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지성이 만든 진실의 샘

1971년, 술에 취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 외곽의 들판에 누워 있던 공상 과학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에게 영감이 떠올랐다. 여행 책 《유럽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봤다가, 하늘의 별을 쳐다봤다 하던 그에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이 책은 여행 책과 백과사전을 합한 형식의 소설인데, 다소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반전이 숨어 있다. 이 가상의 여행 책 겸 백과사전에는 전문가가 아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덤스는 이런 생각을 재미를 주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러나 비전문가가 집필한 백과사전이라는 개념에는 재미뿐 아니라 선견지명이 있었다. 2021년 1월 15일,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20주년을 맞는다. 위키피디아는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이 읽힌 참고 문헌이다.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이 쓴 수백 개의 언어로 된 5500만 개 이상의 글을 보유하고 있다. 영어로 쓰인 620만 개의 글만 전부 인쇄해도 2800권 분량이다. 웹 분석 업체 알렉사 인터넷(Alexa Internet)은 위키피디아를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 13위에 올렸다. 소셜 미디어 업체 레딧(Reddit)과 인스타그램(Instagram), 넷플릭스(Netflix)보다 순위가 높다.

위키피디아는 특이하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주주도 없고, 위키피디아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도 없다. 광고도 없다. 성공에 목마른 오늘날의 기술 기업은 몸집을 키우기 위해 우버(Uber), 스냅(Snap)처럼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는다. 위키피디아는 점점 더 많은 일반 이용자가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 유기적으로 성장해 왔다. 위키피디아는 20세기 말 인터넷의 특성으로 꼽혔던 기술 낙관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술 낙관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이 컴퓨터를 교육과 계몽, 해방을 위한 도구로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이상적인 생각과 마찬가지로, 비전문가가 쓴 백과사전이라는 발상은 오랫동안 일종의 농담처럼 여겨졌다. 전직 미국 도서관 협회장은 2007년 이런 말을 하면서 위키피디아를 비웃은 적이 있다. “일부는 진심으로 위키피디아를 지지하던데, 그런 사실이 저를 정말 혼란스럽게 해요. 위키피디아 사용을 장려하는 교수는 다른 음식과 함께 빅맥(Big Mac)을 꾸준히 먹으라고 추천하는 영양학자와 같은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고요.” 위키피디아의 신뢰성을 강조하는 수많은 학술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위키피디아는 여전히 돈을 받는 전문가가 집필한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1] 같은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일선 학교, 대학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의 사실 검증 전문가도 위키피디아에 의존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이론적, 학술적 측면에서는 위키피디아가 이런 회의론자를 물리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위키피디아의 완벽한 승리다. 매달 200억 건 넘는 페이지 뷰를 기록하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의 표준적 참고 문헌이 됐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검열과 가짜 뉴스, 허위 사실, 음모론으로 대중에게 큰 비난을 받으면서 위키피디아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비영리 단체 위키미디어 재단(Wikimedia Foundation)[2]의 최고 제품 책임자 토비 네그린(Toby Negrin)은 위키피디아를 “진실의 수호자”로 묘사한다.

이런 표현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거대 기술 기업은 이제 위키피디아를 중립적인 중재자로 활용한다. 유튜브의 음모론 영상에는 종종 위키피디아의 경고 정보가 태그로 표시된다. 페이스북은 2018년부터 뉴스 기사의 출처에 대한 정보를 보여 주면서 위키피디아를 사용하고 있다.
열성적인 위키피디아 사용자들은 또 있다. 지난해 10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람들이 위키피디아 사이트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위키피디아와 협업을 시작했다. WHO는 바이러스에 관한 허위 사실이 급속도로 퍼지는 인포데믹(Infodemic)을 막기 위해서는 위키피디아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후세를 위해 웹 사이트를 보전하는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의 창립자 브루스터 케일(Brewster Kahle)은 위키피디아를 “인터넷의 보물”이라고 묘사한다.

