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얼굴
1화

기후 위기의 얼굴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에디 렉스는 파푸아뉴기니의 카테라트섬(Carteret Islands)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 가정의 아버지인 에디는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데, 몇 년 전부터 참치 수확량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참치 대신 조개류라도 잡아 보지만 그마저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당일 잡은 생선을 가족의 밥상에 올릴 뿐, 시장에서 팔지 못할 정도다. 에디의 집은 바닷가에 인접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해변가의 물이 집에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밀물 때면 집에서 불과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까지 물이 들어온다. 파도가 센 날에는 물을 피할 길이 없다. 태풍도 잦아져 집의 콘크리트 벽 한쪽이 부식되고 있는데, 요즘 벌이가 좋지 않다 보니 벽을 보수할 수도 없다. 에디의 부인은 채소를 마을 공동 텃밭에서 기르고 있지만 수확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토양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섬의 가장 높은 지점에 올라서 둘러보는 카테라트섬 주위엔 온통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생 산 이 섬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이곳에서 삶이 계속 가능한지 생각해 볼 때 떠오르는 것은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뿐이다.

에디 렉스는 태평양 섬나라 국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종합해 만든 가상 인물이다.[1] 기후 변화로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후 이주(climate migration) 문제를 세계적으로 알린 첫 사례는 위와 비슷한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후 난민’으로 보도된 사례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의 카테라트섬에서 발생했다. 부건빌(Bougainville) 본토에서 86킬로미터 떨어진 카테라트섬(여섯 개의 산호섬으로 이루어져 있다)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1.2미터에 불과하다. 이곳 주민들은 30년 전부터 기후 변화를 체감했다고 한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산성화되면서 산호초는 백화 현상이 일어나거나 죽어 나갔다. 그러자 생선이 주식인 이 섬에서는 식량 문제가 심각해졌고,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기도 어려워졌다. 토지에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해수면 상승으로 토양의 염분은 높아지고, 이미 좁았던 섬의 영토는 더 축소되고 있었다. 파푸아뉴기니의 사람들은 ‘기후 변화’라는 단어를 들어 보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몸소 겪고 있었다. 삶의 터전에 생기는 변화를 지켜보던 카테라트섬의 주민 일부는 정부에 본토 부건빌로의 이주를 요청했다.[2] 선조의 땅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평생 한곳에서 사는 것이 당연했던 이곳 사람들이 고향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는 건 기후 변화의 위협이 심각해졌다는 증거였다. 기후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들은 이미 실존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사례이자,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머지않은 미래다.
카테라트섬의 일부인 후엔섬에 살고 있는 조키(Joki)와 베블린(Bevelyn). 부모와 함께 이 섬에 사는 유일한 가족이다. 근처의 섬과 연결돼 있던 섬은 영토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조키와 베블린이 이 섬에 사는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Muse Mohammed/IOM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범지구적인 위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연적 기후 변화가 가장 빨리 진행된 시기는 2만 년 전 빙하기에서 1만 년 전 간빙기까지의 기간이다. 1만 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가 4도 상승했다. 반면,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진 최근에는 지구 평균 온도가 1도 올라가는 데에 1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극단적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2020년 한 해만 보아도 한국은 1973년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을 겪은 뒤 6월에는 때이른 더위로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7월과 8월에는 최장 기간 장마 기록을 갱신했다.[3] 적당히 더워야 할 날씨가 폭염으로 번지고, 미세 먼지는 순환되지 못해 눌러앉고, 겨울은 더 추워졌다. 한국에서는 작년 여름 폭염으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구 평균 기온 단 1도가 오른 결과다. 한국의 평균 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1.7도 상승했다.

