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의 조건
완결

미래 도시의 조건

사람을 큐레이션하는 공간


가족을 이루는 방식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적 혈연관계의 세대 구성에서 벗어난 1인 가구들은 ‘1코노미’[1]라는 새로운 경제 단위를 창출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2019년 이후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는 1인 가구가 됐다.[2] 그러나 홀로 흩어졌던 1인 가구들은 지금, 다시 모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서로 비슷한 취향과 정체성을 가진 비친족 관계로 구성된 주거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거비 분담을 위한 일시적인 이합집산의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 정체성 기반의 지속 가능한 주거 커뮤니티가 등장한 것이다.
가치 기반의 코리빙 및 코워킹 커뮤니티인 스페인의 선앤컴퍼니 ©sunandco.

가치 기반의 주거 커뮤니티는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대안 주거의 큰 흐름이다. 가치 기반으로 설립된 최초의 코리빙 스페이스(co-living space)는 프리워커들이 자연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함께 살고 일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스페인의 선앤컴퍼니(Sun and Co.)다. 세르비아 최초의 공유 주택인 모크린 하우스(Mokrin House)는 관광객을 위한 문화 센터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코리빙 커뮤니티로 바꾼 사례다.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는 코워케이션(coworkation)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밖에 평균 연령 25~30세의 기업가들과 학생들이 모여 사는 영국의 컬렉티브 올드 오크(The Collective Old Oak), 덴마크의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모여 사는 비영리 공유 주택 네스트(The NEST)까지, 모두 공간의 하드웨어가 아닌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이웃’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기준으로 형성됐다.


물성이 아닌 가치로 공간성을 재정의하는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논스(Nonce)는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밀레니얼들이 모여 사는 가치 기반의 주거 커뮤니티다. 2018년 9월 1호점을 연 뒤 2년 만에 4호점까지 확장해 현재 100명이 넘는 입주자들이 살고 있다. 올해는 200명의 입주자를 목표로 확장 중에 있다. 논스는 주거 환경의 퀄리티(quality)나 가격 대신 ‘사람’을 큐레이션한다고 말한다. 정체성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프롭테크(proptech)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논스의 목표다. 30개 이상의 서비스를 배출한 혁신가들과 함께 일과 삶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논스의 하시은 CEO를 만났다.

 

취향을 넘어 정체성으로


논스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혁신가를 위한 ‘라이프 셰어링 커뮤니티’다. 창업이든 예술이든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 의해 안정감을 느끼고 함께 꿈을 이루는 공간이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정말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함께 모아 커뮤니티를 만든다면, 그 공간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터페이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공유 오피스나 공유 하우스가 늘고 있다. 논스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공간을 구성하는 큐레이션, 바로 사람이다. 코리빙 업체는 가격으로 공간을 큐레이션하지만 논스는 가격 대신 사람으로 큐레이션 한다. 꿈에 대한 잠재력과 삶에 대한 향상심을 가진 평균 연령 20대 중반의 사람들을 큐레이션하고 있다.

사람들은 오피스텔이나 주거 커뮤니티 대신 왜 논스에 입주할까?

퀄리티 타임(quality time)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논스에선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낼 확률이 높다. 음악이 너무 많아지면 좋은 음악을 큐레이션해 주는 서비스의 희소성이 커지듯이 정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말하는 퀄리티 타임은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양하고 원하는 방향성의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어 결국 입주자들의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 개념이다. 논스는 가치 있는 대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좋은 사람’을 주거 공간에 큐레이션한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자기만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타트업 오너부터 폴 댄스 학원 원장,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패션 기업의 대표, 음악 프로듀서, 게임 개발자, 미국 PGA 프로. 이외에도 정치, 뷰티, 인공지능, VC(venture capital), 모빌리티, 환경, 법조 등 다양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등학생도 있다.

고등학생도 있나?

기숙사에 살기 싫어서 입주한 분이다. 초기 논스에 입주했던 기업 고객들이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퇴실했던 것처럼 기숙사에선 공부와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게 큰 이유인 것 같다.

입주자들의 관계는 어떤가?

