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냉전
2화

그랜드 바겐

민주 국가들의 기술 협력

미국은 IT 분야에서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다. 미국 정부, 그리고 미국의 대학들과 기업가 정신이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왔다. 이들의 군사용 무인기와 인공위성, 그리고 ‘시스템 복합 체계(system of systems)’는 군사력 측면에서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강력한 우위를 부여했다. 실리콘밸리는 세계의 그 어떤 비즈니스 현장보다도 외국의 고위 관료와 실사단이 많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미국 테크 기업들 중 한 곳의 가치는 현재 2조 달러가 넘는다.[1]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은 세 곳이 더 있다.[2] 이들의 기술력이 시장에 기여하는 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 역시 14억 인구라는 거대한 숫자만이 아니라 풍부한 디지털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에 중국은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심층적인 데이터와 전문가들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알리바바(Alibaba)에서부터 텐센트(Tencent)에 이르는 이 나라의 디지털 거물들은 그 자체로 이미 AI와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의 강자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중국인들의 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수표책을 갖고 있는) 미국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이다. 중국의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3]은 바람직하지 못한 콘텐츠를 차단하고 있다. 이 장벽 안에서 테크 기업들은 감시 국가(surveillance state)인 당국과 기꺼이 협력하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에서는 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AI와 칩 제조에서부터 양자 컴퓨팅과 차세대 이동 통신 기술인 5G 분야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고, 할 수 있다면 지적 재산권도 탈취하고 있다. 또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같은 국제적인 기술 규정을 만드는 기구를 포섭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도와주는 ‘디지털 실크로드’와 같은 이니셔티브를 제공하면서 그 나라들을 중국의 궤도에 끌어들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디지털 패권에 중국이 심각한 도전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중국의 무선 통신 장비 제조사인 화웨이(Huawei)에 불편한 심기를 느낀 트럼프로 인해 중국과 미국의 IT 인프라 체계가 갈라졌고, 중국과 미국 사이의 공급망이 단절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관계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수많은 장비 제조업체들이 이미 자사 제품에서 중국산 부품을 제거했으며, 일부 업체들은 결국엔 서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공급망을 갖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애플(Apple)의 하청 업체들은 인도에 공장을 짓고 있다. 대만의 컴퓨터 칩 제조사인 TSMC는 지난 5월 미국의 애리조나에 제조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 중국은 자체적인 생산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도 공급만은 분리되고 있다. 이는 단지 미국이 중국의 앱을 금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해할 수 없었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문제에 직면하는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만이 아니었고, 이러한 다른 국가들의 존재는 미국에게 잠재적으로 결정적 우위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IT 시스템 내에서는 알파벳(Alphabet)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미국의 거대 기술 기업들뿐 아니라, 인도와 유럽 연합(EU), 일본 등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 역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이런 모든 단위들은 미국 정부와 대립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자 문제나 사생활 보호, 경쟁에 있어서의 문제 제기 등 IT 분야 내에서의 다양한 사안들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모두 국가 간의 합의와 관행이 존재하는, 합의와 관행을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을 선호할 것이다. 그 안에 구현되어 있을 가치와 이해관계들은 중국보다는 미국과 공유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 국가들이 디지털 영역에서 공통의 규칙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세계의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규칙을 중국이 정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 세계는 독재 국가들을 지원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의 불화를 지켜보면서, 자유세계 진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막는 난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기로 결심만 한다면 얼마든지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보여 주었다. 미국의 통상 부서가 외국 기업들에게 미국산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컴퓨터 칩을 더 이상 화웨이에 판매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미국의 법무부가 구글을 반독점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은 또한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들이 모인 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거대 테크 기업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인도는 수십 여 종의 중국산 앱들을 금지했다. 여기에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로 인기가 높은 틱톡(TikTok)이 포함되어 있는데, 틱톡은 미국도 금지하고 싶어 하는 앱이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대서양 양안 사이에서 개인 정보에 대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에 대한 법적인 근거에 의구심을 던지면서 미국과 EU 사이에 체결한 ‘프라이버시 실드(Privacy Shield)’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유럽은 시민들의 보호자로서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상당 기간 동안 공을 들여왔다. 이러한 숭고한 목표는 보호해야 하는 시민들에게 위협이 되는 기업들이 주로 대서양 건너편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쉬워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EU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과 워싱턴, 그리고 실리콘밸리 사이에 긴장감을 높여 왔다. 프라이버시 실드에 대한 ECJ의 판결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미국 내 거대 테크 기업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규제안을 만들고 있다. 이들이 상정한 디지털 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DSA)은 새로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비스를 끼워 팔거나 경쟁사들보다 자사의 서비스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일부 기업들의 관행을 금지하게 될 것이다.

