검색하면,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는 팔레오(paleo) 다이어트[3]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쓴 글도 있는데, 베이컨이 실제로는 아주 훌륭한 건강식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글을 쓴 사람들은 질산염을 주로 섭취하는 경로는 채소라는 사실과 사람의 침 안에 아질산염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자주 언급한다. 널리 알려진 글 하나를 보면, 베이컨을 먹지 않는 것은 침을 삼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이컨이 건강학 식품이라고 옹호하는 인터넷상의 수많은 글들을 보면, 누가 육류 업계의 로비에 휘둘린 사람이고, 누가 그저 잘 모르는 풋내기 “영양 전문가”인지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이 됐든, 이러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수천 명의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우리는 왜 이러한 사실 은폐를 용인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베이컨은 건들지 마


우리는 베이컨의 해로움을 더 깊이 파헤쳐 왔지만,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음식이라는 문화적 맥락에는 거의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못했다. 이 글을 쓰려고 조사를 하면서 나는 가공육 업계의 거듭된 거짓 선동에 점점 더 혐오감이 커져 갔다. 나는 대장암을 치료하는 병원 병동과 그로 인한 끔찍한 고통, 치욕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어릴 적 일요일 아침에 부엌에서 아버지가 베이컨을 굽고 있던 모습도 떠올랐다. 베이컨이 전부 구워지면 아버지는 빵 몇 장을 가져다가 베이컨에서 나온 지방 위에 넣고 빵이 영양분을 모두 빨아들일 때까지 구웠다.

이론적으로라면 20세기 중반 냉장고가 널리 보급되었을 때, 소금에 절이고 보존 처리된 육류를 먹는 식습관은 모두 사라졌어야만 한다. 하지만 음식의 맛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수백만 명이 여전히 지글지글 구워 먹는 베이컨의 훈연 향, 짜고 감칠맛이 나는 풍미에 사로잡혀 있다.

담배에 대해 생각할 때와는 달리, 베이컨에는 감상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질산염 처리된 분홍빛 베이컨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사랑하는 어떤 문화가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밝혀질 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받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두뇌는 베이컨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끔찍한 기분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베이컨의 해악을 경고하는 건강 전문가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WHO의 2015년 보고서에 대한 다수 소비자의 반응은 이랬다. 베이컨은 건들지 마!

2010년, EU는 유기농 육류에 질산염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국의 유기농 베이컨 업계가 질산염 금지안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업계 단체인 유기농 농부와 재배자들(Organic Farmers & Growers)의 나이 지긋한 대표 리처드 제이콥스(Richard Jacobs)는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금지하는 것은 성장하고 있는 유기농 베이컨 시장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 대부분이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유기농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유기농 베이컨 생산에 질산염이 사용된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들린다. 돼지를 방목해서 기르고 유기농만을 먹이는 힘든 수고를 자처했는데, 왜 굳이 발암 물질을 사용해서 고기들을 보존 처리해야 할까? 덴마크의 유기농 베이컨은 모두 질산염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의 유기농 업계는 소비자들이 “회색빛” 나는 베이컨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비자들이 베이컨은 분홍빛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는 건강과 관련된 메시지가 전달되는 방식이 혼란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공육의 경우 식품 업계의 터무니없는 과장은 물론이고, 과학이 주는 경고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질산염 처리된 육류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WHO 웹사이트의 자료들은 너무 불분명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WHO 웹사이트는 “붉은 육류와 가공육의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은 어떤 성분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예를 들면, 육류 제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발암 물질 중에는 N-니트로소 화합물이 있다.” 이 문장을 쉽게 설명하면 아질산염이 베이컨의 발암성을 증가시킨다는 의미다. 그런데 WHO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 “암 발병 위험을 어떻게 증가시키는지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이고는 붉은 육류와 가공육의 위험성을 비교하는 다음 질문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전형적인 영국식 소시지는 가공육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안내는 불필요하게 소비자들을 무지하게 만든다. 소시지를 살펴보자. 나는 영국식 아침 요리에서 가장 건강에 해로운 요소가 베이컨보다는 소시지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이 글을 위한 자료 조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소시지가 가공육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국민 건강 보험(NHS)의 웹사이트에도 잘못 분류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소시송(saucisson)과 같은 단단한 소시지와는 다르게, 일반적인 영국식 소시지는 보존 처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고 오직 신선한 돼지고기, 빵가루, 허브, 소금, 메타중아황산나트륨(E223)만을 사용해서 만든다. 보존제로 사용되는 E223은 발암 물질이 아니다. 수많은 질문이 오고간 끝에, 미국 국립 암 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의 전문가 대변인 2명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신선한 소시지는 가공육이 아니라 “붉은 육류”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발암 물질일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나는 대부분의 소시지가 가공육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고, 토드 인 더 홀(toad in the hole)[4]을 만들 생각에 기쁜 나머지 부엌에서 춤을 추기까지 했다.]

