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정치학

3월 2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지금 미국 사회는 총기 규제냐, 자유냐를 두고 해묵은 논쟁을 다시 벌이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미국에서 총기 범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26일 버지니아주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습니다. 22일 콜로라도주의 슈퍼마켓에서는 20대 남성이 소총을 난사해 1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6일 애틀랜타에서도 총격 범죄로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습니다. 최근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자 23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1분도 더 기다릴 수 없다”며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의회에 촉구했습니다.

이 법안은 총기를 거래할 때 신원 조사 의무 대상자를 확대하고, 연방수사국(FBI)의 신원 조사 기간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11일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의 벽을 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상원에서 법안을 처리하려면 60표(전체 100석 중 5분의 3)가 필요한데,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상원 절반인 50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66년 이후 미국에서는 183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290명이 숨졌습니다. 강도 사건이나 개인 주택에서 벌어진 사건은 제외하고, 공공장소에서 단독범이 무작정 발포해 4명 이상 숨진 사건만 집계한 것입니다. 이처럼 대형 총기 참사가 해마다 몇 번씩 되풀이되지만, 미국의 총기법은 획기적으로 강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상원에 촉구했다. ©Stefani Reynolds/CNP/Bloomberg/Getty Images
국가가 마약을 금지하듯 민간의 총기 소유와 사용을 금지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총기 문제는 우리 생각보다 크고 오래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총기 정치학(gun politics)’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총기법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개혁이 어렵습니다. 미국의 역사, 수정 헌법 제2조, 총기의 수 때문입니다.

미국의 역사는 총과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한 유럽 이주민들은 서쪽으로 이동하며 국경을 넓혔습니다. 서부 개척자들에게 총은 인디언과 야생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존 도구였습니다. 또한 국가 수립 전까지 민병대 복무가 남성의 의무였습니다. 19세기로 접어들며 민병대가 쇠퇴했지만, 총기 문화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미국에서 총기 보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1791년에 만들어진 수정 헌법 제2조는 “규율이 잘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 정부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국민의 무기 보유와 소지 권리는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헌법을 개정해 총기 보유를 금지하려면 38개 주(50개 주 중 4분의 3 이상)에서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해관계자의 수도 많습니다. 미국 민간인은 3억 9300만 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인구 100명당 총기 120정이 있는데요, 내전 중인 예맨보다 2배 많은 수치입니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최소 1정 이상의 총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총기 소유자가 많으니 당연히 규제 강화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총기협회(NRA) 같은 이익 단체의 로비도 총기 규제 정책을 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됩니다.

지금 미국 사회는 총기 규제냐, 자유냐를 두고 해묵은 논쟁을 다시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논쟁을 접할 때는 미디어의 필터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고,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저렇게 말했고, 여론 조사 결과는 어떠하다, 정도인데요,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미국의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와 언론사 독자 의견란에서 총기 규제에 관한 코멘트를 살펴봤습니다. 수백 건이 넘는 게시글 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논리를 정리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장을 다듬고 팩트를 보강하고 맥락을 재구성했습니다. 다소 거친 표현이 있더라도 매스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운 보통의 생각을 전해 드리려는 취지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플로리다의 총기 판매점 ©Joe Raedle/Getty Images
“지난해 4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총기로 목숨을 잃었다. 총기 폭력으로 1만 9380명이 죽었고, 2만 4156명이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총기 살인과 자살이 압도적으로 많다.[1] 근본적인 문제는 범죄자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느슨한 총기 규제 법안에 있다.”

“총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구하기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총은 연간 250만 건의 범죄를 예방한다. 매일 7000건에 달한다.[2] 범죄는 총을 줄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방이 총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범죄를 줄인다.”

“총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각종 규제로 시장에 유통되는 총이 줄어들면 구하기 어려워지고, 자연히 가격이 올라간다. 가격이 오르면 대부분의 생계형 범죄자들은 총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대형 총기 사건은 학교처럼 총기 소지가 금지된 장소에서 일어난다. 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총을 학교에 가져오지 않거나 차량에 보관한다. 총기 범죄자는 둘 중 하나의 경우에 범행을 멈춘다. 살인을 모두 끝냈거나, 경찰이나 총을 소지한 선한 시민의 저항에 부딪힐 때다. 개인이 총을 소지하면 이 저항의 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총기 소유 자체를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총기 거래 시 신원 조사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범죄자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에게 총을 팔지 말자는 것인데, 이걸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총포상에서 총을 살 때 신원 조사를 받고 있다.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는 개인끼리 거래할 때다. 미국 국민은 3억 9300만 정의 총을 갖고 있고, 도시보다 시골 지역이 훨씬 더 많다. 모든 총기 거래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신원 조사를 강화해도 정부의 장부에 기재되는 사람은 법에 협조하는 사람들뿐이다. 범죄자들은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장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

