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황제

6월 18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대부분 선진국과 달리 중국은 먼저 부유해지기도 전에 늙어가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730만 위안, 우리 돈 12억 8000만 원. 중국 영화계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지난 2013년 정부에 낸 벌금입니다. 당시 정책이었던 한 자녀 규정을 어기고 슬하에 2남 1녀의 자식을 뒀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람들 기억에서 잊혔던 이 사건이 얼마 전 다시 소환돼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장 감독의 부인 천팅이 SNS에 최근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이미 임무 완성(提前完成任务)”이라는 풍자성 글을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가 이제 세 자녀 출산을 허용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지난 5월 31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재한 회의에서 세 자녀 정책이 확정됐습니다. 2016년 한 자녀 규정을 폐지하고 두 자녀를 허용한 지 불과 5년 만입니다. 이번 결정은 인구 절벽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로 풀이됩니다.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인구 과잉이 아닌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지만, 중국의 인구 감소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일입니다. 다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게 문제죠.

지난 5월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중국 인구는 지난해 기준 14억 1178만 명입니다.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지만, 지난 10년간 인구 증가율이 0.53퍼센트로 1960년대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신생아는 1200만 명으로 2019년 1465만 명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역대 최저 수준입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계획 출산의 시작


중국의 인구 정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한 자녀 규정이 떠오르실 텐데요, 이는 오늘날 중국 인구 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 중국 인구는 5억 4000만 명 정도였습니다. 이때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적극적인 출산 장려책을 폅니다. ‘인구가 곧 국력’, ‘사람의 노력은 대자연도 이긴다’ 등의 구호 아래 피임약 수입과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즉, 다산이 곧 애국인 시기였습니다.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1961년 대약진 운동[1] 이후에는 베이비붐이 일었습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연평균 신생아 수가 2669만 명을 기록했는데 다시 말해 10년 동안 무려 3억 명의 인구가 늘어난 셈입니다.[2] 덩샤오핑이 집권한 1978년 중국 인구가 약 10억 명에 달하면서 지나친 인구 증가세가 사회 발전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크게 퍼졌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등 부족한 사회 인프라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중국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아 제한 정책을 시행합니다. 1980년에는 혼인법을 바꿔 만혼과 늦은 출산을 장려했고, 그로부터 2년 뒤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기본 국책으로 지정해 전국적으로 시행했습니다. 규정을 어기면 많게는 연간 소득의 8~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사회 부양비 명목으로 부과했고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집을 철거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비인권적인 낙태와 유기 등의 부작용이 만연하게 됩니다.
 

한 자녀 정책이 남긴 것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 아래 태어난 아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헤이하이즈(黑孩子‧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호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헤이하이즈는 사실상 사회에서 버려진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서류상 없는 사람이니 학교에 갈 수 없고 의료나 주택 등 기본적인 사회 보장 제도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입니다. 2015년 중국 정부는 1300만 명이 넘는 헤이하이즈에게 호적을 부여해 구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지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여전히 없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샤오황디(小皇帝·소황제)입니다. 대부분 도시에서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란 외동아이를 의미합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각종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게 ‘421’입니다. 친‧외가 조부모 4명과 부모 2명이 1명의 아이를 금지옥엽 기르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풍요로운 경제적 지원 속에서 자라 다소 이기적이고 씀씀이가 헤프다는 샤오황디는 어느덧 조부모와 부모 여섯 명을 봉양해야 하는 사회 주류 계층이 됐습니다.

헤이하이즈, 샤오황디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링허우(80后,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라는 겁니다. 주목할 점은 바링허우 이후 세대에서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나타납니다.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있던 중국에서 한 자녀만 낳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성 감별과 낙태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80년부터 2014년까지 출생한 신생아 가운데 남성이 여성보다 4000만 명 많고 바링허우의 미혼 남녀 비율은 136대 100에 달했습니다.
 

인구 보너스에서 인구 오너스의 시대로

30년 넘는 엄격한 산아 제한 정책으로 인구 통제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중국은 이내 복병을 맞이합니다. 인구 증가율 감소, 고령화 가속화, 생산 가능 인구[3] 감소 등 인구 왜곡 현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난 겁니다. 2000년대에 접어 들어 인구 감소는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됩니다. 2011년 발표된 인구 조사 결과 중국의 합계 출산율[4]은 1.4까지 떨어졌고, 이에 따라 2025년부터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처음 제기됐습니다.

