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권

3월 25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가 기업 환경을 눈에 띄게 바꾸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해 7억 2000만 달러(8154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습니다. 연간 흑자를 기록한 건 2003년 창사 이후 처음입니다. 전기차의 사업성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한편에서는 ‘착시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CNN 등 외신은 테슬라의 전기차 사업이 여전히 적자라면서 이번 흑자 전환은 전기차 판매가 아니라 ‘규제 크레딧(regulatory credits)’ 판매 덕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1]

규제 크레딧이란 허용 기준보다 배기가스를 적게 배출한 기업에 정부가 주는 포인트인데요, 이걸 기업들이 사고팔 수 있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은 친환경 자동차를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에 따라 보유하는 크레딧 액수가 달라집니다. 전기차만 100퍼센트 판매하는 테슬라는 당연히 크레딧을 많이 갖게 됩니다.

반대로 내연 기관 차량을 주로 만드는 회사들은 크레딧이 모자랍니다. 탄소 배출 기준을 초과한 만큼 벌금을 내거나 크레딧을 사들여야 합니다. 테슬라는 이렇게 규제 크레딧을 팔아 작년 한 해에만 15억 8000만 달러(1조 7893억 원)를 벌었습니다. 연간 순이익의 두 배가 넘는 이 수익이 없었다면 흑자 전환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테슬라 2020년 재무제표
테슬라는 지난해 규제 크레딧(regulatory credits) 판매로만 15억 8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북저널리즘

이런 규제 크레딧은 탄소 배출권(CER·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의 일종입니다. 탄소 중립과 기후 위기는 환경 이슈로만 여겨지기 쉬운데요, 이제 탄소 배출 문제는 기업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 시급한 경영 과제가 됐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탄소 배출권의 경제적, 경영적 측면을 살펴보려 합니다.

탄소 배출권이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온실가스에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등이 포함됩니다. 국제 사회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탄소 배출권을 지급합니다. 크레딧과 할당량(allowance)입니다.

크레딧은 앞서 살펴본 테슬라 사례처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기업에 대해 그때마다 배출권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할당량은 국가나 특정 지역에서 정한 온실가스의 총배출량(cap) 내에서 기업별로 생산 및 설비 규모에 따라 배출권을 지급한 뒤, 모자라거나 넘치면 거래를 통해 해결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아래 예시처럼 만약 A 기업이 올해 허용된 온실가스보다 적게 배출했으면 그 감축분을 다른 기업에 팔 수 있습니다.

©북저널리즘
탄소 배출권의 시작점은 1997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입니다. 산업화 이후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 대부분은 화석 연료에서 나왔는데, 이때 발생한 탄소를 감축하기 위해 38개 선진국이 공동 대응을 결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해 국제 사회는 2015년 파리 기후 변화 협약(파리 협약)을 채택하는데요, 개발 도상국을 포함해 195개국이 참여하면서 탄소 배출권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됩니다.

파리 협약의 목표는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하고, 나아가 1.5도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 중간 과제 격으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만큼 흡수량을 늘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 사회를 실현하기로 했습니다. 북저널리즘 콘텐츠 〈그린 투자 패러다임〉의 임동민 저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화석 연료 부존량을 모두 사용하면 이산화탄소가 약 2750기가 이산화탄소톤(GtCO2)이 배출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파리 협약의 목표인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590~1240기가 이산화탄소톤으로 억제해야 하는데, 이는 전 세계 탄소 자원의 약 3분의 2를 태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전 세계 195개 국가는 전 지구적 기후 변화 대응에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량을 강제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 협약은 각국이 감축 목표치와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스스로 실천하도록 합니다. 이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시장 매커니즘으로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당초의 배출권 거래제 취지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입니다.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서 파리 기후 변화 협약이 채택됐다. ©COP PARIS/Flickr
그럼 우리나라는 이러한 지구적 노력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을까요?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당초 목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2019년 기준 세계에서 9번째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우리나라는 2015년 1월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의 탄소 배출권 거래를 유도하고 있는데요, 2015~2017년을 1기, 2018~2020년을 2기, 2021~2025년을 3기로 구분해 단계별로 대상 기업과 감축량을 늘려 왔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배출권 구매 비용, 이른바 ‘배출 부채’는 최근 폭등하고 있습니다. 즉, 탄소 배출량이 감축분보다 많다는 뜻입니다. 지난 22일 금융감독원은 국내 매출 기준 상위 30개 기업의 지난해 배출 부채가 4353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2] 지난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산업 생산이 줄었는데도, 배출 부채가 2019년(2456억 원)보다 77퍼센트 늘었습니다. 지난해 배출 부채가 가장 높았던 현대제철은 무려 1571억 원으로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의 두 배가 넘습니다.

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5억 6400만 톤이던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5억 9900만 톤으로 오히려 6퍼센트 넘게 늘었습니다. 장 의원은 배출권을 할당하고 실적을 관리하는 배출권 할당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정감사 영상 보기

여기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하는 점은, 국내 배출권 거래제의 3기가 시작되는 올해부터 기업의 유상 할당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각 기업이 정부가 할당한 배출 허용량 가운데 3퍼센트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했는데, 그 비중이 10퍼센트로 늘어난 겁니다. 기업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3]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월 미국의 파리 협약 재가입을 환영하고 있다. ©유엔
탄소 배출권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기업 재무제표에 반영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가 기업 환경을 눈에 띄게 바꾸고 있습니다. 탄소가 기업 실적을 좌우하고, 심한 경우에는 생존까지 가르게 됐습니다. 이제 탄소는 그저 연소 활동의 부산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업과 지구를 위해 해결해야 할 목표 그 자체입니다.

특정 국가 혹은 일부 산업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한뜻으로 나섰습니다.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2050년이 먼 미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앞서 살펴봤듯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제 자본과 기술력 외에도 기후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이 기업의 새로운 성공 조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업의 생존은 우리 삶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로서 말입니다.

탄소 배출과 기후 위기로 달라질 기업 환경은 우리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이와 관련해 앞서 소개해 드린 북저널리즘 콘텐츠 〈그린 투자 패러다임〉을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기후 위기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평가되는 기업의 자산 가치가 경제와 금융 구조, 그리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전망해 볼 수 있습니다.

3월 25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주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 주세요.

* 기후 위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이런 콘텐츠도 추천드려요.
① 플라스틱, 팜오일, 에어컨, 콘크리트가 파괴하는 삶의 터전 《지구에 대한 의무》
② 기후 위기에 투자하는 녹색 VC가 궁금하다면? 〈그린 이노베이션〉
③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탄소를 빨아들이는 〈이산화탄소 포획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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