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 이후의 건강
완결

판데믹 이후의 건강

판데믹 시대의 건강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의료의 디지털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는 넓게 보면 건강 관리 목적으로 활용되는 모든 디지털 기술이다. 의료 분야에 속해서 관련 규제를 받는 기술도 있지만, 단순히 운동이나 식단 관리 등을 돕는 분야도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 인공지능, 블록체인, 증강 현실(AR), 가상 현실(VR) 등 다양한 기술이 활용된다.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금도 이미 실생활에서 쓰이고 있다. 걸음 수를 측정하는 스마트폰 앱이나 다이어트 앱, 수면 패턴을 측정하는 앱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수기로 작성하던 진료 기록을 디지털 데이터로 입력, 저장, 공유, 분석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도 디지털 헬스케어에 속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인허가를 받은 것이 30개가 넘고, 한국에서도 20개가량이 허가를 받았다. 이미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판데믹 상황에서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건강에 기여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첫 번째는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식이 원격 의료다.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간 대면으로 전파된다. 의사와 환자, 환자와 환자 간 접촉을 줄이면서 의료 행위를 하는 기술이 큰 도움이 된다. 검체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원격으로 코로나19를 진단할 수는 없지만, 진단 이후 환자 모니터링 등 비대면 방식의 진료가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진단과 관련해서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봐야 할지 여부를 원격으로 판단해 주는 앱이나 웹사이트, 챗봇 등이 의료 기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질병을 가진 환자가 감염 위험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이동 제한 조치가 내려지고 병원의 거의 모든 자원이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데 집중되는 상황이다. 방치될 수밖에 없는 다른 질병 환자들이 원격 진료를 활용할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진료 외에 건강 관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에서 주목받은 헬스케어 기업 중 하나는 펠로톤(Peloton)이었다. 스크린을 장착한 실내 자전거로 운동 프로그램을 스트리밍하면 체육관에 가거나 운동 코치와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데이터를 활용해 코로나19 전파 상황을 추적,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마트폰 운영 체제 안드로이드와 iOS를 보유한 구글과 애플이 협력해 개발하고 있는, 확진자와의 접촉 여부를 알려 주는 앱이 대표적이다.[1]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해 다른 기기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기록을 남기고,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알려 주는 방식이다.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기억에 의존하거나 카드 거래 내역, CCTV 자료 등을 일일이 분석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OS에서 접촉 여부를 알 수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발병을 조기에 파악하거나, 인구 수준의 데이터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 ‘오우라(Oura)’는 반지 형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착용하고 있으면 체온과 심박수, 활동량, 호흡 수 등을 측정할 수 있다. 24시간 데이터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감염을 조기에 파악하거나, 환자의 상태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런 기기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인구 수준에서도 어떤 지역에서 발열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등의 감염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연동되는 체온계 킨사(Kinsa)는 미국 전역에서 100만 대 이상이 사용되고 있고, 각 가정의 실사용자 규모는 200만 명에 달한다. 이 발열 데이터를 지역별로 수집하면 코로나19 감염이 가속화되는 지역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2]

