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생애
 

6월 15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인류와 동식물의 터전이 무너지고 있다. 인간은 집을 짓고 부수길 반복하며 기후 위기를 가속한다.

©서울시립미술관/사진: 남기용
미술관 앞마당에 커다란 전나무가 누워 있습니다. 네다섯 도막으로 부러진 나무 표면에는 여전히 갈색 껍질이 붙어 있습니다. 어른 한 명이 두 팔로 끌어안아도 모자랄 만큼 큰 나무입니다. 살아 있을 때는 건물 10층 높이는 족히 되었을 것 같습니다. 갈색 껍질의 표면은 수분이 증발해 하얗게 말라 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 고사한 나무를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소희준/북저널리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기후 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에 다녀왔습니다.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다루는 전시입니다. 기후 변화로 지구 생태계는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녹아내리는 빙하로 북극과 남극의 생물들이 살 곳을 잃어버리는 건 대표적인 기후 변화의 이미지지만, 거기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바다는 온도 변화와 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으로 사막화하고 있습니다. 홍수와 산불, 이상 기온은 점점 많은 지역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지리산과 한라산 등지의 침엽수는 기후 변화에 취약해 집단 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온라인 서비스는 데이터 센터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기후 위기는 북극과 남극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실질적인 위협입니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면밀히 이해하는 것은 적극적인 대응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기후 위기를 생생히 실감하게 해주는 전시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기후 위기의 실상을 짚습니다. 팟캐스트로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 오디오로도 만나 보세요.


내일을 잃어버린 나무

©소희준/북저널리즘
마당의 전나무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역시 기후 변화로 고사한 나무를 옮겨왔습니다. 마당의 나무보다 고사한 지 오래된 소나무입니다. 우리가 아는 소나무의 갈색 껍질은 수분 증발로 떨어져 나가 없고, 창백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게 뻗은 나무 기둥은 서너 조각으로 부러진 채 미술관 로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시 목적으로 옮기면서 부러뜨린 게 아니라, 고사하면서 부러진 겁니다.

전시장의 고사목은 산에서 벌어지는 일의 일부일 뿐입니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한반도의 주요 국립공원과 삼림보호지역에서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들이 집단 고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인 구상나무의 고사는 특히 심각합니다. 한라산과 지리산 고지대가 주요 서식지인데요, 한라산 구상나무는 2019년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발표한 자료 기준으로 20년 사이 36퍼센트가 고사했습니다.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죽은 겁니다. 세계 최대 자생지인 한라산 진달래밭 일대 구상나무 숲에선 고사율이 90퍼센트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장에선 드론으로 촬영한 한라산 구상나무 서식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침엽수 하면 떠오르는 짙은 녹색이 아니라, 갈색과 흰색으로 뒤덮인 산과 나무는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전국의 침엽수림은 20년간 약 25퍼센트 감소했습니다. 특히 설악산, 백운산-함백산-장산, 지리산, 한라산 지역에서 가장 많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미술관 바깥의 전나무도 강원도 정선에서, 로비의 소나무는 경상북도 울진에서 왔습니다.

침엽수가 집단 고사하는 건 기후 변화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수분이 적정량 공급되지 못하는 데다, 서식지의 기온이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기후 변화로 적설량과 강우량이 변화하면서 계절별로 필요한 만큼의 수분을 공급받기 어려워지고, ‘수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겁니다. 폭염, 폭우, 가뭄 등 기후 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기상 현상도 침엽수에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침엽수는 기후 변화에 취약한 종입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자료에 따르면 칩엽수의 멸종 위기율은 34퍼센트로 양서류(41퍼센트), 상어와 가오리류(36퍼센트)에 이어 세 번째로 높습니다. 그런데 침엽수는 전 세계 삼림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활엽수와 달리 겨울에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보내는 종이기도 합니다.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생물이 기후 위기 때문에 위험에 처하고 있는 겁니다. 대책을 찾지 않으면 기후 위기가 더 가속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극곰처럼 상징적인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 왔지만, 주변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침엽수가 멸종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기후 변화가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실감하게 해줍니다.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생태계는 인류를 포함해 지구의 모든 동식물의 터전입니다. 기후 위기를 일으킨 건 인간입니다. 인간이 동식물의 집을 파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들은 인간의 집은 무수히 많이 짓고 있습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끊임없이 추진합니다. 고속도로 건설, 사회 기반 시설 재건 등 대규모 토건 사업도 경기 부양을 위해 세계 전역에서 활발히 이루어집니다. 건설 부문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10퍼센트에 달합니다.

