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대, 인류세 (1/2)

4월 1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인간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 인류세의 결말은 무엇일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습니다. 가장 최근은 6600만 년 전으로, 소행성 충돌 때문에 모든 공룡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향후 20년 안에 육지 척추동물 500여 종이 멸종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하는데요, 학자들은 인간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활동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미세 먼지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도 우리 인간이 만든 재해임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수십억 년을 버텨 온 지구의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무엇보다 강력한 종(種)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 시대를 홀로세(沖積世·Holocene)[1] 대신 새로운 지질 시대로 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입니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먼 훗날, 인류세의 지층에선 어떤 것들이 발견될까요? 〈EBS 다큐 프라임 – 인류세〉는 인간이 한 해 600억여 마리씩 소비하는 닭 뼈, 썩지 않고 지구 곳곳을 떠돌던 플라스틱이 인류세를 증명하는 화석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북저널리즘은 다큐를 연출한 EBS 최평순 PD와 함께 이틀에 걸쳐 인류세를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지구에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돌아보고, 우리가 인류세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 팟캐스트로 만나 보세요. 요약한 오디오 스크립트도 함께 전해 드려요. (8분이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시대


간단한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교육방송의 최평순 PD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뿐인 지구〉라는 환경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최근에는 〈인류세〉라는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든 바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인류세라는 말을 특히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혹시 인류가 내는 세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인류세가 어떤 개념인 건가요?

생소한 단어여서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환경 관련 단어냐. 세금 관련 단어냐. 아니면 나는 새라고 생각하셔서 자연 다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웃음)

사실 인류세의 ‘세’는 지질 시대를 나타내는 지질 단위의 세(世)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얘기하면 인간이 지구를 바꾼 걸 나타내는 지질 시대 단어고요. 다르게 말하면 인간이 지구 환경을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이 바꿨기 때문에 지질 시대도 인류의 이름을 붙여서 바꿔야 한다는 과학적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과학계에서 꽤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졌고, 과학계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사람들이 이 단어를 계속 호명하고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단어가 계속 확산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질 시대를 바꾸자는 과학적 주장이지만 더 큰 사회적 의미를 띄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인류세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하는 걸까요?

그 질문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왜냐하면 인류세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하냐는 거는 ‘인류가 어떤 종이길래 이렇게 지구를 많이 파괴했냐’라는 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인류가 출현했을 때부터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매머드라든가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해서 그들을 멸종으로 몰고 갔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농경의 시작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농경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생물 종을 구분 짓는 행위니까. 그래서 그 순간부터 우리가 지구를 많이 바꿔 놨다는 분들도 있고요. 18세기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봐야 한다는 분들도 많고.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왜냐하면 그때 내연 기관이 개발됐고, 대량 생산이 시작됐으니까요.

그런데 가장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기는 1950년대, 20세기 중반입니다. 인류세를 공식 지질 시대로 만들려고 하는 실무 그룹이 있어요. 인류세 실무 그룹(AWG)이라고 지질학자들 위주로 구성된 단체이고, 지질 학계에서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인류세가 공식 지질 시대가 되는 겁니다. 인류세 실무 그룹은 1950년대를 인류세 시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서, 상위 기관인 국제 지질 연합에 상정한 상태입니다.

1950년대 이후를 인류세 시작이라고 보는 이유는 뭔가요?