판데믹은 의료 행위의 여러 선택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리스크 대비 효용이다. 의료 행위에 부작용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판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원격 의료처럼 리스크가 있는 기술의 효용이 커지고, 기존 대면 의료 방식의 리스크가 커진다. 한국에서 원격 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의료는 데이터 과학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매 순간 데이터를 생산한다. 숨을 쉬고, 먹고, 보고, 듣고, 걷고, 잠을 자는 것,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체온이 바뀌고, 살이 찌는 것 모두가 데이터다.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혈액 검사, 엑스레이 등으로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도 다른 분야처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디지털’이라는 단어를 떼고 일반적인 ‘헬스케어’로 인식될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기술이 낯설어 보일 수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일상적인 의료와 건강 관리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성장 잠재력을 전망하는 것은 의료 분야의 잠재력을 전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다루는 분야다. 누구나 아프고 싶지 않고, 병에 걸리면 빨리 낫고 싶고, 가능하면 돈을 적게 쓰고 싶어 한다. 규제가 많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빠르게 접목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인공지능 기술은 의료 분야에 빠르게 접목되고 있다. 한국에서 의료 분야의 인공지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있었던 2016년 이후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인허가를 받은 인공지능 의료 기술이 20개가량 나왔고, 실제 병원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도 등장했다. 정말 필요하고 혁신적인 기술이라면 발전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원격 의료; 기술이 아닌 정치의 문제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도 진료나 질병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원격 의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원격 의료가 불법이던 국내에서도 2020년 2월부터 한시 허용됐고, 6월 28일까지 45만 건이 넘는 전화 상담 및 처방이 실제로 이루어졌다.[3] 현 상황에서 원격 진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원격 진료가 아니었다면 발생했을 감염이 몇 건인지, 부작용은 얼마나 있었는지 등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 파악하는 것 모두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성과는 환자들이 비대면 의료라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헬스케어 산업에는 큰 기회다.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예방을 위해 돈을 쓰지는 않았다. 건강한 상태가 기본이고, 아픈 것이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데믹은 모두가 언제든 아플 수 있고, 아프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을 만들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커진 가운데 비대면이라는 선택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원격 진료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런 선택지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원격 의료에는 원격 진료 외에도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 원격 수술, 원격 환자 모니터링 등이다. 원격 환자 모니터링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센서 등으로 측정한 데이터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해 내원을 안내하거나, 의료 상담, 더 나아가 진단까지 내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원격 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ICT 기술을 활용해 진료하는 것을 총칭한다. 음성 통화, 이메일, 텍스트 메시지, 화상 통화 등 방식은 다양하다. 서비스 유형도 여러 가지다. 기존에 받았던 진료 기록이나 엑스레이 사진 등 병리 데이터를 다른 병원에 보내서 의견을 받는 2차 소견,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데이터를 보내 진단을 받는 서비스도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렌즈로 촬영한 고막 영상, 피부 사진,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측정한 심전도 등의 데이터를 앱으로 의사에게 보내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원격 진료 자체는 전화나 스마트폰의 기능만으로도 가능하다. 데이터 보안, 의사가 작성하는 진료 기록 시스템과 데이터를 통합하는 시스템 개발, 원격 환자 모니터링을 위해 데이터를 측정하고 전송하는 기기 등에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현재 개발된 기술 수준에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원격 진료 기업인 텔라닥(Teladoc)은 코로나 이후 크게 주목받고 있다. 2016년 텔라닥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70퍼센트에 달한다. 미국 나스닥에 최초로 상장된 원격 의료 기업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텔라닥의 주가는 저점 대비 20배가량 상승했다. 시장 2위 기업인 아메리칸 웰(American Well)도 연내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원격 진료는 산업적으로도 상당히 주목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판데믹으로 원격 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허용 당시 세부적인 준비는 무책임할 만큼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환자의 본인 확인 방법, 사용하는 플랫폼, 수납, 약국에 처방전을 전달하는 방식 등에 관해 정해진 사항이 없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민간 기업이 채워 가고 있다. 메디히어, 굿닥, 똑닥 등이 원격 진료 플랫폼을 운영한다. 한시적 허용 이후 원격 의료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되면서, 원격 의료는 이미 정치적인 사안이 됐다.

도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한국에서는 원격 의료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미국의 경우 의료 접근성이 낮아서 가정의학과 같은 1차 병원을 예약해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2~3주를 기다려야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당일에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요성이 낮다는 것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는 있다.

원격 의료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줄이고, 접촉을 줄이기 때문에 판데믹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환자를 대면하지 못하는 제약이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는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환자를 진료한다. 청진, 촉진, 타진을 하고, 걸음걸이나 행색을 보기도 할 만큼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진료를 하는데 원격 진료에서는 불가능하다. 또 혈액 검사나 엑스레이, MRI 등의 검사가 불가능한 것도 제약이다. 이런 문제는 어느 국가에서나 생길 수 있는 원격 진료의 부작용이다. 한편 한국 시스템에서는 원격 의료가 전면 허용되면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지역의 1차 병원을 먼저 가고, 거기에서 치료받기 어려울 때 상급 병원에 가는 의료 전달 체계가 엄격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격 의료가 전면 허용되어 지방에 있는 환자들도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몰리게 되면 지역 병원들이 유지되기 어렵고, 전반적인 의료 비용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를 고려해 원격 의료를 어떤 수준까지 허용할지 정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의 ‘5하 원칙’을 세부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1차 병원 의사나 지역 주치의 등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도 있고, 원격 진료 대상 환자를 만성 질환 환자나 감염 질환 환자, 지역별 환자로 규제할 수도 있다. 재진부터 허용하거나 판데믹 상황에만 허용하는 등 상황을 제한하거나, 가능한 의료 행위, 원격 의료 방식 등도 제한할 수 있다. 모든 의료 행위가 그렇듯 원격 의료에도 리스크가 있지만,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이를 최소화할 방법을 만드는 것이 지금 필요한 논의다.

