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오바마
 

6월 7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옐런과 파월은 경제 위기가 경제 격차를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끊어 낼 방법을 찾고 있다. 해결사는 어쩌면 라파엘 보스틱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진짜 문제는 불공평한 경제 회복이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지난 5월 말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입니다. 지금 시장의 관심은 온통 인플레이션입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정말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2일에 발표된 4월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무려 4.2퍼센트나 올랐습니다. 이쯤 되면 자고 일어나면 물건 값이 오르는 상황입니다. 연준의 전통적인 역할은 인플레이션 파이터입니다. 물가 상승과 그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을 막아야만 합니다. 물건 가격과 화폐 가치는 반비례하니까요. 현재 인플레이션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시중의 과잉 유동성입니다. 시장에 돈이 넘쳐나는 바람에 돈 가치는 내려가고 물건 가격은 올라간 거죠.

이건 연준 탓입니다. 연준은 코로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달 1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시행해 왔습니다. 연준은 돈의 저수지와 같습니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연준은 수도꼭지를 틀어서 돈을 시장으로 흘려보냅니다. 사람들한테 돈을 쥐여 줘서 경제 활동에 나서게 만들기 위해서죠. 코로나 사태 이후 연준이 시장에 흘려보낸 달러는 대략 7조 40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원화로는 8300조 원 정도 됩니다. 2021년 한국 정부의 예산 규모는 558조 원입니다. 연준 저수지에서 시장 바닥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흘러든 거죠. 이쯤되면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시장은 연준이 조만간 수도꼭지를 잠그는 테이퍼링에 나설 거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이미 테이퍼링은 연준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얘기죠. 그래서 적잖은 월가 투자사들이 주식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성장주에서 경기 민감주로 전환한 상태입니다. 이른바 인플레이션 수혜주들이죠.

그런데 연준 인사들의 입장은 좀 다릅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가 대표적입니다. 라파엘 보스틱은 지난 5월 1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의 신호다. 지금은 연준이 완화적인 정책 기조를 바꿀 때가 아니다.” CNBC와의 인터뷰는 미국 노동부의 전대미문 소비자 물가 지수가 발표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이뤄졌습니다. 연준이 테이퍼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을 억눌러 주기 위한 의도된 인터뷰였죠. 라파엘 보스틱은 5월 25일 공개된 악시오스 온 HBO 인터뷰에선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나는 월스트리트가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이 아니다. 경제에 최선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코로나 판데믹에서 연준의 역할은 더 많은 가족과 기업이 이 위기를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는 것이다.”

라파엘 보스틱이 말하는 다리란 바로 일자리입니다. 지금 경기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호황일지 모릅니다. 충분한 고용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개인한텐 그건 가짜 호황일 뿐입니다. 일자리라는 다리를 건너야 개인은 시장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연준한테 가장 중요한 경제 지표는 물가 지표가 아니라 고용 지표입니다. “진짜 문제는 불공평한 경제 회복이다.” 고용 없는 물가 상승이야말로 불공평한 경제 회복입니다. 기업 매출은 늘어나는데 개인은 가난해지는 경제적 격차 상태이기 때문이죠. 라파엘 보스틱의 저 발언은 연준이 불공평한 경제 회복과 맞서 싸울 것이란 뜻입니다. 연방준비제도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만이 아니라 경제 불평등 파이터로서 행동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바이든한텐 왜 최초의 흑인 게이 연준 의장이 필요한가 

2020년 6월 6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흑인 인권 집회에서 한 여성이 “흑인과 LGBTQ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clay.banks
라파엘 보스틱은 흑인입니다. 게이입니다. 무엇보다 차기 연준 의장으로 유력시되는 유능한 이코노미스트입니다. 라파엘 보스틱이 제롬 파월에 이어 다음번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체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단순히 최초의 게이 흑인 연준 의장이 탄생해서만이 아닙니다. 라파엘 보스틱은 중앙은행을 경제 불평등 파이터로 정의합니다. 연준 의장으로서 그는 오랜 동안 월가의 뒷배였던 연준이 스스로의 역할을 월스트리트에서 메인스트리트까지로 확대 재정의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게다가 라파엘 보스틱의 피부색과 성적정체성은 그가 유색인종과 LGBTQ를 포함한 여러 경제적 약자들의 권리까지 충분히 고려할거라는 약속이겠죠. 한 마디로 금융의 오바마가 탄생하는 겁니다.

