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와 에너지 전환

4월 6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수에즈 운하 사고는 LNG 선박의 수요를 높이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사상 초유의 ‘길막’ 사고


길이 400미터, 넓이 60미터의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좌초하면서 마비됐던 수에즈 운하가 완전 정상화됐습니다. 지난 3일, 수에즈 운하 관리청은 운하 안팎에서 통행을 기다리던 선박 422척이 모두 통과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지난달 23일 사고 발생 이후 11일 만입니다. 그사이 새로 도착한 선박들도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운하를 지나며 정체 해소를 도왔습니다.

물류 대란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이제 사고 원인 규명과 이에 따른 막대한 배상이라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앞서 이집트 정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배상금 10억 달러(1조 1285억 원)를 청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통행료 손해분, 파손된 운하 복구 비용, 각종 장비 사용료 및 인건비 등이 포함됐습니다. 현재 수에즈 운하 한가운데 위치한 호수인 그레이트비터호(Great Bitter Lake)에 정박 중인 에버기븐호는 배상금 합의 전까지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수에즈 운하에 좌초한 에버기븐(Ever Given)호 ⓒMaxar Technologies 트위터
배상 책임을 두고 지금 가장 긴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일본 선박 제조사 이마바리조선(今治造船)의 자회사이자 에버기븐호의 소유주인 쇼에이기선(正栄汽船)입니다. 에버기븐호의 운영사인 대만 에버그린해운(Evergreen Marine)은 지난 1일 기자 회견을 열고 계약상 해상 사고 책임은 선주에게 있다며 미리 선을 그었습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이집트 당국이 일단 쇼에이기선에 피해 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고 규명의 핵심인 좌초 원인을 두고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1차 조사를 진행한 독일 선박 기술 회사 버나드슐테(BSM)는 모래바람 등 강풍을 사고 원인으로 꼽았지만, 수에즈 운하 관리청은 엔진 고장 등 기술적 결함이나 항해사의 실수도 배제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사고 원인이 악천후 등 자연재해로 밝혀지면 배상 책임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 원인과 관련해 뜻밖의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저유황유(低硫黃油)’입니다.
 

검은 기름과 스크러버


강풍도, 기계 결함도 아닌 선박 연료가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뭘까요? 거대한 선박을 움직이는 연료에는 주로 중유(重)油, Heavy oil), 그중에서도 ‘벙커씨(Bunker-C)유’가 사용됩니다. 벙커는 ‘배의 연료를 보관하는 창고’라는 뜻으로 중유를 분류하는 데 쓰입니다. 기름의 용도와 질에 따라 벙커 A, A1, B, C 등 4종으로 나누는데, 선박 연료로 사용되는 벙커씨유는 쉽게 말해 질이 가장 낮은 시커멓고 끈적끈적한 기름입니다.

벙커씨유는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는 황산화물 배출이 심합니다.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산화물은 산성비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미세먼지를 만드는데요, 황 성분이 2퍼센트 이상 함유된 벙커씨유를 그래서 ‘고유황유(高硫黃油)’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이 벙커씨유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탄소 제로 움직임 때문입니다. 유엔 산하 기구이자 국제 해운 업무를 총괄하는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2020년부터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 상한을 기존 3.5퍼센트에서 0.5퍼센트로 낮추는 규제안인 ‘IMO 2020’을 도입했습니다. 이 규제안대로면 연료 1톤당 70킬로그램이던 황산화물은 10킬로그램으로 86퍼센트가량 감소합니다.

업계에서는 이 규제에 대한 대책으로 ‘스크러버(scrubber)’라는 탈(脫)황 장치를 선보였습니다. 바닷물을 이용해 선박이 내뿜는 황산화물을 씻어 내는 장치인데요, 고유황유를 계속 사용하면서도 강화된 황산화물 규제 기준(황 0.5퍼센트)을 충족시키는 대안으로 꼽혀 왔습니다. 그래서 배 한 척당 많게는 1000만 달러(112억 원)까지 드는 초기 비용을 감수하고 많은 선사가 스크러버를 설치했습니다.