평균 기온이 올라간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극단의 위기 상황이 더 자주 찾아온다는 의미다. 기존의 자연재해가 더욱 강하게, 자주 일어나게 된다. 2020년 호주는 관측 이래 가장 가장 덥고 건조한 한 해를 보냈고, 이에 강풍까지 겹쳐 2019년에 시작한 산불이 6개월간 멈추지 않았다. 남한보다 더 큰 면적이 소실됐고, 약 3100개의 집이 불탔으며, 목숨을 잃은 사람도 여럿 발생했다. 코로나로 국경이 닫힌 4월, 태평양의 바누아투와 솔로몬 제도에는 카테고리 5 규모의 열대성 사이클론 ‘헤럴드’가 발생했다.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건물이 무너졌으며 주민들이 일구던 밭은 사라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국경 간 이동이 어려운 시점에 일어난 재해였기 때문에 구호 물품의 지원은 더뎠다. 이 지역은 2015년 사이클론 ‘팸’ 이후 재건을 겨우 이룬 곳으로, 5년 만에 같은 규모의 사이클론을 또 한 번 겪게 되었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는 연초에는 사이클론,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전체 국토의 4분의 1가량 이상이 물에 잠겼다. 100만 가구 이상이 손실됐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사망자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2019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자연재해는 1900개에 달했으며 약 25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20년도 이에 버금가는 수가 집계됐다.[4] 지난 20년간 기후 변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재해는 더욱 강해졌고, 빈도수는 늘었으며 그에 따라 이재민의 수도 매년 증가했다.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205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강제 이주의 위험에 놓인 인구가 10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5]

 

기후 위기의 얼굴


기후 위기의 재앙적 영향을 잘 보여 주는,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모습의 끝에는 기후 이주가 있다. 기후 이주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 있지만, 이는 약 30년 전 첫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기후 변화 보고서[6]가 발간되었을 때부터 예견된 미래였다. IPCC 보고서는 “기후 변화가 인류에 미칠 가장 심각한 영향은 인간의 이주이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해안 침식, 해안 침수, 극심한 가뭄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고, 인도양의 몰디브, 태평양의 투발루, 키리바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기록했다.[7] 1990년대의 예측처럼 투발루의 9개의 섬은 이미 거의 수몰됐으며 향후 50~100년 사이에 전 국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8] 몰디브는 2100년이면 약 80퍼센트의 국토가 사라질 전망이다.[9] 먼 미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 태어나는 세대가 실제로 맞이할 수 있는 미래다. 더불어 기후 이주는 태평양, 인도양, 카리브해 등의 도서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의 피해가 있는 곳에 이주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후 이주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아주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기후 변화와 그와 연관된 다양한 환경 변화의 원인으로 이주하는 사람 또는 이주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 난민’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기후 난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에 관한 논란도 있다. 기후 위기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기존 난민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난민은 정부나 조직 등으로부터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으로 인해 박해를 받아 본국을 떠나 타국으로 피신한 사람[10]이다. 국경을 넘어 본국이 아닌 국가로 이동한 후에 난민 신청을 해야 하며, 제네바협약의 규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 협약의 기준에 따라 지원과 보호를 받는다. 난민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기후 변화 때문에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이를 정부나 조직에 의한 박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인종, 종교, 국적 등 난민의 정의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른 탄압의 원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기후 난민’이라고 하면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이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로 침입해 와 불합리한 요구를 하면서 도착국에 부담을 안기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향도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시각을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난민협약에 동의한 약 140개 협약국들은 난민 협약을 보다 포괄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재협상을 원하지 않고 있다. 난민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바꾸면 보호 대상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이들이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난민의 거대한 물결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고, 기후 난민이라는 표현이 기후 변화의 피해에 관심을 촉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수몰 위기인 키리바시의 국민 이오아네 테이티오타(Ioane Teitiota)는 2013년에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 기후 난민으로서 보호 신청을 했다. 뉴질랜드 법원은 기후 난민은 1957년 난민협약에 따른 난민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기후 변화의 위험이 임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기각했다. 2020년에 유엔 인권위원회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11] 테이티오타의 진정에 기후 변화가 생명권(right to life)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기후 변화의 위험이 높은 국가로부터 제3국으로 피난 온 이를 강제 송환하면 안 된다고 권고한 것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판결은 구속력 없는 권고이지만, 기후 위기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의 급진적 또는 점진적 변화로 인해 국경을 넘는 이들이 증가할 것이며, 빠르면 10~15년 안에 기후 이주에 세계 사회가 대비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는 이처럼 기후 위기에 경각심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기후 난민으로 그려지는 모습은 기후 위기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에는 부적합하다.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학계와 유엔 내에서도 기후 난민은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는 ‘기후 이주’, 또는 더 포괄적인 ‘환경 이주’다. 이 글에서는 기후 변화가 주요 원인임을 강조하는 ‘기후 이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용어는 없지만, 유엔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IOM)는 2007년에 ‘환경 이주’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환경 이주자(environmental migrant)’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환경의 점진적 또는 급속한 변화가 주요한 이유가 되어 생명과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주거지를 강제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떠나는 이들을 말한다.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이주, 국내 또는 국외로 이주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12]