다른 소셜 살롱의 경우 하나의 관심사로 모인 약한 연대가 일반적이다. 논스도 마찬가지로 약한 연대에서 출발하지만 강한 연대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형성된 강한 연대를 통해 함께 사업을 기획하기도 하고 만난 지 9개월밖에 안 된 룸메이트끼리 포르셰를 공동 구매하기도 한다. 함께 사는 사람끼리 신뢰를 기반으로 물건을 공동 구매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같이 사는 가족,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들도 그래 왔다.

일터 밖의 만남으로 일과 관련된 기획을 만든다는 게 놀랍다.

논스 입주자들은 상호 보완적인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얻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자유롭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지난 시간 동안 논스 내부에서만 30개의 서비스가 탄생했다. 그렇다고 논스가 24시간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3]는 아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존경할 수는 있지만 친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논스는 창업가들이 긴장을 풀고, 몸을 누이고, 대화를 나누는 마을이지 일을 위한 전쟁터는 아니다. 전쟁은 바깥에서 치르고 안에서는 본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받길 바란다.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오래 모여 살 수 있는 동력은 뭘까?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취향이라는 말로 이해하기엔 부족한 개념이다. 내가 성 소수자이거나 장애인일 경우 그건 취향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우리나라 소셜 커뮤니티를 맵핑(mapping) 해보면 대부분이 취향이나 관심사 기반이다. 정체성 기반의 커뮤니티는 찾기 힘들다. 논스는 취향이 아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보다 강한 연대감을 나누며 오랜 시간 함께 살 수 있는 것 같다.

성비가 고른 편이다.

논스도 초기에 9 대 1로 성별의 편중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커뮤니티의 정체성이 정립되면서 성비 균형도 이루어졌다. 성별 편중이 심한 주거 커뮤니티의 통계도 이해가 된다. 보통의 코리빙이 인테리어나 치안을 기준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때문에 당연히 거주 환경에 따라 성비 쏠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논스는 주거 환경보다는 사람이라는 콘텐츠를 누리기 위해 입주하는 분들이 많아 선택의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논스 4호점의 공용 거실 ©Nonce

라이프 셰어링과 나눔의 프라이버시


보통의 주거 커뮤니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업가적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의 라이프 셰어링(life sharing) 커뮤니티라고 말하고 싶다. 논스는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코워킹, 코리빙도 하고 있고 같이 성장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코그로잉(co-growing)도 맞다. 그러나 주거 방식과 업무 형태만으로는 논스를 정의할 수 없다. 논스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다른 코리빙, 코워킹 커뮤니티들은 ‘스페이스 애즈 하드웨어(space as hardware)’를 믿지만 논스는 ‘스페이스 애즈 소프트웨어(space as software)’를 믿는다. 논스는 공간의 물리적인 특성이 아닌 그 공간에 정체성을 만들고 유지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데 더 집중했다.

초기에 사람들을 모은 전략이 궁금하다.

공동 창업자와 함께 살면서 블록체인을 공부하다 논스의 전신인 ‘블록체이너스’라는 블록체인 관련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유튜브 방송이 인기를 얻자 오프라인 파티를 개최했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의 라이프 셰어링에 매력을 느껴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2017년 9월 테헤란로에 논스라는 이름으로 지식 공유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수의 인원이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주로 ‘모여 살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공감하거나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었다.

주거 비용은 어떤 방식으로 분담했나?

처음엔 월세 대신 지식을 공유해야 하는 주거 제도를 운영했다. 월세를 내지 않아서 좋지만 본인의 지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퇴실해야 했다.

인원이 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구성원이 20명을 넘어가면서 100명의 입주자를 모집하는 ‘논스 10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래 혁명가들을 위한 베이스캠프(base camp for future revolutionists)’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이전까지는 지식 공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절차 없이 입주하고 나갔다. 2018년 4분기에 1호점을 내고 12월엔 2호점을 내면서 입주 방식을 허가제로 변경해 지원을 받고 인터뷰를 통해 선발했다. 당시 블록체인 붐이 일어 단순히 투기를 위해 블록체인 관련 정보를 얻어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수익은 어떻게 창출했나?

논스 1호점을 오픈하면서 지식 공유 대신 처음으로 월세를 받기 시작했다. 현재 임대 수익이 논스의 주 수입원이다.

위기는 없었나?

