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이후의 버크셔

5월 10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워런 버핏이 후계자를 지목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2020년 5월 2일에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 총회에서 워런 버핏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Andrew Harrer/Bloomberg via Getty Images

워런 버핏의 후계자


워런 버핏(90)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가 후계자를 지목했습니다. 버핏은 3일 CNBC 방송에 “오늘 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레그 아벨이 내일 아침부터 회사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1일 열린 연례 주주 총회에서 찰리 멍거(97) 부회장도 “그레그 아벨이 우리 기업 문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60여 계열사를 거느린 지주 회사이자 투자 회사입니다. 시가 총액은 6650억 달러(745조 원)로 세계 8위입니다. 회사 투톱인 버핏과 멍거가 고령이라 최근까지 후계 구도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이번에 후계자로 지목된 그레그 아벨(58)은 버크셔의 비보험 부문 부회장으로 철도, 수도, 전기, 가스, 제조업, 소매업 등을 이끌고 있습니다.

버핏은 후계자를 지명했지만, 은퇴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버핏은 회사를 첫사랑에 비유할 만큼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고 여전히 건강합니다. 앞으로 5년 안에는 물러날 가능성이 적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그레그 아벨이 CEO에 오르더라도 버핏은 조언자 역할을 계속하고, 회장직은 아들인 하워드 버핏(66)이 이어받을 전망입니다.
 

오마하의 현인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1965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섬유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뒤 투자 지주 회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버핏은 가치 투자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의 내재 가치와 현재 주가를 비교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을 때 주식을 사고, 주가가 고평가돼 있을 때 파는 것이 버핏의 투자 전략입니다.

버핏은 56년간 버크셔를 이끌며 놀라운 성과를 보였습니다. 1965~2020년 연평균 투자 수익률은 20퍼센트로 S&P500(10.2퍼센트)의 두 배입니다. 1964~2020년 총수익률은 S&P500이 2만 3454퍼센트, 버크셔가 281만 526퍼센트입니다. 1965년에 버크셔 주식을 1만 원어치 샀다면, 지금 2억 8105만 원이 되어 있는 셈입니다.

버크셔의 주식을 사는 것은 워런 버핏이 투자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버크셔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요. 버크셔가 투자한 기업으로는 애플, 뱅크 오브 아메리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등이 있습니다. 업종별로는 IT, 금융, 필수 소비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버핏답지 않았던 지난 10년


워런 버핏이 경제와 산업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나 투자의 귀재라던 버핏도 예전만 못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최근 2년간 버크셔의 수익률은 S&P500을 크게 밑돌았고, 10년으로 범위를 넓혀도 ‘버핏답지 않은’ 평범한 성적을 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항공주를 대량 매입했다가 ‘손절’하며 투자 실패를 자인했습니다.

버핏이 스타트업보다 성숙한 기업을 선호하는 탓에 지난 10년간 IT 붐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버크셔는 다른 투자사보다 한참 늦은 2016년부터 애플 지분을 사들여 현재 5.4퍼센트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지만, 버핏은 기술주를 더 일찍 매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경영 트렌드로 자리 잡은 ESG(환경·사회·지배 구조)를 두고도 말이 나옵니다. 버핏이 ESG에 관심이 적다는 지적입니다. 세계적인 투자 회사들이 탄소 배출 기업에 자금 조달을 중단하고 있는 가운데, 버크셔는 작년 4분기에 미국 석유 기업 셰브론의 주식을 41억 달러(4조 5940억 원)어치 매입했습니다.
 

기후 위기, 다양성, 거버넌스


최근 자본주의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주주와 소비자, 직원, 지역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습니다. ESG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실천 양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 있습니다.

지난 1일 열린 버크셔의 연례 주주 총회에는 기후 정보 공개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 제안이 올라왔지만 부결됐습니다. 이날 버핏은 석유 기업 투자를 옹호하고 멍거는 기후 위기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요,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이자 버크셔의 대주주인 블랙록은 버크셔가 “ESG가 훨씬 중요해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주주 총회에는 다양성 평가를 요구하는 제안도 올라왔지만, 버핏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업의 다양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히면서 역시 부결됐습니다. 거버넌스 문제도 있습니다. 버크셔의 이사회는 버핏과 ‘절친’ 13명으로 구성돼 독립성이 취약하고, 89세 이상이 5명이라 지나치게 고령화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버핏 이후의 버크셔


ESG 열풍 속에서도 두 제안이 부결된 것은 버크셔의 독특한 지배 구조에 기인합니다. 미국 대형 상장사의 지분은 대부분 기관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지만, 버크셔는 다릅니다. 버크셔 의결권의 30퍼센트를 버핏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 100만 명의 개인 투자자가 40퍼센트를 갖고 있는데, 이들은 버핏의 권고에 따라 투표하는 강력한 지지 세력입니다.

그러나 ESG 경영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유럽 연합(EU)은 이미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했고, 미국도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후계자를 지목한 버핏에게 남은 질문은 퇴진 시점입니다. 버핏이 물러난 이후, 버크셔 주주 투표의 역학 관계가 바뀔 수 있습니다. 버크셔의 진정한 도전은 그때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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