적합성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이 정의는 의도적으로 포괄적으로 제시되었다. 우선 환경의 변화가 이주의 주요한 원인임을 강조한다. 기후 변화뿐 아니라 기후와 무관한 환경적 변화(화산 폭발, 지진 등), 인간의 활동과 개입으로 인한 환경적 변화(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삼림 벌채 등)를 모두 포괄한다. 또한 몇 시간, 며칠 사이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주해야 하는 이재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해수면 상승, 토양의 염분화와 같은 점진적 변화로 인해 이주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이 자발적으로 이주를 하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 한국의 경우 개발 과정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시골에서 도시로, 또는 해외로 이주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본래 경제적 요인은 이주의 가장 강력한 동기다.[13] 환경 변화가 이주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의미다. 기후 위기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극심해지는 환경 변화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에서 언제까지 더 버틸 수 있을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야 할지 말이다. 이 선택은 강제성과 자발성 사이에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건기의 네팔 우다이푸르강. 폭우와 삼림 파괴로 강 수위가 점점 낮아지고, 장마철 홍수가 잦아지고 있다. ©Amanda Nero/IOM
가나 북부에 위치한 주피리에 살고 있는 아도와씨는 올해는 비가 언제 올지 걱정이다. 4월이면 우기(4~9월)가 시작했어야 했는데, 올해도 작년처럼 5월까지 비가 오지 않을까 겁이 난다. 작년에 수확해 저장했던 수수와 옥수수는 거의 떨어졌는데, 우기가 늦게 시작한다면 올해도 늦게 농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고 수확량도 줄어들 것이다. 관개 시설이 없고 1년에 한 번 수확이 가능한 주피리에서는 1년 농사가 강수량에 전적으로 좌지우지된다.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우기가 지나가면 찾아오는 건기도 지난 20~30년 사이 더 덥고 길어지고 있다. 농사가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온 가족이 먹을 만큼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시장에서 농사지은 옥수수를 팔지만, 먹을 식량을 줄여서 팔고 있는 터라 아이들의 건강과 영양 상태도 좋지 않다.

농사 외에는 마땅히 다른 생계 수단이 없기에 아도와씨의 남편은 건기 동안에는 인근 도시로 소일거리를 찾으러 간다. 이 마을 대부분 가족의 가장들은 건기에 마을을 떠나고 없다. 그러나 나이가 많으면 이마저도 할 수 없다. 아도와씨의 남편도 도시에서의 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 평생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 자라온 그는 도시에서 직업을 얻을 만한 기술이 없다. 결국 소일거리를 전전하는데, 일이 생기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다. 일을 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돈을 최대한 모아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결국 도심 변두리 슬럼가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 제대로 된 배수 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혹시나 병이 생기진 않을지, 아프면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 가족들의 생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참고 일을 할 뿐이다.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니 온 가족이 도시로 이주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도시에서의 생활도 결코 낫지 않기에 아직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14]

현재 보고된 기후 이주는 위의 시나리오를 따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농업이 주요 산업인 아프리카 국가들, 중남미의 과테말라와 페루, 동남아시아의 태국이나 베트남도 강수량 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15] 기후 변화로 인해 수확량이 줄어들고 식량 위기가 발생하면서, 가족 구성원의 일부(대체로 남성 가장)이 농사를 할 수 없는 시기에 인근 도시 또는 수도로 일시적으로 이주하고 그 수입으로 식량 위기를 해결하는 경우다. 계절에 따른 이주(Seasonal migration)는 일시적으로는 한 가정의 수입을 충당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생계 다양화를 통해 어느 정도의 회복 탄력성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기후 위기에 대한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계와 수입의 리스크를 축소했지만 취약성(vulnerability)은 증가한 셈이다.

