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노조
 

5월 4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임금 인상보다 공정성, 파업과 투쟁 대신 온라인 결집. MZ세대가 노조를 바꾸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제조업, 생산직 중심이던 노동조합에 MZ세대가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0, 30대가 주축인 사무직 노조가 결성되고, 노조 설립이 더뎠던 IT업계에도 노조가 등장했습니다. 지난 26일에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8년 차 이하 직원들 중심의 사무직 노조가, 3~4월엔 LG전자, 금호타이어에서 사무직 노조가 출범했습니다. 카카오뱅크, 한글과컴퓨터, 웹젠 등 IT·게임 업계에서도 젊은 직원들의 노조 설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하면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 등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파업이 연상되곤 합니다. 그런데 MZ세대가 만든 노조는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도, 회사에 요구하는 것도 기성 노조와 다릅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성과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입니다. 성과급 등 보상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생산직과의 형평성을 주장합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파업이나 ‘투쟁’을 하는 대신, SNS나 채팅방에 결집합니다. 사내 게시판에 이모티콘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경영진에 직접 답변을 요구합니다.
 

사무직이 받는 ‘역차별’


사무직, IT업계는 노조 설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집단입니다. 노조는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단체인데요,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 조건에 있던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시작했습니다. 노조와 조합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계기였던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 당시에도 중공업, 자동차 등 제조업 노동자가 주축이었죠. 계속된 요구와 협상으로 오늘날까지 노동 조건은 꾸준히 개선돼 왔지만, 노조는 여전히 제조업 생산직 중심입니다. 젊은 세대는 여기에 불만을 표시합니다. 생산직 중심 노조가 임금 협상을 주도하면서 사무직 근로자의 이해관계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사무직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발입니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지난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하면서 생산직에만 격려금 1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사무직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임·단협(임금과 단체 협상)에서 배제돼 왔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현대차그룹 노사도 지난해 기본급은 동결하고, 성과급은 지난 10년 내 최저치인 기본급 150퍼센트에 코로나 극복 격려금 12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는데요, 사무직 근로자들은 생산직 중심의 노조가 성과급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정년퇴직한 생산직을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시니어 촉탁직’ 제도 등, 생산직의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과 성과급은 희생했다는 겁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단체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30대가 주축입니다.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의 이건우 위원장은 입사 2년 차, 27세입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결성한 유준환 위원장은 30세,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의 김한엽 위원장은 34세입니다.

제조업, 생산직, 50대라는 전형적인 노조 핵심 구성원의 모습엔 이미 몇 해 전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IT업계에 노조가 설립되면서입니다. IT업계는 다른 업계에 비해 오래되지 않은 데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고, 이직이 활발해 노조 설립이 더뎠는데요, 2018년에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에 노조가 잇따라 설립됐습니다. 최근에도 카카오뱅크, 한글과컴퓨터, 웹젠 등에서 노조가 출범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생긴 IT업계 노조들이 포괄임금제 폐지, 장시간 노동 금지 등 노동 환경 개선을 주장했다면, 최근 IT업계 노조는 공정한 성과 배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MZ세대가 원하는 것

©Laura Davidson/Unsplash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사무직 노조, 최근 결성된 IT업계 노조는 기성 노조와 완전히 다른 요구를 합니다. 이들은 사측과 지난해 임금과 노동 조건을 기준으로 내년의 처우를 두고 협상하지 않습니다. 대신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라고 말합니다.

최근의 사무직 노조 설립 움직임은 올해 초 성과급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에서 시작됐습니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성과급 책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삼성전자, LG 화학 등 다른 대기업으로도 논란이 번졌죠. 이때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건 SK하이닉스의 입사 4년 차 직원이었습니다. 이석희 사장을 포함한 전 구성원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고, 이를 계기로 직원들의 불만이 확산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봉을 반납해 직원들과 나누겠다고 선언하고 이석희 사장도 사과했지만, 그걸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성과급 재원을 영업 이익의 10퍼센트로 한다’는 합의를 이루고서야 진정됐죠. 그동안은 영업 기밀을 이유로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는데, 외부에 공개되는 수치인 영업 이익을 기준으로 지급하기로 한 겁니다.

