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구성

4월 30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앞으로 부부가 협의해 자녀에게 엄마 성(姓)을 물려줄 수 있게 된다. 가족의 개념도 확대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혼인 관계인 남녀와 그들의 아들딸로 이뤄진 4인 가족이 무심코 떠오르실 텐데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는 이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1인 가구, 비혼 동거 가구, 미혼모와 미혼부 가정, 다문화 가정, 위탁 가정 등이 있습니다. 1인 가구만 해도 2015년부터 매년 20~30만 가구씩 늘고 있습니다.

정부도 달라진 현실을 인식하고 제도 마련에 나섰습니다. 여성가족부는 27일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앞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도 지난 3월 ‘사회적 공존·1인 가구 태스크포스(사공일가TF)’를 발족해 법과 제도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두 기관 모두 혼인, 혈연 중심이 아닌 사회적 인식 중심으로 가족의 개념을 확대할 방침입니다.
신혼부부인 이설아·장동현 씨는 자녀가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폐지하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이설아·장동현 부부

어머니 성(姓), 자유롭게 따를 수 있다


이제까지 자녀의 성은 무조건 아버지의 성을 따랐습니다. ‘부성(父姓) 우선주의’ 때문이었는데요, 정부는 2025년까지 이 원칙을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부모가 협의해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됩니다. 여성가족부는 “부성 우선 원칙을 부모 협의 원칙으로 바꾸는 것은 법무부 민법개선위원회가 2019년 개정 필요성을 권고한 사항”이라며, “관계 부처 간 오랜 논의가 있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예외적으로 가능해졌는데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혼인 신고서에 있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고, 추가 협의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별도 절차도 밟아야 하는 등 복잡하고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성을 따를 때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한 신혼부부는 이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헌법 36조 1항이 보장하는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본 것인데요, 부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성을 혼인 신고 때 결정하는 문제도 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홀로 아들을 출산한 뒤 양육하고 있는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 ©사유리 인스타그램

혼인·혈연 아니어도 가족


비혼 동거 커플과 미혼모·미혼부 가정, 다문화 가정, 위탁 가정 등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상으로는 인정받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행법은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와 직계 혈족, 형제자매 등으로만 규정합니다. 결혼으로 가족이 되거나 피를 나눈 혈연관계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인데요, 정부는 이 조항을 삭제해 가족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주거와 생계를 같이하면 가족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다양한 관계들이 가족으로 인정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제도의 변화로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동을 ‘혼인 외의 출생자(혼외자)’나 ‘혼인 중의 출생자(혼중자)’로 구분 짓지 않고 ‘자녀’로 통일하는 방침이 검토되고 있고, 아이 어머니의 협조 없이도 미혼부가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뀔 예정입니다. 방송인 사유리 씨처럼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찬반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데요, 새로운 가족 형태로 인정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의견 대립이 팽팽해 여성가족부는 대국민 설문 조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난자·정자 공여, 대리 출산 등 생명 윤리 문제와도 직결돼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통계청

1인 가구를 위한 제도


1인 가구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구 형태가 됐습니다. 2000년 15.5퍼센트였던 비율이 2019년 30.2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는데요, 각각 27.8퍼센트와 20.7퍼센트를 차지한 2인 가구나 3인 가구 수를 넘어섰습니다. 1인 가구의 비중이 커진 현실을 반영해 법무부는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사공일가’ TF를 구성해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는데요, 친족과 상속, 주거, 보호, 유대를 주요 과제로 정했습니다. 여성가족부와 마찬가지로 혈연 중심의 가족에서 벗어나 민법상 가족 개념을 재정립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과제는 유대입니다. 1인 가구와 함께 반려동물 문화가 급성장하고 있어 동물권을 강화한다는 방침입니다. 반려동물은 현행법상 ‘물건’으로 취급됩니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재산을 압류당하면 개나 고양이도 강제 집행 대상이 되는데요, 법무부는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 문화가 자리 잡아 동물보호법 개선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1500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만큼 법적 지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이 밖에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구하라법’ 도입,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녀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는 ‘불효자 방지법’, 1인 가구의 셰어하우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임차권을 양도하거나 전대하는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할 계획입니다.
 

2025 세상 모든 가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법과 제도에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방향은 이제 설정이 됐습니다. 실제 적용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되는데요, 우선 민법상 가족 개념을 바꾸면 관련된 법을 모두 고쳐야 합니다. 기존 법제와 충돌이 생길 수 있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따져 봐야 하고요. 실제 시행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 성향인 종교계에서는 즉각 반대 입장을 내놨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신앙 및 윤리관과 어긋난다”며 “동성애로 이해되는 비혼 동거와 사실혼을 법적 가족 개념에 포함하는 것도 평생을 건 부부의 일치와 사랑, 그리고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정의 고유한 개념과 소명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개신교 역시 이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동성 동거자는 사실혼 관계로 해석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내용을 오는 2025년부터 실제 적용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입니다. 4년 뒤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법과 제도로 보장돼 안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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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가족 구조조정의 시대》와 함께 읽어 보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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