“나는 트럭으로 유해 물질을 운반하기 위해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총기 박람회(gun show)에서 반자동 권총을 살 때는 신원 조사에 고작 15분이 걸렸다. 몇 분 안에 수십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장치가 이렇게 쉽게 거래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총기 소유에 의해 연간 4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헌법에 나와 있지 않은 자동차로 숨지는 사람도 연간 4만 명이 넘는다. 아주 끔찍한 살상 무기이고 심지어 헌법에 보장된 권리도 아닌데, 왜 자동차 소유와 운행은 금지하지 않나?”

“우리는 자동차를 금지하지 않지만, 자동차로 인한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규제한다. 차량에 안전벨트와 에어백 설치를 의무화하고 속도 제한을 둔다. 1950년대 이후 자동차 관련 각종 규제를 도입해 교통사고 사망률을 절반 아래로 떨어뜨렸다. 총기 규제를 강화해 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이면 연간 2만 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민주당 사람들은 총기 문제를 남부와 시골 사람들과 연관시킨다. 그러나 총기 살인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일어난다(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3]). 미국 시골에서는 총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코요테, 살쾡이, 곰, 퓨마, 늑대, 멧돼지, 악어가 있다. 최근에는 래브라도레트리버만 한 너구리를 봤다. 빗자루를 휘둘러도 겁을 먹지 않는 동물이 많다. 자기방어를 위해 총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총기 회사다. 총기로 인해 부상,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 총기 제조업체에 책임을 물려야 한다. 커피를 줄 때 내용물이 뜨겁다고 안내해야 하는 나라에서 총기 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정부가 개인과 재산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1초가 중요할 때 경찰은 몇 분 거리에 있다’는 농담이 있다. 나는 경찰 도착 시간이 15분인 지역에 산다. 생사가 걸린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에만 의지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총이 문제일까. 시골 백인에게 총을 빼앗는다고 도시 흑인의 총기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총기 규제는 총기 범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공정하지도 않다.”

“총기 폭력과 인종은 무관하다. 좋은 직업과 교육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 당신이 거리에 살고 있고, 대학에 갈 수 없으며, 식사도 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코카인을 파는 친구를 보게 된다. 그는 신형 벤츠를 몰고 주머니에는 아이폰과 현금 수천 달러가 있다. 당신이 총을 들고 코카인을 파는 것 말고 다른 뭘 선택할 수 있을까.”

“총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 수정 헌법 제2조를 고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미국의 모든 집에 들어가서 총을 빼앗을 수도 없다. 결국 현실적인 해법은 총을 사는 과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헌법 해석이 달라져야 한다. 수정 헌법 제2조는 ‘규제가 잘된 민병대’의 필요성을 전제로 무기 소지의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은 주 정부의 ‘규제’가 ‘잘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무기 소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총기 규제를 강화하려면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개인의 자유가 찬양되는 미국에서 ‘규제’라는 말을 붙이면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정부의 감독을 의미하지 않고 총기 소유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총기 안전’이나 ‘총기 책임’으로 불러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총기 규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살펴봤습니다. 물론 모든 의견을 담아내지 못했고,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글이 일반적인 미국인의 생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접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주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보내 주세요. 3월 29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을 마칩니다.
 
[1]
미국의 인구 10만 명당 총기 살인은 3.4건이다. 캐나다의 5배, 호주의 30배가 넘는다.
[2]
총기 규제와 총기 범죄의 연관성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다. 각 진영은 유리한 데이터를 인용하며 주장을 강화한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1995년 총기 규제를 강화한 코네티컷주는 총기 살인율이 40퍼센트 하락했다. 반대로 2007년 규제를 완화한 미주리주는 총기 살인율이 25퍼센트 늘었다. 그러나 이 연구 역시 반대 진영에서는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3]
총기 폭력은 시골보다 도시의 문제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인구 10만 명당 총기 살인 수를 비교하면 시골과 도시에 큰 차이가 없다.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지만,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논거여서 그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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