3, 4호점을 오픈했을 때였다. 고객 경험(user experience)에 익숙하지 않은 게 많았고 비즈니스 모델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업을 대상으로 일터와 주거 공간을 함께 공유해 주는 B2B(business to business) 서비스도 진행했지만 실패했다. 입주한 기업의 직원들은 일터와 주거가 분리되는 걸 원했다. 기업 또한 논스라는 커뮤니티보다는 일과 성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논스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았고 입주한 기업들이 하나둘 퇴실하고 공실이 많이 발생하게 되면서 수익에 마이너스가 났다.
논스 1호점에는 입주자들이 닮고 싶은 혁신가들의 잡지 커버를 전시한 공간이 있다. ©Nonce
위기를 이겨 낸 전략은 뭐였나?

모든 스타트업들이 한다는 ‘가설 검증’을 했다. 그때 고민은 ‘사람들이 왜 나갈까?’ 혹은 ‘왜 남아 있을까?’였다. 첫 번째 가설은 ‘사람들은 주거를 목적으로 논스에 입주한다’였다.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거가 주요 목적이 아니었다. 굳이 주거하지 않더라도 커뮤니티에서 어울릴 수 있다면 주거 비용만큼의 금액을 낼 의사도 있었다. 두 번째 가설은 ‘블록체인 지식을 얻기 위해 논스에 입주한다’였다. 블록체인에 대한 전문성이 우리 커뮤니티의 강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일과 삶을 분리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의 가장 큰 입주 동기는 본인과 비슷한 성향의 논스 입주자들과 삶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검증한 가설들을 통해 사업의 MVP(minimum viable product)가 완성됐다. 그 후 인원 증가와 매출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빠르게 피벗(pivot)에 성공한 비결이 있나?

‘블록체인을 하는 사람’이 ‘블록체인을 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데려오는 흐름이 훨씬 강했다. 건강한 욕심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논스의 입주자들이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에 사람들을 모으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입주자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블록체인 관련 업계가 아닌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현재 논스의 커뮤니티 매니저 또한 블록체인 업계와 무관하지만 논스 사람들의 에너지를 보고 입주를 희망한 사례 중 하나다. 입주 인터뷰 당시 “방시혁, 박진영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논스의 에너지 안에서 꿈을 키우게 해달라고 했다. 또 하나는 인터넷 기술 덕분에 좋은 사람들이 논스에 더 빠른 속도로 모일 수 있었다. 과거에는 원하는 사람을 찾을 때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컸지만 지금은 그 비용이 많이 줄었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뭔가?

우리 삶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상의 클라우드(cloud) 위로 옮겨졌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사물이 인터넷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실제 삶의 모든 인프라가 온라인상에 복제되고 있다. 이미 세상을 핵전쟁으로 멸망시킬 수 있는 코드는 클라우드 안에 몇 메가바이트도 안 되는 크기로 존재한다. 또 한편으로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낮아진 것이다. 과거엔 ‘나 이런 사람이야’를 외치기 위해서 서원을 만들거나 아고라에 모여야 했다면,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허공에 대고 ‘나는 떡볶이를 사랑해’라고 외치면 바로 ‘나도 사랑해’, ‘나도 떡볶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롤모델로 삼고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엔스파이럴Enspiral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탈중앙화 커뮤니티가 있다. 개발자 조슈아 비알(Joshua Vial)이라는 사람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설립한 코워킹 커뮤니티다. 엔스파이럴 구성원들은 느슨한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재단을 통해 돈까지 공유한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면서 동시에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커뮤니티를 위한 펀드를 내부에서 DIY로 만들어 운영하는데 안전한 재정과 주거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마음껏 하고 그렇게 얻은 수익은 다시 엔스파이럴을 유지하는 데 쓴다. 탈중앙화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커뮤니티 운영의 자동화 때문이다. 엔스파이럴의 구성원들이 직접 만든 툴인 루미오(loomio)를 통해 투표로 의사 결정을 하고 코버짓(cobudget)을 통해 돈을 분배해 운영한다.
댄스 스쿨, 투자 스터디, 명상 세션, 창업 클래스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개최된다. ©Nonce
커뮤니티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지금은 대부분 상향식으로 개최되지만 처음부터 모든 커뮤니티 활동이 자발적으로 운영되진 않았다. 처음엔 커뮤니티 행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운영진이 자주 개입했다. 커뮤니티 활동이 자동화되려면 행사를 개최할 때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를 입주자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헤징(hedging)할 수 있어야 한다.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고 ‘나눔의 프라이버시’를 통해서 가능하다.

