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웨어 시장과 지속 가능한 소비

3월 31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10년 뒤 중고 의류 시장의 규모는 패스트 패션의 두 배가 될 전망이다.

스레드업 분류 시설에 중고 의류 수천 벌이 걸려 있다. ©스레드업
옷장을 꽉 채운 헌 옷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한 대학원생에게 창업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훗날 청년은 중고 의류를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스타트업을 만들게 되는데요, 기후 위기와 윤리적 소비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고민과 맞물리며 연간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중고는 새로운 표준


“Used is the new normal.” 2009년에 설립된 패션 스타트업 ‘스레드업(ThredUp)’의 모토입니다. 스레드업은 여성과 아동 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온라인 중고 의류 쇼핑몰입니다. 26일 미국 나스닥 데뷔를 마쳤는데요, 13억 달러(1조 4755억 원)의 기업 가치로 1억 6800만 달러(1904억 원)를 모금했습니다. 상장 첫날 주가는 43퍼센트 급등했습니다.

제임스 레인하트(James Reinhardt) 스레드업 CEO는 자신의 옷장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 문을 열었더니 더는 입지 않는 옷이 한가득했다고 합니다. “당시 인기 있었던 바나나 리퍼블릭과 제이 크루 셔츠를 중고 매장에 팔려고 가져갔더니 받아 주지 않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을 것 같아 주변 학생들을 조사했고, 그 결과 사람들의 옷장에 걸려 있는 수많은 헌 옷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1]
제임스 레인하트 스레드업 CEO ©스레드업
레인하트는 사람들이 헌 옷을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했다고 말합니다. 의류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헌 옷은 쓰레기가 되지 않고, 소비자는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10년 후 소비자의 옷장이 새 옷이나 패스트 패션 대신 중고 의류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란다며 “사람과 지구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스레드업은 고객으로부터 직접 중고 의류를 매입해 거래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클린 아웃 키트(Clean Out Kit)’라는 가방을 고객의 집에 보내 주는데요, 고객은 그 가방에 팔고 싶은 헌 옷을 넣어 스레드업으로 보냅니다. 이렇게 수거한 옷을 세탁·보관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구매자는 정가 대비 최대 90퍼센트까지 저렴한 가격에 옷을 사고, 판매자는 판매가의 일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레드업은 매일 10만 벌의 옷을 처리할 수 있고, 550만 벌을 보관할 수 있는 유통 센터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브랜드는 물론이고 명품 브랜드까지 모두 3만 5000개 브랜드의 중고 물품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4퍼센트 증가한 1억 8600만 달러(2111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스레드업의 ‘클린 아웃 키트’ ©스레드업

원 웨어(worn wear) 시장과 Z세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의 조사에 따르면 옷장에서 중고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3퍼센트에 불과했지만, 2029년이면 17퍼센트까지 늘어납니다. 중고 의류 시장의 규모 역시 2019년 280억 달러(31조 7800억 원)에서 2029년 800억 달러(90조 8000억 원)까지 성장해, 패스트 패션의 두 배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런 중고 거래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Z세대가 이끌고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80퍼센트는 중고 의류 구입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경에 피해를 덜 주는 소비여서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조사에 참여한 Z세대 중 일부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물건을 잔뜩 사서 나오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고 말합니다. 또 ‘독특한 옷’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것도 Z세대가 중고 쇼핑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힙니다.

실제로 스레드업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중고 의류를 사고파는 것이 가치 있는 소비임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습니다. “당신의 옷장과 지갑, 지구를 위한 온라인 중고 매장”이라는 문장이 대표적입니다. 탄소 발자국을 빗대 만든 ‘패션 발자국 계산기’도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고객의 패션 소비 습관이 기후 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인데요, 의류 소비를 통해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하는지 볼 수 있어 스스로 점검할 수 있게 합니다.
중고 의류 구매에 대한 Z세대의 생각 ©스레드업

원 웨어 시장에 뛰어드는 브랜드들


또 다른 중고 의류 스타트업인 트로브(Trove)는 기존 의류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함께 진행한 원 웨어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의류 수선과 중고 보상 판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옷을 오랫동안 입을 수 있게 돕습니다.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으로 소비되지만, 그만큼 빨리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트로브 CEO 앤디 루벤(Andy Ruben)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재판매하고 있다”며 중고 시장을 통해 협업 중인 브랜드들이 “전체 수익 중 중고 의류를 통해 평균 30퍼센트의 수익을 올리고 있고 재판매되는 품목이 수십만 개”라고 설명했습니다.[2] 트로브 역시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투자자들로부터 지난해 4500만 달러(510억 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더리얼리얼(TheRealReal), 포시마크(PoshMark) 등의 플랫폼도 중고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더리얼리얼은 보석과 고급 시계 등 중고 명품을 위탁·판매하고, 포시마크는 중고 의류와 신발 등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나스닥 상장을 마쳤습니다.
2011년 11월 25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파타고니아 광고. 불필요한 구매를 줄이고 수선을 유도하기 위해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파타고니아

지구를 생각하는 패션


패션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중 하나입니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얼마일까요? 무려 7000리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2리터짜리 생수 3500병이 필요한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산화탄소도 30킬로그램 이상 배출됩니다. 지난 2018년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한 유엔 협력’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폐수 배출량 중 패션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퍼센트, 탄소 배출량은 10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3]

그럼, 중고 거래는 환경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패션 산업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새 옷 대신 헌 옷을 주로 구입하는 것인데요, 한 사람이 연간 239킬로그램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건조기나 드라이클리닝을 사용하지 않고 빨랫감을 자연 건조하는 방법, 친환경적인 지속 가능한 브랜드에서 쇼핑하기, 차가운 물에 옷을 빨고 일반적인 배송 이용하기 등이 환경을 보호하는 방안으로 제시됩니다.

옷이 망가지면 버리지 않고 수선하는 방법도 권장됩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원 웨어’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Better than new(새 옷보다 나은 헌 옷)”를 모토로 불필요한 소비와 대량 생산을 줄이기 위해 펼쳐 온 친환경 캠페인인데요, 새 옷을 사지 않고 옷을 수선해 입으면 8.6킬로그램의 탄소를 줄일 수 있습니다.

Z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치·사회적 성향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Out)’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소비 행태를 ‘윤리적 소비’ 혹은 ‘착한 소비’라고도 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50퍼센트는 올바른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들일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레인하트는 “사회적 의식이 있는 Z세대가 환경 친화적인 의류 시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며 2027년이면 중고 의류 시장이 패스트 패션 판매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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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 〈Startup Playbook〉 #2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법, #6 스케일업 전략, 〈파카로 세상을 구하다〉와 함께 읽어 보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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