물리적 증거로서는 최초의 핵실험이 이루어진 직후가 1950년대라서 그렇고요. 어쨌든 지질 시대를 바꾸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핵실험을 하고 나면 방사능, 우라늄 같은 것들이 지구에 쌓입니다. 거기서 물리학적 증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건 인간이 만들어낸 거기 때문에 인류세 시작을 최초 핵실험 이후인 1950년대로 봐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요. 다르게 보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전 세계가 경제 발전을 시작한 시기가 1950년대 이후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류 문명이 굉장히 풍요로워진 시기죠. 그때부터 되게 잘살기 시작한 거죠. 우리 할아버지 때보다 지금 세대가 더 풍요롭게 살잖아요. 그 시작점이 1950년대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70년 동안 집중적으로 지구가 파괴되고 있다. 그래서 1950년대를 인류세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앞서 증거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인류세 증거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건 코로나19가 인수 공통 전염병이기 때문이에요. 인수 공통 전염병이 뭔지 잠깐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인간과 짐승 수(獸)죠. 인간과 짐승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인류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이 어떤 지점에서 동물과 만났기 때문에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된 거고. 그 과정에서 변이가 이뤄지면서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한 거잖아요. 그래서 인간과 동물의 영역이 구별되지 않고, 다르게 얘기하면 인간이 다른 야생 동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파괴하고 거기에 들어가다 보니까 접점이 생겼고, 또 그 동물들도 잡아서 팔다 보니까, 그런 과정에서 코로나19가 발병했다고 보기 때문에 인류세 현상이라고 보기도 하고요.

또 이렇게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발병했을 때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있는 것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인류세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예요. 발병 원인 그리고 확산 속도, 무기력한 대처를 종합적으로 보면 코로나19도 인류세 현상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닭 뼈 화석이 발견된 행성

©EBS1 다큐 프라임
다큐가 세 편으로 구성돼 있어요. 첫 번째 편의 제목이 ‘닭들의 행성’입니다. 개인적으로 우주인이 쓰레기로 뒤덮인 행성을 다니다가 닭 뼈를 발견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네. 인류세가 워낙 큰 개념이고 인류세를 보여 줄 수 있는 소재가 여러 개다 보니까 어떤 걸 처음에 제시할까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다큐멘터리나 콘텐츠 제작자들은 첫 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후보가 있었어요. 첫 번째가 플라스틱이었고요. 두 번째가 치킨 닭 뼈였고 세 번째가 과잉 인구였어요. 

우선 플라스틱은 워낙 넘쳐 나니까요. 그리고 닭 뼈도 알고 보니까 넘쳐 나고. 우리가 치킨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1인 1닭’을 하니까 닭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 생각을 했고. 그리고 인류세는 결국 이 좁은 지구에 너무 많은 인간이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지구의 수용력을 벗어날 정도로 인간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 너무 다 풍요롭게 (자원들을) 쓰다 보니까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인 거죠.

이 세 후보 중에 어떤 게 가장 대중의 호기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처음 기획안을 발표했을 때부터 치킨이나 닭 뼈 얘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의외성이 있다고 할까요. 플라스틱이 문제인 건 아시는 분들이 워낙 많은데, 닭 뼈가 문제라고 하면 ‘어, 그래? 치킨이? 나 어제도 시켜 먹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까.

그런데 숫자를 찾아보니까 굉장히 놀라울 만한 숫자였어요. 지금 이 순간 우리랑 같이 숨 쉬고 있는 닭의 마릿수가 230억 마리 정도라고 해요. 몇 년 전 통계여서 지금은 더 많을 겁니다. 사람이 78억 명 정도 있다고 치면 한 명당 닭 세 마리씩은 있는 거니까. 지구를 인간 행성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닭들의 행성이라고 충분히 부를 만하다고 생각했고요.