정부는 한국형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원격 의료를 장려하겠다는 방침이다. 원격 의료를 활성화해 의료 산업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격 의료를 허용하는 것과 장려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 접근성이 낮고 의료비도 국내 총생산(GDP)의 20퍼센트에 육박하기 때문에 원격 의료를 장려하는 것이 국민의 효용을 높일 수 있겠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원격 진료를 장려하는 것이 의료 산업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큰돈을 버는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원격 진료 기업의 매출은 단순화하면 진료 수와 건당 수익의 곱이다. 한국에서 건당 진료비는 사실상 국가의 통제하에 있다. 건수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원격 진료 앱에 약간의 불편함만 있어도 직접 병원에 가서 대면 진료를 받는 대체재를 쉽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환자들이 대면 진료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하면, 의료 접근성이 높은 한국에서는 원격 의료의 매력이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 모델에는 사업성이 있을 수 있다. 박리다매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원격 의료 모델이 하나의 예다. 미국의 유니콘 기업 힘스(Hims)는 제한된 진료 범위만 서비스한다. 탈모, 여드름, 금연, 성병, 발기 부전 등 환자가 병원에 가기를 꺼리거나, 비교적 진단과 처방이 명확한 질병이다. 혹은 횟수에 물리적인 제한이 없는 원격 2차 소견 서비스도 진료 건수를 높일 수 있다. 2차 소견은 이미 진단받은 질환에 대해 다른 의사의 소견을 받는 것을 말한다. 단 이 모델의 경우 사업적 가능성은 있지만, 국가의 의료 재정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비어 있는 데이터를 채우는 기술


