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피부색
완결

위험한 피부색

의대 수업의 기준은 대부분 백인 환자였다. 이런 선입견은 그 자체로 해롭다. 하지만 선입견이 위험한 피부병에 덧씌워진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Diana Ejaita
환자와 담소를 나누면서도 개미 생각을 떨쳐 내려고 애쓰던 날이었다. 무더운 여름철, 개미 수천 마리가 상공에서 떼 지어 짝짓기를 하는 이른바 ‘날아다니는 개미의 날(flying ant day)’이 있는 시기였다. 이때가 오면 실내 환기를 위해 열어 둔 채광창으로 갈 곳을 잃은 고동털개미들이 들어와 바닥에 떨어져서 나와 환자를 예민하게 만들곤 했다.

당시 상담하던 환자는 관자놀이 부근 머리가 회색으로 세기 시작한 40대 초반의 흑인 남성이었다. 팔다리가 길고 검은 티셔츠와 청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이던 음악 페스티벌의 입장권 팔찌를 손목에 찬 모습도 그가 젊게 산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나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고도 물어봤는데, 그는 음악 팬일 뿐만 아니라 밴드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피부 상태에 대해 물어보려고 병원에 왔다며, 티셔츠를 올려 가슴을 보여 줬다. 놀랍게도 그의 몸통 전체에는 거친 은백색 각질이 퍼져 있었다.

어떤 증상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에는 잔뜩 놀라 매우 심각한 피부병을 포함해 각질의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이에요.” 내 멍한 표정을 보고 그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저는 건선(乾癬·각질과 발진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만성 피부 질환)이 있어요.” 그의 진료 기록을 확인했고, 처음에 발견하지 못한 증상이 적혀 있었다. 만성 판상 건선. 그는 갑작스럽게 재발한 건선을 치료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할 만한 다른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의 경우는 그저 다른 크림을 발라 보면 되는 간단한 사례였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 후에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만약 그가 처음으로 발진을 경험했다면, 내 진단은 완전히 틀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의대에서 배운 피부학 교과 과정을 다시 떠올렸다. 내 기억에 피부 질환을 보여 주는 예시에서 짙은 색의 피부가 사용된 경우는 세 번밖에 없었다. 켈로이드 흉터라 불리는 두툼한 피부가 흑인의 경우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사례 한 건, 매독과 음부 궤양에 대한 수업에서 한 번, 그리고 피부 색소가 소실돼 일어나는 백반증의 사례 하나. 짙은 색의 피부는 이렇게 피부학적으로 희귀한 사례를 보여 주는 경우에만 쓰였다. 일반적인 질환을 가르치는 핵심적인 학습 과정에 짙은 피부는 없었다.

이러한 의과 교육의 실패를 고민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캐나다의 3년 차 의대생 마이클 매클리(Michael Mackley)는 트위터에 흑인 환자의 피부 변화를 파악할 자신이 없다는 요지의 글을 올려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기존 교과 체계는 백인의 피부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모든 환자들은 동등한 치료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썼다. 나는 유색 인종이지만 백인 위주의 피부학 교과 과정의 문제점을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런 나의 무지함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수천 년 동안 피부색은 차이를 의미했다. 그러나 근세 유럽에서 피부색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 영국 브라이튼에서 있었던 ‘흑인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집회에서 ‘멜라니네어(MELANINAIR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있는 흑인 10대 참가자를 봤다. 이 문구가 눈길을 끈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피부에 들어 있는 멜라닌의 양이 매일 겪게 되는 차별의 양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결국 멜라닌은 얼굴 모양이나 모발 종류처럼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를 위계적 구조로 분류하고, 밝은 피부색의 집단을 제일 위에 올려놓는 데에 이용되지 않았던가.

