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여권, 일상 복귀할 방법 될까
 

4월 7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정부가 이달 안에 백신 여권을 도입하기로 했다. 세계적으로도 백신 여권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여름 휴가의 희망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증명할 수 있는 ‘백신 여권’이 국내에 도입됩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달 안에 백신 접종 인증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백신 여권 도입은 세계적으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중국 등이 이미 도입했고, 태국, 영국, 유럽 연합(EU) 국가들도 도입 계획을 밝혔습니다.

백신 여권은 백신 접종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입니다. 대부분 QR 코드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같은 전자 증명서 형태입니다. 백신 여권을 소지한 사람에게는 방역 관련 제한이 완화되거나 면제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경기장, 영화관, 식당 등에 입장할 수 있게 한다거나, 국가 간 협의를 거쳐 입국 시 격리를 면제해 주는 식입니다.

백신 여권 도입이 본격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회복입니다. 백신을 맞아 면역을 확보한 사람들이라도 먼저 자유롭게 소비 활동을 하고, 해외여행도 재개하자는 것이죠. 게다가 여름 휴가 기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관광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 입장에서 백신 여권은 어느 정도 방역을 확보하면서 관광객도 다시 유치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백신 여권을 처음 도입한 건 아이슬란드였는데요, 지난 1월부터 백신을 맞은 국민에게 접종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증명서를 소지한 외국인에게도 입국 시 격리와 검사를 면제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4월 6일부터는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으면 미국인도 입국할 수 있도록 했는데, 유럽 국가 중에선 처음입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기준 아이슬란드의 국내 총생산(GDP) 대비 관광 산업 비중은 33.8퍼센트에 달합니다.

한때 관광 산업이 GDP의 21.2퍼센트를 차지했던 그리스도 백신 여권 도입에 적극적입니다. 그리스는 자국민에게 의료 목적의 디지털 백신 접종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서로의 백신 증명서를 인정하는 협정도 맺었습니다. 증명서가 있으면 상대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중국도 QR 코드 형태로 인증서를 발급하고 다른 국가와의 상호 격리 면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백신 여권 들고 경기장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민들이 바에 입장하면서 그린 패스(Green Pass)를 제시하고 있다. ©Amir Levy/Stringer via Getty Images
백신 여권이 실제 ‘여권’처럼 통용되려면 국가 간 협의가 필요한데, 아직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단 자국 내에서 방역 제한 조치를 완화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는 빠르게 적용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이스라엘과 영국에서는 백신 여권을 이용한 일상 복귀 실험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59퍼센트가 백신을 맞은 이스라엘은 지난 2월 백신 여권인 ‘그린 패스(Green Pass)’를 도입했는데요, 국내 경제 정상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했거나,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 그린 패스가 발급되는데요, 그린 패스를 소지한 사람은 체육관, 호텔, 수영장, 콘서트, 종교 시설 등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식당과 바 실내 좌석에도 앉을 수 있고요. 그린 패스가 없는 사람에겐 야외 좌석이나 일반 상점과 쇼핑몰 등 방문만 허용됩니다.

백신 접종률이 47퍼센트인 영국도 백신 여권 시범 운영 계획을 밝혔습니다. 백신 접종 정보, 감염 여부, 항체 형성 여부 등 정보를 담은 전자 인증서를 발급해 대규모 모임을 정상화하겠다는 겁니다. 우선 축구 컵 대회 결승전, 코미디 클럽, 영화관, 나이트클럽 등에 백신 여권을 보유한 사람들을 입장시키기로 했습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손흥민 선수가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 토트넘과 맨체스터 시티의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백신 여권을 갖고 들어온 관중의 응원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단, 보리스 존슨 총리는 백신 여권이 공공장소나 대중교통, 필수 상점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권 등에서 반대 의견이 적지 않기 때문인데요, 접종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아직 모든 시민에게 접종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 여권을 기준으로 각종 시설 입장을 허용하면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념

뉴욕주가 발행할 예정인 백신 여권 ©New York State
백신 여권은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검증된 개념은 아닙니다. 비판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차별과 접근성 문제입니다. 국가별로도 백신 확보와 접종 상황이 다르고, 국가 내에서도 우선 접종 대상자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만 여행이나 각종 사회 시설 출입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불평등하다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도 백신 여권 도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백신 여권은 정치적 논쟁거리입니다. 뉴욕주는 자체적으로 백신 여권을 도입하기로 하고 여러 민간 백신 여권이 개발 중이지만, 공화당 정치인이나 일부 주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백신 여권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습니다. 플로리다주의 정부 기관이 백신 여권을 발급해서도, 민간에서 고객에게 백신 여권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스포츠 경기장, 음식점, 극장 등을 입장하기 위해 백신 여권을 요구하게 된다면 시민들을 백신 여권 보유자와 미보유자 두 계층으로 나누게 될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인 정보 문제도 백신 여권이 해결해야 할 점입니다. 예방 접종 정보와 검사 결과 등 의료 정보, 위치 데이터 등이 수집되거나 저장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요, 백신 여권을 도입한 이스라엘에서도 개인 정보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이파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겸 프라이버시이스라엘 이사 오 둥켈만(Orr Dunkelman)은 이스라엘 백신 여권에 대해 코로나19 감염 및 회복일, 백신 접종일 등 의료 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앱에 사용된 암호화 기술이 보안에 취약하며, 앱이 오픈 소스 기반이 아니어서 외부 전문가들이 검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중요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고, 이동에 필수적인 신분증이 되는 만큼 위·변조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크웹에서는 가짜 백신 접종 증명서, 가짜 코로나19 음성 판정서 등이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위·변조를 막기 위해 여러 국가나 기업에선 백신 여권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도입을 예고한 백신 여권도 블록체인 기술 기반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도입이 활성화된다 해도, 상호 인증과 표준화라는 장벽이 남아 있습니다. 백신 여권은 해외여행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 때문에 ‘여권’으로 불리지만, 아직 여권이라고 할 만큼의 국제적인 합의를 이루진 못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상호 인증을 추진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현재 그리스, 키프로스, 조지아하고만 협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또 한 국가 안에서 민간 기업 여럿이 백신 여권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여권 종류는 최소 17가지라고 합니다. 실질적으로 활용하려면 국내에서든 국제적으로든 표준화가 필요한데,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선 점점 본격화하고 있는 백신 여권의 개념부터 먼저 도입한 나라들의 실험, 반대 의견까지 짚어 봤습니다. 백신 여권 문제는 판데믹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두고 앞으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고 판데믹도 오래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전과 같은 격리나 봉쇄 조치와 다른 방역 방법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회복하면서 감염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백신 여권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의견도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백신은 세계를 구할 것인가〉,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할까〉와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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