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
 

6월 2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이준석 현상은 세대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가 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장유유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를 겨냥했던 일침입니다. 장유유서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다는 뜻이죠. 유교 경전인 《삼강오륜》에 나오는 말입니다. 《삼강오륜》의 삼강 가운덴 부위부강이 있습니다. 오륜 가운덴 부부유별도 있죠. 아내는 남편을 섬겨야 한다. 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지독하게 시대착오적이죠. 정 전 총리는 장관직 여성할당제를 제도화한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총리입니다. 자타공인 차기 대권 주자죠. 그런데 야당의 36세 당 대표 후보한테 삼강오륜을 가르친 겁니다. 지독하게 시대착오적이죠. 정세균 전 총리는 장유유서 발언이 악마의 편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5월 31일엔 이런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이준석 후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여당의 네거티브 공격을 앞장서 막아 주겠다고 말했죠. 이걸 구태의연하다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구태의연한 비유가 나와 버린 겁니다. 이쯤 되면, 실수일까요. 

사실 정세균 전 총리의 진짜 실수는 따로 있습니다. 이준석 현상의 본질을 착각했다는 점입니다.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의 시대정신을 부지불식중에 나이와 세대의 문제로만 국한시킨 것이죠. 이준석 돌풍은 이미 이준석 현상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입니다. 일단 국민의힘 당 대표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했죠. 이후 이뤄진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압도적인 1등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준석 후보 본인도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고백할 정도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당심 70퍼센트에 민심 30퍼센트로 치러지는 본선 룰이 유일한 변수입니다. 역시 민심이 요동치니 이젠 당심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국민의힘 내부는 이미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일 수 있다고 각오한 분위기입니다. 6월 11일 치러질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정말로 30대 보수 야당 당수가 등장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여야의 중진 정치인들 모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준석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정세균 전 총리의 장유유서 발언이 대표적이죠. 이준석의 나이만 본 겁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여도 야도 이준석을 모른다 


그건 같은 당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전에서 이준석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죠. 나경원 후보는 이준석 후보가 유승민계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계파 프레임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만 국민의힘 대선 경선 열차에 태우고 그냥 떠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이 있다.” 이렇게 주장하죠. 나경원 후보는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를 차기 대선 관리자 선거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계파에서 자유로운 자신이야말로 대선 관리의 적임자라는 논리죠. 보수 야당이 계파 정치로 파산한 건 사실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기인한 친이 친박 계파 정치가 박근혜 탄핵과 맞물려서 보수 야당의 몰락으로 이어졌죠. 정작 나경원 후보는 계파 청산이 아니라 계파 중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야당의 차기 대권 경쟁을 계파 경쟁으로 전제한 거죠. 그러면서 계파 청산을 주장하고 있는 이준석 후보를 특정 계파라고 비판하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 소위 유승민계가 계파로서의 실체가 없는 건 정치권에선 다 아는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급기야 유승민 전 의원도 나섰죠. 나경원 후보의 공격을 “저에 대한 모욕이고 젊은 정치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일축했죠.

결과적으로 나경원 후보는 이준석 현상을 계파 프레임에 가두려다가 스스로가 계파주의자가 돼버렸습니다. 이번 보수 야당 당권 선거의 의미를 계파 관리자이자 대선 관리자 선거 정도로 축소시켜 버렸죠. 엄밀히 따지면 당 대표가 대선 관리자라는 논리도 말이 안 됩니다. 국민의힘 당헌 당규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 선거일까지 당무 전반의 권한을 갖게 돼 있거든요. 대선 후보가 사실상의 당 대표 역할을 하게 된단 말입니다. 나경원 후보의 이준석 후보에 대한 공격은 이렇게 변죽만 울리는 격입니다. 3선의 관록 있는 정치인 나경원 후보조차 시대가 왜 이준석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준비된 이준석한텐 당할 자가 없다  