‘검다’는 뜻의 그리스어 멜라스(melas)에서 나온 멜라닌(melanin)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색소 종류다. 바나나의 갈색 반점, 오징어 같은 두족류의 먹물, 그리고 개미의 검은색까지도 모두 멜라닌이 만든다. 인간의 몸에서는 세 종류의 멜라닌이 발견된다. 이 중 가장 흔한 것이 유멜라닌(eumelanin)이다. 사람의 피부, 체모, 눈동자 색을 결정하는 흑갈색의 색소다. 멜라닌은 특화된 피부 세포인 멜라닌 세포(melanocyte)에서 만들어져서 멜라닌 소체(melanosomes)라 불리는 원반형의 조직으로 변환된다. 이후 인간의 DNA가 태양 빛에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른 피부 세포로 옮겨지게 된다. 이 원반형 조직, 즉 멜라닌소체는 세포의 핵을 작은 파라솔처럼 감싸며 자외선을 차단한다.

흰 피부와 짙은 피부의 차이는 단순히 피부의 표면을 덮고 있는 표피 세포의 유멜라닌 양과 분포에 불과하다. 그게 전부다. 태닝으로 피부의 유멜라닌 양을 일시적으로 늘릴 수도 있지만, 각 개인의 멜라닌 기준치는 유전자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왜 인간은 모두 같은 색의 피부를 갖고 있지 않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해답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 교수이자 《살아 있는 색깔(Living Color)》의 저자인 니나 자블론스키(Nina Jablonski) 교수가 제시한 이론이다. 자블론스키 교수의 연구는 서로 다룬 모집단에서 유멜라닌의 기준치가 두 개의 필수적인 비타민인 엽산과 비타민D의 양을 최적화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르게 진화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엽산은 정자나 배아의 조직과 같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조직의 재생에 사용된다. 엽산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남성은 불임이 될 수 있고 태아들은 척수 결손이 생길 수 있다. 비타민D는 식단에서 칼슘을 흡수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비타민D가 충분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골격이나 면역 체계를 형성할 수 없다.

햇빛의 자외선은 몸의 엽산 수치를 떨어뜨린다. 유멜라닌의 방사선을 차단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유용한 이유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문제가 있다. 자외선 역시 인간 몸에 필수다. 비타민D 생성에는 자외선이 필요하다. 사람 피부는 적정량의 자외선을 흡수해 충분한 비타민D를 생산해야 재생된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자외선을 받아들이면 엽산 수치가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가령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의 피부는 더 많은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이런 지역에서 진화한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멜라닌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반대로, 피부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적은 극지방에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비타민D 결핍을 막기 위해 적은 양의 유멜라닌을 갖고, 피부색이 밝아지도록 진화했다.

피부색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리적으로 분리된 집단들 사이에서 발생한 다양한 유전적 차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피부색이 우유 소화 능력이나 귀지 건성(乾性·건조한 정도)을 연구할 때 쓰이는 다양한 유전적 분기점보다 더 깊은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천 년 동안 피부색은 차이를 의미했을 뿐, 다른 인종에 대한 위계적인 차별 대우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세 유럽에서 피부색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에서 백인들은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 집단과 부(富)를 차지할 이익 집단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삼았다. 듀크대 문화인류학과 아이린 실버블랫(Irene Silverblatt) 교수는 17세기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피부색을 기준으로 세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과정을 기술한다. “백인, 흑인, 갈색 인종은 각각 지배자, 노예, 그리고 식민지 주민으로 구분하는 약식이자 대용적인 표현이 됐다.”
피츠패트릭 피부 유형 분류. 1번 유형: 밝고 창백한 피부, 태양빛에 화상을 입음 / 2번 유형: 밝고 하얀 피부, 태양빛에 화상을 입고 잘 타지 않음 / 3번 유형: 흰색과 올리브색 사이의 피부, 태양빛에 가끔 화상을 입고 올리브색으로 탐 / 4번 유형: 올리브색, 옅은 갈색 피부, 태양빛에 거의 화상을 입지 않음, 쉽게 갈색으로 탐 / 5번 유형: 어두운 갈색 피부, 화상은 매우 드물고 잘 탐 / 6번 유형: 매우 어두운 갈색에서 검은색 피부, 화상은 없고 쉽게 탐, 색소가 짙음
오늘날 사람 피부색은 피츠패트릭 피부 유형(Fitzpatrick phototypes)의 여섯 단계로 분류된다. 피부 유형은 1~6번으로 나뉜다. 이 분류법은 20세기 중후반 메사추세츠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 근무했던 저명한 백인 피부과 의사 토마스 B. 피츠패트릭(Thomas B. Fitzpatrick)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피부과의 ‘탐정’처럼 거친 농담을 던지고 담뱃대로 연초를 피우며 항상 시계용 주머니에 돋보기를 가지고 다니던 피츠패트릭은 내향적인 동료 병리학자 월러스 H. 클라크(Wallace H. Clark)와 콤비를 이뤘다. 수십 년간 이들은 피부암계의 ‘셜록 홈즈와 왓슨’이었다. 피츠패트릭은 건강하게 탄 피부가 어떻게 피부암으로 잘못 이어지는지를 연구했고, 클라크는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피부암 단계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피츠패트릭 분류법에는 과학적 객관성만큼이나 피츠패트릭 본인의 편향성이 반영됐다. 피츠패트릭 분류법은 백인에 치우쳐 왜곡돼 있다. 6개 유형 중 3개가 보통 백인 피부라고 부르는 피부이고, 2개는 갈색 피부다. 다양한 종류의 흑색 피부는 단 한 개의 유형으로만 분류돼 있다.

