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없다

4월 13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반도체는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21세기 원유가 됐다.

대만 반도체 제조 기업 TSMC 난징 공장 전경 ©TSMC

자동차 공장을 멈춰 세운 반도체


미국 백악관이 12일 글로벌 기업 19곳을 화상 회의에 불러 모았습니다.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대만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반도체 기업과 구글 모회사 알파벳, AT&T, HP 등 IT 기업이 참여했습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같은 자동차 회사도 참석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백악관은 반도체 회의에 왜 자동차 회사를 불렀을까요? 최근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타격이 가장 큰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반도체가 부족해 하루 이상 생산을 멈춘 공장이 80곳을 웃돕니다. GM, 포드, 토요타,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생산을 중단하거나 감축에 들어갔고, 현대자동차도 울산 1공장에 이어 아산 공장의 가동을 멈췄습니다.

요즘 자동차는 그야말로 바퀴 달린 IT 기기입니다. 운전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각종 센서가 탑재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반 자동차에는 200~300개의 반도체가 사용되고, 향후 레벨3(조건부 자율 주행 가능) 수준의 자율 주행차에는 2000개가 넘는 반도체가 들어갈 전망입니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은 자동차 회사들이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고전한 자동차 회사들이 반도체 발주를 크게 줄였고, 공급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대신 IT 기기와 가전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대만 등지의 반도체 제조 공장에 자연재해와 화재도 잇따랐습니다.
GM은 지난 2월부터 북미 지역 두 곳의 생산 공장 가동을 멈췄다. 사진은 미국 캔자스주에 위치한 GM 공장의 생산 라인 ©GM

메모리와 비메모리, 팹리스와 파운드리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과 반도체 지정학을 소개해 드리기 전에 반도체의 기초 정보와 산업 개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과거에는 반도체라고 하면 일부 첨단 전자 기기에 사용되는 부품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첨단 전자 기기가 아닌 제품이 드뭅니다.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TV, 냉장고, 인터넷, 자동차, 항공기 등 거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사용됩니다. 이런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두 종류로 나뉩니다.
 
  • 메모리 반도체: 데이터 저장·기억을 담당한다. D램, S램이 대표적이다.
  • 비메모리 반도체: 데이터 연산·처리를 담당한다. CPU가 대표적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라고도 부른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세계 1위 기업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후발 주자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연산이 많은 AI, 5G, 자율 주행차, 사물 인터넷 등에 널리 쓰이는데요,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2배 큽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오는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입해 비메모리 분야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2020년 3분기 메모리 반도체(D램) 시장 점유율(매출액 기준)
순위 기업명 점유율(퍼센트)
1 삼성전자(한국) 41.3
2 SK하이닉스(한국) 28.2
3 마이크론(미국) 25.0
4 기타 5.5

메모리 반도체는 기성품처럼 생산 후 판매됩니다. 소품종 대량 생산이 가능해 기업 한곳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맡을 수 있습니다.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주문 생산됩니다. 종류가 다양하고 회로도 복잡해 설계와 제조를 여러 회사가 나눠서 합니다. 이처럼 반도체 기업은 생산 공정에서 어느 단계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  팹리스(Fabless): 공장이 없다는 뜻의 팹리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미국 퀄컴이 대표적이다.
  •  파운드리(Foundry):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제조)하는 업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는 대만 TSMC이다.
  •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회로 설계, 생산, 가공 및 검사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업체다. SK하이닉스 등이 해당한다. 다만 IDM 업체는 대부분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회로를 설계하는 팹리스가 제조를 맡는 파운드리보다 기술력이 뛰어날 것 같은데요, 사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파운드리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파운드리 기술의 핵심은 복잡한 회로를 얼마나 미세하게 그려 내는가인데, 10억 분의 1미터(1나노미터)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파운드리 업계의 50퍼센트 이상을 TSMC가 점유하고 있고, 그 뒤를 삼성전자가 쫓고 있습니다.
 