지금 시장의 관심사는 단연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입니다. 6월 FOMC는 다음 주 15일과 16일 사이에 열립니다. 지난 5월 말까지만 해도 시장은 연준이 6월 FOMC에선 테이퍼링을 시사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죠. 인플레이션 징후가 너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6월 4일 미국 고용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좀 달라지고 있습니다. 5월 미국 고용 지표에 따르면 일자리는 55만 9000개가 늘어났습니다. 블롬버그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는 67만 5000개였습니다. 수요는 느는데 고용은 안 늘어나고 있죠. 사실 5월 초에 발표된 4월 미국 고용 지표는 더 최악이었습니다. 시장은 100만 명을 예상했습니다. 일각에선 200만 명도 기대했습니다. 섣불렀죠. 현실은 26만 6000명이었습니다. 경제 재개는 빨라도 경제 회복은 느린 거죠. 6월 베이지북의 내용도 다르지 않습니다. 베이지북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매년 여덟 차례 발간하는 공식 경제 동향 보고서입니다. 6월 베이지북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고용 증가와 임금 상승 없는 경제 회복이 진행 중이다. 과장된 인플레이션 공포에 흔들리지 않겠다. 따라서 테이퍼링을 조기에 시급하게 진행할 이유도 없다. 라파엘 보스틱의 시각과 일치하죠.

글로벌 자산 시장은 6월 FOMC에 주목하고 있지만 사실 워싱턴 정가와 뉴욕 월가의 초점은 그 너머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파월의 연임 여부와 차기 연준 의장이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는 2022년 2월까지입니다. 적어도 여름부터는 차기 연준 의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됩니다. 8월 26일과 28일 사이에 있을 잭슨홀 미팅과 9월에 다시 열릴 FOMC 즈음이면 차기에 대한 논의가 가열될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차기 논의의 불씨가 조기에 당겨졌습니다. 애틀랜타 연은 총재인 라파엘 보스틱과 연방준비제도 이사인 라엘 블레이너드의 이름이 꽤나 구체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죠.

이유가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연준 개혁을 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웠습니다. 파월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임한 공화당원입니다. 바이든발 연준 개혁을 대표할 인물로는 적임자가 아니죠. 파월과 바이든은 개인적인 인연도 거의 없습니다. 파월과 바이든의 유일한 연결 고리는 옐런 재무장관이죠. 게다가 바이든한텐 시간이 정말 많지 않습니다. 단지 고령의 나이 때문만이 아닙니다. 딱 1년 뒤 2022년 6월에 중간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 선거에선 하원의원 절반과 상원의원 3분의 1이 교체됩니다. 어느 나라든 중간 선거는 집권 세력한텐 불리합니다. 중간 선거 징크스인 거죠. 게다가 내년 중간 선거는 10년마다 실시되는 인구 조사를 통해 다시 획정된 새로운 선거구를 기준으로 치러집니다. 이번 선거구 획정은 공화당이 주도합니다. 미국 50개 주 의회 권력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구는 선거 승패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바이든 정권은 2022년 6월까지일 것이라는 얘기가 워싱턴 정가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죠.

파월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2월은 바이든 대통령이 월가와 연준 개혁을 시도할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연직으로 상원의장을 맡은 덕분에 정말 아슬아슬하게 상원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내년 중간 선거의 승리는 장담하기 어렵죠.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차기 연준 의장을 지명할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을 겁니다. 파월 교체설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죠. 현재 연방준비은행 이사회의 60퍼센트가 남성입니다. 80퍼센트가 백인입니다. 유능한 공직자이면서 흑인이면서 게이이면서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파엘 보스틱은 지명만으로도 바이든발 연준 개혁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파월은 왜 옐런과 고압 경제를 시도하는가 

2019년 1월 4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미경제인총회에서 패널 토론을 하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자넷 옐런 재무부 장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Jessica McGowan/Getty Images
“우리 세대에선 보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연준은 위험하고 안일하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의 비판입니다. 라파엘 보스틱이 총재로 있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한 지난 5월 18일 콘퍼런스에서였죠. 서머스는 파월 연준 의장뿐만 아니라 자넷 옐런 재무부 장관에 대해서도 공격적입니다. 옐런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1조 9000억 달러 경기 부양책을 두고 “지난 40년 동안 가장 무책임한 거시 정책”이라고 비난했죠. 서머스는 민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입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재무장관을 지냈죠. 오바마 행정부에선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파월의 제로 금리와 옐런의 재정 확대를 싸잡아서 비판하고 나선 겁니다. 한마디로 서머스는 옐런과 파월이 욕조에 너무 많은 물을 붓고 있다고 봅니다.