 

사진관 기술자들은 셜리라는 이름의 여성이 찍힌 시험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소위 ‘정상적인 모습’을 대표하는 상아색 피부의 갈색 머리 여성이었다.


최근에는 의대생들이 의학 교육에 사용되는 신체 이미지가 거의 예외 없이 백인이라는 데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확한 피부색을 선택해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데 익숙할 만큼 인종 차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은 세대의 의사들이다. 이들이 침대 위에 걸어두는 해부학 포스터에서부터 가슴 압박을 연습하는 플라스틱 마네킹까지 표준 환자의 모습은 항상 동일하다. 털이 없는 몸에 옆머리가 깔끔하게 다듬어진 백인 남성이다(여성 장기를 보여 줄 때만 여성 모형이 사용된다). 백인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2018년의 한 연구는 미국 주요 의학 교과서 4종에 수록된 4000개가 넘는 이미지를 분석했고, 이 중 4.5퍼센트만 짙은 피부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흰 피부가 기준이라는 생각을 강화할 수 있어 모든 의학 분야에서 문제가 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분야는 피부학 교육이다. 모든 피부 질병은 피부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펜실베니아대 페렐만 의대(Perelman School of Medicine)의 아데미데 아델레쿤(Ademide Adelekun)과 기니칸와 오네카바(Ginikanwa Onyekaba) 교수는 최근 피부학 교과서를 대상으로 유사한 방식의 연구를 발표했다. 교과서에 수록된 이미지의 11.5퍼센트만이 피츠패트릭 유형 5번 또는 6번인 짙은 피부를 포함했다. 실제로 올해 초 내가 소속 의대에서 일반적인 피부병 관련 강연을 하면서 겪은 일이기도 하다. 다양한 피부색의 사진을 포함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인터넷 의학 사이트에서 연관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의대의 수바시 자야쿠마르(Subash Jayakumar) 교수는 2018년 한 강의에서 “모든 환자가 같은 질환을 동일한 방식으로 겪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민족적 배경을 가진 환자 간에 상당한 증상 차이가 있습니다.” 자야쿠마르 교수는 주민의 65퍼센트가 유색 인종인 런던의 브렌트(Brent)구(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의사가 진단 과정에서 포착해야 할 징후를 미리 알지 못하면 피부의 변화를 놓치기 쉽다고 청중에게 강조했다. 푸른 손끝은 위험할 정도로 낮은 산소 수준을 나타내는 전조다. 황달의 노란색 얼룩은 되돌릴 수 없는 간 손상의 ‘조기 경보’일 수 있다. 또 내출혈이 일어난 환자의 경우, 의사는 뺨이 아니라 눈 밑과 입 안에서 창백함을 감지해야 제대로 병을 진단하고 환자를 살려낼 수 있다. 의사들이 유색 인종의 피부색 변화를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이러한 피부 변화를 감지하고 진단할 수 있을까?

