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가 형성되는 조건에는 화산 폭발이 있습니다. 용암이 해변가로 흘러나오면 워낙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아 들러붙을 수밖에 없는데, 마그마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안은 채로 식으면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가 되는 겁니다. 또 캠프파이어 같은 인위적인 활동으로 열이 발생하는 조건이 되면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가 형성된다고도 해요.
저희는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가 인류세의 증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두 군데를 찾아갔습니다. 첫 번째 찾아간 곳은 네덜란드의 한 과학 박물관으로, 거기에는 지구의 지질 시대를 보여 주는 여러 암석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학생들 보라고 전시를 해놓은 거죠. 30억 년 전 암석이 있으면 그 옆에 ‘시생대(始生代)
[1]’, ‘호주에서 발견’ 같은 문구가 쓰여 있는데, 그곳에 거대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인류세’, ‘2010년 발견’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걸 보니 실감이 났어요. ‘아, 진짜 이런 게 있구나’ 하고요.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물어보니 그 암석을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힘들게 들여왔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출장비나 시간적 여유가 적어 짧은 시간 안에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출발했습니다. 도착해서 동행해 주신 박사님, 해변 청소 자원봉사자분들과 같이 찾기 시작했는데, 30분도 안 돼서 금방 발견했죠. 한 자원봉사자가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라고 외치면서 흔들어 보여주더라고요. 가서 보니까 밧줄이나 폴리프로필렌(PP·PolyPropylene) 같은 플라스틱 재질이 현무암에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여러 개 더 발견했고요. 처음에는 이 암석이 어떻게 형성됐는지가 신기했는데, 그것보다 나중에는 해변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그곳 카밀로 해변은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었거든요.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다 그 해변으로 모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고 부르는 태평양의 거대 플라스틱 쓰레기 섬은 해류에 의해 쓰레기가 빙빙 돌다가 어느 한 지점에 모이는 곳입니다. 태평양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거기를 거쳐 가는 거죠. 엄청나게 많은 해변 플라스틱을 누가 치워 주지 않으면 용암이나 캠프파이어 등으로 인해 새로운 암석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고요.
물고기 없는 황금 어장
다큐 3부에서는 그런 플라스틱으로 위협받아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인상 깊었어요. 물고기를 사냥하며 평생 바다에서 살아가는 바자우족이 등장하는데, 왜 이들을 조명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플라스틱이 넘쳐 나고 그것이 지구를 바꾸고 있는데도 우리가 심각하게 못 느끼는 이유는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은 주로 바다로 흘러가니까요. 본인이 굳이 뉴스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아파트나 빌라에 살면서는 알기 어려운 문제죠. 그런데 바다가 삶의 터전인 분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저희가 찾은 바자우족은 아시아의 원시 부족입니다. 바다의 집시라는 별명이 있어요. 원래는 바다의 유목민들로 평생 배에서 살아왔는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섬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분들도 있죠. 저희가 찾은 바자우족은 섬에서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구의 변화를 잘 보여 줄 수 있는 어떤 장소가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봤는데, 그게 바로 바자우족이 사는 인도네시아의 ‘붕인섬’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었는데, 정말 기묘하게 보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