위키피디아의 가치와 영향력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사이트의 수익은 이용자 기부와 자선 성격의 보조금에서 나온다. 위키피디아를 면밀히 연구한 하버드대 경제학자 셰인 그린스타인(Shane Greenstein)은 “위키피디아는 내가 ‘디지털 암흑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예”라고 말한다. 육아나 가사처럼 위키피디아에 기여하는 일은 무급이기 때문에, 표준적인 경제 분석 방법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위키피디아의 가치를 추측해 보려고 했던 연구자가 일부 있긴 했다. 2018년의 한 연구는 미국 소비자가 해마다 위키피디아에 150달러(16만 원) 정도의 가치를 두는 것으로 추산했다. 사실이라면, 위키피디아는 미국에서만 연간 420억 달러(46조 1160억 원)의 가치를 갖게 된다. 여기에 위키피디아가 제공하는 간접적인 이익도 더해야 한다. 많은 기업이 위키피디아를 수익 창출에 이용한다. 아마존과 애플은 자사의 음성 인식 서비스인 알렉사(Alexa)와 시리(Siri)가 질문을 받으면 사실에 입각해 대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키피디아를 사용한다. 구글은 사실에 기반한 질문에 대한 검색을 수행할 때 위키피디아를 활용해 결과를 내놓는다. 페이스북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능은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유발하는 트래픽을 위키피디아로 유도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사용하는 AI 언어는 학습을 위해, 엄청난 양의 문서 자료를 필요로 한다. 위키피디아는 이런 필요에 딱 들어맞는 자료다.

 

사람의 힘


위키피디아의 가장 큰 힘은 그 미묘함에 있다. 학생, 교수, 기자 그리고 호기심이 넘치는 수많은 사람이 궁금한 게 있을 때 위키피디아를 제일 먼저 찾기 때문에, 위키피디아에 글을 쓰는 사람은 지적 환경 조성을 위해 더 노력한다. WHO가 위키피디아와 손잡기로 한 결정은 이 사이트가 전 세계적으로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가장 많이 읽는 의료 정보의 출처라는 연구 결과를 반영한다.

위키피디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악용됐던 사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2008년 한 이용자는 남미에 서식하는 소형 포유류 긴코너구리 문서에 ‘브라질 땅돼지’로 알려져 있다는 내용을 삽입했다. 2014년, 이 서술이 사실이 아니라 장난인 것으로 드러났을 때는 이미 다수의 웹 사이트와 뉴스 기사,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에도 인용돼 있었다. 2012년 영국의 한 고위 법관은 영국 언론의 취약점과 단점에 대한 보고서에서 신문사 《인디펜던트》의 창립자 중 한 명으로 브렛 스트라웁(Brett Straub)을 언급했다. 하지만 스트라웁은 《인디펜던트》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장난삼아 그의 이름을 위키피디아에 입력해 왔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황당한 사건과 “위키피디아는 신뢰할 만한 자료가 아니다”라며 위키피디아 스스로 책임을 부인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온라인 백과사전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정확하다. 2005년 《네이처》가 위키피디아와 브리태니커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들이 두 사전의 특정 문서에서 발견한 오류 숫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 이후 진행된 다른 연구들도 대부분 이런 결론을 뒷받침했다. 위키피디아의 내용이 왜 이렇게 좋은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이 농담처럼 위키피디아를 이렇게 평가한다. “위키피디아는 현실에서 쓸모가 많다. 왜냐면 학술적으로는 별 쓸모가 없으니까.”

