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는 영업이익률이 10퍼센트 이상인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로 빅 테크 기업이고, 미국 기업이죠.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이 법인세가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세우고 수익을 몰아 주는 편법을 쓰고 있는 건 오래전부터 지적받아 왔습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죠.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아직 EU 차원의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2019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일부 국가가 구글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개별적으로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만 해도 미국은 여기에 보복 관세로 맞섰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력한 무기였던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대응이죠. 슈퍼301조라고 불리는 법입니다. 교역 상대국의 부당한, 비합리적, 차별적인 법과 제도, 관행에 보복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2019년 가장 먼저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한 프랑스엔 트럼프가 엄포를 놓았습니다. 프랑스산 샴페인, 화장품, 핸드백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결정도 했고요. 하지만 지난 1월에 실제 관세 부과는 6개월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영국, 스페인 등 프랑스 이후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국가들에 보복 관세를 매긴다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역시 6개월 유예된 상태입니다.
최저 법인세율 협상을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기보다는 유럽 주요국과 합심해 법인세 최저 세율을 설정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번 합의는 바이든식 다자주의 외교가 일궈 낸 성과입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자국 기업들에 불리한 결정입니다. 미국의 전략이 달라져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이번 최저 세율 협상을 주도한 건 오히려 미국이었습니다. 최저 세율을 21퍼센트로 하자고 제안했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15퍼센트로 낮춘 겁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에서 현 21퍼센트인 법인세를 최고 28퍼센트까지 인상할 계획이었습니다. 증세로 재원을 확보해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건 바이든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죠.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지난 3일 타협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큰 방향은 같습니다. 타협안에선 최고 세율을 28퍼센트로 높이는 안은 철회하는 대신 최저 법인세율을 15퍼센트로 설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익을 내고도 세금을 덜 내는 기업에 과세하자는 것이죠. 이번에 합의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역시 15퍼센트입니다.
미국만 법인세율을 올리면 자국 기업들이 절세를 위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 있는데, 그걸 막기 위해 최저 세율 합의를 이룬 겁니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와 무역 전쟁을 바탕으로 자국 기업을 옹호했다면, 바이든은 국제 협력을 통해 빅 테크를 견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금이 필요한 정부들
판데믹 이후 각국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왔습니다. 미국이 대표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초대형 재정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조 9000억 달러(2115조 6500억 원)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이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실업 수당과 3차 재난지원금 등을 포함하는 안입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도 있습니다. ‘미국 일자리 계획’은 1조 7000억 달러(1893조 원)에 달하는데, 그마저도 공화당의 반대로 줄인 규모입니다.
이런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려면 결국 재원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거나, 증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죠. 바이든 행정부는 재원 상당 부분을 증세를 통해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국채 금리가 오르고, 국가가 갚아야 하는 빚이 늘어나 부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채권보다는 증세, 그중에서도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100만 달러 이상의 자본이득을 얻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도 현행 20퍼센트에서 39.6퍼센트로 올릴 예정입니다. 최근 자산 가치 상승으로 돈을 불리고 있는 부자들에게 이전의 두 배 가까이 과세하겠다는 것이죠. 이번 G7 합의는 법인세를 올리면서도 국내 기업들의 이탈은 막기 위해서입니다. 합의에 참여한 국가들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재원 조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전처럼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해 기업을 유치하기보다는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전략을 쓰겠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면서 세금은 피하고 있는 테크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 됐습니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조세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