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래는 녹색이다

5월 6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독일 군소 정당이었던 녹색당의 위상이 달라졌다. 차기 총리도 배출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녹색당 공동 대표 ©Photo by Sean Gallup/Getty Images

녹색당 총리가 온다

오는 9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집권 16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총선에서 새 총리가 뽑힐 예정인데요, 누가 ‘포스트 메르켈’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주요 정당들은 각각 총리 후보를 확정했습니다. 여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를, 녹색당은 안나레나 배어복 대표를 차기 총리 후보로 선출했는데요, 현지 여론조사 결과 녹색당 후보를 총리로 뽑겠다는 응답이 28퍼센트로 가장 많이 나와 이변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기민·기사당 연합은 21퍼센트, 사회민주당(SPD)은 13퍼센트를 차지했는데요, 녹색당과 함께 좌파로 분류되는 사민당의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분석입니다. 좌파의 중심축이 사민당이 아닌 녹색당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녹색당은 창당 후 처음으로 자체 총리 후보를 지명했습니다. 안나레나 배어복은 1980년생으로 28살에 녹색당 브란덴부르크주 대표가 됐고, 33살에는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 37살에는 중앙당 대표에 오른 바 있습니다.

독일은 여소야대 구도에서 야권이 참여하는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의석수에 비례해 내각을 배분하는 방식인 연정을 채택하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녹색당에서 총리가 나오거나 나오지 않아도 현재로선 녹색당 없이는 집권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로버트 하벡 공동 대표가 2019년 치러진 작센 주 선거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by Matthias Rietschel/Getty Images

군소 정당에서 독일 제2정당으로

독일 녹색당은 전 세계 수많은 녹색당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공했으며 가장 규모가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올해로 창당 41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사민당 소속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녹색당은 독일을 변화시키고, 독일은 녹색당을 변화시켰다”라며 “독일 정치 지형에서 환경 이슈를 다른 정당들 안에도 정착시켰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 창당한 녹색당은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했습니다. 히피와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페미니스트, 예술가, 반전 활동가 등이 모여 만들었는데요, 이들을 하나로 묶은 공통 주제는 ‘환경’이었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운동인 독일 ‘68운동’ 주역들이 이끌었던 만큼 창당 초반에는 급진적이고 파격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독일 연방 16개 주 가운데 12개 주에서 다른 정당들과 연립 정부를 구성할 정도로 유연해졌는데요, 당내에서 원칙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노선 투쟁 끝에 ‘신 녹색당’ 노선을 채택한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2019년 5월 유럽연합 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20.5퍼센트의 득표율을 얻으며 드디어 군소 정당이 아닌 독일 제2정당으로 거듭났습니다.
2016년 열린 반핵 시위 ©독일 녹색당

기후와 외교, 다양성 정책으로 얻은 표심

녹색당은 어떻게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기후와 외교, 다양성 정책에서 다른 정당과 차별화를 꾀하며 꾸준히 지지를 얻어 왔습니다. 녹색당의 가장 핵심이 되는 정책 공약은 환경 보호입니다. 그러면서도 국가 경제 모델을 ‘사회 생태시스템(social-ecological system)’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녹색 기술’에 중점을 두면서 2030년까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에너지 소비를 종료하고 연소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 운행을 전면 금지할 계획입니다.

녹색당은 창당 당시부터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지금은 독일 연방군과 함께 나토가 꼭 필요한 조직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GDP의 2퍼센트를 국방비로 늘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어서, ‘EU 보안 연합(EU Security Union)’ 구축을 원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무력 사용을 수용한다는 정강을 채택한 적 있지만, 신기술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여전히 비판적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입니다. 지난해 말 EU와 중국이 포괄적 투자 협정을 체결할 때 반대했고, 독일 내에서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 사용 제한에도 찬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데요,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강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상품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송 받기 위해 건설 중인 ‘노드스트림2(Nord Stream2)’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데요, 현 정부는 “석탄과 원자력 에너지 비중을 낮추고 있어 천연가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녹색당은 사업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안나레나 배어복이 총리로 선출되면 “러시아에 중국에 대해 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녹색당은 또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에 맞서 싸웁니다. 녹색당은 독일 헌법에서 ‘인종’이라는 말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로버트 하벡 공동 대표는 “인종 대신 사람만이 있다”라며 “인종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정신을 훼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이 베를린 시내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선거에서 기후 행동이 핵심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Photo by Beata Siewicz/Pacific Press/LightRocket via Getty Images

녹색당은 어떻게 성공했나

기후 변화에 대한 전례 없는 우려는 유권자들이 녹색당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지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은 사회 보장과 평화, 이민 문제보다 환경 문제를 더 크게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녹색당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젊은 세대의 지지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기후 변화 위험에 무관심한 정치권에 항의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청소년 시위는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이렇듯 젊은 세대들의 기득권 정당에 대한 불만은 녹색당을 대안 정당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과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심이 많은 대도시 유권자들도 녹색당을 지지합니다. 선거 결과에서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데요, 독일 극우의 거점 지역인 동부와 젊은 세대와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부 지역의 차이가 큽니다.
 

포괄적 정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녹색당 지지자 절반은 2017년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에 표를 던졌던 유권자입니다. 일각에선 메르켈 총리가 네 번 연임하는 동안 유권자들이 지쳤고, 여당을 비롯해 함께 연정을 구성한 포괄 정당[1]에게서 마음이 떠난 결과라는 분석도 내놓는데요, 이들이 몰락하며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녹색당은 “포괄 정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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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유럽 의회, 달라진 세상에 답하다》, 《유럽을 흔드는 극우 정당》과 함께 읽어 보시면 더 좋습니다.
 
[1]
전 국민을 상대로 지지를 구하는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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