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라이벌리즘
1화

프롤로그; 왜 중동을 알아야 할까

한국에서 중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성별, 직업, 지위, 나이, 교육 수준을 불구하고 ‘잘 모른다’, ‘너무 복잡하고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알고 싶고 흥미로워 보이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중 한 가지 반응이 나온다. ‘중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해 보라고 하면 나오는 대답은 십중팔구 석유, 전쟁, 이슬람교, 사막 정도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정말 잘 안 나온다.

한국에서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 그룹에서도 중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른바 서울의 주요 대학이라고 불리는 대학의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인 기준) 중 중동 정치나 외교를 주 전공으로 공부했고, 계속 연구 중인 교수는 2020년 10월 기준으로 없다.[1] 이 대학들에 설치돼 있는 국제대학원에도 역시 중동 정치나 외교를 전공 중인 교수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한국외국어대가 유일하다.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 외교관 교육, 외교 안보 및 지역별 정세 연구가 주 업무인 국립외교원에도 중동을 전문 분야로 연구하는 교수는 1명뿐이다.

한국 언론의 중동에 대한 관심도 많이 부족하다. 한국 언론사 중 중동 지역에 특파원[2]을 운용하고 있는 곳은 2020년 10월 기준 동아일보(이집트 카이로), 연합뉴스(이란 테헤란, 이집트 카이로, 터키 이스탄불), KBS(아랍에미리트 두바이)뿐이다. 반면 얼핏 보기에는 우리와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덜 글로벌화되어 있을 것 같은 일본은 중동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다. 주요 언론사들의 중동 특파원 네트워크만 봐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일본의 대표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아사히신문은 이집트 카이로, 이란 테헤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터키 이스탄불,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이 신문은 몇 해 전까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도 특파원이 있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집트 카이로(2명), 이란 테헤란, 터키 이스탄불,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특파원이 있다. 대표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이집트 카이로, 터키 이스탄불, UAE 두바이에 특파원이 있다. 일본 신문의 중동 특파원들은 현지 직원도 고용해 취재에 활용한다. 또 ‘우리 신문을 보는 독자라면 중동 이슈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전통 있는 신문이라면 중동 이슈를 적극 취재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도 중동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다. 국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은 이집트 카이로의 대표적인 외교 공관 밀집 지역인 마아디(Maadi)에 10층 이상 되는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다. 취재 현장에는 중국에서 직접 파견된 기자뿐 아니라 현지인 기자도 여러 명 동행할 때가 많다. 자세한 사항은 밝히지 않지만, 인력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윤완준 정치부 차장(전 베이징 특파원)은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중국 TV 뉴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로 중동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보도를 꼽았다. 한국 언론에서는 거의 안 다루고, 당장은 중국과 상관없어 보이는 중동 이슈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게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비교가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유일한 평가 방법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도 되는 경제 규모와 국제적 인지도를 지닌 나라 중 한국처럼 중동에 관심이 없는 나라도 드물다. 그리고 중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중동을 공부하면 직간접적으로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먼저, 중동은 경제·산업적으로 소중한 시장이다. 한국의 대표 건설사인 현대건설, GS건설, 삼성물산 건설 부문 등이 1980년대부터 석유 화학 플랜트에서부터 초고층 빌딩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건설업계의 핵심 시장이다. 한국산 전자 제품, 자동차, 대중문화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산유국에선 한국 의료, 관광, 음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중동은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던 한국 조선 산업에 최근 단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20년 6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3사가 23조 원 이상 규모(총 100척 이상 예상)의 카타르 액화 천연가스(LNG)선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 활동과 생활에 필요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주로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외교적으로도 한국은 중동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동은 한국의 동맹국이자 국제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인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이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의 거시적인 외교·안보 전략을 더 알기 위해서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는 충분하다. 이란 핵 문제를 미국이 어떻게 다뤄 왔고, 향후 어떻게 다룰지는 북한 핵 문제 해결과도 연관될 수 있다. 미국의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이스라엘, 이집트 등과의 관계에서는 동맹국에 대한 전략이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 같은 또 다른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중동에 대한 영향력 확장도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주변 국가들의 외교 전략을 보다 종합적으로 알기 위해서도 중동은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지역인 것이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인종 차별, 반이민 이슈도 사실은 중동 이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유럽은 이민 문제뿐 아니라 안보와 자원 관련 이슈를 놓고도 중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미국과 유럽 국가의 직업 외교관들 중 많은 수는 중동에서 근무하는 것을 자신의 경력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회 혹은 경험으로 생각한다. 특히 외교관으로서 젊은 시절에 중동 근무를 하는 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한창 업무를 배워야 하는 시기에 전쟁, 자원, 종교, 정치, 인권, 통상 등 외교관이 다루는 핵심 업무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지역이 중동이기 때문이다. 또 이 업무들을 다양한 돌발 상황에서 다뤄야 하기 때문에 중동 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젊은 외교관들은 ‘트레이닝을 잘 받았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 보내도 자기 몫을 할 것이다’라는 유·무형의 브랜드도 생긴다. 