“그 남자에게서 히틀러의 향기가 난다.” 박진영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 부대변인은 페이스북에서 이준석 후보를 비판하면서 히틀러에 비유했습니다. 매우 거친 비유입니다. 그래도 나경원 후보나 정세균 전 총리에 비하면 이준석 현상의 본질에는 더 가깝습니다. 박진영 부대변인은 “이준석의 논리를 보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썼습니다. 이준석 현상의 본질이 경쟁주의라는 걸 꿰뚫어 보고 있는 겁니다. 이준석 현상의 약점이 과도한 경쟁주의라는 것도 내다보고 있죠. 《삼강오륜》보다야 훨씬 시대정합적인 비판입니다. 문제는 이준석 후보가 이미 이런 비판에 대비가 돼 있다는 점입니다. 이준석 후보는 이렇게 곧바로 맞받아쳤죠.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는 공정한 경쟁 같은 것을 언급 안 한다.” 스스로를 공정한 경쟁주의자라고 정의한 겁니다. 덧붙였죠. “젊은 사람이 정치하려면 부모님 화교설은 기본이고 히틀러 소리까지 겪어야 한다. 그걸 뚫고 나면 장유유서에 동방예의지국,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소리까지 있다.” 말 나온 김에 모두 까기를 해버린 겁니다.

정치권과 방송가에선 말싸움과 논리 싸움에서만큼은 이준석의 초식을 이길 자가 별로 없다는 게 이미 일반 상식입니다. 초선뿐만 아닙니다. 중진도 방송 토론에서 이준석과 맞붙기를 꺼려합니다. 이준석 현상은 이준석이란 그릇에 국민의 여망이 모인 시대정신이 담겨서 벌어진 정치적 이벤트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준석이란 그릇이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낼 준비가 덜 돼 있으면 결코 완성되지 못합니다. 과거 안철수 현상이 그랬죠. 찰나였지만 반기문 현상도 그랬습니다. 반면에 이준석 후보는 이준석 현상을 담아낼 준비가 돼 있어 보입니다. 자기 논리가 튼튼하고 그걸 눈에 보이게 말할 줄 아는 이준석 후보의 종특만 봐도 알 수 있죠. 박진영 대변인의 과도한 경쟁주의자 프레임에 공정한 경쟁주의자 프레임으로 곧바로 맞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단 말입니다. 

이준석 후보가 2019년 6월에 출간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0선 정치인의 정치 책이라 출간 당시에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죠. 심지어 출간 직후엔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져서 완전히 묻혀 버렸죠. 살펴보면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이준석 후보가 내세우는 주장과 정책의 논리가 모두 이 책 안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도 거침이 없는 것이죠. 준비된 후보인 겁니다. 책의 부제는 이렇습니다.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 책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공정한 경쟁》. 정치인 이준석은 진작부터 스스로를 공정한 경쟁주의자로 정의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상대당의 대선 후보도 같은 당의 당권 후보도 완전히 놓쳐 버린 부분인 거죠. 이준석 현상의 본질은 세대교체도 계파 교체도 아닙니다. 시대 교체입니다.
 

예외 없이 경쟁해야 공정한 경쟁이다 


당권 경쟁에서 이준석 후보를 상징하는 공약은 공천 자격 시험제입니다. 국민의힘에서 공직 후보자가 되려면 능력 시험을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준석 후보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젊은 세대는 9급 공무원에 임용되려고 수년 동안 수험 기간을 거치는데 우리 당도 그에 준하는 노력을 보여 줘야 한다.” 정치권을 통해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공들도 공무원 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된 청년 세대와 똑같이 경쟁해야 공정하다는 말입니다. 기성세대한텐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 세대 입장에선 빈틈없이 공정한 논리입니다. 2030세대들이 이준석 후보한테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죠. 이준석 후보는 주요 당직도 공개 경쟁으로 선발하자고 주장합니다. 토론 대회를 열고 정책 공모전을 개최하자는 거죠. 정치 오디션을 하자는 얘깁니다.

