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9화

에필로그; 우리에게는 축제의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는 우리 일상의 일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돈, 권력, 부패, 중상모략과 같은 부정적 단어들과 연관 지으며 꺼린다. 하지만 정치를 혐오하고 멀리할수록 결국 손해는 시민이 입는다. 국회가 만든 법, 정부의 정책, 주민 서비스 등은 정치의 결과물이다. 시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멀리하면 할수록 정치인들의 자질과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나눠 먹기식 예산 배정은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결국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에 따른 정치적 참여의 결여는 민주주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다.

7년 동안 알메달렌의 정치를 직접 체험하며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을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되뇌는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재미있고, 쉽게, 그리고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누구나 참여하는 정치, 믿을 수 있는 정치로 만들 수는 없을까”였다. 정치를 축제로, 일상으로 만드는 알메달렌의 장점을 통해 우리 정치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1주일의 알메달렌 주간은 형식과 격식을 벗어 버리고 휴가를 즐기면서 정치인들과 나누는 쌍방향 소통 정치의 현장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궁금한 것을 그 자리에서 들려준다. 모든 정당의 당 대표, 정책 최고 책임자가 한자리에 모여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에 즉석에서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된 날카로운 비판들은 바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어 정치적 영향력도 크다.

알메달렌은 모든 정당에게 멍석을 깔아 주고 참가한 사람들이 골라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정책 장마당 같다. 모든 정당이 한자리에 모여 설명하기 때문에 한 정당씩 찾아다니며 정책을 들을 필요가 없다. 정당들이 내가 궁금해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정치인과 정당은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된다. 정치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수록 그 정당의 멍석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어깨에 힘을 빼고 우리의 눈높이 수준에 맞춰 접근하는 정치인들의 발표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알메달렌은 축제다. 골목마다 박수가 있고, 환호하며 갈채를 보내는 시민이 있다. 세미나장마다 음료수와 기념품으로 찾아 준 청중에게 답례한다. 세미나가 끝나면 토론자들에게 꽃을 주거나 포옹과 볼 키스로 화답한다. 서로 상극인 것처럼 싸우는 모습은 열띤 정책 토론장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만큼 성숙한 정치 문화와 축제 문화를 보여 준다. 정치는 성숙할수록 축제화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권력 싸움의 승자와 패자는 없다. 권력은 나눠 가질수록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것이 상생의 정치, 통합의 정치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축제의 중심에는 국민을 위한 민생 정치가 있다.

알메달렌은 정치 학습장이다. 1주일간 펼쳐지는 알메달렌에는 4000여 개 이상의 세미나가 열린다. 웬만한 정책은 총망라되어 있다. 육아, 가족, 교통과 같은 일상의 정책에서부터 외교, 국방, 우주까지 상상 가능한 정책은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우연히 골목 구석구석을 지나치다 마주치는 세미나에서 생각지도 못한 주제를 만났을 때에는 정책이란 잊고 있다가 가끔 그 중요성을 떠올리는 공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세미나에서 챙겨 온 책자와 기초 자료들은 다시 공부할 중요한 자료가 된다. 1주일 동안 세미나를 기웃거리다 보면 가방은 무거워져만 간다. 어느새 정책 전문가가 된 듯 뿌듯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메달렌은 카페 정치다. 알메달렌의 골목골목에는 야외 카페가 있다. 작은 카페 앞마당에도 여지없이 세미나들이 열리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놓고 듣는 정치 토론은 향내만큼이나 운치가 있다. 정치와 커피 향기는 서로 잘 안 어울리는 단어 같지만 이곳에서는 궁합이 참 잘 맞아떨어진다. 카페들은 정치인들의 이름과 토론 주제를 음료 메뉴와 함께 적은 메뉴판을 제공하기도 한다. 휴식의 공간인 카페도 중요한 정치 학습장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정치는 휴식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주제가 된다.

알메달렌은 특권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정치 향연이다. 권위와 힘을 뺀 정치는 자연스럽게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정치인을 위한 특별한 의전이 필요 없고, 행사 때마다 유명한 정치인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학술 행사에 가보면 국제회의에서조차 참석한 정치인들을 소개하느라 본 행사에 들어가기까지 한참 걸린다. 외국에서 손님을 모셔 놓고 정치인을 인사시키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 모르겠다. 유명 정치인일수록 인사만 하고 행사 중간에 빠져나가는 일을 당연시한다. 그런 정치인은 청산 후보 순위 1위에 올려야 마땅하다.

알메달렌에서 정치인은 인사만 하고 사라지는 특별 손님이 아니라, 토론의 주인공이자 시민의 동료이다. 전문적인 정책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은 국민이 정책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 준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감각은 선거에서 한 표로 행사된다. 이렇게 능력 있는 정치인, 수준 높은 시민, 훌륭한 정치 문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정치적 식견과 견해가 명확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는다. 상대가 있어야 정치는 존재한다. 나의 의견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획일적 절대주의로의 회귀일 뿐이다.

민주 정치는 독점 권력에서 다수의 권력 분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정치다. 처음 절대 권력에 저항한 세력은 귀족이었지만, 권력에 취해 특권을 버리지 못한 귀족 정치는 국민적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1800년대에만 왕정 세 번, 제정 세 번, 공화정 세 번을 경험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놓지 않아 매번 국민의 저항이나 외국의 군대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었다. 권력은 쥐고 있으려 할 때 가장 큰 저항을 받고 외세의 침략에 취약해진다는 사실이 역사로 확인된 셈이다.

이제 정치의 전문화를 이뤄야 할 때다. 정치인은 특권 계층이 아니라 정책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논리적 토론 능력과 정책 전문성을 갖춘 정치 지망생들이 정계에 입문해야 한다. 이들은 특권을 내려놓고 공부하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을 바꾸려면 국민이 먼저 변해야 정치인이 변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대립과 갈등을 끝내기 위한 작은 변화의 시작을 알메달렌의 만남의 정치, 축제의 정치가 전하는 메시지에서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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