사진계가 수십 년 동안 씨름해 온 문제가 떠올랐다. 의학과 마찬가지로 현대 사진학은 백인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셜리(Shirley)라는 고유 명사가 있다. 1950년대부터 코닥(Kodak) 필름을 사용해 작업한 사진관 기술자들은 셜리라는 이름의 여성이 찍힌 시험지를 기준으로 색상 균형과 노출 값을 조정했다. 시험지에 찍힌 모델은 10년마다 바뀌었지만 공식은 항상 같았다. 소위 ‘정상적인 모습’을 대표하는 상아색 피부의 갈색 머리 여성이었다. 모든 사진 기술자들은 이 시험지를 기준으로 코닥 필름에 셜리가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찍힐 수 있게 연구했다.
필름에 재현된 피부색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된 코닥의 ‘셜리 카드’ 중 하나 ©코닥
문제는 셜리가 기준이 된 탓에 유색 인종의 사진은 형편없게 보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피부색과 윤곽의 미묘한 차이가 지워진 탓에 유색 인종의 얼굴은 눈의 흰자와 치아만 하얗게 두드러지는 검은 색의 덩어리가 됐다.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인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는 1977년에 모잠비크에서 영화 촬영을 할 때 코닥 필름을 “인종 차별적”이라고 규정하고 사용을 거부했다. 하지만 코닥이 새로운 필름을 개발한 건 1980년대, 초콜릿과 목재 가구 제조사들이 코닥 필름으로 촬영하면 상품이 똑같아 보인다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였다. 코닥은 “모든 사진사가 낮은 조도에서 검은 말의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며 골드 맥스(Gold Max) 필름을 소개했다.

필름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사진에서도 이런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하버드대 조교수 사라 루이스(Sarah Lewis)는 색상 균형과 색상 보정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광원이 인공적일 경우 디지털 사진 기술은 여전히 짙은 색의 피부를 잡아내는 데 고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학 기술들 역시 사진학과 같은 종류의 유아론(唯我論·극단적 형태의 주관적 관념론)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맥박 산소 포화도 측정기(의료인들이 환자의 손에 끼우고 피부에 붉은 빛을 비춰 산소 수준을 측정하는 기구)는 백인 환자를 대상으로 기준이 설정돼 있다. 측정기를 짙은 색 피부의 환자에 사용할 경우 산소 수준을 일관적으로 7퍼센트 초과한 측정값을 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탠퍼드대 피부과 의사 록사나 다네슈주(Roxana Daneshjou)는 지난해 미국 공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의료 체계를 디지털로 전환하기 전에 바로잡지 않는다면 현존하는 인종적 편향성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피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공지능 스마트폰 앱들이 출시돼 있다. 그 중 하나인 ‘스킨 이미지 서치(Skin Image Search)’는 사용자가 올린 사진을 자사 데이터베이스와 비교 분석한다. 하지만 스킨 이미지 서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두운 피부의 비중은 10퍼센트 이하다. 우간다의 연구자들은 검은 피부를 가진 환자 123명이 이 앱을 사용한 결과 진단의 정확도가 17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의학과 사진학의 과오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다.의학 교과서와 피부 질환 진단 앱이 적당한 수의 유색 인종 환자 사진을 확보하더라도, 카메라가 짙은 피부를 적절히 찍을 수 없다면 이미지 자체가 정확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유색 피부 진료 경험을 갖춘 전문의들이 늘어나는 추세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유색 피부 전문 진료소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흑인 환자의 피부에서 건선을 진단하지 못한 무능함에 마음이 복잡했던 상황에서, 피부 질환 치료를 받으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한 다른 유색 인종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봤다. 런던의 역사 교사이자 연구자인 아피아 아흐메드 초드리(Afia Ahmed Chaudhry)는 그녀의 어머니가 피부색 때문에 지속적으로 오진을 받아 왔다고 했다. 초드리는 “의사들이 유색 인종 환자들은 얼렁뚱땅 진단하고 넘어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환자는 포기할 때까지 계속 빙빙 돌며 다른 곳을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집중 관리를 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악성 여드름을 제대로 진단받기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사실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초드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진료비를 받으면서 전혀 효과가 없었던 국소 요법만 계속 처방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프리카 사회는 수백 년 동안 식물에서 만든 수액과 찜질 요법, 연고를 사용해 짙은 피부의 질환을 치료하는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피부 완화제로 사용되는 백년초 추출물부터 상처를 치유하는 알로에 베라, 피부염을 치료하는 루이보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지식의 대부분은 사라졌다.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Conakry)에 있는 돈카국립병원피부과 교수인 모하메드 수마(Mohamed Soumah)는 “아프리카에서도 어두운 피부를 다루는 피부학 관련 자료는 굉장히 드물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의사들도 서방 세계에서 만든 의학 교과서를 배우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의사들마저 책에서 못 배운 내용을 매일 환자들을 다루며 배우는 사실들로 채워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유색 인종 환자에 대한 서구 사회의 무지를 보완하기 위해 짙은 피부에 전문성을 가진 피부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진료소가 곳곳에 설치됐다. 서구 대도시 중 많은 곳에는 “민족 피부과”나 “다문화 피부과”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인 유색 인종 진료소가 있다. 첫 번째 유색 인종 진료소는 미국 앨라배마에서 1914년에 태어난 존 A. 케니 주니어(John A. Kenney Jr.)가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선구적인 흑인 외과의였고 적극적인 사회 운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의학에서 흑인의 위상(The Negro in Medicin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으며, 지역 병원들이 더 많은 흑인 의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22년의 어느 날, 케니 주니어가 8살밖에 안 됐을 때 그의 가족들은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Ku Klux Klan)가 집 앞 잔디밭에서 십자가를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후 수차례 살인 협박(아버지 케니가 환자를 돌보던 중에도 협박이 이어졌다)이 계속됐고, 케니 가족은 뉴저지로 도피해야만 했다.

