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 (1/2)

6월 3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지역 대학의 위기는 개별 학교가 아닌 지역의 위기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속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취학 연령인 6세에서 21세 사이 인구를 뜻하는 학령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대학에서 모집하는 입학생 수가 지원 가능한 학생 수보다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역전 현상이 앞으로 더욱 심해진다는 겁니다.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숫자는 27만 2400명이었는데, 현재 국내 대학 모집 인원은 그 두 배인 55만 명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비수도권 대학들을 하나씩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지역 대학의 위기는 개별 학교가 아닌 지역의 도시 문제로 이해해야 합니다. 재학생과 졸업생, 교수와 교직원은 물론이고 대학가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지역 상인과 임대업자, 대학에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시민들까지 대학이라는 울타리로 묶인 공동체 규모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한성대학교 권상집 사회과학부 교수와 이틀에 걸쳐 지역 대학과 지역의 생존을 이야기합니다. 5년 넘게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대학의 참담한 현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봅니다. 지금 팟캐스트로 만나 보세요. 요약한 오디오 스크립트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5분이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해 문을 닫는 대학이 늘 전망이다. ©David Mark/Pixabay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권상집 교수입니다. 지난 5년 6개월 동안 지역 대학에서 근무하며 중요 보직을 맡은 경험이 있고, 학생들과 가까이서 호흡했던 만큼 제가 고민한 지역 대학의 실상과 관련 대책을 함께 공유하려 합니다.

지역 대학이 위기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지역에서 근무하시는 동안 위기감을 느끼셨나요?

학령 인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10년 전부터 나왔기 때문에 직접적인 체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학생과 직원, 또 교수님들과 호흡하면서 현재 상황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공감하시겠지만 지역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준비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취업률이 높고, 학교 재정도 탄탄하니까요. 대부분 지역 대학은 정원 10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이탈을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학생만 그런 게 아니라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대학에서는 보통 젊은 교수 채용하는 것을 겁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이 2~3년 동안 실적을 탄탄히 채운 다음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저도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안 꽤 많은 젊은 교수님들과 면담을 했었는데, 연구 실적이 몇 편 정도 쌓여야 수도권 대학으로 갈 수 있냐고 묻는 신임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학생과 교수가 모두 지역 대학을 벗어날 생각을 하는 셈이죠.

교직원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지역에서는 교직원들의 급여가 나오지 않는 대학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지역의 모 대학도 교직원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거든요. 그래도 과거에는 지역에서 꽤 튼실한 학교라고 알려졌었는데, 급여가 안 나오는 학교가 속속 나타나면서 이러다 10년 후에는 교수들도 급여를 받지 못할 거라는 불신이 생겼죠. 난파선 같은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이 자체가 지역 대학의 심각한 위기라고 느꼈습니다.

대학의 수익 구조가 망가진 건 아무래도 학생 미달에 기인한 등록금 수익 부족이 원인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지역에 있는 웬만한 종합 대학의 1년 예산은 약 1000억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원의 10~20퍼센트가량이 빠지면 적게는 100억 원, 많게는 300억 원 가까이 예산이 줄어듭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1년 예산 중 30퍼센트가 학생 수가 부족해 사라지는 셈이죠. 편입생 외에도 최근 장기간 학교를 쉬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타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재정 여건이 열악해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인건비 감축인데, 인건비를 줄이고 새로운 사람은 뽑지 않으니 학교가 계속 고인 물이 되는 겁니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문제네요.

단적인 예로, 올해 영남 지역에 있는 모 대학교 총장님이 사퇴했는데 사유 중 하나가 ‘학생 충원을 못 해서’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현재 호남 지역 모 대학 총장님도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요.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 신입생 충원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는데, 이를 해결할 방안이 현재로서는 뾰족하게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렸던 학교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그마저도 녹록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현재 약 20만 명의 외국인 학생이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 중 상당수는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유학생이 가장 많은 곳은 경희대학교로, 4000명가량 됩니다. 물론 지역 대학에서도 외국인 학생을 꽤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왜 한국에 오는지 생각해 보면 좋은데, 가까운 나라 중국에는 우리나라 수능 시험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가 있습니다. 900만 명 넘는 수험생이 응시하고, 그중 300만 명이 대학에 진학합니다. 즉, 나머지 600만 명은 자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겁니다.