이런 사례가 시사하는 기후 이주의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처음에는 가족 구성원 일부가 일시적으로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 갈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온 가족 또는 마을이 이주하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도시로 이주한다고 해도 도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기후 위기로 타격을 입은 본거지의 환경 개선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결국 국가의 적극적인 대응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태평양의 여러 국가들은 정부 주도하에 계획 이주(planned relocation)를 대비책으로 준비하고 있다. 계획 이주는 한 국가 내에서, 환경 변화에 취약한 지역에서 보다 안전한 곳으로의 이주를 마을 단위로 준비하는 것이다. 태평양 국가들의 경우 작은 섬에서 조금 더 규모가 크고, 기후 변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 계획 이주는 아주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성공적인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카테라트섬 주민들의 계획 이주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파푸아뉴기니와 대부분의 태평양 국가들의 경우 부족별, 지역별로 관례적인 토지 거주권이 있다. 현대 법 체제하의 토지 거주권, 소유권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정부 측에서는 한 마을을 이주시킬 수 있는 토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토지 확보 외에도 기본적인 인프라 구축, 병원, 학교 설립, 생계 수단 및 직업 훈련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았고 비용 마련도 어려웠다. 정부 도움을 몇 년간 기다리던 카테라트섬 주민들은 기후가 더 악화되고, 식량 문제가 지속되면서 더 이상 앉아서 상황을 지켜볼 수 없게 됐다. 결국 2009년에 투를라 페이사(Tulele Peisa)라는 NGO의 도움으로 카테라트섬의 다섯 가족의 가장들과 아들들이 우선적으로 부건빌의 틴푸츠(Tinputz) 마을로 이주했다.[16] 천주교 교구로부터 땅을 기부받아 터전을 마련했고, 다섯 가족이 먼저 이주해 직접 밭을 일구고 집을 지으면서 주인 의식을 갖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여러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어부였던 카테라트 사람들은 내륙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더 이상 어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었다. 농사짓는 법, 틴푸츠 지역에 맞는 코코아나무를 심고, 열매를 말리는 법 등을 새로 배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주민들은 향수병을 겪거나,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카테라트섬으로 돌아갔다. 틴푸츠 마을에 원래 거주하던 주민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투를라 페이사 측은 이주민들이 틴푸츠 마을 사람들보다 큰 집을 짓거나, 더 나은 삶을 보장받거나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문화적인 내적 갈등도 있었다. 카테라트섬은 모계 사회이고, 어머니가 딸에게 땅을 물려주는 것이 대를 잇고 가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생활 방식이었다. 소유한 땅을 포기하고 틴푸츠로 이주하는 것은 이 전통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이주하는 것과 조상의 땅에서 머무르는 것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17]
약 2000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카테라트섬. ©Muse Mohammed/IOM
계획 이주에는 복잡한 요인들이 여럿 얽혀 있고, 이주자들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기후 이주민들은 식량 안보, 생계유지를 최우선으로 더 나은 삶, 환경, 교육, 보건을 기대했다. 동시에 부족의 문화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잃는 것, 새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고립될 것을 두려워했다. 투를라 페이사는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한 접근법이 중요하며, 현재까지 약 100명 정도가 이주했지만 앞으로 남은 3000여명의 카테라트 사람들의 이주를 위해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과 이행을 요청하고 있다. 계획 이주에 대한 보다 철저한 준비 및 기획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피지, 바누아투 등의 국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국내 실향민에 대한 계획 이주 정책을 마련했다. 솔로몬 제도도 현재 계획 이주에 관한 정책을 준비 중이다.

기후 이주는 주민들이 국경을 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국가 내 지역 이동이 우선적으로 일어난다. 앞으로도 한 국가 내에서 이동하는 국내 이주민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18년에 발간한 그라운즈웰(Groundswell) 보고서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세 지역의 국내 이주민 발생에 대해 대략적인 예측을 제시했다. 기후 변화 대응이 현 상태에 머무를 경우, 2050년 각 지역에는 860만, 400만, 170만 명의 국내 기후 이주민이 발생한다.[18] 보고서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한 식량 및 물 부족, 해수면 상승을 이주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결국 국가의 최빈곤층이 생활의 터전에서 떠나는 시나리오다. 이는 앞서 살펴본 국내 계획 이주와는 달리 기후 위기로 인해 강제적으로 그러나 정부나 단체의 개입과 도움 없이 일종의 ‘자발적’ 이주가 발생할 거라는 예측이다.
네팔 우다야푸르 지역에서 집을 짓고 있는 주민. 이 지역 마을은 매년 홍수로 물에 잠기고, 그때마다 집을 고치거나 재건해야 한다. ©Amanda Nero/IOM
자연재해로 인한 이재민, 실향민도 기후 이주민이다. 2019년 발생한 전 세계 약 3300만 명의 국내 실향민 중 2400만 명은 자연재해로 인한 실향민이었다. 분쟁, 전쟁으로 발생한 실향민의 약 3배에 달한다.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살펴보면 자연재해로 인한 실향민의 수가 분쟁으로 인한 실향민보다 많으며,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내 실향민들은 인도적 지원을 받고 상황이 나아지면 일상으로 복귀하려 하지만, 반복되는 재해로 영구적 이주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기후 변화로 자연재해의 피해 규모와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국내 기후 이주민이 더 증가할 것은 분명하다.