이후 존 케니는 미국의 1세대 흑인 피부과 의사가 됐다. 케니는 워싱턴DC 외곽 하워드대 병원에 흑인만을 위한 최초의 피부과 진료소를 세웠다. 그는 2003년에 사망했지만,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미국 전역의 흑인 피부과 의사 3분의 1을 직접 가르쳤다.

유색 인종만을 위한 피부과 진료소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짙은 색 피부와 흰 피부의 차이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 다르며, 그 차이가 얼마나 의학적으로 중요한지는 여전히 논쟁의 영역에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뒤집힌 이론이 정설처럼 널리 퍼져 있는 경우도 많다. 1851년, 노예제 찬성론자였던 의사 사무엘 카트라이트(Samuel Cartwright)는 소위 ‘악동병(dysaesthesia aethiopica)’이라고 명명한 증상 탓에 흑인들이 두껍고 감각이 둔한 피부를 가졌고 행동이 굼뜨게 됐다고 주장했다. 카트라이트는 ‘악동병’의 유일한 치료법이 매질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피부를 자극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름을 바른 피부를 두꺼운 가죽 띠로 때리는 것”이라며 “그 후에 환자가 햇살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하도록 한다”고 썼다. 2016년의 한 연구는 미국 의사 중 3분의 1이 아직도 흑인 환자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흑인 환자가 더 두터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든지, 더 적은 수의 신경말단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덤넷NZ(DermNet NZ)는 뉴질랜드의 피부과 의사 아맨다 오클리(Amanda Oakley)가 운영하는 온라인 피부학 정보 사이트다. 인기와 신뢰도가 높아 전 세계 의사들도 이 사이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덤넷NZ의 ‘민족 피부학’ 페이지에는 “어두운 색의 피부는 진피가 더 두꺼운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 올라와 있다. 이미 오류로 입증된 잘못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녀는 해당 페이지를 수정하는 데에 동의했다. 또 오클리는 덤넷NZ의 모든 페이지에 짙은 색 피부 사진을 포함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날 유색 피부 진료 경험을 갖춘 전문의들이 늘어나는 추세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유색 피부 전문 진료소는 그 나름의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다수의 진료소들은 피부 미백 시술 같은 가벼운 미용 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영국의 진료소 대부분은 수익을 우선으로 하는 민간 기관이다. 케니에 의해 사회 보장 체제로 시작돼 유색 인종이 백인과 동등한 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지원해 온 유색 피부 진료는 시장의 영향을 받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피부과 진료가 수익성이 좋은 미용 산업의 일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미용 산업은 짙은 색 피부가 결함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먹이’로 삼는다. 주의하지 않는다면, 피부과는 유색 피부를 병으로 취급하고, 또 이를 비정상이라고 느끼는 유색 인종 환자들에게서 수익을 얻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의학계에 만연한 인종 차별의 역사를 생각하면, 흑인 환자들이 의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다. 흑인들은 의학을 믿고 몸을 맡기기를 거부하게 됐다.