참고로 지금 숨 쉬고 있는 닭은 230억 마리인데 1년에 우리가 죽이는 닭의 마릿수는 700억 마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닭이 1년을 못 살거든요. 인간이 먹기 위해 두 달이 채 안 지나서 죽이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도살되는 개체 수 기준을 보면 700억 마리입니다. 그러면 10년이면 7000억 마리의 닭 뼈가 매장될 수 있는 건데, 미래의 우주인이 지구에 온다면 닭 뼈를 찾을 확률이 인간의 뼈를 찾을 확률보다 높겠죠. 그리고 어떤 지질 시대를 대표하는 화석이 되려면, 지질 시대를 대표하려는 뼈가 되려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닭은 모든 나라에서 먹는 가축이기 때문에 닭들의 행성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먼 미래에 어떤 존재가 지구를 바라볼 때 마치 닭들이 인간을 지배한 것처럼 보이는 다큐 장면이었어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게 이런 의미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사실 닭이 많은 게 무슨 상관이지? 닭을 많이 먹는 게 잘못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정말 좋은 얘기를 해주신 것 같아요. 처음에 닭들의 행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즐겨 봤던 영화 〈혹성탈출〉처럼, 유인원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지 않겠냐 그런 느낌으로 보셨던 것 같은데. 닭이 그렇게 고등적인 지능으로 인간을 점령했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개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까 저희는 은유해서 제목을 지은 건데요. 좋은 이야기라고 말씀을 드린 이유는 (말씀하신) 그런 의미가 뒤에 숨어 있더라고요. 단순히 저는 개체 수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개체 수를 늘리려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사육을 했기 때문에 닭 얘기에 주목했던 건데. 다큐를 제작하면서 1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과학적 논문들이 나왔는데요, 어느 날 그 기사가 나온 거예요. 닭을 인류세의 증거로 보는 게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논문이 발표된 거예요.

논문을 읽어 보니까 1950년대 닭 뼈와 2010년대 닭 뼈의 크기가 다르다. 크기가 뭐 10퍼센트 늘어난 게 아니라 2배 이상 커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인간이 먹기 위해 개량했고, 인위적으로 종을 바꿨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렇게 70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닭의 몸집이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있겠어요. 그 뼈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부작용을 알기도 전에 닭들은 죽습니다. 사실은 무척 가혹한 상황인 거죠. 그런 함의, 인간이 먹기 위해 단기간에 많은 닭의 물리적 형태까지 바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류세의 증거로 볼 수 있는 거죠.
©EBS1 다큐 프라임
인간이 생물권에 영향력을 미친 증거일 텐데요. 대기권에서도 인류세 증거들이 있을 것 같아요.

중국 북경과 인도 델리가 미세 먼지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그중에서 인간이 벌인 이벤트로 단 하루 만에 대기가 극명하게 바뀌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도 델리의 디왈리(Diwali)라는 축제에 주목했는데요, 디왈리는 인도에서 큰 축제 중 하나인데 그 축제의 절정에 해당하는 날, 하룻밤에 인도 전역에서 불꽃놀이를 동시에 한다고 해요. 그런데 인도 인구가 12억 정도라고 하니까 12억 명이 불꽃놀이를 하면 다음 날 인도 전역이 엄청 뿌예진다고 하더라고요.
인도 델리의 디왈리 축제 ©EBS1 다큐 프라임
요즘처럼 우리나라에서 미세 먼지 경보가 발령됐을 때 AQI(Air Quality Index·대기질 지수)가 150에서 200사이 정도입니다. 그 정도면 되게 안 좋아요. 그런데 디왈리 축제 다음 날 밖에 나가자마자 에어비주얼 앱(미세 먼지 정보 제공 앱)을 봤는데, 2000이 찍힌 거예요. 그런데 앱에서 AQI 지수를 제시할 수 있는 최대치가 2000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2000인지 3000인지 4000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거예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호텔에 와서 세수를 하고 귀 청소를 하면 손가락에 꺼멓게 묻어 나와요. 코에서도 그렇고.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도요. 그런데 2년 전 촬영 당시 델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우리 한국 제작진밖에 없었어요. 돈을 주고 불편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도분들도 안 계셨고요. 한국 제작진만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인간이 지구를 바꿔서 겪게 되는 안 좋은 피해가 모두한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그때 하게 됐고요. 많은 생각을 하고 온 촬영이었습니다.



인간이 플라스틱을 먹는 시대


이제는 바다로 가볼까요. 다큐의 두 번째 키워드가 플라스틱이에요.

