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아마존
 

6월 17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크리에이터 커머스가 쿨한 중고 거래 플랫폼을 품었다. Z세대의 아마존이 탄생할까.

©일러스트: 김지연 / 사진: 디팝
Z세대의 쿨한 중고 거래 플랫폼이 16억 달러에 팔립니다. 우리 돈으론 1조 7900억 원에 달합니다. 핸드메이드 전문 이커머스 플랫폼인 엣시(Etsy)가 영국의 소셜 중고 거래 플랫폼 디팝(Depop)을 인수합니다. 디팝은 중고 장터와 인스타그램을 합쳐놓은 것 같은 서비스입니다. 이용자들은 판매하는 옷 사진들로 피드를 꾸밉니다. 팔로워를 많이 모은 이용자는 인플루언서처럼 활동합니다. 꼭 중고 옷을 살 목적이 아니어도 패션에 영감을 받고 싶은 이용자들이 소셜 미디어처럼 둘러보는 플랫폼인 겁니다.

디팝의 주 이용자는 Z세대입니다. Z세대에게 중고 거래는 단순히 돈을 아끼거나,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영감을 받는 과정이자 지구를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힙’한 소비입니다. 핸드메이드 제품 마켓에서 출발한 이커머스 엣시는 디팝을 인수하면서 크리에이터 경제를 다음 세대로 확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디팝을 인수하려는 이유죠. 수공예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넘어, 스타일과 영향력을 만드는 Z세대 크리에이터를 포용하려는 겁니다. 엣시와 디팝은 크리에이터 경제에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빈티지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

©디팝
디팝 이용자의 90퍼센트는 26세 미만입니다. 그야말로 Z세대의 서비스인 거죠. 디팝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둘러보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힙스터’라고 할 만한 10~20대가 제각각 독특한 빈티지 스타일을 입고 있습니다. 디팝의 셀러들입니다. 디팝에선 약 200만 명의 셀러와 400만 명의 구매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입한 이용자는 2600만 명이 넘습니다.

디팝 앱을 사용해 보면, 중고 거래 장터보다는 소셜 미디어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처음 시작하면 계정을 만든 다음 마음에 드는 인플루언서들을 둘러보고 팔로우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을 선택하면 비슷한 스타일을 추천해 주는데요, 선택지도 Z세대스럽습니다. 스트리트웨어, 90년대 Y2K 스타일, 빈티지, 스포츠웨어, 독립 디자이너, 럭셔리 디자이너 등입니다. 디팝의 셀러들은 옷장에 있는 안 입는 옷을 파는 데서 시작해 빈티지 의류들을 직접 스타일링하고 모델까지 하면서 판매합니다. 이용자들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판매자와 직접 대화하면서 가격을 흥정하고, 페이팔을 이용해 결제하고 판매자가 보내주는 상품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Depop is not a platform. It’s a place.” 디팝은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단순히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독특한 스타일을 발견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2011년 설립된 디팝은 커머스가 아닌 커뮤니티에서 출발했습니다. 디팝 창립자 사이먼 베커만(Simon Beckerman)이 창간한 PIG 매거진의 독자들이 매거진에 나온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였죠. 그러다 거래 기능을 도입하면서 좋아하는 스타일을 팔로우하고, 친구와 취향을 공유하고, 제품 구매까지 할 수 있는 마켓이 됐습니다. 

디팝은 소셜 네트워크 같은 커머스, 커머스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걸로 보입니다. 디팝은 셀러들에게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에서 디팝 계정을 홍보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팝 계정 링크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는 것,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즈니스 계정으로 설정하는 것, 해시태그를 다는 방식, 커뮤니티를 만드는 법까지요. 인플루언서 셀러들과 함께 디팝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판데믹 이후 매출도 급증했습니다. 2020년 매출은 7000만 달러로 2019년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죠.
 

중고 거래는 쿨하게

©디팝
엣시는 디팝 인수를 통해 Z세대, 그리고 중고 거래 시장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Z세대에게 중고는 단순히 싼 물건이 아닙니다. 나만의 룩을 완성하게 해주는 힙한 아이템이자, 환경에도 긍정적인 가치 소비죠. Z세대를 기반으로 중고 거래 시장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스레드업, 포쉬마크 등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도 빠르게 성장해 올해 주식 시장에 상장하기도 했습니다.