나눔의 프라이버시라는 건 뭔가?

논스 내부에서 쓰는 단어다. 무언가를 나누고 싶을 때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눌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나눌지 말지 혹은 누구와 나눌지는 나누는 사람의 마음인 거다. 예전에 요리를 좋아하는 이탈리아인 입주자가 있었다. 종종 음식을 만들어 논스의 입주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그러나 일부 입주자가 감사 인사나 설거지 같은 답례 없이 가버리는 상황이 발생하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탈리아인 입주자에게 “모든 사람과 네 것을 나눌 필요는 없다. 네가 나누고 싶은 사람과 먼저 나누라”고 말해 줬다. 그 마음가짐을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나눔의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
입주자들은 주방과 냉장고를 공유하지만 서로의 식재료에 대한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지킨다. ©Nonce

힙합과 블록체인의 공통점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오래전부터 지식을 최대한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러다 “사람들이 함께 살면 더 많은 지식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017년 4월에 문영훈 공동 창업자와 먼저 같이 살기 시작했다.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오픈 소스(open source)가 되어 공유되기를 바랐다. ‘라이프 셰어링’이라는 개념을 이때 떠올렸다. 나와 공동 창업자 둘 모두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그래서 함께 살게 된 거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해외 커뮤니티에서 자란 경험과 힙합이다. 부모님 두 분은 각각 선교사, 목사였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는 걸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줄곧 나와 가족은 다양한 종교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생활했다. 남의 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중국 소수 민족 마을에 들어가 함께 살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집단 농업 공동체인 키부츠(Kibbutz)와 비폭력·무소유 신앙 공동체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브루더호프(Bruderhof)에서도 살았다. 5개국을 돌면서 한 나라에 2년 이상 살아 본 적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춘기 시절의 나는 어느 곳을 가도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에 입학한 뒤 힙합을 시작하면서 소속감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힙합이라는 정체성을 매개로 고유한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강한 연대감을 나누는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힙합에 매료돼 한국에 돌아와서도 줄곧 힙합 교육자로 일했다.

힙합에서 블록체인으로 넘어온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힙합 교육자로 일하던 어느 날 문득 ‘예술로는 내가 사는 동안엔 세상을 바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른 도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도구가 테크였다. 또 힙합을 그만두더라도 힙합의 본질을 마음에 품고 다른 일을 하면 힙합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전향을 결심하던 그때 마침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리플(Ripple)이라는 암호 화폐를 대출까지 받아서 사놓곤 “이게 뭐냐”고 내게 묻는데, 그 천진난만함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블록체인 교육에 기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시은 CEO(왼쪽에서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창업 전까지 힙합 그룹에서 활동했다. ©Nonce
힙합과 블록체인의 공통점이 있나?

블록체인은 또 다른 힙합이라고 생각한다. 블록체인도 힙합만큼 고유한 문화가 있고 블록체이너(blockchainer)라는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구성한 커뮤니티의 잠재력 또한 힙합 커뮤니티 이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도시


다른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은 없나?

당연히 있다. 땅은 항상 보고 다닌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성장을 리딩(leading)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물리적인 확장이 아니라 비슷한 정체성의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즐겁게 모여 살 수 있는 최적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거다. 우리의 확장은 이 소프트웨어를 외부에 팔아 다른 이들이 이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마을을 구성하고 도시를 설계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일에는 변수가 많다.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성장하기 위해 논스는 진화 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정의한 사회 관계학 개념인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법칙을 이용했다. 《던바의 수》에 따르면 한 부족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규모는 150~200이다.[4] 던바의 수를 넘어가면 정체성에 변화가 생기면서 커뮤니티가 소위 ‘기업화됐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논스는 한 유닛의 최대 인원을 던바의 수인 200명으로 잡고 여러 주제로 유닛들을 만들고 있다. 그중 제일 성공적으로 운영된 소프트웨어 하나를 복제할 계획이다. 유전 알고리즘을 적용한 전략이다. 그다음 성장의 단계로 넘어가는 유닛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엔 인원이 적으니 소프트웨어를 다듬을 수 있는 누적된 데이터가 부족했다. 20명 미만의 인원에선 갈등도 별로 없고 개선할 문제점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00명을 넘어가니 갈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운영 방식에서도 여기저기 보완할 점이 많다. 시행착오를 겪어 완성한 소프트웨어를 다음 유닛에 적용하면 조금 더 빠르고 수월하게 커뮤니티 빌딩(community building)이 가능하다.