 

위 윌 락 유(We will rock you)[4]


EU의 일부 회원국들은 디지털 지배권을 방어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현재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이라 불리고 있다.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클라우드(cloud) 시장에서 유럽 자체의 클라우드를 만들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가이아X(GAIA-X)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여정을 위한 하나의 시도다. 독일과 프랑스가 지난 6월에 출범한 클라우드 연합체로, 여기에 가입하는 회원국들은 고객이 직접 자신의 데이터가 저장될 위치를 지정하고 원한다면 해당 업체의 경쟁사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조항에 동의해야 한다. 그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예정되어 있다. 브뤼셀에서 논의되고 있는 ‘데이터 전략(data strategy)’이 완전히 구현된다면 유럽의 법률에 의해 규제되는 ‘데이터 공간(data space)’이 만들어져서 사람들은 자신의 데이터가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받을 것이다.

이러한 논쟁들 안에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절충점을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존재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가장 논쟁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특히 프라이버시나 경쟁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그래서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심각성이 덜한 분쟁이나 마찰에 대해서는 견디며 지낼 수 있다면,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참여해야 한다며 굳이 독려할 필요가 없는 세력이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독자적으로도 테크놀로지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 정치적인 그랜드 바겐의 도움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미국은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무언가의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그들 / 글로벌 플랫폼들의 시가 총액(단위: 십억 달러)
이를 위한 방법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존재한다. 최근에 미국의 싱크 탱크인 외교협회(CFR)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로버트 네이크(Robert Knake)는 ‘디지털 무역 지대(digital trade zone)’의 형태를 취해서 하나의 조약 기구로 완성되는 모습의 그랜드 바겐을 상상하고 있다. 미국은 사이버 보안이나 프라이버시 보호, 인터넷의 민주적 가치 등을 장려하기 위해서 “그 기구가 가진 디지털 무역 관계를 무기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안들에 대한 이 기구의 원칙을 준수하는 국가들만이 회원국이 될 수 있으며, 오직 회원국들만이 상호 간에 완전한 형태의 디지털 교역을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규정을 위반하면 제재와 관세가 부과될 것이다. “디지털 무역 지대가 충분히 성장한다면, 중국도 지속적인 방해 공작보다는 협력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더욱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네이크는 쓰고 있다.

좀 더 느슨하면서도 규제나 처벌이 덜한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10월 새로운 미국 안보 센터(CNAS)와 독일의 메릭스(MERICS),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이니셔티브(Asia-Pacific Initiative) 세 싱크 탱크가 모여서 배제가 덜한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민주 국가들이 어떤 조약의 대상이 아닌 ‘기술 동맹(technology alliance)’을 형성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G7과 유사한 모습이 될 것이다. 현재 G7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참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아마도 인도와 남반구의 몇몇 나라들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IMF나 세계은행처럼 정례 회의를 개최하고, 합의된 견해에 대해서는 발표할 것이며, NGO에서부터 테크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을 초청해서 의견을 들을 것이다.