앞서 가나의 시나리오와 파푸아뉴기니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기후 이주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기후 이주민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 및 생계유지는 물론, 기후 이주민을 수용해야 하는 도시, 마을의 상황도 중요하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많은 인구가 경제적 기회를 위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봐도,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이주민들이 도시의 슬럼가에 정착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해 간 지역에서 또 다른 기후 변화의 영향이나 환경적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도시의 환경 오염에 노출되거나, 기본적인 배수 시설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 등이다. 이주 자체가 환경에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주민을 수용할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삼림을 벌채하고 파괴하는 경우다. 삼림이 줄어들어 이산화탄소 흡수가 불가능해지고, 토지 기반은 약화돼 강한 태풍과 많은 강수량에 지반이 견디지 못해 2차 피해를 입는 이주민들도 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이미 한 번 이주한 시민들은 또 다른 이주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단체의 계획하에 시행한 이주도 환경적 리스크에 대한 평가가 적합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험을 수평적으로 이동시킨(shifting vulnerabilities) 것에 그칠 수 있다. 반복되는 자연재해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환경적 위험에 처하는 경우다. 베트남의 메콩강 삼각주의 경우 홍수가 잦은 지역으로 국가 주도하의 이주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주 후의 상황을 보면 홍수에 견딜 수 있는 주거 환경은 갖추어졌지만, 근본적인 환경 피해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홍수의 영향권이 확장돼 이주한 지역마저 홍수 영향권에 드는 경우도 발생했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본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주민도 있었다.[19]

 

입국 비자가 아니라 기후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


기후 이주의 대부분은 국내적 이동이지만, 국경 관리가 약한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영토가 사라지고 있는 태평양 및 도서 국가에서는 국외로 떠나는 기후 이주민도 분명 발생할 것이다. 물론 기후 위기를 맞이한 모든 이들이 자발적으로 해외 이주를 선택할 수는 없다. 이주에는 경제적 비용이 들고(간단한 예로, 해외 이주를 하려면 비행기 표를 구입해야 한다), 정착을 도울 사회적 네트워크가 구성돼 있어야 하며(이주를 도울 친인척이 대표적이다), 도착할 국가의 상황이나 직업을 구할 방법 같은 정보도 필요하다. 성공적으로 이주하려면 이런 조건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실질적으로 이주 위험에 처한 국민들도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떠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뉴질랜드 정부는 기후 이주 및 태평양 국가들의 기후 위기에 관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7년 뉴질랜드의 기후 변화 장관은 기후 변화로 실향민이 된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국민들을 위해 임시적으로 특별 ‘인도주의적 비자’를 발급했다. 매년 100명의 기후 이주민 및 실향민에게 뉴질랜드 이주를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6개월 만에 계획을 철회했다. 인도주의적 비자는 난민과 비슷한 지위를 허용하고 있는데, 정작 이주민이 발생하는 태평양 국가들은 기후 변화 대응에 실패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이러한 지위를 받길 원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국가의 주민들, 즉 미래의 기후 이주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난민 지위가 아니다. 국제 이주 노동자의 신분으로 해외에서 돈을 벌어 돌아와, 국내의 기후 적응에 직접 기여해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공동체를 유지하며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미 태평양 도서 국가들을 대상으로 특별 이주 노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현재보다 확대해 안전하고 합법적인 이주 노동의 기회를 넓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를 반영해 2020년에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원조를 늘렸다. 이 중 4분의 3가량이 태평양 국가들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이 액션 플랜의 4가지 목표 중 하나가 태평양 국가들의 기후 이주를 최대한 줄이고, 늦추며, 필요할 경우 대응 방법 마련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후 이주민들은 난민 지위보다는 합법적 이주 노동을 보다 현실적이고 개인의 권리를 지탱하는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국가들은 기후 이주로 인한 해외 유입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민 정책, 국제 이주 노동 정책들을 다시 살펴보고, 세계 시민들을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태평양 국가들은 기후 위기를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비슷한 환경과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국가 간 이주에 태평양 지역 차원에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지도 확인했다. 각 국가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지역 간 이주를 보다 원활하고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문서 합의를 2016년 이뤘고,[20] 이를 토대로 ‘기후, 자연재해 위기로 인한 인간 이주 협의체’를 구성했다. 현재 태평양 도서 국가 포럼 사무국과 협력하여 국제 이주 기구 및 여러 유엔 기구가 공동으로 이행 중인 프로젝트를 통해 태평양 지역 내의 협의 방안을 그리고 있다. [21]

