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대
간단한 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교육방송의 최평순 PD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뿐인 지구〉라는 환경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최근에는 〈인류세〉라는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든 바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인류세라는 말을 특히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혹시 인류가 내는 세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인류세가 어떤 개념인 건가요?
생소한 단어여서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환경 관련 단어냐. 세금 관련 단어냐. 아니면 나는 새라고 생각하셔서 자연 다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웃음)
사실 인류세의 ‘세’는 지질 시대를 나타내는 지질 단위의 세(世)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얘기하면 인간이 지구를 바꾼 걸 나타내는 지질 시대 단어고요. 다르게 말하면 인간이 지구 환경을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이 바꿨기 때문에 지질 시대도 인류의 이름을 붙여서 바꿔야 한다는 과학적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과학계에서 꽤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졌고, 과학계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사람들이 이 단어를 계속 호명하고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단어가 계속 확산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질 시대를 바꾸자는 과학적 주장이지만 더 큰 사회적 의미를 띄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인류세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하는 걸까요?
그 질문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왜냐하면 인류세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하냐는 거는 ‘인류가 어떤 종이길래 이렇게 지구를 많이 파괴했냐’라는 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인류가 출현했을 때부터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매머드라든가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해서 그들을 멸종으로 몰고 갔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농경의 시작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농경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생물 종을 구분 짓는 행위니까. 그래서 그 순간부터 우리가 지구를 많이 바꿔 놨다는 분들도 있고요. 18세기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봐야 한다는 분들도 많고.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왜냐하면 그때 내연 기관이 개발됐고, 대량 생산이 시작됐으니까요.
그런데 가장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기는 1950년대, 20세기 중반입니다. 인류세를 공식 지질 시대로 만들려고 하는 실무 그룹이 있어요. 인류세 실무 그룹(AWG)이라고 지질학자들 위주로 구성된 단체이고, 지질 학계에서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인류세가 공식 지질 시대가 되는 겁니다. 인류세 실무 그룹은 1950년대를 인류세 시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서, 상위 기관인 국제 지질 연합에 상정한 상태입니다.
1950년대 이후를 인류세 시작이라고 보는 이유는 뭔가요?
물리적 증거로서는 최초의 핵실험이 이루어진 직후가 1950년대라서 그렇고요. 어쨌든 지질 시대를 바꾸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핵실험을 하고 나면 방사능, 우라늄 같은 것들이 지구에 쌓입니다. 거기서 물리학적 증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건 인간이 만들어낸 거기 때문에 인류세 시작을 최초 핵실험 이후인 1950년대로 봐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요. 다르게 보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전 세계가 경제 발전을 시작한 시기가 1950년대 이후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류 문명이 굉장히 풍요로워진 시기죠. 그때부터 되게 잘살기 시작한 거죠. 우리 할아버지 때보다 지금 세대가 더 풍요롭게 살잖아요. 그 시작점이 1950년대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70년 동안 집중적으로 지구가 파괴되고 있다. 그래서 1950년대를 인류세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앞서 증거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도 인류세 증거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건 코로나19가 인수 공통 전염병이기 때문이에요. 인수 공통 전염병이 뭔지 잠깐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인간과 짐승 수(獸)죠. 인간과 짐승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인류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이 어떤 지점에서 동물과 만났기 때문에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된 거고. 그 과정에서 변이가 이뤄지면서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한 거잖아요. 그래서 인간과 동물의 영역이 구별되지 않고, 다르게 얘기하면 인간이 다른 야생 동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파괴하고 거기에 들어가다 보니까 접점이 생겼고, 또 그 동물들도 잡아서 팔다 보니까, 그런 과정에서 코로나19가 발병했다고 보기 때문에 인류세 현상이라고 보기도 하고요.
또 이렇게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발병했을 때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있는 것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인류세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예요. 발병 원인 그리고 확산 속도, 무기력한 대처를 종합적으로 보면 코로나19도 인류세 현상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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