Z세대가 중고 거래를 쿨하게 여기는 건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 때문입니다. 디팝과 베인앤컴퍼니가 발행한 리포트에 따르면 Z세대의 70퍼센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참여만으로도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팝에서 중고 옷을 둘러보고, 구입하는 것 자체가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구입하고 버리게 만드는 패스트 패션은 Z세대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디팝은 기후 위기 대응에 진심입니다. 중고 거래의 친환경적인 특성을 단순히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정성 역시 Z세대가 브랜드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죠. 디팝은 2021년 말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이용자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자세한 달성 방법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디팝에서의 거래로 발생하는 배송의 거리와 제품의 무게를 계산해서 탄소 배출량을 산출하고, 그만큼의 탄소 배출권을 구매하겠다고 설명합니다.

Z세대가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도 중고 거래가 인기를 얻는 이유입니다. 옷을 소장하는 게 아니라, 고르고 경험하고 스타일링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착장’을 한번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나면, 그 옷을 내가 계속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질 겁니다. 디팝 셀러들이 판매하는 빈티지 의류에는 희소한 제품이 많습니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나만의 색을 보여 주는 데 최적입니다. 게다가 디팝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중고 거래를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나 소셜 미디어 활동과 경계가 없어진 겁니다. ‘중고로 사야지’라고 다짐할 필요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구매하게 됩니다. 인플루언서의 포스팅을 보고,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수집하고, 물건을 구매하고 사는 경험이 매끄럽게 연결됐기 때문이죠.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의 경우 이용자의 80퍼센트가 MZ세대입니다. 당근마켓이 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번개 장터는 취향 소비에 집중합니다. 중고 거래가 취향에 따른 소비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번개장터의 거래액은 2019년 대비 2020년에 30퍼센트 성장했습니다. 중고 거래 증가와 함께 MZ세대 사이에서 중고가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스톤아일랜드, 아더에러, 아워레가시, 메종키츠네 등 개성이 뚜렷하지만 명품보다는 저렴한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들은 옷을 경험한 다음 되팔기도 좋다는 겁니다. 이런 명품들은 기존 명품들과 구분해서 신명품이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실제로 번개장터 이용자들의 패션 브랜드 검색어 순위에서는 스톤아일랜드, 아더에러, 아워레가시 등이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다음 세대의 크리에이터 경제

©디팝
엣시가 디팝을 통해 사려는 건 Z세대 그리고 커지는 중고 시장에 대한 접점입니다. 이걸 큰 틀에서 보면 다음 세대의 크리에이터 경제입니다. 2005년 창립한 엣시는 크리에이터 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공예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를 고객과 연결하는 것이 출발점이었죠. 초점은 아티스트였습니다. 철학과 신념을 담아 만든 제품을 판매한다는 점이 엣시의 차별점입니다.

엣시는 크리에이터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고객과 연결하는 데도 신경을 썼습니다. 초기에 빠른 성장세를 만든 방법입니다. 셀러들끼리 유대 관계를 쌓고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팀(Etsy Teams), 포럼(Etsy Forum) 등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했죠. 이런 특성은 엣시가 아마존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합니다. 아마존에는 없는 다양한 상품과 커뮤니티가 있었던 겁니다. 이걸 기반으로 2015년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상장했습니다.

엣시는 코로나 판데믹 기간 동안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주가는 96.4퍼센트 올랐죠. 현재 기업 가치는 211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러나 제품을 직접 만드는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한 엣시의 크리에이터 경제는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엣시 사용자 나이의 중앙값은 39세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나 그 윗세대가 핵심 고객입니다. 고객의 90퍼센트가 Z세대인 디팝과 대비되죠.

지금의 크리에이터는 다양한 제품을 큐레이션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드는 인플루언서들입니다. Z세대가 대부분이죠. 크리에이터 경제의 핵심이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아티스트에서 제품들을 큐레이션해서 스타일링하는 인플루언서로 옮겨 간 겁니다. 엣시는 여기에 배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엣시의 1조 8000억 원짜리 배팅이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겁니다. 마냥 밝은 미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온라인 커머스 시장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고, 월마트나 홈디포 같은 오프라인 기반 유통 업체들도 온라인 커머스를 견제하고 있죠. 미국 의회에선 아마존이나 이베이, 엣시 같은 플랫폼의 판매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하도록 규제하는 법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기업들과 홈디포 등 오프라인 기반 기업이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엣시가 계속 성장하려면 아마존과 이베이는 물론, 오프라인 유통 기업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셈입니다.

큰돈을 들여 Z세대와 중고 거래 시장에 배팅한 엣시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을 읽으면서 하신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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