당직이야말로 연공서열과 계파 정치의 소유물입니다. 여의도 정치는 결국 내 사람과 네 사람을 당직에 꽂아 주고 밀어주고 나눠 주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준석 후보의 공약들은 하나같이 여의도 정치의 관행을 파괴하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청년 세대를 경쟁을 내면화한 오디션 세대로 만든 건 다름 아니라 기성세대입니다. 이준석 현상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나를 제발 ‘픽미’ 해달라고 심사 위원들 앞에서 경쟁하던 2030 MZ세대들이 이젠 거꾸로 당신들은 왜 경쟁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시대적 질문인 겁니다. 제1야당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도 결국엔 당직자 선거입니다. 내각제도 아닌 상황에서 야당 당권 선거에 이렇게나 관심이 쏠리는 건 참 이례적이죠. 2030세대가 이번 선거를 당권 선거 이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보수 야당에 시대적 질문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기성세대는 무슨 자격으로 경쟁에서 예외인 것이냐는 필연적인 물음인 거죠. 나아가서 보수 야당이 집권 여당보다 먼저 경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준석 후보는 호남할당제나 여성할당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이준석 후보한테 할당제는 어떤 식으로든 공정한 경쟁을 왜곡시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공정한 경쟁》에선 이렇게 말하죠. “약자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보증을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것이 심각한 불공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준석 후보는 시장주의자입니다. 시장 안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면 합리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죠. 당연히 이준석 후보는 자유주의자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유라고 봐요. 공정은 그 위에서 하는 달리기 게임입니다. 저는 자유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석 후보가 호남할당제 대신에 석폐율제를 도입하자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험지에 출마했다 낙선한 후보들의 득표율을 당의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준석 후보는 그래야 공정하다고 보는 겁니다. 분명한 건 이런 이준석식 공정의 잣대가 MZ세대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사실입니다.
 

불공정한 정부가 공정한 시장을 만들 수 있을까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선서 중인 문재인 대통령 ©Chung Sung-Jun/Getty Images
공정은 분명 시대적 화두입니다. 다음 대선의 쟁점이 될 겁니다. 여권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 모임 명칭도 성장과 공정이죠. 잠재적 야권 유력 대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공정과 상식과 정의를 화두로 삼고 있죠. 그런데 공정이 대선의 화두가 된 건 다음 대선이 처음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힐 만한 명연설이었죠. 아쉽게도 문재인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공정성 시비에 시달리고 시작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시작이었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국가적 명분 앞에서 피땀 흘리며 경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개인적 노력은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지만 당시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 정권 내부 관계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집권 5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사태들은 하나같이 공정성 시비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가 그랬고 조국 사태가 그랬죠. 더 큰 문제는 공정성 시비의 원인이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부가 더 나은 공정한 시장을 만들겠다며 시장 메커니즘에 개입했다가 더 나쁜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한 것들이었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당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은 불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시장을 믿지 않습니다. 정부의 개입은 필연이죠. 이때의 전제가 정부는 공정하다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부를 구성하는 집권 세력과 행정 조직이 모두 공정하다고 전제하는 겁니다.

그런데 조국 사태와 LH 사태는 이 전제를 완전히 박살내 버렸습니다. 집권 세력의 도덕성은 공격받았습니다. 공무원 조직이 땅투기로 시장을 교란시켰죠. 문재인 정부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개입을 통한 공정의 성취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더 공정한 정부를 선출하는 게 해결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정권도 완벽하게 공정할 수 없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정부란 원래부터 공정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이준석은 전산을 전공한 공대생입니다. 합리적 질문을 통해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게 공학적 사고방식이죠. 공정한 정부는 가능한가. 공정한 시장이 더 가능한 게 아닌가. 이준석 현상은 이런 합리적인 시대적 질문입니다.
 

공정한 경쟁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남북한 올림픽 대표팀 ©Matthias Hangst/Getty Images
이준석 후보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준석 현상에 동조하는 청년 세대 지지자들도 이준석 후보의 시각에 동의합니다. 2030세대는 경쟁을 내면화한 세대입니다. 경쟁을 기피하지 않습니다. 대신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죠. 또 예외 없는 경쟁을 요구합니다. 시장을 믿습니다. 오히려 정부를 믿지 않습니다. 여기서 5060 민주화 세대의 약점이 드러납니다. 공정과 정의를 혼동하는 것이죠. 민주화 세대는 독재라는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라는 정의를 쟁취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단 하나의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모두가 희생하는 선악 흑백의 시대였죠. 공정의 시대는 다릅니다. 공정의 시대엔 N개의 정의가 존재합니다. 남북 단일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결성해서 한반도 평화를 증진한다는 것도 하나의 정의죠. 반면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노력한 개개인 선수들의 꿈도 정의입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국가적 정의가 개인적 정의에 우선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준석 후보와 2030세대는 누구도 그렇게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믿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선 안되기 때문에 N개의 정의가 시장에서 서로 경쟁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개입해서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게 아닙니다. 시장에 개입하지 않아서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공정을 부르짖어도 공정해지지 못하는 건 애당초 해법이 틀렸기 때문인 거죠.