2020년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매출액 기준)
순위 기업명 점유율(퍼센트)
1 TSMC(대만) 55.6
2 삼성전자(한국) 16.4
3 UMC(대만) 6.9
4 글로벌파운드리(미국) 6.6
중국 선전의 화웨이 본사 ©Kevin Frayer/Getty Images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


위 표에서도 나타나듯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비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 대만과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이러한 반도체 수급 상황을 심각한 안보 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반도체는 전력망이나 통신망 같은 국가 기반 시설은 물론 최첨단 미사일이나 군사 위성 등에도 사용되는데, 반도체의 과도한 해외 의존도가 자칫 국가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위기감의 근원은 역시 중국입니다. 물론 중국은 아직 반도체 기술 경쟁력 면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준은 아닙니다. 2019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7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지난해에만 3500억 달러(394조 원) 상당의 반도체를 수입했는데, 중국 전체 수입액의 13퍼센트가 넘습니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지난 2015년,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며 ‘반도체 굴기(崛起)[1]’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화웨이 등 자국 기업에 10년간 1조 위안(170조 원)을 투자하고, 해외 반도체 기업 인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독립은 말처럼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2025년 중국 반도체 자급률이 19.4퍼센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중국이 한참 뒤처져 있다고는 하지만,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할 미국이 아닙니다. 중국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갈수록 심해졌고, 지난해 5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술이나 장비로 만든 반도체를 화웨이에 납품하려면 특별 허가를 받으라며 본격적인 제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중국의 스마트폰이나 5G 장비 생산을 어렵게 만들겠다는 의도였습니다. 또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를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중국 반도체 견제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열린 국무 회의에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다시 한번 강조했는데요,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우선으로 소비하겠다는 겁니다. 이는 제조업을 더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이 안에 반도체 역시 포함됐습니다. 미국은 우선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00억 달러(56조 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대만 TSMC의 제조 시설 ©TSMC

반도체 지정학


1958년 마이크로 칩이 발명된 이래 각국 반도체 기업들의 네트워크는 수십 년간 지속됐습니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때론 협력을, 때론 경쟁을 지속해 왔고, 그러는 사이 반도체 산업은 연간 매출액이 4500억 달러(506조 원)에 이를 만큼 성장했습니다. 반도체는 단순 소재 부품을 넘어 이제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의 경제와 안보까지 좌지우지하는 필수 원자재가 됐습니다. 21세기 원유라는 비유까지 나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 양상이 지정학적 갈등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며 이런 전망을 했습니다. “20세기 세계 최대의 경제적 관문은 원유가 거쳐 가는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머지않아 이는 실리콘이 새겨져 나오는 한국과 대만의 여러 기술 단지가 될 것이다.” 즉, 글로벌 경제의 핵심인 원유가 중동의 지정학적 요소에 의해 결정됐다면, 이제 반도체 생산의 주축인 우리나라와 대만의 사정에 따라 세계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반도체 패권 경쟁의 키를 쥐고 있는 대만을 차지하기 위한 미·중의 본격적인 경쟁이 예상됩니다. 작은 섬나라인 대만이 어떻게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지금 전 세계는 반도체를 더 달라며 TSMC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비메모리 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TSMC는 세계 최강의 파운드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며 군사적 침략까지 위협하는 동안, 대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부터 세계 최강 전투기인 F-35에 쓰이는 군용 반도체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대만의 가장 강력한 방위 전략이 TSMC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중국의 대만 침략이 곧 자국의 경제, 안보 위기로 이어지는 미국이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처럼 이제 대만 해협이 세계 패권 경쟁의 새로운 장이 될 전망입니다. 아울러 파운드리 세계 2위인 한국도 미·중 경쟁의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최근 벌어진 반도체 품귀 현상과 반도체 패권 전망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오늘 주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보내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모든 칩을 걸어라〉와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1]
우뚝 일어선다는 뜻으로, 산업이나 기술 측면에서의 큰 도약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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