바다에 플라스틱이 너무 많잖아요. 그리고 모든 플라스틱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하수구를 통해서 갈 수도 있고 바다에서 직접 버리는 예도 있고, 폭풍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갑자기 바닷가로 가는 경우도 있고. 육지에 버려도 바람에 날려서 갈 때도 있고. 그래서 결국은 바다로 흘러간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종착점이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연구 기관에서는 2050년쯤 바닷속의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칠 정도로 플라스틱이 많습니다. 어디를 찍어도 플라스틱을 찍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저도 플라스틱을 찍으러 간 게 아니라 인류세의 지질학적인 흔적을 보러 인도의 한 깊숙한 동굴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플라스틱이 있고. 악어나 오랑우탄을 찍으려고 말레이시아의 정글을 갔는데 거기서도 뱀인가 하고 봤는데, 플라스틱이 반짝이고 있고. 정말 플라스틱 문제가 엄청 심각하다는 거를 깨달았어요.
©EBS1 다큐 프라임
우리나라에서는 플라스틱 문제를 어떻게 보여 줄까를 생각했는데. 국립생태원 같은 여러 단체가 모여서 죽은 바다 거북이 사체를 부검합니다. 저희가 참관했는데, 첫 번째 마리부터 바로 장에서 유산균 음료 용기가 나왔어요.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선명한 라벨 상태, 그대로 나왔어요.

그다음에 갯지렁이가 플라스틱을 파먹어서 미세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우리나라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쓴 논문이 있어요. 그 논문을 읽고 나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자문을 받아서, 남해의 양식장 부표를 하나 수거했어요. 양식하시는 분들이 위치를 표기하기 위해서 부표를 띄워놓는데, 그 부표에 많은 생물 종이 들러붙어 있어요. 그 부표를 배 위로 꺼내서 보니까요. 단순히 부표인 줄 알았는데 잘 들여다보니까 물고기도 있고, 게도 있고 지렁이도 있고, 많은 생물 종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가셨던 박사님은 플라스틱스피어(plastisphere·자연에 버려진 플라스틱에 생물이 적응해 살 수 있도록 진화한 생태계)라고 하셨고요.
스티로폼을 파먹는 갯지렁이 ©EBS1 다큐 프라임
그리고 그 갯지렁이는 플라스틱을 먹는다고 해서 저희가 특수 촬영을 하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는데요, 갯지렁이가 플라스틱을 왜 먹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맛있게 먹더라고요. 잘게 씹어서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내뱉기도 하고. 아니면 소화를 못 했다고 해야 하나요. 몸속을 통과해서 분변으로 배출을 해서 잘게 만들더라고요.

사실 미세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이 파도라든가 햇빛 같은 물리적인 힘으로 만들어진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해양 생물 종들이 플라스틱에 적응해서 그걸 먹어서 미세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게 또 다른 충격적인 포인트였던 거죠.

결국에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양식장 갯지렁이만 보더라도, 양식장 부표에 갯지렁이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 갯지렁이가 미세 플라스틱을 만들어서 배출하면 그 옆에 있는 조개라든가 작은 물고기가 그걸 먹을 수 있는 거고, 또 거기가 양식장 아니었습니까. 더 큰 물고기가 그걸 먹을 수도 있는 거고. 물고기든 어패류든 어떤 형식으로든 결국 인간이 먹기 위해 운영하는 양식장에 사는 거니까 우리가 먹을 수밖에 없는 거죠. 먹이 사슬을 거치면 결국 인간 몸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고. 관련 연구는 엄청 많이 나온 것 같아요. 한국인도 일주일에 신용 카드 몇 장 분량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는, 과학적 연구가 뒷받침된 기사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플라스틱을 먹고 있는 시대를 살 게 된 거죠. 얼마큼 조금 먹으려고 노력하느냐의 문제인 거지, 먹는 걸 피할 수는 없는 시대입니다.

* 인류세의 개념과 닭 뼈, 플라스틱 쓰레기로 대표되는 인류세의 증거를 이야기했는데요, 내일은 플라스틱 암석, 과잉 인구라는 키워드로 인류세를 다룹니다.

4월 1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집니다. 이번 주제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 주세요.

* 북저널리즘 콘텐츠 《지구에 대한 의무》, 〈굿바이 플라스틱〉,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물질〉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1]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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