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어떻게 일본을 바꿨나
1화

개혁가, 작별을 고하다

아베는 경제와 외교를 개조했을 뿐 아니라, 향후의 개혁을 위한 길을 닦았다.

기록은 8월 말에 깨졌다. 그리고 불과 나흘 뒤, 기록을 깨부순 그는 자기 자신도 부서지고 말았다고 했다. 아베 신조는 일본 총리로서 역대 최장 기간 연속 재임 기록을 세운 후, 지난 8월 28일 사의를 표명했다(1차 재임 시기까지 합치면 그가 총리로 일한 전체 기간도 최장 기록에 해당한다).

아베는 이런 갑작스런 결정이 오랜 소화기 질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속한 자유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그는 1년여 뒤에는 사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1] 많은 이들은 그의 퇴임이 패배를 시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무기력했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코로나19로 (경제는)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자위대의 무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올여름에 열릴 예정이었던 그의 마지막 작품, 도쿄올림픽은 아마 개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지율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암울한 순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중국의 커지는 호전성, 그리고 일본 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 현상으로 오는 9월 14일 자민당 의원들이 선출하는 아베의 후임자는 아마 더 힘겨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2화 참조). 하지만 이런 모든 문제들은 아베가 8년 재임하는 동안 조금은 나아졌다. 물러날 아베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잘해 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 ‘아베노믹스’는 비록 느린 속도이긴 했지만, 경제를 소생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정세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던 일본이 아시아 및 전 세계에서 상당히 두드러지면서도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베는 그보다 짧은 기간 재임하면서 덜 능숙했던 전임 총리들이 수십 년 동안 꺼렸던 어려운 개혁 과제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는 조용한 퇴장이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유산을 남겼다.

아베노믹스는 막대한 재정 지출, 급진적인 통화 정책, 구조적인 개혁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없애고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었다. 아베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을 연 2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자신의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플러스 수치로는 돌려놓았다. 아베가 취임하기 전, 물가는 4년 연속 하락하고 있었지만, 취임 이후로는 1년만 제외하고 7년 동안 상승해 왔다. 재임 중 일본 경제는 71개월간 회복세를 누렸는데, 이는 전후 최고 기록에서 불과 두 달 모자란 성적이다. 그리고 일본의 생산성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아베는 이전까지 정치적, 문화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정책들을 도입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대형 무역 협정인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의 일환으로, 관세를 인하하고 농산품의 수입 쿼터를 늘리기로 합의했다. 피해를 보는 농민들이 자민당의 가장 충실한 지지층이었음에도 말이다. 무상 유치원과 기타 보조금 등에 힘입은 일본의 많은 여성들은 노동 인구에 합류했다. 지금 일본의 여성들이 일할 가능성은 미국의 여성들보다 커졌다. 이민에 대한 국민적 공포에도 불구하고 아베 취임 당시의 두 배가 넘는 이주 노동자들이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기업 지배 구조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현재 일본의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사외 이사를 두고 있다. 2012년에는 그 비율이 4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본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됐다. 바로 이번 주에만 하더라도, 워런 버핏이 일본 재벌 기업들의 주식들을 마구 사들였다.[2] 지난 10년 동안 거의 꼼짝하지 않았던 주식 시장의 주요 지수들은 아베의 재임 기간 2배 이상 상승했다.

물론 실수도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는 두 차례에 걸친 소비세 인상이다.[3] 두 번의 결정은 모두 경제를 일시적인 침체 상태에 빠뜨렸다. 하지만 정부 차입(government borrowing)의 규모가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이자율의 감당할 수 없는 상승을 촉발할 것이라든가, 반대로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다면 대형 은행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암울한 경고는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베는 활기 넘치는 능숙한 외교로 다른 여러 예상들도 틀렸음을 입증했다. 일본 제국주의 전시 체제의 설계자[4] 중 한 명의 손자이고, 스스로 민족주의자라고 공언한 그는 일본의 동맹국들을 배제시키면서 중국과는 위험한 분쟁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었다. 실제로 그는 한국과 의미 없는 역사적 반목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중국의 분노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대항하기 위해 생각이 비슷한 주변국 정부들을 어떻게든 결집시키고 있었다. 미국이 TPP를 탈퇴했을 때에도, 체제를 유지시킨 것은 아베였다. 아베는 또 호주나 인도 같은 동료 민주주의 국가들과 군사적인 협력을 강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또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도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진핑은 코로나19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지난 4월에 일본을 방문했을 것이다.

평화헌법은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일본을 세계 무대에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위대에 대한 지출을 늘렸고, 자위대가 공동 방위 조약과 평화 유지 임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중국해에 있는 작은 섬들에 대한 영토 분쟁에서 확고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아베는 후임자에게 수많은 시급한 사안들을 남겨 두었다.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노동 인구로 끌어들이고,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업 문화는 여전히 지나치게 성차별적이어서 여성들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대부분은 희망이 없는 직업에 머물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뚜렷한 구분 역시 노동 시장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디지털의 비중은 지나치게 적다. 특히 정부 업무가 그렇다. 에너지 체계의 친환경 전환에 있어서는 거의 진전을 이뤄 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아베는 많은 일들을 끝마치지 못한 채로 남겨 두었지만, 후임자가 일을 마칠 수 있는 도구를 남겨 주고 있다. 그가 이룬 성과 중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일본을 조금 더 통치 가능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현재 자민당 내에서의 계파 다툼을 어떻게든 가라앉히고 있다. 자민당은 전임 총리들이 재임하는 동안 그들을 격랑에 빠뜨리며 단기간에 주저앉히곤 했다. 아베는 그동안 수시로 바뀌는 정치인들에 맞춰서 운영되었던 관료 체제를 선출된 권력의 통제하에 확고히 편입시켰다. 일본의 경제에는 여전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차기 총리가 무언가를 해낸다면, 대부분은 아베가 마련한 준비 작업 때문일 것이다.
[1]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 여당의 총재가 내각의 총리직을 맡는다. 집권 자민당의 당헌 당규에 따르면 당 총재직은 3선까지만 가능하다. 아베는 현재 자민당의 총재직을 3기 연속으로 맡고 있어 예정대로라면 3선 임기가 끝나는 2021년 9월에 사임한다.
[2]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8월 31일 미쓰비시 상사, 이토추 상사, 마루베니, 미쓰이 물산, 스미토모 상사 등 일본의 5대 종합 상사 주식을 각각 5퍼센트 씩 지난 1년 동안 사들였다고 밝혔다.
[3]
상품에 붙는 세금으로 우리나라의 부가 가치세와 비슷하다. 아베 정부는 5퍼센트였던 소비세를 2014년 8퍼센트, 2019년 10퍼센트로 인상했다.
[4]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으로 분류되었으나 기소되지 않은 채 석방되었고, 이후 총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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