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여권은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검증된 개념은 아닙니다. 비판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차별과 접근성 문제입니다. 국가별로도 백신 확보와 접종 상황이 다르고, 국가 내에서도 우선 접종 대상자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만 여행이나 각종 사회 시설 출입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불평등하다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도 백신 여권 도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백신 여권은 정치적 논쟁거리입니다. 뉴욕주는 자체적으로 백신 여권을 도입하기로 하고 여러 민간 백신 여권이 개발 중이지만, 공화당 정치인이나 일부 주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백신 여권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습니다. 플로리다주의 정부 기관이 백신 여권을 발급해서도, 민간에서 고객에게 백신 여권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스포츠 경기장, 음식점, 극장 등을 입장하기 위해 백신 여권을 요구하게 된다면 시민들을 백신 여권 보유자와 미보유자 두 계층으로 나누게 될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인 정보 문제도 백신 여권이 해결해야 할 점입니다. 예방 접종 정보와 검사 결과 등 의료 정보, 위치 데이터 등이 수집되거나 저장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요, 백신 여권을 도입한 이스라엘에서도 개인 정보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이파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겸 프라이버시이스라엘 이사 오 둥켈만(Orr Dunkelman)은 이스라엘 백신 여권에 대해 코로나19 감염 및 회복일, 백신 접종일 등 의료 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앱에 사용된 암호화 기술이 보안에 취약하며, 앱이 오픈 소스 기반이 아니어서 외부 전문가들이 검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중요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고, 이동에 필수적인 신분증이 되는 만큼 위·변조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크웹에서는 가짜 백신 접종 증명서, 가짜 코로나19 음성 판정서 등이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위·변조를 막기 위해 여러 국가나 기업에선 백신 여권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도입을 예고한 백신 여권도 블록체인 기술 기반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도입이 활성화된다 해도, 상호 인증과 표준화라는 장벽이 남아 있습니다. 백신 여권은 해외여행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 때문에 ‘여권’으로 불리지만, 아직 여권이라고 할 만큼의 국제적인 합의를 이루진 못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상호 인증을 추진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현재 그리스, 키프로스, 조지아하고만 협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또 한 국가 안에서 민간 기업 여럿이 백신 여권을 개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여권 종류는 최소 17가지라고
합니다. 실질적으로 활용하려면 국내에서든 국제적으로든 표준화가 필요한데,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선 점점 본격화하고 있는 백신 여권의 개념부터 먼저 도입한 나라들의 실험, 반대 의견까지 짚어 봤습니다. 백신 여권 문제는 판데믹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두고 앞으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고 판데믹도 오래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전과 같은 격리나 봉쇄 조치와 다른 방역 방법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회복하면서 감염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백신 여권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의견도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백신은 세계를 구할 것인가〉,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할까〉와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