여기에서 알 수 있듯, 태평양 국가들이 선진국에 바라는 바는 이주를 허용해 주는 것이 아니다.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파리 협정에 따라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2030년 한반도


그린피스는 최근 미국의 기후 변화 연구 기관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의 기후 위기를 방치했을 때 대한민국에 일어날 변화를 예측했다.[22] 일명 2030년 한반도 대홍수 시뮬레이션인데, 2030년 해수면 상승과 태풍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국토의 5퍼센트가 물에 잠기고 332만 명이 침수 피해를 입는 것으로 계산됐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3D 영상에는 태풍으로 인천국제공항이 침수되어 비행기마저 물에 잠기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포공항 또한 피해 예상 지역이며 그 여파로 마곡 지구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 해운대 역시 물에 잠기는 것으로 그려진다.
2030년의 한반도 대홍수 시나리오. ©그린피스
이 시나리오에서 대홍수로 피해를 입는 인구는 경기도 130만 명, 인천 75만 명, 서울 34만 명, 전북 31만 명 순이다. 전라도 및 경기도의 농사 면적과 거주 면적이 좁아지면서 해당 지역 거주자들은 인근 도시로 이주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앞서 해외 사례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과밀화를 불러온다. 지속적인 도시 과밀화는 일자리, 주택 문제 등 사회 경제적 영향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식량 부족까지 불러올 수 있다.

오랜 시간 기후 위기를 연구해 온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한국에도 기후 이주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기후 이주는 식량 위기로 인해 발생한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 기후 위기로 인한 강수량 변화 등으로 전 지구적으로 식량 생산량이 줄어든다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수입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식량이 부족하면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결국 사람들은 살던 땅을 떠나 살 만한 곳으로 몰린다. 조 원장은 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선진국들에 비해 더디고 무딘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대응 시스템을 지적한다.[23]

우리는 기후 이주의 당사국이 될 수 있는 입장에서 기후 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후 이주민을 수용할 대비책 또한 마련해 가야 한다. 아시아태평양은 기후 변화 피해를 가장 많이 입고 있는 지역이다. 2018년 발생한 폭풍우와 홍수 등의 재난으로 남아시아에서만 330만 명이 이주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태풍 등으로 인한 재난으로 필리핀, 중국에서만 각각 380만 명이 이주했다.[24] 한국으로 유입되는 이주민 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자연 재난이 자주 일어나 기후 이주민이 늘어난다면 태평양 인근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모국을 벗어나 인근의 다른 나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기존 이주 노동자들의 유입 경로로 더 많은 이들이 넘어오거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불법적인 경로를 이용할 가능성도 높다.

머지않은 미래에 수십만 명의 기후 이주민이 유입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잘 되어 있을까?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50만 명에 육박하며, 그중에도 이주 노동자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 근로자와 동등한 근로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고용 허가제(EPS)라는 제도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주 노동자가 취약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2020년 말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30대 캄보디아 여성의 사례는 합법적인 이주 노동자임에도 기본적인 주거 환경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주 노동자 비율이 높은 어선원의 경우 여전히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마저 매우 부족하다.