정체성을 유지해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뭔가?

논스는 1인 가구들을 모아 일종의 유닛(unit)을 형성하려고 한다. 1인 가구들도 비슷한 정체성을 기준으로 함께 모인다면 혈연관계인 가족 이상의 강력한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공적인 유닛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불특정 다수보다는 한 가지 주제로 모인 소수를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한 주제가 성공하면 다른 주제로 또 다른 유닛을 만들거나 혹은 서로 다른 주제의 유닛과 유닛 사이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 가능할 거다. 현재 유닛의 주제는 ‘창업가의 마을’이다. 지금은 도시 안의 작은 버티컬(vertical) 커뮤니티이지만 미래엔 도시가 될 수 있고 국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외국은 정체성 기반의 새로운 도시가 생기고 있다.

정체성 기반의 도시는 어떤 건가?

세계 각국에선 도시를 펀딩해서 만드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차터 시티(Charter City)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언어로 하면 헌장 도시인데 뉴욕대 폴 로머(Paul Romer)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차터 시티의 목표는 각 도시에서 최고의 선진 시스템들을 가져와 조합해서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5]를 지닌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차터 시티를 펀딩하는 펀드들이 따로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하향식의 계획도시가 아니라 프로노모스 캐피털(Pronomos Capital)이라는 민간 투자사가 주도해 상향식으로 도시를 펀딩해서 만들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의 컬드삭(Culdesac)을 예로 들 수 있다. 컬드삭은 개인 차량이 없는 도시를 만들어 2000명의 시민을 모집하고 있다. ‘리브 인 어 파이브 미닛 시티(Live in a 5-minute city)’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데, 차 없이 도보로 5분 안에 도시 안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시스테딩 인스티튜트(The Seasteading Institute)라는 곳도 인상적이다. 떠다니는 바다 도시를 만들어 해수면 상승, 인구 과잉,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솔루션을 지닌 비영리 싱크 탱크(think tank)다. 정치적 자율성을 기반으로 바다 위의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표방하고 있다.

 

마을과 도시를 꿈꾸는 커뮤니티


논스가 주거의 종착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목표는 그렇다. 1인 가구들이 논스 안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 과거엔 삶의 반 이상을 혈연관계의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현재는 혼인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고 비혼을 결심한 사람들도 많다. 반면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1인 가구들을 위한 솔루션과 제품들은 임시방편에 가깝다. 비용이나 환경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급자들이 1인 가구를 종착점으로 보지 않고 거쳐 가는 임시 거주 형태로 생각하거나 깊은 고민 없이 평면적으로만 싱글 플레이어의 경험을 상상하고 만든 탓이다.
1인실부터 다인실까지 침실의 형태도 다양하다. ©Nonce
논스가 꿈꾸는 커뮤니티의 미래는 무엇인가?

정체성 기반의 마을과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엔 블록체인 커뮤니티로 시작해 현재 스타트업, 예술, 환경, 정치,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입주자들과 함께하며 커뮤니티를 확장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콘텐츠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의 가치까지 높이는 프롭테크 기업이 목표다.

소프트웨어 기반의 공간이 구체적으로 뭔가?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부동산이라는 하드웨어의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입주시키는가’가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 지금까지 공간에 사람을 채운 경우는 많았다. 우리가 도전하고 싶은 건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 공간에 모여 살 수 있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거다. 다중 간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려면 소프트웨어로서의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만들어진 네트워크가 강력하게 유지되기 위해선 사람들 간의 상호 작용(interactivity)이 핵심이다. 상호 작용의 종류엔 사람-사람 인터랙션(human-human Interaction, HHI), 사람-컴퓨터 인터랙션(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사람-빌딩 인터랙션(human-building interaction, HBI)이 있다. 논스는 개인이라는 노드(node)[6]들을 정체성이라는 소프트웨어로 연결시키고 공간이라는 하드웨어로 감싼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이상적인 커뮤니티의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버드 법대 교수인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이 쓴 책 《코드 2.0》[7]에서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법, 시장, 코드 및 건축, 사회적 규범 네 가지를 언급한다. 어떤 도로에서 지속적으로 사고가 재발할 때 개선 방법으로 네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방지 턱을 설치하는 것, 두 번째는 1차선을 2차선으로 나눠서 한 차선은 유료인 대신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한 차선은 무료인 대신 저속으로 달리게 하는 시장 질서를 도입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규범을 강조하는 것, 마지막은 법은 어길 때 높은 벌금을 매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4번을 적용한다. 반면 논스는 4번을 제외한 세 가지를 통해서 논스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행동 변화를 장려하는 실험을 통해 입주자들이 서로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행동 변화를 장려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커뮤니티용 앱을 개발 중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셜 그래프(social graph)로 만들어 디지털에 플로팅(floating)한 뒤 안 친한 사람들과 커피나 음식을 먹으면 친한 사람들과 그랬을 때보다 앱을 통해 포인트를 더 주는 방식이다. 포인트라는 장치를 통해 커뮤니티를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하고 싶었다.

