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주주의의 선젊포고
 

6월 21일 -데일리 북저널리즘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 캐릭터들이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밈주주의로 무장한 MZ세대의 선젊포고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이미지: 뉴웨이즈
“젊치인이 오면 깨워 주세요.”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드러누웠습니다. 물론 온라인으로요. 젊은 정치인 발굴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단체 뉴웨이즈가 지난 6월 16일 시작한 ‘누울 자리 캠페인’입니다. 젊은 정치인들에게 누울 자리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죠. 뉴웨이즈가 제공하는 페이지에 접속해서 다양한 누운 자세의 캐릭터를 선택하고 돗자리 모양, 문구, 소품까지 고르면 ‘눕기’가 완료됩니다. 누워 있는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고요. 뉴웨이즈의 페이지에 참여한 사람은 20일 기준으로 1300명이 넘습니다. 커스텀한 이미지를 저장한 뒤 인스타그램에 국회의사당 장소 태그를 달아 올리면 진짜 국회의사당 앞에 누운 셈이 됩니다. 100명이 넘는 이용자가 ‘젊치인이 오면 깨워 주세요’ ‘30대 대통령 외 않돼?’ ‘정치의 얼굴을 다양하게’ 같은 문구를 달고 잔디밭에 누운 캐릭터를 국회의사당 장소 태그에 올렸습니다. 포스팅에 달린 해시태그는 이렇습니다. #야눕자 #여의어때 #선젊포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핵심은 밈(meme)입니다. 밈은 재밌고, 새로운 의미를 담아 변형하기 쉽고, 그래서 참여하고 싶은 요소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정당의 구호나 정치인의 목소리보다 공감 가고, 내 일처럼 느껴지죠. 밈의 힘은 이미 문화나 경제적 영역에선 검증됐습니다. 비의 〈깡〉 열풍이 그룹 싹쓰리의 음원 차트 성과로 이어진 것, 밈에서 시작한 도지코인이 시가 총액 39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치 영역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젊음은 다양성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한다. 뉴웨이즈의 가상 세계 캠페인은 이 말에서 시작했습니다. 젊은 정치인에게는 선거에 출마할 기회나 자원 등 기반이 부족한데요, 기성 정치가 만들어 줄 수 없다면 MZ세대의 힘을 모아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뉴웨이즈는 정당 밖에서 초당파적으로 활동합니다. 젊은 정치인 늘리기라는 목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은 뒤, 그 영향력으로 젊은 후보들을 만들고 실제로 당선되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발굴부터 공천, 선거까지 지원하겠다는 거죠. 목표는 2022년 지방 선거에서 40대 미만 정치인을 20퍼센트로 늘리는 겁니다.

젊은 정치인은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만 36세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 대표 당선이 대표적이었죠.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는 대변하지 않는다는 지적, 나이가 젊다고 개혁인 것은 아니라는 비판도 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도 이준석 대표가 기성 정치권이 짚어 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회 이슈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40대 이상 정치인과는 다른, 30대 남성으로서의 관점인 겁니다. 한편 최근 민주당을 중심으로는 대통령 출마자의 나이를 만 40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는 헌법 조항을 폐지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나이가 대통령의 자격 요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뉴웨이즈는 정치인이 젊어져야 하는 이유는 다양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박혜민 대표는 정치는 여럿이 하는 일이고, 다양한 관점과 우선순위를 가진 정치인들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젊은 정치인의 우선순위는 기성 정치와 다릅니다. 만 28세인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타투 시술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타투업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지난 6월 16일엔 타투 스티커를 붙인 등이 보이는 옷을 입고 국회 앞에서 타투업 합법화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가하다’는 비판도 나왔죠. 그러나 류호정 의원은 타투를 업으로 삼는 타투이스트나 타투를 해본 사람들에겐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메이크업, 패션처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기본권이라는 겁니다. 확실히 기성 세대와는 다른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있죠.
 

재미있으면 ‘외 않돼?’