 

우리 함께하자(Let us cling together)[5]


이번 달까지만 해도 이런 아이디어들은 시기상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조만간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면, 이러한 논의들이 보다 현실성을 띠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제들은 그가 소집하기로 약속한 ‘민주 국가들의 정상 회의(summit of democracies)’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보다 긴밀한 협력 관계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들 역시 필요할 텐데, 단지 중국의 위협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 활동의 상당 부분을 클라우드 안에 밀어 넣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디지털 영역과 그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기술 세계는 분열을 계속해서 인터넷(internet)이 아닌 디지털 보호주의가 만연한 스플린터넷(splinternet)[6]이 될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2차 세계 대전 직전에 붕괴된 전 세계의 금융 시스템을 연상시킬 것이다.

기술은 점점 더 지리학과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세계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세상을 지정학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은 19세기에 생겨나서 20세기에는 전략적인 사고방식으로 혁신됐다. 이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물리적인 세계의 지정학적인 양상들이 상당히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면 이동이 제한되지만, 평원은 이동을 용이하게 만든다. 유전 지대와 석탄 지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비좁은 해협은 해상 운송을 제한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현실에서 국가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열망해야 하며, 그들의 이해관계가 누구와 상충하고 누구와 일치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지리적인 위치는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현재의 초창기 기술 정치학(technopolitics)의 분석 단위는 플랫폼이다. 다른 기술들이 구축되는 기반이 되는 기술이 바로 플랫폼이며, 그러한 플랫폼들과 함께 점점 더 많은 기업들과 정부들이 영향을 받게 되고, 삶의 방식들도 정해지게 된다. 이러한 모든 플랫폼들의 플랫폼은 바로 인터넷이다. 이 기반 위에 서 있는 일부 플랫폼들은 페이스북처럼 거대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것들도 있고,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일종인 쿠버네티스(Kubernetes)처럼 규모가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다. 지정학적인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플랫폼들에는 자신들만의 정치학이 존재한다. 자체적인 규칙으로 누가 코드를 변경할 수 있고 누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도 어떤 플랫폼을 지원해야 하고, 누구와 경쟁해야 하며, 누구를 기반으로 활용할 것인지와 관련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체적인 거버넌스(통치) 시스템도 있다. 그중에는 ‘개방적인(open)’ 것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공동의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오픈 소스) 운영 체제인 리눅스(Linux)다. 원칙적으로 리눅스는 누구에게라도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그로 인한 혜택은 모두가 누릴 수 있다. 그 반대로 ‘폐쇄적인(closed)’ 시스템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수많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 사이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여겨지는 오라클(Oracle)이 있다. 절대 군주제처럼 운영되는 시스템도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기술 제국 내에서 가장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도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나를 막지 마(Don’t stop me now)[7]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플랫폼 세계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면 수많은 국가 수준에 근접한, 때로는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각국의 경제가 더욱 디지털화되면서, 국가들 역시 플랫폼으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 역시 일종의 운영 체제(OS)인 것이다. 