MZ세대의 요구는 단순히 성과급이나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성과와 보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수립하라는 겁니다. 영업 이익이 올랐는데도 성과급은 그대로거나, 특별한 기준 없이 특정 직무 혹은 사업부만 높은 보상을 받는 데에 특히 분노합니다. 기존 노조를 통해서는 이런 의견을 회사에 전달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결국 기업의 보상 체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조직은 연공서열제를 바탕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근속 연수가 높아질수록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입니다. 젊을 때는 적은 연봉을 받는 대신 부양할 가족이 생기는 40, 50대에는 높은 보상을 받습니다. ‘평생 직장’ 개념과 노동자는 곧 생계 부양자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구조인데요, MZ세대는 여기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열심히 일해 낸 성과에 정당한 보상을 바라고, 그게 공정하다고 여깁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MZ세대의 인식으로 직무성과급제 도입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일한 만큼 받고,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보상을 받는 구조로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의 고승연 저자는 한국 MZ세대는 공정성 중에서도 ‘절차적 공정’에 민감하다고 지적합니다. 투명한 평가 기준, 평등한 기회가 핵심인 ‘공평’입니다. 성과급 논란이나 노조 설립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명확한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받아야 결과를 받아들이고, 동기 부여도 받습니다. 고승연 저자는 이런 특성을 ‘맥락이 제거된 공정’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절차의 공평에만 집중해 사회적인 불평등 구조는 인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는 마냥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른 세대가 이해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특성입니다.

이런 특성은 MZ세대 노조의 활동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기존 노조는 보통 회사 단위로 설립된 노조라도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상급 단체에 가입해 노동계와 연대합니다. 노동 조합 자체에 사회 운동 성격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LG전자, 금호타이어, 현대차 등의 사무직 노조는 아직 상급 단체 가입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무직 노조를 본격적으로 설립하기 전에도 젊은 세대는 노조를 사회 운동 수단이라기보다는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민주노총의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조합원들은 ‘노조는 사회적 가치보다 조합원의 권익을 지향해야 한다’는 데에 72.7퍼센트가 동의했습니다. 35~50세, 50세 이상 조합원들이 각각 60.8퍼센트, 51.4퍼센트 동의한 것에 비해 높은 수치입니다.
 

투쟁과 파업 대신 온라인 게시판


새로운 세대는 노조를 사회 운동이라기보다는 공정성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인식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특성도 ‘새로운 노조’ 설립을 촉진했습니다. 활동 방식도 기성 노조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무작정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태도나 파업, ‘투쟁’ 같은 표현에 거부감을 표하고,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의견을 표출합니다. 노조 간부가 협상을 주도해온 것과 달리,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나 네이버 밴드 등 SNS에서 다양한 의견을 빠르게 모아 결정합니다. 삼성전자 사내 익명 게시판에 등장한 드러누운 사람 모양의 이모티콘(●▅▇█▇▆▅▄▇)은 이런 행동 방식을 잘 대변합니다. 임금 조정 합의가 결렬됐다는 소식이 나오자 오프라인에서 조직적인 대응을 하는 대신, 익명 게시판에서 ‘온라인 시위’로 의견을 표출한 겁니다.

새롭게 등장한 노조가 기존 노조만큼의 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교섭대표노조’ 제도 때문인데요. 노조법상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 중 절반 이상이 소속된 노조 하나에만 사측과 교섭할 권한이 인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직에 비해 사무직 인원이 적기 때문에, 사무직 노조가 교섭권을 인정받으려면 사업주가 먼저 나서서 개별 교섭에 임하거나, 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해 승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2일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별도 교섭 신청이 기각되면서, 다른 사무직 노조의 교섭 단위 분리 필요성이 인정될 가능성도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사무직 노조가 실질적으로 사측과 협상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올해 초 시작된 성과급 논란에서부터 시작된 새로운 노조 설립의 움직임은 기업과 사회에 MZ세대의 요구를 명확히 보여 줬습니다. 공정한 제도는 물론, 임금 구조까지도 바꿀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기업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MZ세대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댓글 남겨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와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Z세대가 중시한다는 공정성이 어떤 의미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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