암 연구자들에게 서로 다른 종류의 육류들이 가진 위험성을 가려 달라고 부탁하면, 당연하게도 말을 아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국립 암 연구소의 두 전문가가 내게 말한 바에 따르면,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포함한 육류가 “대장암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꾸준하게 확인되고 있다.” 다만 그들은 “암 발병 가능성이 베이컨과 같은 가공육에 들어 있는 다른 물질 때문인지, 니트로사민 때문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용의선상에 오른 다른 물질로는 헴 철분(haem iron)과 헤테로사이클릭아민(heterocyclic amine)이 있다. 헴 철분은 가공육이든 아니든 모든 붉은 육류에 많이 들어 있다. 헤테로사이클릭아민은 육류를 조리할 때 생성되는 화학 물질이다. 바삭하게 바짝 구운 베이컨 한 조각에는 다양한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성분이 질산염 때문에 생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추론으로는 왜 붉은 육류보다 가공육이 더 암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빼고는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험실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가공육과 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대부분 인구 전반에 퍼지는 질병에 대해 연구하는 역학(epidemiology) 분야에서 나온다. 하지만 역학자들은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무엇을 먹는지에 대한 여론 조사를 근거로 한 역학 데이터를 보면, 다량의 가공육이 포함된 식단이 높은 암 발병률로 연결된다는 점은 이제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지만 어떤 육류가 좋고 어떤 육류는 나쁜지,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이러한 데이터로는 알 수가 없다. 런던 시티 대학교의 코리나 혹스는 말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동네 이탈리아 식품점에서 파는 수제 돼지고기 식품을 먹었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저렴한 핫도그를 먹었는지를 물어보지 않거든요.”

질산 처리되지 않은 파르마 햄과 통상적인 베이컨을 먹었을 때의 암 발병 위험을 비교하는 연구 결과를 보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연구를 하는 역학자가 없다. 그래도 가장 근접했던 연구는 2015년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다. 가공육에서 발견되는 N-니트로소 헴 철분을 먹는 것은 신선한 붉은 육류에서 발견되는 헴 철분을 먹는 것보다 대장암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높다는 사실이 이 연구에서 확인됐다.

역학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가공육을 먹었는지 자세히 질문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을 사용하지 않고 대량으로 유통되는 대체 제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이제 변화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더 정확한 정보


우리가 사랑하는 분홍빛 고기를 덜 유해한 방식으로 만드는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기존 방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왜 여전히 자유롭게 판매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1970년대 질산염과의 전쟁 이후에 미국 소비자들은 유럽 소비자보다 질산염에 대해 자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시중에는 질산염 무첨가 베이컨이 많이 나와 있다. 글래스고대학교 건강 복지 연구소의 질 펠이 말한 대로, 문제는 미국에서 질산염 무첨가라는 라벨을 달고 팔리는 베이컨 대부분이 실제로는 질산염 무첨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제품들은 셀러리에서 추출한 질산염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물론 자연 성분이긴 하지만 육류 안에서 동일한 N-니트로소 화합물을 생성한다. EU의 규제에 따르면 이런 베이컨에는 질산염 무첨가라는 라벨을 붙일 수 없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 이런 최악의 거짓말은 본 적이 없습니다.” 피넨브로그 아티산(Finnebrogue Artisan)의 회장인 데니스 린(Denis Lynn)의 말이다. 북아일랜드에 있는 그의 회사는 M&S를 비롯해 많은 영국의 슈퍼마켓에 소시지를 만들어서 공급하고 있다. 린은 베이컨과 햄을 다양한 종류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그는 “질산염 없이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린 회장은 스페인에서 질산염을 넣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분홍색을 띠는 베이컨을 만드는 새로운 제조법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번에도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2009년, 식품 과학자이자 프로수르(Prosur)라는 식품 기술 업체의 대표 후안 데 디오스 에르난데스 카노바스(Juan de Dios Hernandez Canovas)는 신선한 돼지고기에 특정한 과일 추출물을 첨가하면 놀라울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분홍색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피넨브로그는 이 기술을 사용해 질산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베이컨과 햄을 만들었고, 2018년 1월 영국에 출시했다. 이 제품들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와 웨이트로즈(Waitrose)에서는 “네이키드(Naked) 베이컨”과 “네이키드 햄”이라는 상표를 달고 판매되고 있고, M&S에서는 “아질산염 무첨가 제조”라는 라벨을 달고 판매되고 있다. M&S에서 이 제품들의 출시를 담당했던 커스티 애덤스는 “보존 처리가 되지는 않은 제품”이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과일과 채소 추출물을 주입한 소금에 절인 신선한 돼지고기에 가깝고, 기존의 베이컨보다 쉽게 상할 수 있다. 하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면 크게 문제는 없다. 이 제품들은 생산 기간도 짧기 때문에, 질산염을 첨가하지 않는 다른 대안, 예를 들어 파르마 햄처럼 서서히 보존 처리되는 방식에 비해서도 훨씬 더 경제성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이 베이컨은 웨이트로즈에서 1팩에 3파운드(4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아주 저렴한 제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것도 아니다.