새로운 세대에게는 정치의 엄숙함보다 사람들을 집결하는 힘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세계에 드러눕고, ‘30대 대통령 외 않돼’냐고 맞춤법이 틀린 밈을 활용한 구호를 쓰는 행동이 진지한 정치적 표현인 이유입니다. 누울 자리 캠페인을 기획한 뉴웨이즈의 곽민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를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캠페인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내년 지방선거까지 1년 정도가 남았어요. 지금은 각 정당에서 어떤 후보들을 내보낼지에 관한 전략을 짜는 시기입니다. 젊치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각 정당에서 젊은 후보에게 기회와 자원을 마련해 줘야 해요. 그런데 현재 구조는 지역의 당협위원장이 자신의 국회의원 선거에 도움을 줄 만한 이들을 후보자로 정하는 식입니다. 이런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는 관점에서 시작했어요. 처음엔 공천 과정을 더 명확히 이야기하는 방식을 생각했는데, 그러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20, 30대가 의사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재미가 우선순위였나 봐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정치권에서 호응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꼭 필요하니까 서명하세요’라고 주입하는 방식보다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만들고 싶기도 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눕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피드에 올리고 싶도록 이미지를 만들었죠.

이번 캠페인이 《조선일보》에도 소개됐더라고요. 그런데 문구로 쓴 ‘외 않돼’의 맞춤법을 지적하는 댓글이 눈에 띄었어요. 어떤 부분에서 진지하고, 어떤 부분에서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외 않돼’는 우리한텐 자주 쓰는 밈이잖아요. (웃음)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보다는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잖아요. 재미있고, 대화하고 싶은 파트너로서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대신 참여 방식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게 했어요. 지금껏 정치는 정당이 얼마나 잘했는지, 정치인이 얼마나 훌륭한지, 우리 편이라면 어때야 하는지를 주로 말해 왔어요. 이번 캠페인에선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참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눕고 싶은 모습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거요. 뉴웨이즈의 메시지가 당위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게 참여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고 말하면서 유행하는 코드를 차용하기만 하는 건 젊은 층을 애들 취급하는 거라고 느껴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하는데 말이죠.

나아갈 방향을 생산적으로 고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치를 기대하게 만들어야 해요. 저희도 ‘지금 정치인들 너무 낡았어’라고 말하면서 정치에 대한 피로감을 유발하는 걸 경계했어요. 젊치인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 다양한 의사 결정권자를 통해 다양한 관점과 우선순위가 토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이준석 대표가 당선됐을 때도 이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이준석이 좋은 정치인인지 왈가왈부하는 논의가 많지만, 한 명 한 명의 자격을 따지는 데에 집중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질문은 소수자만 받으니까요. 그래서 이준석 대표처럼 젊은 정치인으로서 리더급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든 정당을 통틀어 보여 주기로 했어요. 재보궐 선거 때도 서울시장 후보가 10년 전에도 나왔던 인물들이었잖아요. 거기에 무력감을 느끼기보다는 선거에 출마한 젊치인 후보들을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보궐 선거에 나온 11명의 젊치인을 인터뷰했고요.

젊치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프로듀스 101〉에 비유하더라고요. 팬덤 활동과 정치의 공통점은 뭘까요?

그동안 우리는 투표 용지에 올라온 후보 중 몇 번을 고를지만 이야기했지, 누구를 후보로 만들지 고민해 본 적은 없었잖아요. 〈프로듀스 101〉도 이미 데뷔한 아이돌 중에 고르지 말고, 원하는 스타를 선택하라는 콘셉트였어요. 주체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요즘 팬들은 맹목적인 팬심을 보내기보다는 ‘내 스타는 이래야 해’라는 생각을 갖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잖아요. 뉴웨이즈도 원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만들어 보자는 관점에서 접근했어요. 젊치인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잡 디스크립션’도 우리를 지지하는 캐스팅 매니저들과 함께 만들었고요.

사람들을 정치 활동에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는 뭘까요? 재미일까요? 아니면 멋있어 보이는 걸까요?

MZ세대가 가치 소비, 온라인 챌린지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 내 삶에 가까운 요소라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는 목소리라는 게 큰 특징인 거 같아요. ‘공천이 문제다’, ‘정치가 바뀌어야 나라가 산다’ 식으로 접근하는 것과 ‘나와 닮은 정치인을 보고 싶지 않냐’고 설득하는 방향은 전혀 달라요. 나와 가까운 일로 느껴야 하는 거죠.