천연자원은 여전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숙련되고 잘 훈련된 기술 인력들이나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인터넷 대역폭, 산업 정책, 벤처캐피털(VC)과 같은 디지털 자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기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경쟁력 역시 상당 부분은 이러한 자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플랫폼으로 보면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Windows)면서 한편으로는 구글의 모바일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Android)라고 할 수 있다. 개방형 시스템과 폐쇄형 시스템[8]의 측면들이 혼합돼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플랫폼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면밀히 통제한다. 미국은 독점과 강력한 국가라는 요소를 결합해서 치열한 경쟁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합된 덕분에, 미국은 전 세계를 이끄는 대부분의 테크 기업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에 역시 플랫폼으로 따져 보면) 중국은 그들의 폐쇄성을 치열한 내부 경쟁 방식과 결합시킨다는 면에서 애플이나 오라클과 좀 더 닮았다. EU는 리눅스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일본, 영국, 대만, 한국은 각자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모두 그에 걸맞은 기술 기반도 갖추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AI)이 부상하면서 이러한 플랫폼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참고로 전자는 최초의 진정한 글로벌 인프라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가장 중요한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기계, 센서에 의해 생성되는 디지털 정보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AI 모델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모델들이 만들어지고 나면 다양한 서비스로 전환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운송, 의료, 교육, 캠페인, 전쟁 등의 사회 요소들이 ‘데이터가 주도하는’ 상황으로 빠르게 전환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결국 언젠가는 바뀌게 될 것이다. 여기에 연관되는 디지털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이윤(rent)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은 현실 세계에서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욱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이윤을 창출할 것이다. 영국의 기술 사상가인 이언 호가스(Ian Hogarth)는 2018년에 써낸 논문에서 이러한 갑작스런 긴박감에 대해서 “AI 정책이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영역이 될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부유한 나라들의 상당수는 AI와 관련한 야심 찬 산업 정책들을 계획하고 있다. 자국을 벗어날 수도 있는 데이터를 제한하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 전략을 이미 제도화한 곳들도 있다. 다른 나라의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면서 그 나라의 플랫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나라들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재편성하는 기술을 만들어 내면서 점점 더 기업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의 저스틴 셔먼(Justin Sherman)은 “모든 사람들이 점점 더 기술 민족주의자(techno-nationalist)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건 개인 영역이야 / 전 세계의 데이터 보호 관련 규제 / 기존 규제 변경(민트색), 누적(버건디색)
21세기의 인터넷은 스플린터넷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당연한 측면이 있었다. 각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행동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 나라별로 선호하는 것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인데, 예를 들자면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사안이 그렇다. 그러나 디지털 국경선을 높게 세우고 데이터를 그 뒤에 쌓아 두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득이 되지 않지만 일부 정부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는 ‘자주적인 인터넷(sovereign internet)’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이는 필요에 따라 스위치를 끄는 것만으로 외부의 온라인 세계와 단절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관심이 있는 국가들에서는 이런 조치가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이 쪼개진다면, 세계의 선택은 제한되고 비용은 증가할 것이며 혁신은 정체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세계 최대의 정보 저장고이며,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가장 많은 중국은 손실이 적을 것이다.