나는 M&S에서 피넨브로그 베이컨을 사서 먹어 봤다. 등심 베이컨은 약간의 과일 향과 함께 기분 좋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정육점에서 파는 얇게 저민 가공 베이컨이 주는 질감이나 훈제의 깊은 풍미는 없었지만, 질산 처리된 고기에 대한 대안이 생긴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다시 구매했다. 아마트리치아나 스파게티에 넣었는데, 가족 중 누구도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질산염 무첨가 베이컨이 비싸거나 독특한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암을 유발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독특한 일은 아니다. 린 회장은 과일 추출물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프로수르 측과 처음 접촉했을 때 프로수르가 영국에서 영업한 지난 2년 동안 대형 베이컨 제조업체들이 얼마나 반응을 보였는지 물었다. 전혀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린 회장은 말한다. “대형 회사들 중에서 이런 방법을 원하는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다른 가공육 제품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죠.”

하지만 소비자들이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이 첨가되지 않은 베이컨을 얼마나 원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베이컨과 암을 둘러싼 소란스러운 논쟁 속에서 베이컨 샌드위치 하나를 먹는 것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가공육이 포함된 식단으로 인해 매년 3만 4000명이 죽을 수 있지만,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암 연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가공육을 먹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모두 약간씩 다른 대답을 들려주었다. 질 펠은 채식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 가공육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장암 및 육류 전문가인 파브리스 피에르(Fabrice Pierre)에게 고기를 먹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그렇지만 항상 채소를 곁들여서 먹습니다.” [톡사림(Toxalim) 연구소에서 진행된 피에르의 연구를 보면, 햄에 들어있는 발암 물질의 영향은 채소를 먹음으로써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계속되는 것은 베이컨 업계에게는 축복이었다. 질산염과 아질산염으로 보존 처리된 육류의 위험성을 성공적으로 은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먹을거리에 대한 충고를 회의적으로 바라본 탓이기도 하다. 베이컨에 대한 공포심에 절정에 달했던 2015년에도 많은 지성인들은 가공육을 발암 물질로 규정한 새로운 기준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했다. 영양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는 동안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은 무방비 상태에 처했다. 베이컨 논란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아무래도 대중적인 분노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베이컨을 오래된 친구로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우리 모두 가공육이든 신선육이든 고기를 적게 먹을 것이다. 건강은 물론 지속 가능성과 동물 복지를 생각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서는 여전히 가공육이 일반적으로 소비되며, 구운 베이컨 대신 프로슈토 디 파르마를 살 여력이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고 있다. 연구원 존 커니(John Kearney)에 따르면, 현재 선진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육류의 절반가량이 가공육이다. 가공육은 흡연보다도 훨씬 더 보편적인 습관이다.

이 모든 일 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보는 것은 나처럼 힙한 카페에서 가끔씩 베이컨 샌드위치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소득이 낮고,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통곡물을 많이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 영양 불균형은 암의 또 다른 원인이고, 베이컨 섭취로 인한 해로움과 결합하면 더 큰 위험이 될 것이다. 쿠드레는 그의 책에서 서양식 가공육이 개발 도상국을 점령하면서 향후 몇 년간 수백만 명의 가난한 소비자들이 대장암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다.

2018년 2월, 프랑스의 유럽 의회 의원인 미셸 리바시(Michèle Rivasi)는 쿠드레와 협력하여 유럽 전체의 모든 육가공품에서 아질산염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베이컨 업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격렬하게 싸워 왔는지 떠올려 보면, 아질산염을 완전히 금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금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베이컨에 든 질산염과 아질산염의 위험성에 대처하는 방법은 남아 있다. 보다 정확한 정보를 밝혀내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코리나 혹스가 지적하듯이, 햄과 베이컨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간단하게는 가공육 제품에 경고 라벨을 붙이는 같은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컨에 문제를 제기할 만큼 용감한 정치인이 과연 영국 내에 있을까?
[1]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 활동가. GM 자동차의 결함을 고발하는 등, 미국 소비자 보호 운동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2]
위스콘신주는 낙농업과 육류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3]
농업 혁명 이전의 선사 시대 식단을 따르는 다이어트. 구석기 시대의(paleolithic) 식단이라는 의미다. 단백질과 식이 섬유 섭취를 늘리고, 탄수화물과 신석기 시대 이후 등장한 식재료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특징이다.
[4]
소시지를 튀겨서 만드는 영국식 가정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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