집에 돈이 있으면 대안으로 미국이나 유럽 대학을 먼저 찾고, 그다음 인근 국가로 눈을 돌리는데 이들에게 우리나라 지역 대학은 쉽게 갈 수 있는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중국인 학생들에게 들은 바로는 중국에서 접하는 한국 입시 정보가 아주 정확하다는 겁니다. 어느 지역, 학교에서 정원 충족이 안 되고 있다는 정도까지 말이죠. 그래서 매년 지역 대학에 300~500명가량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면학 분위기 조성이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은 학습 역량이 부족합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학교 수업 시간에는 그냥 앉아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측도 재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으나, 이들이 실제 학교에 이바지하는 바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겨우 연명해 나가는 게 지역 대학의 생존이나 성장에 적합한 것인지 같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역 대학 위기 문제에서 학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 지역 대학에서 만난 학생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지역 대학에 진학한 후에 절망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령 인구가 줄다 보니 ‘요즘 대학 가기 참 쉬워졌다’라는 말이 나오고, ‘웬만한 성적이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거 아니냐’라는 말까지 들리죠. 그러다 보니 정작 본인은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데서 가장 먼저 패배감을 느낍니다. 마음을 다잡고 ‘여기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학생들도 있는데, 문제는 고등학교보다 못한 수업 분위기가 조장될 때가 많다는 겁니다. 가령 등교를 하지 않는 학생이나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많은 거죠.

그런데 학교는 그런 학생들을 제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모두 학교를 그만두면 학교 재정이 열악해지고, 학교 평판이나 교육부 평가 결과도 안 좋아질 테니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겁니다. 이는 열심히 해보려는 학생들의 박탈감과 이탈로 이어집니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지역 대학이 입은 타격이 컸는데요, 지역 대학 교수님들 상당수가 수도권에 거주해 학교가 그야말로 텅 빈 곳이 되자 ‘여기는 정말 아니구나’, ‘앞으로도 온라인 수업을 들을지언정 서울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고민하는 학생들과 상담을 해본 경험도 있으신가요?

이런 말은 웃기지만, 지역 대학의 교수가 재수나 편입을 하겠다는 학생과 면담하는 것은 굉장히 터부시됩니다. 하지만 많은 학생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우선, 정보의 격차입니다.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느낀 게, 그 흔한 토익 점수나 자격증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학원이 없어서요. 자기 계발이 쉽지 않은 거죠.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 않냐고 묻겠지만, 사실 면대면 수업에서 이뤄지는 정보 공유는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룹 스터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에서는 스터디 하나 찾기도 쉽지 않죠. 스터디하려고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로는 자기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교수님이 서울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교수도 떠날 정도인데, 이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설령 서울보다 지역에서 사는 것이 좋아도  졸업 후에 일할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지역을 떠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지역 대학의 문제는 결국 지역 사회의 인프라, 일자리 부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로 해석됩니다.

이정전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저서인 《시장은 정의로운가》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90퍼센트가 서울에 위치하고, 전체 의료 기관의 50퍼센트는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또 중장기 대학 발전 방안을 제시하는 대학미래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꾸준히 취업률이 상승한 대학 13곳은 모두 서울 소재였고, 반대로 취업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대학 9곳은 전부 비수도권 대학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제가 아쉬운 건 최근 지역 대학의 위기를 말하는 뉴스나 프로그램이 많은데, 지역 대학은 자생할 수 없다는 공포 시그널만 부각하며 학생들의 이탈을 부추긴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이 지역에 굉장한 타격을 주는 만큼, 단순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소멸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대학별 자구책으로 문제를 극복하라는 건 굉장히 안일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6월 3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집니다. 이번 주제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 주세요. 내일은 지역 대학이 처한 이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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