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최근까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2018년 4조 3476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9년 7조 1407억 원으로 뛰었고, 2020년엔 13조 3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각각 전년도의 60퍼센트, 80퍼센트 이상씩 성장한 겁니다. 성장 동력은 물류 혁신입니다. 오늘 주문하면 다음 날 낮에 도착하는 로켓배송, 새벽에 도착하는 로켓프레시가 핵심이죠.
CNBC는 쿠팡을 50대 혁신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김범석 창업자가 ‘긴 시간 일하고, 도시에 밀집해 사는 한국에 필요한 배달 서비스의 기회를 포착했다’고
평가합니다. CNBC가 본 것처럼 쿠팡이 이룬 혁신은 빠른 배송을 위한 물류 기술입니다. 화재가 발생하고, 과로사한 노동자들이 일한 곳 역시 물류센터였습니다.
화재 이전에도 로켓배송 이면의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돼 왔습니다. 1년 4개월간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한 고(故) 장덕준씨는 지난 10월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 자택에서 쓰러져 숨졌습니다. 장씨의 죽음은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습니다. 유족은 쿠팡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주요 원인이 된 야간 노동을 최소화하고, 특수 건강 검진 등을 시행하라는 겁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노동자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지난 1년간 9명에 달합니다.
오늘 저녁 주문한 물건을 내일 배달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야간에 일합니다. 야간 근무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2급 발암 물질’입니다. 밤에는 사고 위험도 높아집니다. 《노동리뷰》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야간 노동자들은 보통 밤 10시에서 오전 7~8시까지 일합니다. 여기엔 휴식 1시간과 추가 근로 1시간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물건을 분류하고, 많게는 100~200개의 상품 배달을 마쳐야 합니다. 주 5일 근무하되 휴무일은 회사와 조율해 정합니다. 일이 힘들어 이틀을 붙여 쉬기보다는 하루씩 쉬는 노동자가 많습니다. 기본급에 야간 수당, 식대, 성과급을 더한 월 급여는 세전 250~390만 원입니다. 비정규직이나 처음 일하는 노동자는 사실상 법정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합니다. 야간 배송의 경우 일이 힘들고 생활 패턴이 무너져 1년 이상 일을 지속하는 노동자가 드물었습니다.
쿠팡 없이도 살 수 있는데요
#쿠팡탈퇴 해시태그를 달고 탈퇴 화면을 찍어 올리는 소비자들은 ‘로켓배송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김범석 창업자의
미션에 반기를 드는 거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만 가능한 서비스라면, 차라리 이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기업에는 불매 의사를 표하고, 견제합니다. 이런 사안을 화두로 만들고, 다른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끄는 데도 능숙하죠. 소비자 행동주의, 가치 소비 등의 키워드로 표현되는 트렌드입니다. ESG가 새로운 투자의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이제 가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로켓배송 이면의 노동 문제는 실제로 쿠팡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쿠팡이 지향하는 모델은 아마존입니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이죠. 미국 시장에서 아마존의 점유율은 39퍼센트에 달합니다. 쿠팡의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아직
13퍼센트입니다. 한참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용자가 쿠팡을 이용해야 합니다. 서비스의 핵심인 로켓배송에 ‘나쁜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생기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쿠팡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적자입니다. 미래를 보고 물류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에 생긴 의도된 적자죠. 쿠팡 입장에선 더 성장하고,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시점에 소비자들은 쿠팡의 혁신이 정말 옳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쿠팡은 리스크를 극복하고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혁신의 문법을 고칠 수 있을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을 읽으면서 하신 생각을 댓글로 달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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