이준석 현상이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시대 교체인 건 그래서입니다. 한국 정치에서 경쟁을 대놓고 전면에 내세운 첫 번째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이제까진 금기시되는 단어였습니다. 정치와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경쟁에서 소외되고 낙오한 국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분명 무자비한 경쟁 시대였던 산업화 시대 고속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작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경제도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죠. 역대 정부는 모두가 예외 없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고 혈안이 됐습니다. 어느 정부도 제대로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절치부심 내세웠던 소득 주도 성장도 끝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공정한 경쟁》에선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새로운 국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치와 정부는 공정한 경쟁 상태를 훼손할 수 있는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한국에도 진정한 시장주의 정부가 집권할 때가 됐다는 말입니다.
 

이준석의 시대정신과 레이건의 시대정신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Getty Images
이준석 현상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카터와 레이건 정권 교체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닉슨 행정부의 부패와 카터 행정부의 실패는 보수 혁신 그리고 1980년대 레이건 자유주의 시대로 이어졌죠. 닉슨 행정부의 실패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여러모로 닮아있습니다. 닉슨은 공화주의자라기보단 국가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베트남전으로 국력을 소모했고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실각했죠. 747공약 같은 시장주의 공약을 내세웠지만 실제론 정부 주도의 토건자본주의를 추구했던 이명박 정부와 공권력을 부도덕하게 남용했던 박근혜 정부의 단점만 모아 놓은 듯하죠. 카터 행정부는 분명 우월한 도덕주의 정권이었습니다. 반면에 외교와 경제 정책 면에선 낙제점을 받았죠. 일단 미국은 소련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잃어버렸습니다. 동시에 높은 실업율과 20퍼센트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 그리고 4년 연속 정부 적자 예산으로 경제 위기에 처했죠. 코로나 위기 상태인 문재인 정부의 경제 상황과 다소간 닮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카터 행정부 시절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당시 카터 행정부처럼 경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니까요.

레이건 시대의 시대정신은 이준석 현상의 시대정신과 닮아 있습니다. 경쟁주의 그리고 시장주의죠. 아닌 게 아니라 이준석 후보 본인도 《공정한 경쟁》에서 레이거노믹스를 언급합니다.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도 대처리즘이 있었습니다. 결국, 평등의 가치보다 자유의 가치를 선택했다고 봅니다.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고착 상태를 풀어놓았다는 말이예요.” 덧붙입니다.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도약해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레이건 시대에 정립된 자유주의는 지금까지도 미국 보수주의의 근간입니다. 레이건 시대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준 건 밀턴 프리드먼와 아서 레퍼 같은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었습니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그리고 아들 부시 시대까지 마치 미국의 한명회처럼 권좌를 누린 딕 체니 전 부통령이 1974년 아서 레퍼 교수와 함께 유명한 레퍼 곡선을 냅킨 위에 그린 일화는 너무 유명합니다. 공화당 감세 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됐죠. 미국식 자유보수주의가 새롭게 탄생하던 순간이었죠.
 

유권자가 투자자인 시대

영화 〈월스트리트〉의 한 장면 ©Sunset Boulevard/Corbis via Getty Images
이때 미국의 산업적 구조도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농업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되죠. 2008년 금융 위기로 몰락할 때까지 30년간 이어지는 월가의 전성시대가 이때 시작됐죠.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가 1980년대 레이건 시대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주인공 고든 게코는 두 가지 명언을 남깁니다. “나는 생산하지 않아, 다만 소유할 뿐이지(I create nothing, I own).” “탐욕은 좋은 것이야(Greed is good).” 1980년대는 미국인들의 자산 포트폴리에서 주식 비중이 부동산 비중을 넘어선 시기입니다. 이때부터 집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빌려 사는 것이라는 월세 개념도 보편화됐었죠.