더 중대한 문제는 내국인의 이주자에 대한 정서적 수용도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에서 2018년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민족·다문화 사회를 불편하고 낯선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세대 연령이 높을수록 강하게 나타난다.[25]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이주민(16.4퍼센트)은 장애인(29.7퍼센트)에 이어 인권 침해 및 차별을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집단으로 꼽혔다.[26] 이러한 현상은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주민을 향한 범죄 형태로 진화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에서 이주민 비율은 약 4~5퍼센트 정도로, 국내 유입 이주민 수는 꾸준히 늘어 왔다. 기후 변화라는 환경적 요인까지 더해지면 국내 체류 이주자의 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인식과 제도 측면의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무력감을 넘어


기후 위기를 지구 평균 기온 상승과 같은 거시적인 변화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 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수많은 협상 문서를 들여다보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 수치 등은 보이지만 기후 위기를 맞이한 인간은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눈을 돌려 기후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의 모습과 상황을 바라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후 위기를 겪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에티오피아 유목 민족의 한 소녀 가장은 사막화로 인해 더 이상 가축의 먹이를 찾을 수 없어 도시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영구 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메탄이 대량 방출되고 있고, 지반 약화와 침식으로 땅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알래스카 토착민 소녀는 가족과 함께 계획 이주를 준비해야 한다. 콜롬비아의 커피 농가는 기후가 변화하는 상황에 발맞춰 농작물을 바꾸고, 농업 기술을 발달시켜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미 다년간 커피 재배가 감소한 터라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 결국 커피 농가의 아버지와 아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게 된다. 한편으론 기후 위기를 겪는 가장 취약한 계층은 이주할 여력도, 선택지도 없다. 누구보다 이주가 절실하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 놓인 갇힌 인구(trapped population) 또한 기후 위기 앞에서 떠올려야 할 사람들이다.

기후 위기와 이주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후 위기에 무관심하다. 기후 이주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이주를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후 위기는 국가나 기업 차원의 활동뿐 아니라 우리 일상 속 행동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진짜 위기는 눈앞에 있는 기후 위기를 나의 일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대처하지 않는 것이다.
 
[2]
Volker Boege and Ursula Rakova, 〈Climate Change-Induced Relocation: Problems and Achievements - the Carterets Case〉, 《Policy Brief》 33, Toda Peace Institute, 2019. 2.
[3]
[4]
Internal Displacement Monitoring Centre, 〈Global Report on Internal Displacement 2019〉, 2020.
[5]
Institute for Economics & Peace, 〈Ecological Threat Register 2020〉, 2020.
[6]
1990년의 제1차 평가 보고서는 유엔 기후 변화 협약 채택(1992)의 과학적 근거가 되었다. IPCC 평가 보고서는 전 세계의 과학자의 참여로 발간되며, 기후 변화의 과학적 근거와 정부 간 협상의 토대가 된다.
[8]
Sean Gallagher, 〈‘One day we’ll disappear’: Tuvalu’s sinking islands〉, 《The Guardian》, 2019. 5. 16.
[9]
Owen Mulhern, 〈Sea Level Rise Projection Map – Maldives〉, Earth.Org., 2020. 7. 31.
[10]
난민의 정의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다.(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조(A) 및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 1A조(2)). 1969 년 아프리카 통일기구 난민 협약은 난민을 “외부의 공격, 점령, 외국의 지배 혹은 출신국 및 국적국의 일부 혹은 전부에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사건에 의하여” 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으로 정의했다. 이와 유사하게 1984년 카르타헤나 선언은 “생명, 안보 혹은 자유가 일반화된 폭력, 외국의 공격, 내분, 광범위한 인권 침해 혹은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기타의 환경으로 인하여” 국가를 탈출한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13]
이주는 다양한 거시적(경제적, 정치적,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과 미시적(개인의 성별, 사회적 지위 등) 요인의 작용으로 발생한다.
[14]
가나의 강수량 변화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다음 연구를 참고했다.
Christina Rademacher-Schulz and Edward Salifu Mahama, 〈“Where the Rain Falls” project. Case Study: Ghana. Results from Nadowli District, Upper West Region〉, United Nations University Institute for Environment and Human Security, 2013.
[15]
United Nations University Migration Network, 〈Where the Rain Falls Project〉.
[17]
Volker Boege and Ursula Rakova, 〈Climate Change-Induced Relocation: Problems and Achievements - the Carterets Case〉, 《Policy Brief》 33, Toda Peace Institute, 2019. 2.
[18]
World Bank, 《Groundswell: Preparing for internal climate migration》,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2018.
[19]
Jane Chun, 〈Livelihoods Under Stress: Critical Assets and Mobility Outcomes in the Mekong Delta, Viet Nam〉, 《Migration, Environment and Climate Change: Policy Brief Series》 1(1), 2014.
[22]
[26]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국가 인권 실태 조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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