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가해자부터 지켰다.

6월 11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군 사법 체계 개혁과 성인지 감수성 교육은 피해자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살면서 한 번 겪을 수 있는 일”, “없던 일로 해달라”. 공군 복무 중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여성 중사 A가 이를 신고하자 듣게 된 말입니다. 전형적인 회유와 압박, 합의 종용입니다. 피해자이지만 자신이 몸담은 군으로부터 어떤 보호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A 중사는 홀로 괴로워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대한민국 군대 내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20여 차례 호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지난 3월 초,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A 중사는 상사의 지시로 저녁 술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회식 등이 금지돼 있었지만, 선임인 B 중사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나갔고, 숙소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A 중사는 즉각 신고했지만 돌아온 건 상관들의 회유와 압박뿐이었습니다.

직속 상관들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A 중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했던 공군 소속 국선 변호인과 공군 양성평등센터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선 변호인은 A 중사와 한 차례도 만나지 않은 채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만 조사 일정을 논의했고, 양성평등센터는 사건을 인지하고도 국방부에 한 달이나 지난 뒤 늑장 보고를 했습니다. 공군 검찰의 행태는 더 한심합니다. 4월 초 사건을 넘겨받고도 두 달 동안 미적거리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A 중사가 목숨을 끊은 지 10일이 지나서야 B 중사에 대한 첫 피의자 조사를 했고, 결정적 증거가 들어있을지도 모를 B 중사 휴대 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지만, 집행을 미루고 임의 제출 형식으로 확보했습니다.

비단 20전투비행단뿐만이 아닙니다. 공군에서는 최근 한 남성 하사가 여군 숙소에 무단 침입해 속옷과 신체를 불법 촬영하다 덜미가 잡히는가 하면, 육군에서는 중령급 인사가 여성 장교들을 상습 성추행해 보직 해임됐습니다. 재발 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성범죄 문제가 끊임없이 터지자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습니다.
 

성범죄에 관대한 조직 문화가 원흉

국군의 날 행사에 명예 경비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가 참석했다. ©Photo by Seung-il Ryu/NurPhoto via Getty Images
군대 내 성범죄는 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방안은 없는 것인지, 해병대 대위 출신이자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을 맡고 있는 방혜린 팀장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군 성범죄로 또 한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군의 폐쇄적이고 남성적인 조직 문화가 성인지 감수성을 저하하는 원인이고요. 이런 배경이 있다 보니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태도나 행실을 묻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성범죄는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데 조사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캐묻다가 2차 가해가 쉽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피해를 본 여군들은 신고하지 않게 됩니다. 가해자는 더 활개를 치고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없던 일로 하자고 회유하거나 가해자와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 문제도 심각해 보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인들을 찾아가서 탄원서를 받고, 이 과정에서 소문이 유포되고, 이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 이를테면 소속 군대의 지휘관이 합의하자고 나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해자에게서 억지로 처벌 불원 의사를 받아내서 합의했다고 하는 일도 있고요. 모두 2차 가해죠. 2차 가해로 피해자들은 더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실제로 A 중사의 경우 불안장애와 불면증을 호소하고 자해를 하기도 했어요.

군이 ‘2차 가해’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도 읽힙니다.

네, 맞습니다. 2차 가해를 징계하는 규정이 있지도 않고요. 묵인·방조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게 돼 있지만,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 묵인·방조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에 대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 자체가 가해 행위가 될 수 있음에 관심이 없는 거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이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만, 크게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재발 방지책이 나왔습니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매뉴얼을 수행하는 집단 자체가 성인지 감수성이 없는 상태다 보니 매뉴얼대로 따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군 전체의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군 사법 체계 개혁, 문제 재발 방지에 도움 될까?

대한민국 국방부 외경 ©국방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의 사법 체계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군의 사법 체계는 군 경찰과 군 검찰, 법원 운영까지 지휘관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휘관이 재판관 지정과 임명권, 선고 형량 등에 개입할 수 있어 사법 절차에 독립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 식구 감싸기’에 활용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이번 공군 성추행 사건 조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결국 A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는 이런 군의 사법 체계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해자를 위한 제 식구 감싸기에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리는 결과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회 계류 중인 군사법원법 개정안 처리를 독촉한 만큼 개혁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전망입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는 군 사법 체계를 나눠서 전시에는 그동안 유지돼 온 군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평시에는 이를 대폭 제한하는 것입니다. 국방부 조사 결과 군의 특수성이 인정되는 ‘군사 관련 범죄’는 전체 군 범죄 가운데 10퍼센트 초반에 불과합니다. 80퍼센트 이상은 성범죄와 교통 범죄 등 일반 범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법의 독립성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군사적 특수성이 없는 사건은 앞으로 군이 아닌 경찰이 수사를 맡고 민간 법원이 죄를 판단하는 방법도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방 상담지원팀장도 군 사법 제도 개혁에 동의하는 한편, 군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단계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군 사법 제도 개혁이 성범죄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상황을 보고하는 것, 국선 변호인 지정 등을 각 군 법무실에서 관리를 합니다. 재판도 군 법무실 담당이고요. 이러다 보니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실제 나와 있는 통계들을 봐도 성범죄에 너무나 관대합니다. 온갖 이유로 가해자를 감형해 줍니다. 군 생활을 성실하게 해서, 표창이 많아서, 초범이라서 등의 이유입니다. 위력에 의한 범죄인지도 따지지 않고요. 군사 법원이 성폭력 사건에 전문성이 전혀 없으면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해주는 셈인 거죠. 군이 비군사범죄에 대해서 수사권과 사법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죄를 엄단하기 어렵게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제도 개혁과 더불어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군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제일 중요한 것은 성인지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입니다. 교육도 단편적이거나 형식에만 그치는 방식은 효과가 없습니다. 젠더 의식이나 성인지 감수성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대할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단계적으로 꾸준히 이뤄지는 교육을 통해서만 효과를 볼 수 있음을 군이 인지해야 합니다. 주변인 교육도 필수입니다.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주변인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성폭력 상황을 목격했을 때 피해자가 호소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주변인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행동 교육이 함께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6월 11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제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지금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가장 기소하기 어려운 범죄》와 함께 읽어 보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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