 

넌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9]


그랜드 바겐의 체결이 필요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대체적인 윤곽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안보를 보장받고 자국의 이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규칙 제정 기구를 만드는 것이 된다. 대신에 그들은 유럽의 프라이버시를 비롯한 여러 규제들과 관련한 우려는 물론이고, 거대 테크 기업들에게는 제대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요구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상적이라면 이러한 합의에는 인도를 비롯한 다른 개발 도상국들도 포함되는 것이 좋은데, 이들 국가들은 원시 데이터(raw data)의 공급원으로 전락하는 리스크를 없애는 한편, 생산한 디지털 정보에 대해 (정당한) 비용 지불을 보장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다.

보안의 측면에서 대타협의 당사자들은 상호 간의 보안을 보장하고 디지털 인프라를 위한 공급망을 다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새로운 미국 안보 센터(CNAS)가 제안하는 것은 인프라의 일부를 사실상 공유하는 방안이다. 무엇보다도 기술 동맹의 회원국들은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한 노력에서 협업을 해야 한다. 전 세계의 반도체 제조 시설이 참여하는 일종의 컨소시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방적인 기술과 표준을 지원하는 것도 공급망의 다각화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오픈랜(Openran)이 있는데, 이는 통신사들이 한 군데의 공급 업체에서 장비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구성품들을 조합하고 섞어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동 통신망이다. 세계가 이러한 개방형의 인프라를 갖게 된다면, 원칙적으로는 현재처럼 화웨이나 노키아, 에릭손과 같은 몇몇의 공급 업체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도움을 받는 대가로 유럽에게 다른 전선을 내주게 되면, 자국의 거대 테크 기업들이 해외의 규제에 따르고 세금이 부과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해 온 미국은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 운영의 관점에서는 바로 그 부분이 이러한 합의안이 가진 매력 포인트다. 비용을 기꺼이 치르겠다는 의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에 떠 있는(원래 ‘up in the cloud’는 ‘구름 위에 떠 있는’, ‘현실성이 없는’이라는 의미다) / 전 세계의 데이터 스토리지(단위: %) / 소비자용, 기업용, 공공용 클라우드 / 2020~2025년은 예상치
민주 국가들의 동맹이 기술권에서의 대중국 방어막(China-proof)을 형성할 수 있다면, 미국은 그러한 취지에 기반하고 있는 기술 세계가 상호 의존성을 갖고 있으며, 상호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존스홉킨스대 헨리 패럴(Henry Farrell)은 미국이 지금까지는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는 상호 의존성을 그저 ‘무기화’해서 적들의 목을 조르고 우방국들을 압박하는 용도로만 활용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화웨이의 장비 금지에 유럽이 반발하고 나선 것과 유럽 사법재판소(ECJ)의 판결을 통해서, 아무리 우방국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을) 막아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미국도 내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많이 내줘야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유럽은 플랫폼들에 독점을 지향하는 거의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런 시각은 워싱턴 D.C.의 주류 인식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입장 차가 너무 달라서 정치적인 논의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대형 테크 기업들이 가진 힘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에 대한 최근의 유럽 의회 보고서에는 이미 브뤼셀에서 내세웠던 적이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나 경쟁사에 연동시키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온라인 발언의 규제에 대한 입장도 크게 차이가 없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서비스에서 혐오 발언 등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더욱 힘을 쏟게 만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에 점점 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테크 기업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테크 기업들의 본사 소재지가 등록된) 조세 회피처가 아닌 실제로 사업을 벌이는 지역에서 세금을 부과하도록 강제하려는 노력에 반발했는데, 그는 이를 미국 기업들의 이윤을 가로채려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 기업들이 자사의 고객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보다 개방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OECD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왜냐하면 미국은 일부 국가들에서 (자국의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영국은 빠르게는 내년부터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할 것이다.

세계의 관료 조직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랜드 바겐이 시작된 곳들도 있다. 지난해 일본은 개발 도상국과 선진국들의 모임인 G20을 주재하면서, 이 그룹을 통해서 전 세계의 데이터 흐름을 규제하는 규칙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인 ‘오사카 트랙(Osaka Track)’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여름에는 AI의 책임 있는 이용에 대한 규칙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된 AI에 관한 글로벌 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in AI)이 탄생하는 모습과 18개국의 입법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만든 대중국 의회 간 연합체(Inter-Parliamentary Alliance on China·IPAC)가 출범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그룹들은 OECD나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nternet Governance Forum, IGF)과 같은 기존의 몇몇 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IGF는 오랫동안 디지털 영역에서의 일반적인 규칙 제정을 추진해 오고 있다. 나토(NATO) 역시 AI와 회원국들 사이의 데이터 공유에 대해 동일한 논의를 시작했다.

대타협의 핵심 변수들 가운데 하나는 각 당사자들이 원하는 프레임워크가 얼마나 공식화된 형태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알고 있는 내용처럼 어떤 부분에서는 공식화하는 것이 좋은 것도 있다. 반면 합의하기 힘든 부분에서는 공식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WTO 체제 내에서 모든 것이 공식화되어 있는 무역을 예로 들어 보자. 무역 협정은 협상을 하는 데에만 최소 몇 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마지막 순간에 의회에서 부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훨씬 더 느슨한 형태의 협업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과 긴밀한 외교 정책 그룹의 내부에서 논의된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 내용은 각국 정부들이 각자의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특정한 정책들에 대해서 합의하는 대신에, 구체적인 레드라인(red line)들을 설정해 두고 그 안에서 서로 분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유럽이 거대 테크 기업들을 거의 몰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규제하기 위한 법률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미국은 싸움을 걸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싸움을 건다면 오히려 데이터 보호에 관한 일반 규정(GDPR)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의 규제안이 일종의 국제 표준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10]