위키피디아는 내용상의 명백한 실수와 관련해 다른 자료들과 종종 비교되지만, 사실 정말 취약한 부분은 의도적인 내용 훼손이나 장난에 대한 대응이다. 최고 제품 책임자 네그린은 이런 요소를 감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최근 치러진 미국 대선과 관련해, 위키피디아는 생성된 지 30일이 넘었고 최소한 500개의 수정 기록이 있는 계정에만 편집권을 부여했다.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백과사전 내용을 편집할 수 있는 개방형 체계를 갖고 있고, 인기도 많다. 그래서 많이 읽힌 글에 오류가 있으면 보통 발견도, 수정도 빨리 된다(같은 이유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글의 오류는 수년간 방치될 수도 있다). 그린스타인 교수는 책 형태의 백과사전과 달리 온라인 문서인 위키피디아는 특정 문단을 추가하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른 관점을 요약해 담은 문단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이념적 의견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편집자가 겁먹을 정도로 긴 규칙 목록이 있을 정도로 위키피디아의 새로운 편집자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칙은 호사가와 특정 이념의 추종자, 다른 속셈을 가진 사람들을 걸러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인터넷 아카이브 창립자 케일은 위키피디아의 비영리적 구조 덕에 서로 다른 광고주의 요구를 고려할 필요 없이 독자와 편집자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위키피디아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운영한다는 점에서 다른 서비스와 다르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는 이용자의 참여를 극대화하려고 (다시 말하면, 광고를 더 팔려고) 특정 능력만 고도로 발달한 천재 백치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존한다. 반면에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정확성, 공정성, 선의의 논쟁 같은 모호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말해, 위키피디아 성공의 상당 부분은 이용자가 만들어 낸 문화에서 비롯됐다. 모든 글에 딸린 토론 페이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토론 페이지에서 이용자들은 주제의 중요성, 1차 자료의 품질, 어떤 정보를 포함하고 생략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한다. 주먹구구식 규칙은 점차 더 확실한 지침이 된다. 위키피디아에서 가장 널리 논의되고 자주 언급되는 “중립적 관점”을 정리한 페이지는[3] 4500단어에 달한다. 이 글은 미학적 견해를 가장 잘 기술하는 법,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가정과 논리적 근거가 제시돼야 하는 가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한 권고를 담고 있다. 또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한 ‘잘못된 균형’의 위험도 지적한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한다. 따라서 지금의 위키피디아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으로 보일 수 있다.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 재단의 이사이자 CEO인 캐서린 마허(Katherine Maher)는 만약 위키피디아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파편화되고 상업적인 인터넷 환경에서는 위키피디아를 만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키피디아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살아남을지에 대한 마허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그는 위키피디아에서 이뤄지는 많은 작업이 인간 본성에 호소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기를 바라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걸 좋아하죠.”

심지어 오류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마허는 “인터넷에서 올바른 답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잘못된 답을 올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커닝엄의 법칙(Cunningham’s Law)을 인용한다. 그녀는 위키피디아의 중국어 페이지 작성에 기여하고 있는 중국인 편집자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가 본 많은 내용이 잘못돼 있었고, 자기가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위키피디아 사용자/ 위키피디아 등 모든 위키 사이트의 1인당 페이지뷰/ 2020년 12월 기준/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러시아, 브라질, 인도, 나이지리아, 중국/ 중국은 위키피디아 차단/ 출처: 위키미디어, 유엔
위키피디아의 문화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네그린은 “위키피디아는 데스크톱 인터넷 시대의 산물”이라며 “인터넷 사용자라는 표현은 점점 스마트폰을 지칭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위키미디어 재단은 사이트의 모바일 편집 기능을 개선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따라서 사람들이 철자 실수를 고치거나 날짜를 수정하는 미세 편집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한다. 재단은 기능 개선을 통해, 스마트폰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인 가난한 국가 사람들과 젊은 편집자들이 위키피디아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위키피디아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 새로운 편집자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새로운 유형의 기여자를 찾아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마허는 위키피디아 편집자 중 80퍼센트 정도가 남성으로, 북미와 유럽에 치우쳐 있다고 추정한다. 백과사전 자체는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에서 인기가 많고 인도와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별로 읽히지 않는다(표1 참조). 마허는 위키피디아가 본래의 이상을 잃지 않으면서 건전하게 작동하려면 이런 추세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위키피디아의 비전은 모든 사람이, 모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이상주의적 생각을 일축하기는 쉽지 않다. 위키피디아가 이룬 지난 20년의 성공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1]
1768년 영국에서 세 권 분량으로 처음 발행된 이래 지금까지 영어로 출판되는 백과사전 중 가장 오래된 책.
[2]
위키피디아, 위키낱말사전, 위키뉴스, 위키여행 등 각종 위키 관련 사이트를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로 2003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창립자인 지미 웨일스(Jimmy Wales)와 래리 생어(Larry Sanger)는 재단을 만들기 전인 2001년부터 위키피디아 서비스를 시작했다.
[3]
위키피디아가 공개한 정책과 지침 가운데 하나.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의 내용과 제목을 쓸 때 중립적 관점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중립적 관점이란 공정하고 균등하며, 편향되지 않게 확인 가능한 출처를 통해 발표된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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