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은 과학이 아니다

5월 20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전동 킥보드는 도시 교통의 혁신이자 현실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혁신을 거부하기보단 교통 문화와 제도의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친환경 이동 수단으로 ‘이동의 혁신’이라고도 불렸던 전동 킥보드가 ‘킥라니’라는 오명을 안고 도로 위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급증하고 시장이 성장한 만큼 관련 사고 역시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117건이었던 전동 킥보드, 전동 휠 사고는 올해 1, 2월에만 100건 가까이 발생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안전 강화 대책을 내놨습니다. 도로교통법을 바꿔 이달 13일부터 무면허 운전, 헬멧 미착용에 각각 10만 원, 2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만 13세 이상이면 면허 없이 누구나 전동 킥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지 채 6개월이 안 돼 입장을 바꾼 겁니다. 한 달간의 계도 기간을 거쳐 다음 달부터는 실제 단속과 처벌이 이뤄집니다. #전동 킥보드 관련 규정

과연 헬멧과 면허를 강제하면 킥라니와 사고는 줄어들까요? 일상으로 들어온 전동 킥보드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마지막 한 걸음이 될 수는 없을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차두원 모빌리티 연구소 차두원 소장과 전동 킥보드로 대표되는 퍼스널 모빌리티의 현황과 문제점, 전망을 살펴봅니다. 지금 팟캐스트로 만나 보세요. 요약한 오디오 스크립트도 함께 전해 드려요.
인도에 주차된 전동 킥보드 ©광주가톨릭평화방송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차두원 모빌리티 연구소를 운영하는 차두원입니다. 현대모비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을 거쳐 자율 주행 스타트업 코드42(현 포티투닷)에서 정책 총괄을 지냈습니다. 모빌리티 전략을 연구하고 있고, 특히 퍼스널 모빌리티(PM·Personal Mobility) 분야에서는 규제 관련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전동 킥보드가 정말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전동 킥보드를 마이크로 모빌리티, 퍼스널 모빌리티라고 부르더라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기존의 차량보다 작은 이동 수단을 마이크로 모빌리티라고 부릅니다. 1996년도에 접이식 핸들 바(bar)가 달린 성인용 인라인 스케이트보드를 만든 스위스 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 이름이 마이크로 모빌리티였죠.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대개 PM이라고 부르는데, 개인용 이동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PM은 아주 광범위합니다. 바퀴가 하나 달린 원휠(One-wheel), 두 개 달린 투휠(Two-wheel), 소형 전기차 같은 것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여러 명이 아닌 개인이 혼자 이용하는 이동 수단을 통틀어 PM이라고 부릅니다.

전동 킥보드 같은 PM이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코로나19의 영향이 있습니다. 작년 1차 판데믹 당시 많은 국가가 셧다운을 선언하고 이동을 통제하면서 라임 등 글로벌 업체의 전동 킥보드 사용률은 80퍼센트 가까이 줄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회복했지만요. 그런데 셧다운이 없던 한국은 반대로 PM 사용이 늘어났죠. 사람들이 타인과의 접촉이 발생하는 대중교통 수단 이용을 꺼렸기 때문이에요. ‘킥고잉’, ‘씽씽’ 같은 국내 브랜드의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확산하던 작년 5월 이후, 10퍼센트 이상씩 사용량이 늘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얼마나 많은 전동 킥보드가 있나요?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6만 대 정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늘어난 데는 외국계 업체인 ‘라임’의 영향이 큽니다. 재작년 10월 국내 시장에 진출한 이후, 작년 말 기준으로 1만 6000대까지 대수를 늘렸어요.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동 킥보드 4분의 1에 해당하죠. 올해 6월에는 외국계 업체 ‘버드’도 한국 시장에 들어옵니다. 5000대로 론칭한다고 하니 대수는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겠네요. 이런 가운데, 지난 13일부터는 전동 킥보드와 관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습니다. 이번 개정 법안의 몇몇 규정을 두고 논란이 일더라고요.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운전면허와 헬멧 필수 항목이에요. 작년 12월에 개정된 도로교통법상으로는 13세 이상이면 면허 없이도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었는데, 이제 최소 원동기 면허를 소지하고 헬멧을 써야만 탑승이 가능합니다. 무면허 운전을 하면 20만 원 이하의 범칙금을 내야 하죠. 음주 운전,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보행자 보호 위반 등도 범칙금 대상인데, 이 중 보행자 보호 위반을 특히 신경 써야 합니다. 우리나라 자전거 전용 도로의 76퍼센트가 인도 겸용이기 때문이죠.