옐런과 파월이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난 1월부터 제기됐던 내용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재무부와 연준의 화력이 합쳐져서 경제에 과도한 자극을 가해 금융 버블이나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죠. 자넷 옐런 재무부 장관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연준 의장을 지냈습니다. 제롬 파월은 2012년에 연준 이사가 됐습니다. 옐런과 파월은 모두 서른두 차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를 함께했습니다. FOMC에서 파월이 옐런을 반대한 경우는 없다시피 합니다. 파월이 예스맨이어서는 결코 아닙니다. 파월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였습니다. 지난해 3월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땐 “연준은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무엇이든 하겠다”고 연설해서 조기에 시장을 안정시켰죠. 그러니까 파월이 옐런에 반대하지 않은 건 파월의 생각과 옐런의 생각이 같기 때문인 겁니다.

정확하게는 옐런의 경제관을 파월이 공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자넷 옐런의 경제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압 경제입니다. 수요가 공급을 상회하는 수요 고압 국면을 유도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입니다. 옐런의 고압 경제론은 실제로 작동했습니다. 옐런이 연준 의장이던 시절부터 코로나 직전까지 미국 경제는 완전 고용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옐런의 고압 경제는 달리 말하면 적절한 인플레이션 상태입니다. 옐런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서 수요를 창출하고 고용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연준 의장 시절 옐런은 연준의 목표를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고용 안정으로 확대했습니다. 연준이 돈의 가치를 지키는 민간 기관만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삶의 가치를 지키는 공적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본 것이죠.

아쉽게도 옐런은 연준 개혁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트럼프가 옐런을 잘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역대 최고의 연준 의장을 밀어낸 거죠. 옐런은 기자 회견을 할 때면 옷의 칼라를 세우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팝업 칼라는 옐런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옐런의 퇴임식에서 후임자 파월은 맨 먼저 팝업 칼라를 했습니다. 옐런 사임을 아쉬워하는 이른바 팝업 칼라 챌린지의 시작이었죠. 비록 당파는 달라도 파월은 옐런의 정책이 옳다는 걸 알았던 겁니다. 파월은 2020년 8월에 연준에 평균 물가 목표제를 도입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물가 상승률이 평균 2퍼센트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입니다. 바꿔 말하면 국영수 더해서 종합 평균 점수만 좋으면 지금 당장은 수학 시험 점수가 낮아도 봐준다는 얘기죠. 평균 물가 목표제는 연준이 돈의 수호신에서 삶의 수호신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습니다. 고용 확대를 위해서 물가 변동을 용인할 수 있게 된 거죠. 파월이 옐런의 고압 경제를 제도화시킨 셈입니다.


서머스와 월가는 왜 옐런과 파월을 공격하는가


2008년 금융 위기는 연준의 역할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옐런의 선임자인 밴 버냉키 연준 의장은 2008년 금융 위기에서 미국 경제를 구조했습니다.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답게 달러를 시장에 살포하다시피 했죠. 이때부터 양적 완화가 경제 위기에 맞서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주무기가 됐죠. 옐런은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숙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완전 고용 상태에 근접했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다 세상이 트럼프 천하로 바뀌고 말았죠. 파월은 옐런의 숙제를 마저 풀려고 했지만 그 역시 트럼프와 상성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경제 위기를 맞이한 겁니다. 2021년엔 옐런이 재무장관으로서 컴백했죠. 2008년 금융 위기가 그랬듯이 2020년 코로나 위기도 위기이면서 기회입니다. 월가에서 우려할 정도로 두 사람의 손발이 잘 맞는 이유는 단지 둘이 친해서가 아닙니다. 옐런과 파월 모두 코로나 위기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용 확대 없는 회복과 임금 상승 없는 성장이라는 문제 말입니다. 미국을 격차 사회로 만들면서 트럼프의 등장을 유발한 경제 문제죠. 구조적 불평등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자본주의가 직면한 난제입니다. 두 사람 모두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미국 경제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겁니다.