고사목을 지나 전시장의 산양, 북극곰 같은 멸종 위기 동물들, 그리고 사막화되고 있는 바닷속을 보여 주는 영상들을 지나면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세 개의 스크린을 만나게 됩니다.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개포 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주민들이 곧 사라진 장소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습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나무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던 사람들만큼이나 자랐습니다. 고사하고 있는 전나무와 소나무가 자연이라면, 아파트 단지의 오래된 메타세쿼이아는 인간 곁의 나무입니다. 아파트 높이를 훌쩍 넘을 만큼 자란 나무는 재건축 과정에서 결국 베어져 나갔습니다.
©소희준/북저널리즘
현행 재건축 연한은 30년입니다. 2014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됐습니다. 연한을 넘긴 주택들은 재건축 추진을 시작합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는 층고가 낮고 용적률이 낮기 때문에 재건축을 했을 때 수익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건물의 노후화 문제도 있습니다. 내외부에 균열이 생기거나 배관이 부식되기 때문에 지은 지 30~40년이 지나면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검토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파트의 수명은 아파트의 주재료인 콘크리트의 수명에 비하면 턱없이 짧습니다. 아파트에 주로 사용되는 철골콘크리트의 물리적 수명은 100년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주택의 평균 수명은 27년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턱없이 짧습니다. 미국은 72년, 프랑스는 80년, 영국은 128년인 것과 대비되죠. 수명이 짧은 이유는 건축 방식에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파트는 대부분 벽식 구조로 지어집니다. 기둥 없이 내력벽이 위층의 무게를 지탱하는 방식입니다. 비용이 덜 들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반면 건물의 개·보수는 어렵습니다. 건물의 하중을 내력벽이 받치고 있어 노후한 배관과 배선을 교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국내 공동주택 대부분은 배관 등 설비가 구조체에 묻혀 있어서 대규모 리모델링이 아니면 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벽식이 아닌 기둥식 구조로 지으면 보수도 쉽고 건물 수명도 길어지지만, 기둥식을 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개발 이익을 목표로 하는 데다 30년 후면 재건축할 것을 염두에 두고 건물을 짓는 상황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기둥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 수명을 고려한다고 해도, 주거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한국에서 30~40년 후 지금 짓는 구조가 여전히 인기 있을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사진: 남기용
전시에선 지난 70년간 변화한 주택의 대표적인 구조를 3D 그래픽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1958년의 부흥주택은 석회 벽돌과 흙벽돌로, 1983년의 개포 아파트는 콘크리트 벽식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2002년의 타워 팰리스는 철제와 유리로 올린 건물입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집의 형태도 바뀌고, 짓고 부수면서 들이부은 콘크리트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지난 60년 동안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총 80억 톤에 달합니다. 시멘트 산업은 그보다 많은 양을 2년마다 쏟아 내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처럼 바다에 폐기물 섬이 생기는 것도, 고래나 갈매기의 뱃속에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어서 관심을 덜 받을 뿐입니다. 플라스틱 못지않게 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연간 28억 톤입니다. 콘크리트 산업을 하나의 국가로 가정하면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탄소 배출국이 될 정도죠. 콘크리트 생산엔 전 세계 공업용수의 약 10분의 1이 쓰이고, 그중 75퍼센트가 가뭄 지역이나 물 부족 지역에서 공급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는 석회로 만든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어 만듭니다. 형태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데 견고합니다. 도로, 건물, 공항과 항만, 댐까지 문명화된 삶의 근간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 이유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콘크리트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개발 이익 때문에 불필요한 곳에도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있다는 겁니다. 아파트를 계속 짓고 부수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요, 이건 더 큰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가 대량 사용되는 사회 기반 시설 건설 프로젝트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이 대표적이었죠.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건설사 사이에서는 유착 관계가 생깁니다. 점점 더 큰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불필요한 지역에도 도로와 다리, 댐 등을 건설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중국과 브라질도 이런 발전 모델을 따르고 있습니다. #관련 콘텐츠 읽기
 

3.5퍼센트에서 시작하는 움직임

©서울시립미술관/사진: 남기용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인간의 집을 보여 주는 전시 공간을 지나 걷다 보면 빙하가 녹는 소리가 들립니다. 극지연구소가 남극에서 촬영한 영상에선 얼음 사이에서 녹은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폭포로 착각할 만큼 생경하고 웅장하기까지 한 광경입니다.

기후 위기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무력감이 들 때도 많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보내는 일상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건 분명한데 바꿀 방법이 안 보여서겠죠. 나 하나 노력한다고 거대한 도시와 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전시를 함께 기획한 기후 시민 3.5 프로젝트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한 나라의 인구 3.5퍼센트가 행동하면 사회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연구를 근거로 ‘기후 시민’ 3.5퍼센트의 행동을 촉구하는 겁니다. 무력감에서 벗어나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시가 만들어진 방식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김혜진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이면지와 단색 인쇄, 잉크 소모가 적은 폰트를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전시장 한 면을 전부 차지하는 그래픽도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종이를 여러 장 이어붙여 만들어진 형태였습니다. 심지어 종이마다 색도 조금씩 다르고, 뒷면에 적힌 메모가 비치기도 했습니다. 전시장에 마련된 열람 공간에는 투박한 노트북 PC와 기종이 다른 태블릿 PC 등, 전시 관계자들이 가져온 쓰지 않는 기기들이 비치돼 있었습니다.

기후 위기의 실상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을 읽으신 뒤에는 일상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어떻게 큰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을지 떠올리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지금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지구에 대한 의무》《삶을 바꾸는 식탁》, 〈기후 위기의 얼굴〉과 함께 읽어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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