소장님은 이번 개정 법안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합니다.

여러 법안 가운데 개정안이 제일 많은 게 아마 도로교통법일 겁니다. 수시로 바뀌죠. 전동 킥보드와 관련한 이전 법안은 심지어 시행 전날까지 내용이 바뀌면서 사용자, 업체, 업계 전문가 모두에게 혼란을 줬죠. 이번 개정은 안전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너무 시급하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저는 안전은 곧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안전 문제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개정이 진행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헬멧을 쓰고, 안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닌데 말입니다.

실제로, 누가 전동 킥보드 타려고 면허를 따고 헬멧을 소지하냐는 사용자들의 불만이 있더라고요.

헬멧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개인이 헬멧을 들고 다녀야 하냐, 업체에서 공용 헬멧을 제공해야 하냐가 큰 이슈죠. 개인이 들고 다니기에는 부피가 있어 부담스럽고, 업체 공용 헬멧을 쓰자니 위생 문제가 걸리니까요. 서울시 공용 자전거 ‘따릉이’도 공용 헬멧을 제공했지만,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 대부분 분실된 사례가 있습니다. 또 지역에서는 대학가에서 전동 킥보드를 아주 많이 타는데, 충분한 상황 인지·판별 능력이 있는 대학생이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킥보드를 못 타겠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효성 논란은 아마 지속될 것 같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18년부터 전동 킥보드의 자전거 전용 도로 운행이 허용돼 PM이 빠르게 확산했다. ©SFMATA
헬멧, 면허 외에 지적하신 도로 상황 관련해서는 뭐가 문제인가요?

도로를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 논의가 안 이뤄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인도, 차도에 이어 제3의 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PM 사용은 더 늘어날 테니까요. 그동안 세계에서 공유 전동 킥보드 도입에 가장 엄격했던 곳이 미국 뉴욕주, 영국이었는데 지금은 이곳들에서도 PM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PM에 대한 필요성이 높다는 거겠죠. 해외의 경우, 안전을 위해 PM 전용 도로를 넓히는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PM을 제도권 이동 수단으로 받아들인 이상 우리 정부나 지자체도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논의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해외에서는 전동 킥보드 같은 PM을 어떻게 규제하나요? 우리나라처럼 헬멧과 면허 소지를 강제하나요?

일단 헬멧부터 말씀 드리면, 대부분 나라에서 청소년은 헬멧 착용이 의무 사항이지만, 성인의 경우 권고 사항에 그칩니다. 프랑스에서도 얼마 전 헬멧을 써야 하냐 마냐로 투표까지 했는데, 당시 엘리자베스 본 교통부 장관이 개인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며 헬멧 착용 의무를 없앤다고 발표했죠. 일본도 지난 4월부터 도쿄, 후쿠오카지역에서 시험 운행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헬멧 착용은 권고만 하고,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북미나 유럽의 경우, 보통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도시별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해요. PM이 교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 탄소는 얼마나 줄였는지 등 사용자 인터뷰를 해 보고서를 내는 거죠. 새로운 모빌리티 수단이 도입됐을 때 사회적 수용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에 취약한 것 같아요. 연구도 부족하고요. 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시 2019년 사고 통계를 보면 자전거가 2만 3691건, 오토바이 등 이륜차가 4만 1457건, 전동 킥보드가 247건입니다. 단순 통계상으로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데, 다른 부분에 대한 고려는 없이 위험성만 부각하는 거죠.

