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탄압

6월 22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중국이 오늘 《빈과일보》를 폐간하더라도 홍콩은 내일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홍콩 《빈과일보》를 지지하는 항의 시위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Photo by May James/SOPA Images/LightRocket via Getty Images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신문 가판대 앞에 마스크를 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 매체 《빈과일보(蘋果日報)》를 구매하러 나온 것입니다. 지난 18일, 평소보다 4배나 더 많이 찍어낸 신문은 50만 부 전체가 다 팔렸습니다. 시민들은 왜 굳이 이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신문을 사러 나온 것일까요?

홍콩 경찰은 최근 《빈과일보》 편집국장을 비롯한 고위관계자 5명을 체포했습니다. 경찰 500명을 투입해 사옥을 압수 수색하고 44대의 컴퓨터와 취재 자료를 모조리 가져갔습니다. 26억 원 상당의 신문사 자산도 동결했습니다. 경찰은 “홍콩보안법상 외세와 결탁한 혐의”라고 설명했습니다. “2019년부터 30여 건의 기사를 통해 홍콩과 중국 정부에 대해 제재를 부과할 것을 외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반중(反中) 세력이 모이는 것을 막아라

창간 26주년을 맞이한 《빈과일보》를 한 독자가 사고 있다. ©Photographer: Kyle Lam/Bloomberg via Getty Images
오는 30일이면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됩니다. 하루 뒤인 7월 1일은 홍콩 주권 반환일입니다. 홍콩 당국을 비롯해 홍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이 시기, 민주 진영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릴 것을 경계합니다. 반중 정서를 가진 군중이 모여 정부에 부담이 되는 큰 폭발력을 가지게 될까 봐 꺼리는 것입니다. 홍콩 경찰은 민주 진영의 집회 신청을 모두 불허했습니다. 특히 《빈과일보》는 이런 민주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반중 매체인만큼 '언론 탄압'이라는 비난에도 본보기 삼아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사주인 지미 라이는 이미 2년 전 불법 집회 조직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입니다. 사주와 운영진이 모두 체포되며 사실상 초토화됐지만, 일각에선 홍콩 당국이 《빈과일보》를 폐간 조치까지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 진영에 대한 탄압은 지난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한 이후 더욱 노골화됐습니다.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의 결탁 등 4개 범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의 처벌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안법으로 배수진을 치고 민주 진영 인사들의 활동을 옥죄는 것입니다. 올해 초에도 경찰은 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 진영 인사 50여 명을 한꺼번에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인사로는 우치아이 전 주석과 앤드루 완 전 부주석, 홍콩 제1야당 민주당 인사 등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들이 체포된 것은 홍콩이 이제 "철저히 중국 공산당의 통치 아래로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 정부에 반하는 의견은 모두 처벌로 이어진다는 것을 민주 진영을 초토화 함으로써 보여 준 것입니다.
 

쏟아지는 비판에도 “간섭 말라”

G7 정상회담 첫날, 영국 콘월 해변에서 사진 촬영 중인 각국 정상들 ©Photographer: Hollie Adams/Bloomberg via Getty Images
국제 사회는 중국과 홍콩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지난 13일, 영국 콘월에서 정상 회담을 연 G7은 민주화 세력 탄압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미 국무부도 따로 입장을 냈습니다. “《빈과일보》 운영진 체포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독립적 언론 기관을 표적으로 삼기 위해 보안법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인데요, 중국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작은 그룹(G7)의 나라들이 글로벌 결정을 지시하는 시기는 오래전에 지났다”며 “사이비 다자주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미국을 향해서도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사회는 안정을 되찾고 법치와 정치가 신장됐다”며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권리와 자유는 국가 안보를 넘어설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남의 집안일에 간섭 말고 정당한 법 집행을 존중하라는 겁니다.
 

“교묘한 방식으로 검열이 더 강화될 것”

지난해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며 집회 중인 홍콩의 젊은 시위자들 ©Photographer: Hollie Adams/Bloomberg via Getty Images
홍콩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지금은 한국에서 유학 중인 홍콩인 A씨와 《빈과일보》 사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A씨는 홍콩 민주화를 위한 한국 내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것을 우려해 이름과 나이를 밝히지 말아 달라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반중(反中)’ 성향이라는 이유로 언론사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빈과일보》가 중국 정부의 언론 탄압 표적이 된 상황이 너무나 슬픕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빈과일보》의 논조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홍콩 현지 언론 환경에서 필요한, 중요한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빈과일보》뿐만 아니라 언론을 탄압하는 현지 분위기를 직접 전해 들으면 상황이 훨씬 심각할 것 같습니다. 홍콩보안법이 생기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다면?

보안법 시행 전에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제 주변 사람 대부분이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또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요. 안보법이 발효된 이후에는 그런 움직임이 감소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에 대해 신중해진 분위기였어요. 아무래도 저는 한국에 머물고 있어서 현지의 자세한 일상 변화는 언급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올해 톈안먼 32주년 추모만 봐도 사람들이 저항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확신합니다.

《빈과일보》를 수사하는 이유로 ‘가짜 뉴스와의 전쟁’, ‘체제 전복적 조직’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던데 타당한 근거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말이 안 됩니다. 신문을 폐간하고 편집장을 비롯해 운영진을 잡아들이기 위한 트집을 중국 정부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빈과일보》는 민주주의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매체이고, 2019년 홍콩 시민들의 저항을 이끈 주역인데 가짜 뉴스라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시민들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시민들이 나서서 《빈과일보》 신문을 전부 사들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던데, 언론 탄압을 멈추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빈과일보》에서도 시민들의 지원이 그저 상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신문사 자산도 동결시켰고, 언론 탄압을 멈추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검열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빈과일보》 운영진 구속은 눈에 보이는 탄압이지만, 앞으로는 보이지 않는 억압이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민들이 신문을 구매하며 저항하는 행위는 보안법 시행 이후 시위 활동이 줄어든 것을 감안할 때 매우 용기 있고 중요한 행동입니다. 이런 움직임들이 모여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2019년 민주화 시위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가 홍콩 시민들의 저항이 여전하다는 것을 인지해 더 억압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국제 사회의 비판과 문제 제기가 중국 정부에 압박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마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최근 G7이 모여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중국의 반응은 냉담했어요. 국제적 비판에 대한 답변이라고 봅니다. 물론, 중국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일정 부분 영향은 끼치겠지만, 홍콩의 민주화에 진정성 있는 도움이 될지는 회의적입니다.

중국 정부의 언론 탄압, 앞으로 더 심해질까요?

이미 상당히 나쁜 상황이지만, 더 나빠질 거라고 봅니다. 중국 정부는 주요 매체를 사들이거나,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찾을 것입니다. 《빈과일보》의 사례는 처벌 수위가 셌지만, 그보다 조금 약하게 통제하는 방법 마련에도 나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6월 22일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제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지금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판을 흔드는 자기 합리화》, 《용의 습격》과 함께 읽어 보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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