지금 한국 경제도 당시 미국과 흡사한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식과 코인 투자 열풍이 그 증거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동학 개미와 서학 개미가 돼서 밤새 주식 열공을 하고 있죠. 주식도 모자라서 코인으로 더 공격적인 투자에 나섭니다. 이런 공격 투자의 목적은 결국 부동산 소유입니다. 집값이 하도 폭등하니까 고만고만한 노동 소득보단 파격적인 자산 소득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어차피 국내 제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죠.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공무원 말고는 일자리가 늘어난 산업 분야가 많지 않습니다. 투자 말고는 돈 벌 구멍이 없는 겁니다. 특히 2030 청년 세대들이 투자에 대한 관심이 큰 건 당연합니다. 이런 경제 구조의 변화는 정치 지형도의 변화를 유발합니다. 거의 모든 유권자가 거의 모두 투자자인 시대가 도래하는 겁니다. 유권자가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투자자로서 투표하는 시대가 바로 1980년대 레이건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때의 시대정신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준석 현상이 외치고 있는 바로 그것 말입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1984년 6월 5일 런던 총리 관저에서 만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 ©Rogers/Express/Getty Images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 줘야 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7000만 원을 오가던 지난 4월 말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경제판 장유유서 발언이죠. 이 발언 이후 정부의 규제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합니다. 가상화폐 투자에서 경제적 희망을 갈구했던 2030 청년 세대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지경이 됐죠. 이런 분노야말로 이준석 현상의 원동력입니다. 모두가 노동자이던 시대에서 일부만 노동자이고 대부분 투자자인 시대인 지금은 당연한 분노입니다. 정부의 마땅한 역할은 시장한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꼰대 노릇이 아닙니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주는 딱 거기까지여야만 하는 거죠. 그런데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직접 시장을 망가뜨려 버린 겁니다. 마치 자신만이 정의라는 듯 말입니다. 이런 건 진정한 공정이 아닌 거죠.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습니다. 예외도 없죠.

이준석 후보는 레이건식 자유주의를 한국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우려할 부분도 있습니다. 박진영 대변인이 비판한 과도한 경쟁주의죠. 이건 히틀러보단 대처에 비유하는 게 맞을 겁니다. 레이건과 대처 모두 미국과 영국에서 확실하게 경쟁주의를 도입했지만 결과는 좀 달랐습니다. 레이건은 미국을 유일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대처는 영국을 강대국으로 재도약시키진 못했죠. 대처의 시장주의는 너무 매정했습니다. 과도한 경쟁주의 속으로 국민을 내몰았죠. 이때를 그린 유명한 영화가 〈빌리 엘리어트〉죠. 만약 이준석 현상이 정말로 한국식 시장주의 정권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대처의 실패에서 반면교사를 삼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보수는 레이건이냐 대처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겠죠. 물론 어디까지나 이준석 후보가 당 대표가 되고 보수 정권 창출의 기획자로서 성공한다면 말입니다.
 

젊은 김종인 


이준석은 젊은 김종인입니다.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당권을 쥔다면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가 회춘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이준석 후보는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죠. 가깝다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지지를 호소하지도 않죠. 김웅 의원이 당 대표에 출마하마자마 김종인 위원장부터 찾았던 것과 대조적이었죠. 각종 방송 인터뷰에서도 “김종인 위원장을 찾아가서 인사드릴 필요까진 없다”는 식으로 애써 선을 그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는 발언입니다. 《공정한 경쟁》에서도 이준석 후보는 생존 인물 가운데 정신적 스승으로 김종인 전 위원장을 꼽습니다. 정치적 멘토란 말이죠. 이준석은 박근혜 키드로 불립니다. 사실 이준석은 김종인 키드입니다. 이준석 후보는 보수의 기획자로서 김종인 위원장한테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인 위원장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죠. 실제로도 김종인 위원장 역시 은근히 이준석 후보를 지원하는 모양새입니다.