또 한 가지, 속도 규제도 있는데요, 요즘 공유 전동 킥보드는 IoT 기술로 중앙에서 속도 제어가 가능해요.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이나 심야 시간대, 혹은 이동이 위험한 지역에서는 일괄적으로 제한 속도를 낮추는 거죠. 실제 그렇게 하는 기업도 있고요. 일본은 평균 시속을 15킬로미터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한 속도를 낮추는 등의 다른 방식으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죠. 도로 위에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보행자들이 있어요.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각 주체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서로 어떤 패턴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어떻게 주의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나온 한 자료를 보니 전동 킥보드 사고는 횡단보도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주로 자동차 조수석과 충돌하더라고요. 우회전 신호에서 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건데, 이건 운전자들이 아직 도로 위 킥보드 존재에 대해 인지가 안 돼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PM이 이제 제도권으로 들어온 만큼 운전면허 시험이나 운전자 교육 과정에도 킥보드 관련 항목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업계, 사용자 모두를 위해서라도 관련 법안은 물론, 전용 도로 같은 인프라 확충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공간 문제는 사실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지자체, 기초 단체 입장도 이해가 가는 건 도로를 바꾸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죠. 지금은 일단 단속 계도 기간이지만, 사실 이후의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고, 공공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것들이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인 거죠. 작년에 미국 산호세를 방문했는데 ‘베러 바이크 플랜(Better Bike Plan) 2025’라는 프로젝트를 보게 됐습니다. 골자는 도로의 마지막 차선을 PM 전용으로 지정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정책을 확대하고 있더라고요. 주민 반대도 있었는데 친환경, 안전 등을 명분으로 강력하게 시행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규제나 인프라 외에, PM의 안전 문제에서는 사용자의 책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는 PM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요.

처음 탈 때 사실은 훈련이 좀 필요한데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개인용 이동 수단법 안에 초등학교 때부터 관련 교육을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자전거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전동 킥보드를 어떻게 출발시키고 멈추는지, 긴급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운행과 관련된 교육 영상이 많이 나와 있어요. 각종 규제 관련 내용도 개별 기업이나 공공 차원에서 내고 있고요. 그런 것을 참고해 유의하면서 타는 게 중요합니다.
PM 전용 주차 공간 ©Lime
PM을 좀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지금 시점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PM의 종류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겁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도입이 안 된 스쿠터 형태의 서비스도 있고, 앉아서 타는 전동 킥보드도 있죠. 접이식 전기 자전거도 같은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PM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에게 PM은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분류돼 자신의 정체성이나 성향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PM이 생겨날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되겠죠. 도로, 주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계속 발생해 혼란스러워지면 안 되니까요. 빠르게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결정된 사항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부처, 지자체, 기초 단체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야 하고요.

그리고 현재 공유 전동 킥보드와 개인이 소유한 전동 킥보드의 통계가 분리가 안 된 점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택시와 승용차 사고 데이터를 따로 분류하는 것처럼 나누어 관리해야 합니다. 이미 영국과 싱가포르 등에서는 개인용 전동 킥보드를 등록제로 관리하고 있거든요. 개인 소유 장비에 대한 안전 관리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끝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전동 킥보드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는 나라도 없고요. 아까 말씀드린 탄소 제로,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이슈를 생각하면 사실상 전동 킥보드 같은 PM은 앞으로 더욱 많이 필요해질 거라고 봅니다. PM이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위험하니 없애 버리자’는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 공존하면서 안전하게 탈까’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용자도, 업체도 각자 할 말이 있을 겁니다. 일반 시민들은 더 할 말이 많을 거고요. 이러한 내용을 조율하고 합의하면서 넘어가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없었다 보니 이번 법안 개정을 두고 더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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