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사는 도시, 선전
1화

프롤로그; 가장 젊고, 가장 빠른 도시

중국의 대표 도시를 꼽으라면 어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의 대도시일 것이다. 지금부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알리바바, 바이두와 함께 중국 혁신을 주도하는 3대 기업인 텐센트,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이자 세계 3위의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 배터리를 시작으로 친환경 에너지와 자동차 개발을 선도하는 비야디(BYD), 민간용 드론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DJI 등 중국을 대표하는 혁신 기업의 본사가 있는 곳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도 아닌 선전(深圳)이다.

선전을 찾을 때면 이번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공항에 내리면 새로운 면세점이 손님을 맞고 있고, 공항 내에는 중국의 트렌드로 부상한 자판기에서 새로운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선전에는 200미터가 넘는 초고층 빌딩이 2016년 한 해에만 11개가 생겼다. 같은 해 미국 전역에 들어선 초고층 빌딩 수보다 많다. 40년 전만 해도 평범한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선전은 중국 최초의 경제 특구로 지정된 후 제조업을 기반으로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2016년 기준으로 선전의 국내 총생산GDP은 1조 9492억 위안(약 330조 3700억 원)에 달한다. 37년 전과 비교해 약 1만 배 성장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선전 속도’라는 말을 만들었다. 선전국제무역센터가 사흘에 한 층꼴로 올라갔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생겨나는 선전의 분위기를 빗댄 것이다. 선전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위한 도시로 체질을 개선해 유동 인구 포함 약 2000만 명이 거주하는 첨단 도시가 됐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계속 나타나면서 중국 전역의 젊은 인재들이 선전을 찾는다. 큰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청년 세대와, 선전에서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싶은 창업가가 모여든다. 선전의 평균 연령은 33세로, 중국에서 가장 젊고 역동적인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제조업 인프라와 도전과 능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 정부의 적극적 지원 정책은 유수의 기업을 탄생시킨 발판이자 미래의 혁신 기업을 키우는 토대가 되고 있다. 선전에는 약 8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의 제조 공장이 있고, 자체 공장을 꾸리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소규모로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형 기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제조 공장뿐 아니라 제품 디자인과 회로 설계를 맡길 수 있는 디자인 하우스도 수백 개에 이른다. 스타트업 트렌드가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선전의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한 세계 각국 스타트업의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와이어드(WIRED)의 다큐멘터리 <선전: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Shenzhen: The Silicon Valley of Hardware)>의 트레일러. 미래 도시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첫 순서를 선전이 장식했다.
내가 선전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당시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모바일 앱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사물인터넷(IoT) 스타트업이 막 등장할 무렵 생각난 지역이 선전이다. 그렇게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 상가이자 선전의 제조업 인프라 중심지인 화창베이(華强北)를 찾았다. 지금은 쾌적한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화창베이 전자 상가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워낙 규모가 컸던 데다가 상가마다 어떤 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지 한눈에 알기가 어려웠다. 화창베이 한복판에 숙소를 잡고 며칠 동안 그 주변을 돌아보며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난다. 화창베이 전자 상가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통할 정도로 다양한 부품을 취급하는 시장이다. 무언가 만들고 싶을 때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선전 메이커 문화의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선전은 메이커 페어(Maker Faire)도 세계 최대 규모로 개최한다. ‘메이커 페어 선전’에 가면 왜 주목받는 제조 스타트업이 선전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메이커 페어는 2006년 매거진 《메이크(MAKE)》가 소규모로 개최한 행사였지만, 현재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등 45개국에서 연 220회 이상 열리는 전 세계 메이커 이벤트의 대명사다. 2012년부터 열린 메이커 페어 선전은 샌프란시스코, 뉴욕과 함께 세계 3대 페어로 불리고 있다. 행사가 열리면 선전의 창업 특화 지역인 난산(南山) 소프트웨어 산업 단지 전역에 행사장이 꾸려진다. 세계에서 모인 메이커 팀들과 수백여 명의 스타트업 관계자가 부스를 꾸리고, 도시 전체가 메이커 페어로 들썩인다.

메이커 페어 선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행사를 찾는 경우가 많고,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IT 기업에 근무하는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자연스럽게 메이커 문화를 보여 주고, 아이들이 행사 부스에서 무언가 만들고 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어려서부터 메이커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선전에서 메이커 페어는 메이커 문화를 전파하는 혁신과 창조의 무대인 동시에, 어른부터 아이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의 공간이다. 반면 한국은 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코딩 열풍이 불고는 있지만, 일상 속에서 기술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토대는 약하다.

우리에게 중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다. 경제나 산업 부문에서 미국에 갖는 관심에 비하면, 중국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는 데는 소홀한 편이다. 중국의 최신 정보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 언론이나 해외 매체를 거쳐서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 방송과 다양한 미디어에서 중국의 혁신 기업을 소개하고 있고, 어느 때보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시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관련 기사에 달린 부정적인 댓글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중국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독자 여러분들이 한번쯤은 선전을 방문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 홍콩이나 마카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하루 정도 짬을 내어 선전을 찾아보자. 현지 전화번호가 없어도 현금이 필요 없는 모바일 결제와 각종 공유 경제 서비스를 충분히 체험할 수 있다. 직접 겪는 것보다 실감나는 글은 없을 것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창업가라면 국내에 법인을 두고 선전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꼭 선전에 법인을 세울 필요는 없다.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을 응용한 수준의 제품은 선전 공장에서 어렵지 않게 생산이 가능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이라도 공장의 제조 설비와 품질 관리 부서의 유무, 공장이 어떤 기업과 협업해 왔는지 등을 파악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빠른 제작이 가능하다.

선전을 주제로 강의를 할 때마다 받는 단골 질문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선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아쉽게도 제품을 개발, 생산하기 전에 시장 조사를 위해 잠깐 선전에 체류하는 경우는 많지만, 선전에 법인을 세우고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한국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중국에 대기업 제품이나 소비재를 수출하는 기업의 숫자에 비해 국내 스타트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가는 영역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익으로 사귄 사이는 이익 때문에 흩어지고, 힘으로 사귄 사이는 힘에 따라 기울며, 마음으로 사귀어야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以利相交 利盡則散, 以勢相交 勢去則傾, 惟以心相交 方成其久遠)’는 중국 격언이 있다. 중국은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는 지역이다. 중국 시장을 이해하고 따라잡기 위해서는 중국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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