모든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는 합의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CNAS의 샘 색스(Samm Sacks)는 트럼프 행정부의 4년 임기가 지나면서, “유럽 측의 불신이 깊어졌다”고 말한다. 대서양의 반대편에 있는 (미국의) 의회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서비스들이 중요한 정보 출처가 된 상황에서 자국 내 정보기관들의 활동이 힘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랜드 바겐이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 이유는 공조 활동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유럽사법재판소(ECJ)가 프라이버시 실드(Privacy Shield)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린 주요한 이유는 이렇다. 유럽의 정보기관과 법 집행 기구의 관점에서는 미국이 유럽 사람들의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대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장벽은 미국의 거대 테크 기업들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고삐를 쥘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전직 유럽 의회 의원이었으며 현재는 스탠퍼드대학교의 사이버 정책 센터(Cyber Policy Centre)에서 근무하고 있는 마리체 스카커(Marietje Schaake)는 최근에 발표한 글에서 “전 세계로 뻗어 있는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우리의) 말을 듣게 하려면, 우리에게는 뭔가 새로운 것,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전 지구적인 동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내의 다른 지역에 있는 많은 이들도 이런 주장을 좋아하기는 한다. 그러나 미 의회는 점점 더 데이터로부터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국 내의 테크 기업들과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한하는 정도의 선에서 그칠 것이다.

설령 그랜드 바겐이 합의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작지만 여전히 처리해야 하는 수많은 사안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세계에는 양자 간의 합의가 아닌 좀 더 느슨하지만 보다 강력하고 전문화된 협업이 필요한 것이다.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이언 브레머(Ian Bremmer)가 제안하는 세계데이터기구(World Data Organisation)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아니면 최소한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에 관한 일반 협정(GADD)이 될 수도 있을 텐데, GADD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무역기구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과 비슷한 것이다]. 현재의 WTO에도 아쉬운 상황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제안이 공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구가 없다면, 오늘날의 글로벌한 데이터의 흐름은 결국엔 가느다란 물줄기로 줄어들 수도 있다. GATT와 WTO가 존재하기 이전 시절의 제한된 보호주의 무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이런 대타협이 이루어질까? 역사를 참고한다면 그럴 수 있다. 1944년에 새로운 국제 금융 질서를 마련하기 위해서 미국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 세계 44개국의 대표단이 모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담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IMF와 세계은행이다. 물론, 판데믹은 세계 대전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코로나를 견디며 살고 있는 요즘의 상황이 우리들에게 디지털 영역에 대해서 무언가를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
애플
[2]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3]
중국의 인터넷 보안 체계다. 만리장성(Great Wall)에 빗대어 만리방화벽이라 부른다.
[4]
우리는 너희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룹 퀸(Queen)의 노래 제목
[5]
그룹 퀸이 화합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만든 노래의 부제목. 본래 제목은 ‘Teo Torriatte’인데, 이는 ‘손을 맞잡는다’는 의미의 일본어 ‘手を取り合って’의 독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이 노래는 퀸의 브라이언 메이가 자신들을 사랑해 주는 일본 팬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곡 중간에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일본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부분도 등장한다. 퀸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인 〈A Day at the Races〉의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었는데, 일본에서는 특별히 싱글 앨범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6]
쪼개지다(splinter)와 인터넷(internet)을 합한 신조어로, 정치적 요인 등에 의해 파편화된 인터넷을 의미한다.
[7]
그룹 퀸의 노래
[8]
안드로이드를 만든 것은 구글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오픈소스이며, 윈도우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저작권을 갖고 있다.
[9]
그룹 퀸의 노래
[10]
그룹 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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