4월과 5월 고용 지표는 월스트리트 입장에선 코로나 경제 위기가 끝났을지 모르지만 메인스트리트에선 코로나 경제 위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연준이 아무리 달러를 풀어도 돈이 자산 시장에만 고이고 실물 시장으로 흘러들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노동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니까 노동을 못합니다. 노동을 못하니까 임금을 받지 못합니다. 임금을 받지 못하니까 소비를 못합니다. 누구는 오늘도 명품 가방을 사들인다는데 누군가는 소확행 하나 못 누리는 거죠. 문제는 이건 연준의 힘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본질적으로 연준은 온오프 스위치 하나로 경제의 온도를 조절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금리를 내리거나 올리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죠. 양적 완화나 구두 개입 같은 전략으로 시장에 영향을 주지만 역시 가장 강한 무기는 금리죠. 연준의 기준 금리는 이미 제로 금리 상태입니다. 파월의 주포는 쓸 수 없게 된 거죠. 결국 남은 숙제는 옐런의 몫입니다. 재정 정책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내야 합니다. 돈이 임금이란 이름으로 사람들한테 흘러들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코로나 위기는 또 한 번 빈부 격차를 확대한 경제 위기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머스의 공격에도 파월과 옐런이 꿈쩍도 하지 않는 건 그래서입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인 거죠.

“연준은 술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걸 분명히 본 뒤에야 펀치볼을 제거하는 게 그들의 새로운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펀치볼을 치워 버리는 것이다.” 로랜스 서머스는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머스가 말한 펀치볼론은 윌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의 논리입니다. 1951년부터 1970년까지 연준을 이끈 최장수 연준 의장입니다. 한마디로 전통적 시각인 거죠. 사실 서머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재무부 장관 자리를 놓고 자넷 옐런과 끝까지 경쟁했던 사이입니다. 이렇게 매사 공격적인 성격도 문제였지만 고용을 경시하는 시각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죠. 실제로 서머스는 고용을 중시하는 옐런 그리고 파월의 정책 방향을 앙심이라도 품은 듯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던 셈이죠. 이쯤 되면 누가 서머스한테서 먼저 펀치볼을 빼앗아야 할 판입니다.
 

옐런과 파월에겐 왜 라파엘 보스틱이 필요한가 

회의실에 앉아 있는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은행 총재의 뒷모습. 그는 과연 최초의 흑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될 것인가. ©atlantafed.org
미국 연준 개혁은 곧 미국 경제 개혁입니다. 자본주의가 유발하는 불평등 그리고 격차 사회가 유발하는 내부 갈등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혁신이죠. 그래서 코로나 경제 위기가 인간을 노동 시장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경제 회복으로 마무리 지어져야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연준 의장 파월과 재무장관 옐런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파월이 시간을 벌어 주면 옐런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콤비 플레이를 하고 있죠. 정작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옐런의 재정 정책은 아직 첫발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장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거나 기대하고 있죠.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1.6퍼센트대를 오락가락한 지 오래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0퍼센트대였죠.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주택 담보 대출 같은 은행 금리의 기준입니다. 연준의 기준 금리는 제로 금리인데 시장의 시중 금리는 이미 2퍼센트를 향해 가고 있는 겁니다. 지난 5월 17일 방송된 〈60분〉과의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중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반대하는 내기를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월가 격언 중에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죠. 경제 격언 중엔 “시장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준이 지금 시장에 맞서고 있습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이유죠.

이대로라면 파월은 본의 아니게 테이퍼 텐트럼을 유발할 공산이 큽니다.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축소하는 테이퍼링에 들어가면서 증시가 폭락하고 신흥국 통화 가치가 요동치는 경제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긴축 발작이 일어나면 경제 회복도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월스트리트가 옐런을 칭송했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긴축 발작을 최소화한 연준 의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옐런은 테이퍼링을 하면서 시장이 예측 가능하도록 충분히 소통했습니다. 현란한 브레이크 기술을 보여 줬죠. 파월도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테이퍼링을 교과서로 삼겠다고 분명하게 가이드라인까지 줬죠. 테이퍼링을 시작하고 대략 2년 뒤에 금리 인상을 시작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연준의 정책 변화에 자꾸만 베팅을 하고 있습니다.