현대 의료의 가장 기본적인 기조는 근거 중심 의료(evidence based medicine)다. 근거를 중심으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환자에게 처방해 주는 약, 적용하는 치료법 등은 모두 임상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암처럼 치명적인 질병의 경우 근거에 기반한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병원에 가도 치료법이 비슷하다. 근거는 결국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현대 의학이 지향하는 의료의 방향은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다. 모든 환자는 서로 다른 생물학적, 화학적, 유전학적 특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별 환자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술이나 커피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투약과 치료의 효과도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환자에게 맞는 치료를 하기 위해 그 환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환자를 집합으로 보던 과거와 달리 개인화된 의료를 목표로 하면서 필요한 데이터는 더 많아졌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기존의 의료, 헬스케어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이유는 데이터에 있다. 특히 환자 유래 의료 데이터(patient generated health data)는 기존 의료 체계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 일반적인 의료 데이터는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가 측정하고, 병원에 저장된다. 비용은 환자도 부담하지만, 보험사도 지불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의료비를 지불한다. 병원에 자주 가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 측정 빈도는 낮다. 반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로 측정하는 데이터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24시간 내내 측정할 수 있고, 환자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측정이나 저장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환자다. 데이터 측정 빈도와 소유권 측면에서 기존의 의료 데이터와 차별화되는 데이터다. 촘촘하게 측정된 다차원적 데이터가 쌓이면 이를 통해 증상이나 질병을 예측할 수 있고, 환자의 건강 상태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보통 손에서 피를 내고, 그 순간의 혈당을 측정한다. 반면 의료 기기 기업 메드트로닉(Medtronic)의 연속 혈당계는 복부에 착용하면 혈당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준다. 이렇게 연속 측정한 양질의 데이터가 쌓이면 혈당 관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에 사용되는 기술은 주로 인공지능이다. 메드트로닉의 연속 혈당계가 측정한 데이터를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처리해 앱 슈가아이큐(Sugar.IQ)를 통해 환자의 혈당 관리에 관한 조언을 해준다. 실시간 혈당 변화, 인슐린 주사 시간, 요일 및 시간별 환자의 행동과 식습관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언제 혈당 관리에 주의해야 하는지, 인슐린 용량을 어떻게 조정할지 제안하는 것이다. 이 앱을 사용한 환자들에게 혈당이 적정 범위 내로 유지되는 시간이 늘고, 저혈당이나 고혈당을 겪는 횟수가 감소했다는 것이 임상 연구로 검증되기도 했다.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심정지를 예측하는 인공지능도 개발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뷰노(VUNO)가 세종병원과 함께 개발한 인공지능은 혈압, 체온, 심장 박동 수, 호흡 수 등의 데이터를 딥러닝으로 학습해 환자의 심정지를 미리 예측한다. 이 인공지능이 기존 시스템보다 심정지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4]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나 FDA 등 규제 기관도 인허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의 식약처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의료 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2017년 발표하기도 했다. 분석에 사용하는 의료 데이터의 범위 역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엑스레이 사진, 진료 기록, 혈액 검사 결과 등 명백하게 의료 데이터로 볼 수 있는 것 외에 스마트폰이나 SNS 사용 패턴 등도 질병 예측이나 진단에 활용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용하는 필터, 올리는 사진에 나오는 사람 수, ‘좋아요’를 누르는 시간과 패턴 등이 우울증을 높은 확률로 예측하게 해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다른 연구는 스마트폰 사용 패턴을 통해 인지 능력의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할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의료 데이터와 관련해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또 다른 지점은 프라이버시 문제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환자 개인의 명시적 동의 없이 데이터를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특히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학습을 위해 수백만 명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일일이 명시적인 동의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올해 국회에서 통과됐고, 시행을 앞두고 있는 ‘데이터 3법’은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데이터를 기업이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연구 목적의 범위는 어떻게 설정할지, 데이터를 가명 처리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등을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가명 처리에 관해서는 기업과 환자 외에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데이터와 개인 정보 사이 연결 고리를 보호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전제는 데이터의 활용성과 프라이버시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쪽을 강화하면 다른 쪽은 약해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작용과 효용을 고려해 어느 정도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할지 논의해야 한다. 이 부분은 추후 데이터 3법의 시행령과 시행 규칙이 나오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치료제를 찾아라


코로나19로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 속도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판데믹으로 우리가 깨닫게 된 것처럼, 신약 개발 속도는 질병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특히 인공지능은 신약 개발의 각 단계에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신약 개발에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단계가 있다. 약이 공격할 타깃 단백질 등을 정하는 타깃 발굴, 후보 물질 발굴, 후보 물질 최적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 사람에게 실시하는 임상 1상, 2상, 3상 등이다. 전체 과정을 거치는 데는 통상 10년이 걸린다.

인공지능은 각 단계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후보 물질 발굴과 최적화는 시약을 사용해 사람이 실험하고, 기계를 작동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단계인데, 인공지능이 컴퓨터 내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결과를 도출하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아낄 수 있다. 타깃 물질 발굴도 기존 논문이나 실험 결과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주는 인공지능으로 후보를 추려 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또 다른 단계는 임상 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하는 절차다. 임상 시험은 철저한 조건을 가지고 진행한다. 환자의 기저 질환, 유전형, 질병력, 치료 이력 등의 조건이 맞아야만 대상으로 등록할 수 있다. 환자가 임상 시험 요건이 적힌 긴 문서를 일일이 읽거나, 의사의 기억에 의존해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단계에서 인공지능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임상 시험 환자 매칭은 실제로 IBM의 의료 인공지능인 왓슨이 하는 일 중 하나다. 인간의 언어, 즉 자연어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임상 연구 데이터베이스를 읽고 기억한 후, 특정 환자에게 적합한 것을 알려 준다. 사람이 일일이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하다. 왓슨이 환자 선별에 걸리는 시간을 78퍼센트 단축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5]