이 중에서 생산 가능 인구의 급감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고속성장을 이뤄온 인구 배당 효과 이른바 ‘인구 보너스(bonus)’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3년 10억 582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중국 생산 가능 인구수는 이후 계속해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줄면서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인구 오너스(onus)’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인도가 중국을 대신해 세계의 공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인도는 여전히 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무엇보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중국과 달리 청년층 즉,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다시 한번 인구 보너스를 얻기 위해 2016년 한 자녀 정책을 폐지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없었습니다. 내수를 키우고 자국 시장을 열어 미국과 패권을 다투겠다는 시 주석의 ‘쌍순환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차라리 드러눕자


심각성을 인지한 중국 정부의 야심 찬 새 인구 정책에도 단기간 내 출산율 반등은 힘들어 보입니다. 이전과는 시대가, 정책의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5년 만에 세 자녀로 산아 정책을 완화한 게 방증입니다. 이번 발표 이후 웨이보 등 중국 SNS에는 부정적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세 자녀 출산을 고려하는지 묻는 온라인 설문에는 30분 만에 3만여 명이 몰렸는데 이들 가운데 90퍼센트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설문 결과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중국인들이 세 자녀 정책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앞서 일본이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청년들의 취업, 주거, 육아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녀 교육비와 노인 부양비는 중국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입니다. 여기에 헤이하이즈는 여전히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살기 어렵습니다. 고학력에 직장을 구한 샤오황디는 어려서부터 누려온 자유와 풍요로움을 버리고 노인 넷에 아이 셋을 부양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세 자녀 정책 발표 이후 오히려 정부에 반감이 커진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최근 당평(躺平, 평평하게 드러누워 살자는 의미) 운동이 유행입니다. 한 달에 200위안(3만 5000원)으로 하루 두 끼를 먹으며 일하지 않고 산다는 어느 네티즌 이야기가 시작이었습니다. 막막한 현실에서 자포자기하면 편하다는 속내가 담긴 이 운동에 청년들이 열광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SNS 검색 금지, 토론방 폐쇄 등 강도 높게 제재하고 있지만, 관련 이미지와 밈은 여전히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인구 패권 전쟁

“대부분 선진국과 달리 중국은 먼저 부유해지기도 전에 늙어가고 있다.” 로스 두댓 《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가 지난해 지적한 내용입니다. 노인 인구를 부양할 충분한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제 막 1인당 국내 총생산(GDP) 1만 달러를 넘긴 중국에는 그럴만한 재원이 없다는 겁니다. 두댓은 또 인구 감소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중국의 경우는 특히 유별나다고 꼬집었습니다. 전 근대적인 잔인한 인구 정책이 문제를 더 키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인구 감소가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용이 줄어드는 시대에 인구 감소는 자연적인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낙관론자들은 인구 감소에 수반되는 경제 위기 역시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며, 오히려 생산성을 증대해 궁극적으로는 노동과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모든 사회 문제가 인구 과잉에서 비롯됐던 중국은 여태껏 경험한 적 없는 인구 절벽 해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적정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출산율 제고와 더불어 최근 이민 제한 정책을 완화하는 미국 모습에 중국의 조급함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인구가 이미 지난해에 14억 명 아래로 내려갔다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정부가 나서 반박하고, 당초 올해 4월 예정이었던 인구 조사 결과 발표를 한 달 가까이 미룬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강력한 무기인 풍만한 인구를 중국은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요?

6월 18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집니다. 이번 주제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 주세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중국의 쌍순환 전략》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내수 시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국 기업에 문을 여는 중국 새 경제 정책을 통해 미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1]
1958년부터 1960년 초 사이에 일어난 중국 정부 주도의 경제  고도 성장 운동. 비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지방 지도자들의 허위 보고 등으로 실패로 끝났다. 이 기간에 대기근으로 수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2]
제주발전연구원, 〈중국 두 자녀 인구 정책〉, 2015. 12. 7
[3]
경제 활동이 가능한 만 15세부터 64세까지의 인구. 위 그래프는 15세부터 59세까지의 중국 생산 가능 인구를 나타냈다.
[4]
한 여성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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