피부 질환은 단순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밥 말리(Bob Marley)가 피부암에 걸려 일찍 사망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음악의 거장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말리의 사례는 흑인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겪게 되는 복잡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또 오늘날의 의료 체계가 유색 인종 환자들을 버려둔 채, 백인 환자들을 위한 치료법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밥 말리는 1997년 여름에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건강 문제를 언급했다. 말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부상을 입었고 발톱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통증을 느낀 것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했다. 몇 년간 발톱 아래에 통증 부위가 있었고, 단순히 작은 멍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 검사를 받기 전까지 두 명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피부암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말단 흑자 흑색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통 연약하고 햇빛에 노출되는 신체 부위에서 생겨나는 다른 세 종류의 흑색종과는 달리, 말단 흑자 흑색종은 발바닥이나 발톱 아래 등 쉽게 놓칠 수 있는 부위에서 생긴다.
밥 말리는 발톱 아래에서 발생한 피부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사망했다. ©MAZ/LFI/London Features International
말리의 흑색종은 유색 인종에서는 흔하게 발견되는 유형이었지만 대다수 의사들의 주요 진료 질환에 속하지 않았다. 말리가 처음으로 증상을 겪은 1977년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의학 교과서 《머크 진료 매뉴얼(Merck Manual of Diagnosis and Therapy)》의 제13판이 발행됐다. 이 교과서에는 흰 피부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흑색종의 세 가지 하위 유형이 수록됐지만, 말단 흑자 흑색종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말단 흑자 흑색종은 성공적인 치료 방법 수가 가장 적은 흑색종으로 꼽힌다.

태양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피부의 DNA를 손상시킨다. 보통 이런 손상은 수초 내에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유전적 오류 탓에 회복이 안 되고 암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백인이 피부의 유전자를 보호하는 멜라닌이 적어, 흑인보다 피부암을 얻을 확률이 20배 이상 높은 이유다. 그러나 정말로 놀랄 만한 사실은 이 두 개의 하위 집단, 백인과 흑인의 흑색종 진단 후 5년 생존률이 지난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변화한 추세다. 백인 환자의 생존률은 68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개선됐다. 반면 흑인 환자는 67퍼센트에서 66퍼센트로 하락했다.

이런 현실의 불균형은 2007년에 미국 《공공보건학회보(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가 흑인 환자가 백인 환자보다 의료 종사자를 신뢰할 가능성이 더 낮다고 발표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의학계에 만연한 인종 차별의 기나긴 역사를 생각하면, 흑인 환자들이 의심을 가질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1951년에 암 환자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의 몸에서 동의 없이 추출된 암세포 조직이 수익성 의료 연구에 사용됐다는 사실은 1975년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또한 1932년과 1972년 사이에 진행된 충격적인 의료 실험 터스키기 연구(Tuskegee Study)의 사례도 있다. 환자가 매독으로 죽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려던 이 연구에서 의료진은 피실험자였던 흑인 남성들에게 매독 치료제를 주지 않았다.

이런 배신의 역사, 그리고 대부분 오만한 태도를 가진 의사들 탓에 많은 흑인들은 의학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기를 거부하게 됐다. “흑인 환자는 병이 심각하게 진행된 후에야 병원에 온다”거나 “암 진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거부한다”거나, 혹은 “비과학적인 믿음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의사들이 개탄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의료 거부 현상을 사회학자들은 “불신의 지혜(the wisdom of distrust)”라고 불렀다. 의료계에 대한 불신으로, 일부 흑인 환자들은 대체 의학의 도움을 받으려 하거나, 완전히 치료를 피하게 됐다. 밥 말리도 몇 번이나 병원을 예약하고도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독일의 돌팔이 의사 요세프 아이젤스(Josef Issels)가 처방한 검증 안 된 식이요법을 시도했다.