커뮤니티를 게이미피케이션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요즘 많이 언급되고 있는 스마트시티(smart city)는 신기한 기술로 가득 채워진 편리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지루한 삶을 만드는 환경이 될 수도 있다. 스마트시티가 더 편리하게 고립되는 삶을 위한 것이라면 커뮤니티는 재미있지만 조금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같다. 결국 사람들은 재미를 찾기 마련이다.

앱은 입주자 프로젝트의 빠른 성장을 돕기 위한 도구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입주자를 큐레이션하는 방법 중엔 사전 선발(pre-selection)과 사후 선발(post-selection)이 있다. 기존의 논스는 전자의 방법을 채택해 입주 전 인터뷰를 통해서 선발했다. 앞으로는 사후 선발을 통해 입주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입주자가 본인 프로젝트의 핵심 성과 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 KPI)를 설정하고 입주 후 3~6개월 동안을 작업을 증명하는 기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입주한 사람들인 만큼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다.
논스 1층의 입주자 코워킹 공간 ©Nonce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도 ‘도시 안의 마을’을 만들면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집중할 거다. 현재 논스 유닛의 주제인 ‘창업가의 마을’은 우리의 첫 번째 소프트웨어다. 이 유닛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나면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두 번째 유닛을 만들고 싶다.

입주자들의 사업이나 프로젝트 가운데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올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목받은 ‘공약쥬스’가 있다. 관심 있는 분야나 공약을 고르면 1분 만에 사용자에게 적합한 정당을 안내해 주는 서비스다. 공약쥬스의 전신인 ‘누구 뽑지’라는 서비스를 만든 입주자가 논스 안에서 팀을 꾸려 만들었다. 받고 싶은 선물을 지인들에게 미리 공개하고 품목마다 펀딩을 통해 받을 수 있는 ‘프레제뉴’라는 서비스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중 카메라 싱크 기술사인 ‘리플로우’를 소개하고 싶다. 수천 대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들의 싱크를 자동으로 맞춰 주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최근 인기를 얻은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도 쓰였다.

어떤 사람이 입주하길 바라나?

창업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일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모두 환영한다. 논스에 오면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두렵거나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밤낮으로 본인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본인도 더 빠르게 꿈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1]
‘1인 가구’에 ‘경제’를 뜻하는 영어 단어 ‘이코노미(economy)’가 합성된 단어로, 1인 가구 급증으로 나타난 경제 현상을 가리킨다.《일코노미》, 네이버 지식백과.
[2]
최진우, 〈1인 가구 비중 가장 많아져…29.8% ‘나 혼자 산다’〉, 《연합인포맥스》, 2019. 09. 18.
[3]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돕는 단체나 개인을 뜻하는 용어로 자동차의 가속 장치인 '액셀러레이터'에서 명칭을 따왔다. 《엑셀러레이터와 인큐베이터》, 네이버 지식백과.
[4]
로빈 던바(김정희 譯), 《던바의 수》, arte, 2018.
[5]
일방적인 정부 주도식에서 벗어나 기업, 비정부 기구 등 다양한 행위자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국정 운영의 방식을 뜻한다.《거버넌스》, 네이버 지식백과.
[6]
네트워크에서 연결 포인트 혹은 데이터 전송의 종점 혹은 재분배점을 말한다. 《노드》, 네이버 지식백과.
[7]
로렌스 레식(김정오 譯), 《코드 2.0》, 나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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