스크러버 종류에는 개방형과 폐쇄형, 하이브리드형이 있는데요, 바닷물로 황산화물을 희석하고 그 물을 다시 바다에 방류하는 개방형 스크러버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컨테이너선 중 스크러버가 설치된 선박은 24.4퍼센트에 달했습니다.
HMM(옛 현대상선)이 발주한 상트페테르부르크호에 설치된 스크러버 ⓒHMM
그런데 선주들에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미국, 중국, 프랑스, 싱가포르, 스페인 등 여러 국가에서 스크러버를 설치한 선박의 입항을 금지한 것입니다. 스크러버를 설치하면 대기 속 황산화물은 줄지만, 바다로 배출되는 오수가 해양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개방형 스크러버를 설치한 선박들은 제재 지역을 통과하는 동안 스크러버를 끄고, 선박 연료를 저유황유로 교체해 왔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에버기븐호 사고 현장을 떠올려 볼까요? 수에즈 운하 역시 개방형 스크러버를 가동하는 선박에 높은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요, 운하를 통과하는 동안은 사실상 오수 배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에버기븐호도 운하에 진입하기 위해 스크러버를 끄고 저유황유로 연료를 교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애초에 고유황유에 적합하게 설계된 선박 엔진에 저유황유가 들어가면서 엔진이 손상돼 추진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즉, 좌초의 결정적인 원인이 저유황유 사용이라는 것이죠.
 

수에즈발 한국 LNG선의 반사 이익


“처음부터 저유황유를 쓰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유황유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별도의 엔진 개조나 장비 설치가 필요하진 않지만, 고유황유 대비 가격이 40~50퍼센트 이상 높다는 겁니다. 유가가 급등하면 재정 리스크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수에즈 운하 사고로 인해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선박이 주목을 받는 이유입니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은 환경 규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꼽히는데요, 황산화물 배출량을 거의 100퍼센트 제거할 수 있고 황 성분 외에도 미세 먼지, 이산화탄소 등 다른 오염 물질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선박 연료별 비교(에너지경제연구원)
  장점 단점
저유황유 대부분 선박에 사용 가능하고 추가 장비 설치가 필요 없다.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이 적다. 연료비 상승 리스크가 있고, 기존 고유황유 엔진에 주입 시 기술적 문제가 따를 수 있다.
고유황유
+스크러버
저렴한 기존 고유황유 사용이 가능하고 기존 선박에 설치가 가능하다. 스크러버 설치에 따른 초기 비용이 발생하고 개방형 스크러버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성이 높다.
LNG 황산화물 등 대기 오염 물질 배출량이 낮고, 타 연료 대비 연료 소모량이 적다. 초기 투자 비용(신규 건조)이 필수고, 지역별 LNG 연료 가격에 격차가 있다.

이런 LNG추진선은 벙커씨유를 사용하는 일반 선박보다 가격이 20~30퍼센트 높습니다. 그래서 선주들은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반 선박에 스크러버를 설치해 온 것인데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의 반사 이익이 예상됩니다. 한국은 LNG추진선에 대한 기술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LNG선은 LNG를 영하 163도의 극저온 탱크에 저장, 운반하는데 이때 만약 균열이 생기면 선박 표면인 강철이 파손될 수 있고, 화기에 닿기라도 하면 대형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사들은 조선소를 선정할 때 그 무엇보다 안전성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은 이미 잦은 고장으로 악명이 높고, 이번 수에즈 운하 사고로 일본 선박에 대한 품질 신뢰도 역시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6월, 국내 조선 3사가 카타르 국영 석유사인 카타르 페트롤리엄(QP)으로부터 23조 원 규모로 100척 이상의 LNG 운반선 수주를 따냈다. ⓒ삼성중공업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 좌초됐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 국내 해운사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은 실제 주식 시장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올해 초 1만 5000원 대에서 거래되던 HMM은 지난달 26일 기준 3만 4150원에 거래를 마쳐 3개월 만에 100퍼센트 넘는 상승 폭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난 30일 분석 리포트를 통해 “역사적으로 조선업이 크게 성장하는 계기 중의 하나는 해상 교통로에서의 분쟁과 사고였다”고 말합니다. 1967년 이집트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수에즈 운하를 8년간 봉쇄하자,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이 등장했고, 1990년 걸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일시적으로 선박 수요가 급증해 조선업이 대호황기를 맞이했다는 겁니다. #하나금융투자 리포트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선 Abdelkader호 ⓒ현대중공업
지난해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둔화하고, 국제 유가가 폭락해 선사들이 발주를 미루면서 수주 가뭄이 이어졌던 조선업계에 수에즈 운하 사고는 LNG선 수요를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될 전망입니다. 1조 원이 넘는 배상 책임과 운하 정체로 피해를 본 전 세계 선박들의 보상 요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유황유를 사용하는 선주들의 기술적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클 테니까요. 해상에서의 LNG 연료 사용은 이제 환경은 물론, 선원의 안전과 기업의 재정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수에즈 운하 사고로 인해 달라질 해상 에너지의 전망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주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새로운 에너지 질서〉, 〈그린 이노베이션〉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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