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 이후의 생체 의학
1화

판데믹이 불러온 생체 의학 진보

혁신적 사고의 밝은 측면[1]

게놈(genome)이 판독된 최초의 바이러스는 MS2라는 이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생물체였다. 1976년에 이 바이러스가 보유하고 있는 3569개의 RNA 염기 서열이 밝혀졌는데, 이는 벨기에의 뛰어난 연구진들이 10여 년 동안 힘겹게 연구한 끝에 얻어 낸 성과였다. 중국 우한의 의사들이 신종 폐렴 증상을 우려하기 시작한 이후 몇 주 만에, 그것보다 길이가 거의 아홉 배에 달하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게놈이 공개되었다. 이후에도 브라질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무서운 변종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SARS-CoV-2의 다양한 샘플을 100만 개 정도 분석하면서 이런 성과가 거듭되어 왔다.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의 염기 서열이 최초로 공개된 이후 몇 주 만에 이를 기반으로 백신이 만들어졌고, 현재는 그것을 공급할 수 있고 정치권과 대중의 신뢰가 허용하는 모든 곳에서 바이러스를 막아서고 있다.

1976년 이후로 의학이 한 단계 거듭났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판데믹 기간에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과학적 진보가 단숨에 집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걸 지켜보는 확실한 즐거움이 있었다. 엄청난 데이터와 실험들, 그리고 여기에 통찰력이 더해지면서 이번 판데믹은 물론이고 의학에 미래에 있어서도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또한 많은 영감도 주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본업을 제쳐두고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웠다. 삼엄한 경비 태세의 실험실들은 테스트 처리를 위한 고된 작업에 전념했다. 코로나19는 약 35만 건의 연구를 이끌어 냈으며, 그중 상당수는 프리프린트(preprint)[2] 형태로 서버에 저장되어서, 이러한 연구를 통해 밝혀낸 내용을 거의 즉시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유전학을 체계적이고 변형적인 방식으로 의학에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질병의 병리학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그것의 확산을 추적하고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접근법은 ‘자연 안보(natural security)’라고 알려지고 있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는 질병, 식량 불안정, 생물학 전쟁, 환경 파괴 등 현실 세계와의 관계로부터 유발되는 위험에 직면하는 것에 있어서 사회가 회복 탄력성을 갖도록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이처럼 유전학을 의학에 적용한다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 거대하고 급속한 개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07년에만 하더라도 인간 게놈의 DNA를 판독하기 위해서는 1000만 달러((113억 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현재는 1000달러(113만 원) 미만의 비용이 들며 소요 시간도 몇 분의 1에 불과하다. 유전자를 합성하고 편집하는 기술이 훨씬 더 발전하는 것과 맞물려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판데믹 이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선구적인 기술들은 실험실 밖에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질병에 맞서는 패기를 보여 주면서, 이제 그들은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의 모더나(Moderna)와 독일의 바이오앤테크(BioNTech)가 빠르게 개발한 백신 접종 기술을 예로 들어 보자. 이들은 수년간의 임상 실험과 유전자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RNA에 대해 묵묵하면서도 꾸준한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성과를 이뤄 낼 수 있었다. 면역 체계를 갖추기 위해 설계한 바이러스성 단백질을 만들라고 인체 세포에 간단하게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RNA 백신은 “벼락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20년이 걸린다”고 말했던 코미디언 에디 캔터(Eddie Cantor)의 통찰력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이런 개념이 증명되면서, RNA 분야를 열심히 연구했던 기업들의 투자는 이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RNA 의료는 형태와 기능을 일정 정도 분리하는 것이다. 질병을 상대하는 RNA 백신은 모두 유전자 코드에 작성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말라리아 백신이나 일부 항암 백신은 코로나19 백신과 같은 장비에서 같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만약 이런 기법을 통해서 세포들이 예정된 대로 모든 종류의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게 만들고 다른 부작용이 없게 만드는 하나의 플랫폼을 제공하게 된다면, 의학은 더욱 강력해지면서 더욱 개인화될 수 있을 것이다. 희소한 질병이나 심지어 단 하나뿐인 유전적 이상 질환에 대해서도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치료법이 일상화될 것이다.

판데믹은 또한 유전자 염기 서열 기술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변종을 이해하고 방어하기 위해서는 변이를 관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코로나19가 엔데믹(endemic, 감기처럼 일상화된 전염병)이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촉진 주사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유전자 염기 서열 분석이 그 기초가 될 것이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세상에 퍼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염기 서열 분석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 중 하나이다. 기업들은 숙련된 기술진을 위한 강력한 염기 서열 분석 시스템을 개발하는 작업을 훌륭히 수행해 왔다. 이제 세계는 병원균의 확산에 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교정 시설의 의무실이나 지역의 보건소, 마을의 하수 처리장이나 농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다른 연구 분야는 판데믹이 격차를 드러내고 있는 곳이다. 지금과 같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와 싸울 수 있는 저분자(small-molecule) 항바이러스제는 아직까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자연 안보’의 초점은 미래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바이러스 계열을 겨냥한 약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시장에 맡겨 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연구 개발 및 임상 시험에 대한 자금 지원, 의약품 비축량 구축 등 각국 정부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조금씩 조짐을 보이는 항생제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의 위협에 대해서도 유사한 접근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혁신은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범용 RNA 의약품은 기업 및 규제 당국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부 유전자 치료 방식을 포함하는 다른 플랫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규제 당국은 말라리아 백신이나 코로나19 백신이 모두 그러한 의약품에 대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동일한 기반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활용하면서, 동시에 안전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검증을 해야 할 것이다.

일부 만성적인 질환들이 사실상 치료될 가능성이 생기면서, 이제 제약 회사들도 이러한 상황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이들 기업의 상당수는 심장병, 암, 신진대사 장애, 신경 퇴행성 질환과 같은 부유한 세계에서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만성 질환에 노력을 집중해 왔다. 약품 개발이 특정한 단백질에만 반응하는 새로운 분자를 찾는 것보다는 세포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춘다면, 구식 약학의 기반이 되는 예전의 지식은 그 관련성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기업들은 새로운 가격 모델을 만들고 연구에 있어서도 새롭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자연 방어


기술은 그 자체로는 판데믹을 제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기술을 폭넓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시스템과 제도가 필요하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수많은 테스트 및 추적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훌륭한 시스템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그저 그런 결과만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데믹은 생체 의학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과 열정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세상은 이제 그 수단과 열정 모두를 기반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1]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달의 이면)〉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기사의 메인 이미지도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앨범 재킷을 패러디해서 만들었다. 핑크 플로이드 앨범의 이미지에 있던 프리즘이 이 글에서는 실험실의 플라스크로 바뀌어 있다.
[2]
연구 논문의 인쇄 전 배포 버전. 논문을 저널 등의 인쇄판 형태로 공개되기 전에 온라인 등을 통해서 미리 그 내용을 알리기 위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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