말리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을 때쯤, 피부암은 이미 피부 조직층을 넘어 퍼지기 시작했다. 1980년 9월, 그가 최후의 방안으로 통상적인 암 치료법을 시도하기 전에 펼친 공연은 마지막 콘서트가 됐다. 치료가 실패한 것이다. 그는 결국 1981년 5월 11일 36살의 나이, 37킬로그램의 체중으로 마이애미에 있는 레바논백향목병원에서 사망했다.

말리의 죽음 후 1년이 지나 플로리다주는 주 전역에 등록된 암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말리가 사망한 마이애미대학병원(말리 사망 이후 명칭이 레바논백향목병원에서 바뀜)의 흑색종 전문가이자 연구자인 샤사 후(Shasa Hu)는 백인 환자와 유색 인종 환자 간의 흑색종 치료 결과 차이를 연구했다. 이 연구는 지난 40년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1980년대처럼 마이애미의 흑인 환자들은 치료 받을 수 있는 단계에서 흑색종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현격히 낮았다.

 

나는 타인의 피부 질환을 진단한 경험은 많았지만, 내 피부를 의사의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독자였지, 책이 아니었다.


나는 가장 먼저 환자를 만나고 전문의에게 연결해 주는 피부과 ‘1차 진료 의사(primary care physician)’다. 환자들은 피부 발진을 나에게 처음으로 보여 준다. 나처럼 대부분 의사들은 매일같이 수많은 피부 질환을 진단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과정은 통탄스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의사들은 유색 인종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온라인 사회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2019년 9월, 엘렌 뷰캐넌 와이스(Ellen Buchanan Weiss)는 혼혈 인종 아들의 피부 발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찾지 못하자 ‘갈색 피부는 중요하다(Brown Skin Matters)’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은 희소성과 상관없는 다양한 피부 질환들이 짙은 피부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부모와 의사들에게 보여 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의대 교과 과정에 다양한 피부색을 포함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이 영국 의료협회(UK General Medical Council)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가장 젊은 사람 중 하나가 런던 세인트조지 의대의 2학년인 말론 묵웬데(Malone Mukwende)다. 묵웬데는 교육 체계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에 도움이 되고자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이라는 소책자를 공동으로 펴냈다. 묵웬데의 시도는 분명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습 과정에서 피부색을 다양화하는 작업은 “유색 인종들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고려하고 이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불평등을 제거해 의료 업계를 재편한다”는 보다 큰 결과를 향한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쉬운 단계일 뿐이다.

10년 이상 의사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지만, ‘갈색 피부는 중요하다’ 웹사이트를 보면서 많은 사실을 배우고 있다. 내가 앞으로 만날 환자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다. 나는 타인의 피부 질환을 진단한 경험은 많았지만, 내 피부를 의사의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독자였지,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사진 몇 개에서 실제로 내가 겪었지만 진단할 생각조차 못했던 피부 질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릎과 발목 사이의 건조하고 울퉁불퉁한 피부는 어린선(魚鱗癬·피부가 건조해 물고기의 비늘처럼 보이는 유전성 각화증)처럼 보였다. 갈색 피부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끔 거칠게 피부가 일어나는 증상은 화폐상 습진(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만성 피부염의 일종)으로 진단할 수 있다.

지금도 내 발목에는 비정상적으로 가려운 발진 부위가 있다. 코로나19로 유사한 형태의 발진이 일어나는 사례를 들어 보긴 했는데, 이 경우에는 발진이 유일한 증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확실하게 판단 내릴 수 있는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피부학 조교수 제나 레스터(Jenna Lester)는 최근 코로나로 인한 피부 질환 증상을 논하기 위해 기존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레스터가 분석한 130개의 이미지 중 92퍼센트는 백인의 피부였다. 6퍼센트는 갈색 피부였고,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 피부 이미지는 하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주치의에게도 발목 발진을 얘기하지 않았다. 나처럼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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