이준석은 김종인의 뒤를 이을 보수의 젊은 기획자로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판을 기획하고 보수 야권 개편을 주도할 제1야당 당권을 겨냥한 것부터가 그런 맥락이죠. 윤석열 전 검찰총장한테 3개의 비단주머니를 주겠다는 발언도 전략통이자 기획자로서 이준석의 캐릭터를 보여 줍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탄핵 이후 길을 잃었던 보수 야권을 수습해서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승리했습니다. 김종인의 신통력이 통한 거죠. 그때까지가 김종인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부턴 이준석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김종인이 할 수 없었던 걸 이준석은 할 수 있겠죠. 그중 하나가 보수 야권을 진정한 자유주의 정당으로 대통합하는 것입니다. 《공정한 경쟁》에서 이준석은 한국 보수가 당명에서 가치를 지우는 순간부터 보수가 길을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실제로 보수 정당은 민주자유당에서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이 바뀌었죠. “보수의 가치 중에서 무엇을 갖고 싸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인기 영합적인 정당이 된 것이죠.” 보수가 비겁해진 이유는 분명합니다. 독재와 결탁했던 역사 탓입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도 같은 멍에를 지고 있죠. 반면에 이준석은 다릅니다. 당당하게 당명에 자유를 넣을 수 있죠. 독재의 과거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보수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적임자인 거죠.
 

이준석과 마크롱, 그리고 윤석열과 이재명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urelien Morissard/IP3/Getty Images
이준석이 실패한다면 그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실패와 닮은꼴일 수 있습니다. 이준석과 마크롱은 둘 다 엘리트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준석은 하버드, 마크롱은 그랑제콜이라는 초엘리트코스를 밟았습니다. 마크롱은 프랑스에 자유경쟁주의를 도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론 노란 조끼 사태 같은 극심한 혼란만 야기했죠. 설익은 엘리트주의자들의 한계입니다.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거죠. 물론 당권과 대권은 다릅니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보수 혁신 기획자라는 측면에선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자유주의자 당 대표 이준석이 법치주의자 대선 후보 윤석열과 결합하는 그림도 전망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7월 초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가 끝나면 아마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겠죠. 대선 후보 윤석열한테도 이준석 현상은 중요한 변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준석 현상에 열광한 2030 청년 세대의 표심을 잡지 않고선 대선 후보도 대통령도 될 수 없을 테니까요. 이준석 후보는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0선이지만 선거전에서만큼은 중진급 존재감을 보여 줬죠. 대선판에서도 이준석의 젊은 기획력이 통할 공산이 큽니다.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결합으로서도 킹메이커와 킹의 결합으로서도 2030과 5060의 결합으로서도 파괴력이 크다는 말입니다.

만일 이준석이 당 대표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건 여권한테 대단히 유리한 국면입니다. 이준석 현상을 보수 야권이 팽개친 셈이니까요. 이준석 현상으로 드러난 시대정신을 민주당이 담아낼 기회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 체제가 그걸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 말입니다. 민주당 초선들 사이에서 제2의 이준석이 나타날 것이냐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원내는 몰라도 원외에선 적어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준석 현상을 놓치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여권 대선 후보 중에서 이재명 지사만큼 시대 변화에 예민한 정치인도 없으니까요. 적어도 이준석 현상을 삼강오륜으로 받아치진 않을거란 말입니다. 게다가 이재명 지사는 현재의 집권 세력인 친문과도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이재명 지사라면 자신의 정책 트레이드 마크인 기본 소득에 이준석 현상을 믹스해서 제3의 길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을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는 길이 되겠죠.
 

공정한 경쟁이라는 착각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교수 ©Rick Friedman/Corbis via Getty Image
이준석 현상은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이제야 도달한 단계입니다. 국가자본주의에서 비로서 시장자본주의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죠. 능력주의와 경쟁주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미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만연했던 신자유주의 시대를 반성하는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합니다. “사람들은 시장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 대체 왜 성공한 사람들이 보다 덜 성공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자유주의와 능력주의 그리고 경쟁주의를 내세운 이준석 현상은 한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필연적 단계입니다. 그렇다고 시행착오까지 고스란히 답습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조언처럼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되 결과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가질 수만 있다면 그런 시행착오를 줄여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보수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이준석 후보도 참고할 만한 부분일 겁니다. 이미 이준석의 시간은 시작됐으니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선 이준석 현상을 분석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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