파월을 믿지 않는 거죠. 파월은 옐런이 아닌 겁니다. 이러다 파월이 테이퍼링을 시사하거나 실시하면 시장이 받을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코로나 경제 위기는 전지구적 위기였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죠.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췄고 각국 정부들이 재정을 풀어 왔습니다. 미국이 금융 정책의 방향을 바꾼다면 글로벌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 경제 위기가 끝나자마자 글로벌 증시 폭락과 뒤이은 글로벌 재정 위기까지 연거푸 닥칠 수도 있는 거죠. 파월이 옐런의 경제 개혁을 위해 버텨 주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테이퍼 텐트럼이 발작 수준이 아니라 광기 수준까지 커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바이든과 옐런의 미국 일자리 계획과 미국 가족 계획을 위해선 어느 시점에선 연준의 테이퍼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최대 2조 2500억 달러에 이르는 바이든과 옐런의 경제 재건 계획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인플레이션 요소입니다. 파월 연준의 테이퍼링과 맞부딪히면 정말 서머스가 경고한 것처럼 욕조에서 홍수가 날 수도 있는 거죠. 테이퍼 텐트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욕조에서 홍수가 나는 걸 막기 위해서도 지금 연준한텐 확실히 출구 전략이 필요합니다. 연준의 완화적인 입장에는 변동이 없다는 걸 시장에 확신시키면서 동시에 옐런의 경제 구조 개혁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 공포도 줄여 줄 묘책 말입니다.

최초의 흑인 게이 연준 의장은 묘책이 될 수 있습니다. 격차 사회에서 특히 유색 인종이나 LGBTQ 커뮤니티가 겪는 구조적 불평등은 더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파엘 보스틱은 프레디맥에서 일했었습니다. 오마바 정부에선 주택 공급 정책을 자문했죠. 두 경력 모두 상시적 주거 불안을 겪고 있는 흑인과 게이 커뮤니티의 최대 현안입니다. “연방준비은행과 연방준비제도가 인종 차별을 줄이고 좀 더 포용적 경제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라파엘 보스틱 총재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애틀랜타 연은 홈페이지에 써놓은 인사말입니다. 우리로 치면 한국은행 총재의 인사말에 차별과 포용이란 표현이 박혀 있는 겁니다. 라파엘 보스틱은 이미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연준의 소방수 역할을 앞장서 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 연은 총재가 통화 긴축을 강조하는 매파의 대변인이라면 라파엘 보스틱은 이미 비둘기파의 상징이 됐죠. 이쯤 되면 게이 흑인 연준 의장은 시대의 요구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위기엔 왜 새로운 연준이 필요한가 

코로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가피한 버블 앞에서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 그리고 연준은 모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pixabay
“모든 경제 위기는 장단기 부채 위기다. 나는 중앙은행이 부채 성장이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감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버블이 터지면 극심한 불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버블을 조장하는 부채를 만들어 낸 중앙은행에서 버블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금융 위기 템플릿》에서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 회장이 한 말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위기들도 진화했지만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연준의 전략도 업그레이드됐습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무제한적 통화 공급으로 시장에 버블을 만들어서 경제의 펀더멘털을 지키는 전략을 성공시켰죠. 자넷 옐런 연준 의장은 현란한 테이퍼링 실력으로 거품을 빼면서 성장과 고용이 모두 이상적인 상태인 골디락스 경제를 만들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코로나 위기에서 다시 한 번 양적 완화로 시장을 지켜 냈죠.

결국 다시 버블이 생겼습니다. 과거의 연준이었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리를 올려 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1990년대 전설적인 연준 의장은 스스로 닷컴 버블을 조장해 놓고도 막상 버블이 터질 때는 관망자적 태도로 일관했죠. 그런데 21세기의 파월과 옐런은 좀 더 진보적인 통찰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를 버블로 막을 때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격차 사회로 전락하는 걸 막을 수는 없는가. 레이 달리오의 지적처럼 버블을 만들어 낸 중앙은행이 버블과 버블이 만들어 낸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질 것인가. 경제 위기를 막는 것을 넘어서서 경제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겁니다. 옐런과 파월과 보스틱은 모두가 진짜 문제는 우리 엄마 아빠의 고용이고 내 월급 통장이란 걸 아는 이코노미스트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진짜 문제는 불평등한 경제 회복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선 새로운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 개혁과 혁신의 가능성을 전망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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