이번 캠페인은 흥미로운데, 어떻게 실질적인 변화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캠페인의 결과값을 가지고 각 정당을 만날 거예요. 젊은 정치인이 등장하려면 실질적인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니까요. 젊은 정치인이 가진 기회와 자원을 어떻게 넓힐 건지 약속을 받고 싶어요. 그걸 아카이브해서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팔로우 업도 가능해요. 정당들은 매년 선거 때마다 청년 공천을 30퍼센트, 50퍼센트씩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지키지 않았어요. 이번엔 어떻게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 건지 계획을 받아내고, 추적하려고 합니다.
 

밈의 힘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한 이용자들 ©닷페이스
밈은 단순히 웃기는 영상이나 유행어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기꺼이 에너지를 들여 만든 결과물을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재미에 가깝죠. SNS에서 자발적으로 밈을 만들고 재생산해 퍼뜨리는 사람들은 그런 흐름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를 즐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 뛰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재밌어서 참여합니다. 무엇이 밈이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밈이 된 것들은 모두 엄청나게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냈죠. 그만큼 파급력도 큽니다.

밈의 파급력은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시민의 참여입니다. 빠르게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밈은 민주주의에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무기한 연기되자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를 기획했습니다. 닷페이스에서 제공하는 페이지에서 캐릭터를 고르고, 깃발이나 탈것 등 아이템까지 추가해 자신만의 아바타를 만든 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방식입니다. 도로 모양의 배경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 실제 퀴어 퍼레이드를 재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해 이 이벤트엔 13일 동안 8만 6000명이 참가했습니다.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에는 2만 3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습니다. 닷페이스는 올해도 오는 24일부터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차용한 시위에서 마법 지팡이 대신 젓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태국 반정부 시위대 ©Lauren DeCicca/Getty Images
밈에서 정치적 동력을 얻는 건 다른 국가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지난해 태국 반정부 민주화 시위에서는 세 손가락 경례가 상징으로 사용됐는데, 영화 〈헝거 게임〉에서 유래한 손동작입니다. 정부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이 동작은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태국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는 MZ세대는 〈해리 포터〉 시리즈, 애니매이션 캐릭터 햄토리 등 대중문화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합니다. 마법사 복장을 하고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마법사라고 칭하고, 시위에서 햄토리의 주제가 가사를 바꿔 정부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는 식입니다.

알렉세이 나발니 수감으로 촉발된 러시아 반정부 시위의 상징은 황금색 변기 솔입니다. 나발니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숨겨 놓은 호화 궁전에 개당 700유로 상당의 황금 변기 솔이 있다고 주장한 데서 착안한 겁니다. 황금 변기 솔은 트위터 등 SNS에서 푸틴 대통령과 합성되어 밈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밈주주의는 어디로 향하는가


밈은 정치적 의제에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입니다. 세계는 소셜 미디어로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판데믹 이후엔 오히려 더 소셜 미디어의 세계가 진짜 세계와 구분이 없어졌죠. 《이코노미스트》는 밈이 된 미국의 정치적 의제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이 흑인이 매우 소수인 한국, 흑인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는 나이지리아에까지 퍼진 것이 대표적입니다. 영국에선 경찰이 총기를 소지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벌어진 시위의 구호인 ‘경찰의 무장을 해제하라’는 팻말이 등장했죠. 큐아넌(QAnon) 같은 음모론도 프랑스, 독일, 문화가 전혀 다른 일본에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반면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세계의 공감은 일으켰지만, 다른 나라들에서 같은 의제를 내세운 시위가 일어나지는 못했죠. 밈의 흐름에 문화적 위계가 있는 겁니다.

밈의 영향력은 점점 확장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회나 기업, 정치인의 모습을 그리고 말하는 데 익숙한 동시에 나와 가까운 것,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MZ세대가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죠. 커지는 영향력을 어떻게 조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선 ‘젊치인’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표출하는 방식에서 민주주의의 밈(meme)화를 읽어 봤습니다.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지금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밈주주의의 시대〉, 뉴웨이즈 팀 인터뷰, 《팬덤 3.0》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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