한국 외교관들도 중동의 중요성에 대해선 모두 인정한다. 또 한국 외교관들 중에는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중동 근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외교부에서 중동은 여전히 ‘선호도가 높은’ 지역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한국이 위치한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의 특수성(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경쟁하고 북한의 위협까지 있는)이 워낙 강해서일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동북아 밖을 넘어서는 외교를 지금까지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정말 글로벌화됐다는 주장을 하려면 언론도, 학계도, 외교도 미·중·일 편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아세안)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한다. 두 지역은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활용 가치가 크고, 앞으로도 더욱 그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적, 외교적 측면을 떠나 ‘더 글로벌한 사람’,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쓴다면 ‘세계 시민’을 양성하는 차원에서도 중동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 한국 대학가에서 가장 먼저 ‘국제화 교육’과 ‘세계 시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인사로 꼽히는 고故 김영길 한동대 초대 총장도 “한국의 국제화 교육이 이제는 한국 밖, 동북아 밖의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중동 정세를 최대한 쉬우면서도 구조를 이해하기 좋은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내용은 주로 카타르 아랍조사정책연구원(Arab Center for Research and Policy Studies·ACRPS)의 방문 연구원(Visiting Researcher)[3]과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4] 시절 공부하고, 취재한 내용이다.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 현장 취재, 세미나와 포럼에서 접한 강연 내용, 각종 정세 분석 보고서, 책, 언론 기사 등이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사건, 코멘트, 현장을 담으려 했다.

역사적으로, 개념적으로 너무 깊고 복잡하게 들어가는 방식은 피했다. 특정 이슈에 대해 아주 깊게 들어가는 식의 접근도 가급적 피했다. 중동 정세와 최근의 주요 이슈들을 큰 틀에서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미식가 혹은 음식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전통 요리보다는 갈비나 삼겹살 같이 누구나 쉽게 즐기는 대중 요리에 가까운 스타일을 지향했다.

여러 가지 중동 이슈, 특히 복잡한 갈등 관계를 큰 틀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라이벌전(戰), 즉 국가 간 경쟁 관계 분석과 비교를 설명 방식으로 택했다. 갈등 중인 나라 (혹은 집단) 간의 관계를 이해하며 중동의 전반적인 현안에 대한 지식과 시각을 기르는 방식의 접근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방법을 통해 중동 이슈를 공부하고, 취재했다.

라이벌전이라는 틀을 통해 중동 정세를 이해하는 게 유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동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슈들은 국가 간 갈등 혹은 경쟁이 원인이다. 안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이 책에서 다루는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엮인 경쟁과 갈등이 현재의 중동을 시끄럽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 중동에는 많은 국가가 있고, 우리는 대부분을 잘 모른다. 지역의 ‘리더급’ 국가(혹은 큰 나라)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쉽게 중동 정세의 큰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과 마찬가지로 중동에서도 리더급 국가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확장하기 위해 늘 경쟁한다. 한편 중동의 많은 ‘작은 나라’들은 이런 큰 국가의 영향력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중동 정세의 큰 틀을 이해하고, 맥락을 짚는 데 라이벌 관계가 그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라이벌 관계를 토대로 중동 정세를 이해하는 것은 나름대로 검증된 방법이다. 정부 부처나 기업의 각종 중동 정세 관련 회의나 세미나도 중동의 ‘큰 나라’와 ‘라이벌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시각각 바뀌는 중동 지역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방법이 자주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다룰 중동의 대표적인 국가 간 라이벌 관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우디와 이란 간 지역 패권 경쟁이다. 두 나라는 갈등을 피하기 힘든 정치 체제, 이슬람교 종파적 특징, 외교 전략을 갖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터키가 적극적으로 지역 영향력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과거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절의 영향력 행사를 연상시킬 정도다. 사우디, 이란, 터키가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지를 국가 간 경쟁 구도를 통해 정리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은 중동 갈등의 고전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 내 갈등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의 영토 경쟁 중 가장 대표적인 갈등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결 방안은 여전히 깜깜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경기의 승패가 너무도 명확히 결정이 났다. 결국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카타르와 UAE 간의 라이벌전은 중동의 대표 소프트 파워 국가 혹은 허브 국가가 되기 위한 경쟁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되려는 움직임과 전략을 살펴봤다. 두 나라가 최근 얼마나 서로를 의식하고 사이가 안 좋은지도 생생한 사례를 토대로 설명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처럼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국가들도 중동에서 적극적인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나라들이 중동에서 보이는 전략과 움직임도 정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아직 취임하지 않은 만큼 책에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 임기 중 발생한 사건과 변화들이 많이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중동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중 일부는 미래 역사책에도 비중 있게 기록될 변화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중동에서 발생한 사건과 변화들을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의미 있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파장이 계속될 일이다’는 시선으로 살펴보시길 바란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라이벌전을 담은 이 책이 흥미롭고, 동시에 의미도 있는 중동 여행이 됐으면 좋겠다.
[1]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와 국제 대학원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교수진 명단 기준.
[2]
특파원은 언론사들이 중요한 해외 지역 취재를 위해 일정 기간(통상 1~3년) 파견하는 기자다. 주재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현장감 있게 전하고, 다양한 기획과 분석 기사, 현지 유명인 인터뷰 기사를 쓰는 것이 주요 업무다. 한국 언론사들은 전통적으로 미국 워싱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특파원을 파견해 왔다.
[3]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에서는 10년 차 이상의 기자들에게 해외에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짧으면 3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필자의 경우 중동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카이로특파원으로 활동할 생각이 있었던 만큼 중동 연수를 택했다. 해외 연수 중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특파원이란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다녔다. 이 과정에서 알자지라 방송 CEO 단독 인터뷰, 카타르 국립 박물관 르포, 에듀케이션 시티 르포 등의 기사를 동아일보 지면에 실었다. 또 주간동아에 ‘이세형의 도하일기’ 칼럼을 연재했다.
[4]
카이로특파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개방을 현지에서 취재한 것이었다. 중동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며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한 나라로 꼽히는 사우디는 외국 기자들에게 취재 허가를 잘 안 내준다.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운도 따라 줘서 4번 사우디를 방문할 수 있었다. 건국 이래 최초 관광 비자 도입,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아람코 4차 산업혁명 센터, 사우디 미디어 포럼 등을 취재했다. 그중 BTS 콘서트를 제외한 현장에선 한국인 기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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