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테크엔 빅 세금
 

6월 10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G7이 빅 테크를 겨냥한 최저 법인세율에 합의했다. 코로나 위기로 기업만 부유해지고 가계는 가난해지고 정부는 쇠약해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구글세가 가시화됐습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을 포함한 G7이 100년 만에 글로벌 법인세 체계를 개혁한 겁니다. G7 재무장관들은 지난 6월 5일 런던에서 열린 재무장관회의에서 최저 법인세율을 15퍼센트로 제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기업 소재지와 상관없이 기업의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에서 과세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합의는 흔히 FAANG이라고 불리는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빅 테크 기업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세우고 수익을 이전해 막대한 세금을 회피해 온 테크 기업들에게 제대로 세금을 매기겠다는 겁니다. 이제 FAANG은 전 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세금은 조세 회피처에서 조금만 내는 꼼수를 쓸 수 없게 됩니다.

이번 합의는 국경을 넘나들며 시장을 확대해 온 새로운 디지털 비즈니스 방식에 맞춰 글로벌 법인세의 기준을 바꾸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막대한 돈을 시장에 풀고 있는 각국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합의를 주도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빅 테크 기업들이 뿌리를 둔 미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만 해도 미국은 테크 기업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유럽 국가들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IT 기업을 겨냥한 디지털 서비스세를 만든 국가들에 보복 관세를 매길 계획까지 세웠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미국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내 법인세 인상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법인세를 높이면서도 자국 빅 테크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로 옮겨 가지 않도록 하려면 글로벌 최저 법인세를 설정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왜 입장을 바꿨나

6월 4~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 모인 재무장관들 ©Henry Nicholls - WPA Pool/Getty Images
이번 합의는 영업이익률이 10퍼센트 이상인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로 빅 테크 기업이고, 미국 기업이죠.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이 법인세가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세우고 수익을 몰아 주는 편법을 쓰고 있는 건 오래전부터 지적받아 왔습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죠.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아직 EU 차원의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2019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일부 국가가 구글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개별적으로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만 해도 미국은 여기에 보복 관세로 맞섰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력한 무기였던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대응이죠. 슈퍼301조라고 불리는 법입니다. 교역 상대국의 부당한, 비합리적, 차별적인 법과 제도, 관행에 보복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2019년 가장 먼저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한 프랑스엔 트럼프가 엄포를 놓았습니다. 프랑스산 샴페인, 화장품, 핸드백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결정도 했고요. 하지만 지난 1월에 실제 관세 부과는 6개월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영국, 스페인 등 프랑스 이후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국가들에 보복 관세를 매긴다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역시 6개월 유예된 상태입니다.

최저 법인세율 협상을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기보다는 유럽 주요국과 합심해 법인세 최저 세율을 설정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번 합의는 바이든식 다자주의 외교가 일궈 낸 성과입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자국 기업들에 불리한 결정입니다. 미국의 전략이 달라져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이번 최저 세율 협상을 주도한 건 오히려 미국이었습니다. 최저 세율을 21퍼센트로 하자고 제안했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15퍼센트로 낮춘 겁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에서 현 21퍼센트인 법인세를 최고 28퍼센트까지 인상할 계획이었습니다. 증세로 재원을 확보해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건 바이든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죠.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지난 3일 타협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큰 방향은 같습니다. 타협안에선 최고 세율을 28퍼센트로 높이는 안은 철회하는 대신 최저 법인세율을 15퍼센트로 설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익을 내고도 세금을 덜 내는 기업에 과세하자는 것이죠. 이번에 합의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역시 15퍼센트입니다. 

미국만 법인세율을 올리면 자국 기업들이 절세를 위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 있는데, 그걸 막기 위해 최저 세율 합의를 이룬 겁니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와 무역 전쟁을 바탕으로 자국 기업을 옹호했다면, 바이든은 국제 협력을 통해 빅 테크를 견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금이 필요한 정부들


판데믹 이후 각국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왔습니다. 미국이 대표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초대형 재정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조 9000억 달러(2115조 6500억 원)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이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실업 수당과 3차 재난지원금 등을 포함하는 안입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도 있습니다. ‘미국 일자리 계획’은 1조 7000억 달러(1893조 원)에 달하는데, 그마저도 공화당의 반대로 줄인 규모입니다.

이런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려면 결국 재원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거나, 증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죠. 바이든 행정부는 재원 상당 부분을 증세를 통해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국채 금리가 오르고, 국가가 갚아야 하는 빚이 늘어나 부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채권보다는 증세, 그중에서도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100만 달러 이상의 자본이득을 얻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도 현행 20퍼센트에서 39.6퍼센트로 올릴 예정입니다. 최근 자산 가치 상승으로 돈을 불리고 있는 부자들에게 이전의 두 배 가까이 과세하겠다는 것이죠. 이번 G7 합의는 법인세를 올리면서도 국내 기업들의 이탈은 막기 위해서입니다. 합의에 참여한 국가들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재원 조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전처럼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해 기업을 유치하기보다는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전략을 쓰겠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면서 세금은 피하고 있는 테크 기업들이 주요 타깃이 됐습니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조세 제도

G7 재무장관 회의 참석 후 발언하고 있는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장관 ©Justin Tallis - WPA Pool/Getty Images
지난 100년 동안 글로벌 조세 정책의 원칙은 기업의 소재지에 과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인세 제도가 정착한 1920년대 초만 해도 기업들은 물리적인 사업부가 있어야만 유형의 제품을 만들고,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구조가 달라졌습니다. 테크 기업들은 무형의 IT 서비스를 물리적인 사업부 없이도 전 세계에 팔 수 있죠. 구글과 페이스북의 맞춤형 광고, 애플의 앱스토어, 아마존의 AWS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기업은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세우고, 지적 재산권 거래 등을 통해 수익을 그 사업부로 몰아 주는 방식으로 조세 회피를 해왔습니다. 특히 법인세율이 12.5퍼센트인 아일랜드를 적극 이용했고요.

최저 법인세율이 설정되면 이런 전략은 어려워집니다. 어느 국가에 가든 최저 세율은 같으니까요. G7에 이어, G20과 OECD도 최저 법인세율 합의에 나설 전망입니다. G7은 이번 공동 성명에서 7월에 있을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최저 법인세율에 대한 합의를 이루길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OECD도 조세를 회피하는 글로벌 IT 기업들에 대한 과세를 추진해 왔습니다.

최저 법인세율 합의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아일랜드, 헝가리 등 낮은 법인세율로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을 써온 국가들은 최저 법인세율 설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G7 합의도 실제로 추진하려면 각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미국만 해도 공화당은 이번 합의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각종 글로벌 금융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런던은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G7의 합의는 첫 단계일 뿐입니다. 실제로 최저 법인세율을 적용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비즈니스에 맞는 조세 제도를 향한 움직임은 시작됐습니다. 판데믹으로 인한 재정 정책의 변화와 미국의 입장 전환과 맞물리면서입니다. 구글이 구글 지도상의 어떤 국가에서도 세금을 회피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6월 10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제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지금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야망이 잊힌 대륙〉, 〈감정의 사유화와 디지털 불로소득〉, 〈테크 비즈니스, 게임의 법칙〉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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