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복제품들

4월 2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베끼거나 사버리거나. 혁신의 상징이던 빅 테크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막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클‘론’하우스 열풍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다양한 오디오 기능을 페이스북에 추가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습니다. 사용자가 다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라이브 오디오 룸(Live Audio Room)’, 피드에서 들을 수 있는 짧은 오디오 클립 ‘사운드바이츠(Soundbites)’, 팟캐스트 검색과 재생 기능이 올여름 출시됩니다.

라이브 오디오 룸은 분명 신제품인데 조금도 새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지난해 3월 서비스를 시작해 단숨에 오디오 SNS 시장을 장악한 앱 ‘클럽하우스’의 모방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적을 의식했는지 페이스북의 앱 총괄 책임자는 “수년간 오디오 기술을 개발해 왔다”며 “오디오는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부 증언은 다릅니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페이스북 직원을 인용해 페이스북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클럽하우스와 유사한 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디 페이스북뿐일까요. 트위터, 링크드인, 슬랙, 디스코드도 클럽하우스를 연상하게 하는 오디오 기능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베끼거나 사버리거나


스타트업은 문제 해결을 목표로 구성된 소수 정예 조직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모든 문제 해결에 빅 테크 기업이 나서고 있습니다. 온라인 검색, 소셜 미디어, 디지털 광고, 이커머스, 클라우드 컴퓨팅, SaaS 등 디지털 경제 전역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이 진출해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어쩌다 틈새시장을 발견해 새 서비스를 내놔도 복제라는 난관을 만납니다. 2011년 출시된 메신저 서비스 스냅챗은 공유한 사진이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기능으로 10대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6년 페이스북은 스냅챗 인수에 실패하자 거의 똑같은 기능을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에 도입합니다.

다른 빅 테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애플은 타사 앱의 기능을 OS에 탑재해 그 앱을 쓸모없게 만들고[1], MS는 슬랙을 모방해 팀즈(Teams)를 출시했고, 아마존은 스타트업이 입점을 거부하면 똑같은 PB 상품을 만들어 팝니다. 구글은 무선 스피커 스타트업의 기술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빅 테크의 시장 지배 전략에 모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5대 빅 테크는 모방이 여의치 않으면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잠재적 경쟁자를 조기에 인수합니다. 이들은 작년에만 122억 달러(13조 5664억 원)를 들여 35개 기업을 사들였습니다.
제록스가 1981년에 개발한 GUI(그래픽 기반의 운영 체제). 1979년 제록스 연구소를 방문한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로 구동되는 GUI 프로토타입을 목격하고 영감을 얻어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Wikipedia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보다 빅 테크가 좋아할 아이디어


5대 빅 테크는 소비자가 자사 장치와 플랫폼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애플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애플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애플 뉴스를 구독하게 만듭니다. 오디오는 애플 에어팟으로 듣게 합니다.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자체 버전을 빠르게 만들어 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잠재적 경쟁자를 감지할 수 있는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모바일 앱 분석 기업인 오나보(Onavo)를 인수한 뒤, 인스타그램의 고속 성장을 파악하고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구글은 크롬, 지메일, 유튜브, 안드로이드로 소비자를 들여다보고, 아마존은 이커머스 플랫폼과 AWS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서비스 모방과 초기 인수가 성행하면서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멈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페이스북에 초기 투자한 사모 펀드 회사 엘리베이션 파트너스의 로저 맥네임은 플랫폼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가 대형 플랫폼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빅 테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맛있는 작은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빅 테크가 등장하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상장 기업 수는 8000개가 넘었습니다. 지금은 그 절반에 불과합니다. 바꿔 말하면 기업 공개(IPO) 단계까지 성장한 신생 기업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입니다.
 

언카피어블(Uncopyable)


실리콘밸리의 복제품을 법으로 막기는 어렵습니다. 기술의 고유성이 없는 비즈니스 모델 같은 단순 아이디어는 특허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아마존의 원 클릭 쇼핑 기술이나 새 하드웨어는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사업 아이디어는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가 복제하기 쉽습니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최초 출시 제품보다 이를 개선한 모방품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 모방자가 애플, 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이라면 스타트업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결국 모방할 수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미국의 핀테크 기업 스퀘어(Square)는 아마존을 이겨 화제가 됐습니다. 2010년 스퀘어는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신용카드 리더기를 출시했습니다. 창업 4년 만에 매출 5억 달러를 넘어설 만큼 고속 성장했는데요, 기업의 존폐를 가를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마존이 똑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1년 뒤 아마존은 시장에서 철수합니다. 스퀘어의 창업자 짐 매켈비(Jim McKelvey)는 아마존을 이긴 비결이 ‘혁신 쌓기(Innovation Stack)’였다고 말합니다. ‘파괴적 혁신’ 같은 한 가지의 커다란 혁신이 아니라, 작은 혁신을 계속 누적하면 모방하기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매켈비의 회상을 직접 들어 보시죠. “아마존은 (스퀘어의 약점으로 보이는) 고객 서비스를 공략했다. 당시 스퀘어에는 고객이 전화할 수 있는 문의 번호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애초에 실시간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전체 생태계를 설계했다. 고객 경험이 매우 간단해서 이메일로만 지원해도 충분하도록 소프트웨어 등 12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처럼 모든 결정이 연관되어 탄생한 혁신을 외형만 보고 모방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군주와 독점


1890년 미국은 셔먼 반독점법을 제정하고 부당한 독점을 금지합니다. 입법을 주도한 존 셔먼 상원의원은 “정치 체제로서 군주를 원하지 않듯, 경제 체제로서 독점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가 이끌던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이 법에 의해 34개 회사로 분할됩니다.

과거 빅 테크 기업에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혜택을 부여한 까닭은 혁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혁신을 멈추고 매출에만 집중한다면, 그런 혜택이 주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보내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이코노미스트》의 3월 첫째 주 커버스토리 〈테크 비즈니스, 게임의 법칙〉과 함께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각국의 독점 규제가 강화되면서 5대 테크 대기업의 독점 시대가 끝나고 있다고 진단하는데요, 디지털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애플이 타사 앱의 기능을 아이폰과 맥 OS에 탑재해, 더 이상 그 앱을 다운로드받을 필요가 없게 됐을 때 ‘셜록당했다(Sherlocked)’라고 표현한다. ‘셜록(Sherlock)’은 맥 OS 8, 9에 내장됐던 파일 검색 도구다. 카레리아(Karelia)라는 회사는 셜록과 함께 쓰면 좋은 ‘왓슨(Watson)’이라는 인터넷 검색 도구를 개발했다. 왓슨은 인기가 높았지만, 애플이 OS10에서 왓슨과 똑같은 기능을 셜록3에 담아서 내놨다. 사용자들은 더 이상 왓슨을 다운로드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 이후부터 애플 OS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셜록당했다’는 표현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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