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냐, 진보냐
1화

복고는 어떻게 진보가 되는가

미국을 변화시킬 바이든의 조심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역사로 기록되고 있을 때, 6월 초 워싱턴 라파예트 광장에서 벌어진 사진 촬영용 이벤트는 전환점이 됐다.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2015년 이후, 그의 정치적 수단은 언제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라파예트 광장에서의 무모한 행동은 기독교인들을 자극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성경책을 마치 소품처럼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최고위 군 사령관들을 당황케 했다. 결국 이들은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최루 가스를 살포한 정치 쇼에 개입한 데 대해 사과했다. 중요한 건 사과가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휘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보이는 것에만 기반을 둔 권력은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을 강타하기 전엔 견고하게 성장하는 경제 덕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재임 중인 대통령들은 이런 환경에서 대부분 이겼다. 《이코노미스트》의 선거 예측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경쟁자 조 바이든을 아슬아슬하게 앞섰다. 미국 내 여론 조사에선 약간 뒤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깊은 수렁에 빠졌다. 바이든이 일부 여론 조사에서 9퍼센트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그는 플로리다, 미시건, 그리고 위스콘신 같은 격전지에서 잘해 내고 있고, 특히 고령층, 또 놀랍게도 대학을 가지 않은 백인들 사이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이코노미스트》의 예측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확률은 10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바이러스는 설득의 여지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명확하게 보여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썩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말이다.

11월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지난 10년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작은 가능성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다가올 몇 달 동안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고 경제가 회복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얻을 것이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져 각 주에서 우편 투표를 할 수 없게 된다면 대선은 예측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바로 낮은 투표율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그는 과거에도 그에게 승리를 안겨 줬던 분열을 활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고지에 섰다(2화 참조). 트럼프 대통령의 헛발질로 민주당은 상원에서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주 생산적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한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광범위한 사회적 시위 이전에 바이든의 출마는 복원이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미국과 세계를 2016년의 타락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그는 그보다 더 거창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바이든의 도전을 위협으로 묘사한다. 그의 경쟁자가 경찰 예산을 축소하고 총기를 몰수하려는 급진파에게 인질로 잡힌 늙은 바보라고 경고하면서 유권자들을 겁주려고 한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고령의 원로가 중도 노선을 고수할 거라는 정반대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실제로 바이든이 처음 워싱턴에서 당선됐을 때, 엘비스 프레슬리가 하와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레오니트 브레주네프(Leonid Brezhnev)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변해 갈 때 인종, 성별, 종교 그리고 다른 문화적 상징에 대한 견해를 바꾸면서 살아남았다. 한 열성적인 민주당원은 신뢰받는 리더가 아닌 추종자가 어떻게 미국의 병을 고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사실 두 견해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 날 수도 있다. 지배적인 견해는 진보든 보수든 극단 세력이 미국에서 일어난 변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수의 경우 골드워터주의(Goldwater-ism), 티파티(the Tea Party·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세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다. 진보 쪽에선 베트남전 반대 시위, 사회 정의 캠페인 그리고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이 있다. 이런 극단 세력이 이끌지 않았다면 바이든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연방 정부 차원에서 변화가 이어지려면 상원에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을 겁주는 후보로는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바이든의 역설이다. 낙태권이나 강제 버스 통학(busing·백인과 흑인의 통합 교육을 위해 아동을 거주 지역 밖의 학교로 보내는 것)을 통한 학교 인종 차별 폐지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바이든이 진보가 맞는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정확히 몬태나, 조지아 등 상원 과반을 얻기 위해 이겨야 하는 지역의 유권자들을 안심시키는, 덜 위협적인 지점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급진적인 세력보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바이든의 조심성이다.

과거가 아닌 2020년이기 때문에 이런 점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는 트럼프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장 난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억압에 대한 승리였지만, 20분기 연속으로 떨어진 실업률과 줄어든 테러 공포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이번엔 다르다. 12만 8000명의 미국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고, 실업은 심각하다. 품위, 경험 그리고 경쟁자에게서 충고를 받아들이려는 의지 등 중도주의의 미덕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현실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바이든의 공약을 보면 된다. 그의 선거 캠프 사이트에는 그가 이기더라도 벌어질 가능성이 없는 정책 계획이 뷔페식으로 나열돼 있다. 그러나 그중 두 가지는 실현 가능할 수도 있다.

첫째는 미국인들이 정부로부터 의료 보험을 구입할 수 있게 공공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미국은 보편적인 의료 보험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흐름을 역행하지는 못했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보편 의료 보험 도입은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워질 것이다. 두 번째 공약은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줄이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2050년까지 순 배출량을 ‘제로’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외교 정책에선 다자간 협력에 복귀해 동맹국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혼란스런 세계를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바이든이 일부만 수행한다 하더라도 민주당 내 진보 세력의 비판은 무례하게 들릴 것이다.

일부 대통령들은 우연한 급진파들이었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이후 취임해 민권법을 통과시킨 린든 존슨(Lyndon Johnson), 온정적인 보수주의자였으나 9·11 이후 미국에서 두 번의 최장기 전쟁을 일으킨 네오콘(neocon·신보수주의자)으로 변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떠올려 보라. 정권 교체의 희망을 갖기 위해 바이든은 그의 미래가 걸린 이 역설을 오독해선 안 된다. 그가 미국을 새로운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중도의 관점에서 돌파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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