최근에는 임상 시험을 원격으로도 진행한다. 원래는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 약을 받고, 검사를 받았지만, 지금 환자가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인 미국에서는 약도 우편으로 받고, 데이터도 환자가 측정해 전송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임상 연구 전체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이 골라 준 후보 물질로 임상 3상을 진행하는 사례는 있지만, 최종적인 인허가를 받은 신약 역시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선별한 물질이라고 해도 임상 연구 절차와 허가 기준은 기존 신약과 동일하기 때문에, 허가를 받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기존 약, 의료 기기와는 다른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환자를 치료한다. 앱, 게임, VR, 챗봇 등이 환자를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 역시 신약을 개발할 때처럼 임상 시험을 진행해 약효와 안전성을 증명해야 하고, 규제 기관의 인허가도 받아야 하며,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확장성(scalability)이 무한대에 가까워서 주목받는 기술이다. 가령 알약은 수천만 명이 복용하도록 하려면 생산이나 유통이 까다롭지만, 앱 형태인 디지털 치료제는 무한정 배포가 가능하고, 국가 간 장벽도 거의 없다. 소프트웨어 형태이므로 비대면 방식으로 환자에게 의료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치되고 있는 만성 질환 및 정신 질환 환자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디지털 치료제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매우 다양하다. 만성 질환은 대부분 포함된다. 약물 중독,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등의 정신과 질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당뇨, 비만, 치매, 자폐증 등을 모두 포괄한다. 미국의 스타트업 페어 세러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개발한 중독 치료 앱 리셋(reSET)은 환자가 약물을 사용하는 상황과 요인을 파악하게 해주고, 충동을 조절하는 법 등을 훈련하도록 돕는다. FDA 인허가를 받았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사용한다.[6] 아킬리 인터랙티브 랩(Akili Interactive Laps)이 만드는 게임도 어린이 ADHD 환자들의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치료 효과를 인정받았다.[7] 알약이나 물약만이 아니라, 앱이나 게임도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 기기로서 FDA 등의 인허가를 받고 있다. 현재 열 개가량이 승인을 받았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이 신뢰를 얻고 활용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의사는 과학자로서 새로운 기술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근거가 있는지를 질문한다. 근거에도 레벨이 존재하는데, 전문가 한 명의 의견이 가장 낮은 수준의 근거이고 한 명의 환자 케이스 리포트, 무작위 환자에게 대조군을 갖추고 시행하는 무작위 임상 시험, 여러 임상 시험을 분석한 메타 연구 순으로 신뢰도가 높은 근거다. 더 높은 수준의 근거를 제시할수록 의료 전문가들을 설득할 수 있고, 전문가가 설득되면 환자들도 의사의 설명을 통해 새로운 치료 방법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FDA나 식약처 등 규제 기관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각 기관이 요구하는 수준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검증과 설득을 해내는 디지털 기술은 더 많아질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의 역할이 의료에서 더 커지고,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개념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10년과 앞으로 10년은 변화 속도나 기술의 파급 효과 면에서 완전히 다를 것이다. 미래는 우리의 상상보다 빠르게 오고 있다.

 

의료는 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외부 충격은 이런 변화를 더욱 촉발하고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금기가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더 이상 낯설어 하지 않는다.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개발을 도우려는 사람도 많다. 규제 역시 변화를 반영하며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주는 효용은 극대화하되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숙제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사용되더라도 의료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미래 의료의 지향점은 예방 의료(preventive medicine), 예측 의료(predictive medicine), 맞춤 의료(personalized medicine), 참여 의료(participatory medicine)다. 조기에 환자의 상태와 질병 위험을 파악하고, 개별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며, 그 과정에 환자가 더 많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의료는 변화할 것이다. 더 낮은 비용으로 환자에게 효과는 크고, 부작용 가능성은 낮은 의학적 조치를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의료에는 규제나 지불 구조 등 쉽게 변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규제 역시 기술과 사회 변화에 맞게 혁신하고 변화해 갈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미래 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디지털은 의료의 영역에서 더 이상 새로운 키워드가 아닐 것이다. CT(컴퓨터 단층 촬영, Computer Tomography)나 MRI(자기 공명 영상, Magnetic Resonance Imaging)는 50년도 되지 않은 기술이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의료는 새로운 기술들을 받아들이고 사용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결국 헬스케어가 될 것이다.
[2]
Donald G. McNeil Jr., 〈Can Smart Thermometers Track the Spread of the Coronavirus?〉, 《The New York Times》, 2020. 3. 18.
[4]
Kyung-Jae Cho and 8 others, 〈Detecting Patient Deterioration Using Artificial Intelligence in a Rapid Response System〉, 《Crit Care Medicine》 48(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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