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판교는

6월 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IT 성지 판교가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성장통이 아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인근 한 아파트 주변에서 40대 남성이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네이버의 한 개발자였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이 죽음은 곧 판교에 후폭풍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남긴 한 장의 메모 때문입니다.

이 메모에는 직장 내 갑질을 추정할 수 있는 업무 관련 스트레스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특정 인물들의 실명까지 거론됐습니다. 네이버 노조는 7일 자체 진상 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과도한 업무량과 위계를 이용한 정신적 압박 그리고 회사의 방조와 묵인을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규정했습니다.

네이버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굴지의 IT 기업들에서도 각종 부조리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인사 평가 방식에 대한 불만 글이 쏟아졌던 카카오는 얼마 전 장시간 공짜 노동과 임산부 초과 근무 논란이 일었습니다. 빅3 게임사로 꼽히는 넥슨은 당사자 동의 없는 대기 발령 조치로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높은 연봉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기업 문화 등으로 대학생 취업 선호 기업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에 랭크돼 온 판교 IT 기업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CJ그룹 인사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CJ E&M 게임 사업 부문 인사기획 팀장을 거쳐 현재 한성대학교에서 기업 경영을 가르치는 권상집 교수에게 우리나라 IT업계의 실태를 물었습니다.
 

제왕적 리더십과 권위적 문화

판교에 위치한 네이버 그린팩토리 ©NAVER
IT 기업은 보통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가요?

일종의 착시효과입니다.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하지 않고 워낙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강조하다 보니 외부에서는 굉장히 열려 있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해당 기업들이 이런 내용으로 워낙 마케팅을 잘하고요. 그런데 내부에서는 IT업계가 오히려 건설업계보다 업무 강도가 세고 군대식 문화가 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권위적인 문화는 언제 가장 잘 드러나나요?

CEO나 경영진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반론을 제기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교과서처럼 이야기하는 건설적인 토론, 상호 치열한 논의가 의외로 IT업계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죠. 게임이든 소프트웨어든 IT는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업이다 보니 속도 전쟁이 일상입니다. 그래서 성과에 대한 경영진들의 압박이 심합니다. 토론보다는 일방적으로 직원을 푸시하고 과로로 내모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죠. 

IT업계 경영진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전통적 기업들보다 좀 더 유연한 느낌인데요?

사실 현재 대표 IT 기업의 CEO나 경영진은 본인들이 20대에서 30대였던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 업계에만 계신 분들입니다. 어려서 사업에 성공해 한 번도 아랫사람의 입장이었던 적이 없죠. 같은 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증언하자면, 그래서 자기 자신을 경영의 신(神)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기 말에 토 다는 것을 아주 싫어하죠.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초고속 성장만 밟아 왔는데 누군가 옆에서 조언해주는 멘토도 없었을 거고요. 또 우리 사회는 어떤 성과를 내면 과정은 배제하고 대개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분위기라 이분들의 리더십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죠. 좋게 말해 소탈하고 친근감 있는 리더가 때에 따라서는 반말과 폭언을 일삼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번에 숨진 네이버 개발자도 모욕적인 폭언에 시달린 정황이 밝혀졌습니다. 생전의 메신저 내역과 동료들의 증언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그런데 업계에서는 “이게 어떻게 뉴스에 나왔지? 이 정도는 아주 흔한데”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한 폭언을 일삼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IT업계에는 창업자와 주변 동료들이 20년 넘게 서로 동고동락하면서 회사를 키운 경우가 많습니다. 좋게 말하면 의리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서로 한통속인 거죠. 그러다 보니 내부에서 관련 사건 사고가 발생해도 경영진급의 가해자를 과감하게 징계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결국 경영진의 리더십 부재, 위계적인 조직 문화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문제네요.

IT 분야의 업력 자체가 너무 짧죠. 성장기부터 보면 이제 갓 20년이 넘었으니까요. 역량을 고려해 다양한 업계에서 전문성이 검증된 베테랑 경영진들을 영입하면 업계에서도 순환이 잘 이루어질 텐데 창업자가 여전히 CEO로서 전체 경영을 책임집니다. 20년 전부터 호형호제하던 사람들도 여전히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습니다.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죠. 쉽게 말해 내 회사고 내가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일궈 왔는데 뭣 하러 외부 전문가를 들이겠냐는 거죠. 흔히 정치인들에게 철학이 없다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이 업계에는 철학 없는 경영자가 많은 편입니다.

일각에서는 최근 IT업계에서 불거진 논란을 두고,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성장통이라는 표현도 합니다.

말이 안 됩니다. 제가 IT 업계에서 근무했던 2010년부터 이러한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 꾸준히 발생해 왔습니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죠. 20년 전 사업을 시작한 젊은 청년이 이제 50대 CEO, 경영진이 됐습니다. 최근 현상을 단순히 업계의 성장통으로 치부하면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은 더 굳어질 겁니다.

경영진이 전부 바뀌지 않는 이상 지금 당장 뾰족한 개선책은 없어 보이는데요?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거론될 겁니다. 오히려 더 부각될 수 있고요. 그래서 이번 네이버 직원의 자살도 단편 사건으로 다룰 게 아니라, IT업계가 왜 이 상태까지 오게 됐나 더 깊이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네이버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저는 이 문제가 후에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주축 세력으로 부상하는 MZ 세대의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하거든요. 공정성과 원칙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지금 IT 생태계는 대척점에 있는데 분명 장기적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는 일단 오늘(9일)부터 네이버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에 나섭니다. 직장 내 괴롭힘 등 전반적인 조직 문화를 진단하겠다고 하는데,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노조가 정부에 근로감독을 신청한 이번 같은 시도는 앞으로도 많이 있어야 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과 같은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노조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업계에 있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었고요. 앞으로 순차적으로 IT업계의 노조 결성 움직임은 더 커질 텐데 기존의 경영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전달할 방법은 계속해서 모색해 나가야 할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IT업계에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인텔은 시스템 반도체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내부의 치열한 토론을 장려합니다. 그리고 “CEO에게 항상 도전하라”고 강조하죠. 누구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텔은 자사의 강력한 무기로 반도체 기술 역량이 아닌 수평적인 문화를 꼽습니다. 삼성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인텔인데 말입니다. 몇 년 전 인텔에 근무하는 연구개발자에게 “삼성에서 더 높은 연봉을 주면 옮길 생각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삼성의 문화가 유연하지 않다는 이유였어요. 반대로 말하면 인텔의 조직 문화가 그만큼 유연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줘도 옮기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쟁사가 연봉 800만 원 인상했으니 우린 900만 원 인상합시다”라는 수준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3년 전 예고된 죽음

2018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IT 업계 노동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철희 의원실
2018년,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던 이철희 의원은 IT노조와 IT업계 종사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노동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100명 중 4명꼴로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종사자 비율은 일반 성인의 28배에 달했습니다.

이미 IT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심각한 위험 수준이었던 겁니다. 당시 조사에서 52시간 상한제 적용 이후 실제 근무 시간이 줄었다는 응답은 17.4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연장 근로의 원인으로 무리한 업무 일정과 비효율적인 업무 배치 및 조직의 의사결정이 꼽혔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셈입니다.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인이 된 네이버 개발자가 올해 3월 털어놓은 심경입니다. IT 강국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 뒤에는 혁신과 거리가 먼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었습니다. 3년 뒤 판교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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