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쿠팡
 

6월 23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쿠팡에 불이 났다. 탈퇴 운동까지 확산하고 있다. 쿠팡의 혁신 모델인 로켓배송은 리스크가 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고속 성장하던 쿠팡이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탈퇴 운동을 맞닥뜨렸습니다. 소비자들은 빠르고 편한 로켓배송 이면의 노동 환경을 비판합니다. 사고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지난 1년 동안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것으로 알려진 노동자는 9명에 달합니다. 6월 17일에는 이천시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면적 12만 7000제곱미터 규모의 물류센터 건물이 사실상 전소됐습니다. 직원들은 대피했지만, 화재를 진화하던 소방관 한 명이 순직했습니다. 발화 지점은 에어컨이 없는 물류 창고 내에서 선풍기를 사용하기 위해 연결한 멀티탭으로 추정됩니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앞세운 물류 혁신으로 성장했습니다. ‘의도된 적자’를 감수하면서 물류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그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올해 뉴욕 증시에도 상장했죠. 성장 원동력이었던 물류 혁신은 리스크로 바뀌고 있습니다. 잇따른 사고와 책임 회피로 혁신 이면의 노동 현실을 지적하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책임 있는 경영을 강조하는 사회 흐름을 감안하면 리스크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쿠팡의 모델은 아마존입니다. 절대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죠.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빠르게 성장해 왔지만, 노동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장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기업인 듯 대기업 아닌 규제 회피

부천의 쿠팡 물류센터 ©SeongJoon Cho/Bloomberg via Getty Images
화재가 일어난 덕평 물류센터는 쿠팡의 3대 물류센터로 꼽힙니다. 연면적 기준으로 축구장 15개보다 큰 규모입니다. 화재는 진화 작업이 엿새째 이어질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박스, 비닐 등 가연성 물질이 많은 데다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선반에 물품이 가득 적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화재로 피해를 입은 적재물은 1620만 개에 달합니다. 물류 창고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멀티탭으로 선풍기를 연결해 사용해 왔습니다. 

쿠팡 측이 평소 안전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화재는 발생 6일 만인 22일에야 완전히 진압됐고, 화재 원인이나 쿠팡의 과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제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목격자들은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대피 지시가 없었고, 연기가 피어오른 지 20분 뒤에야 신고가 이루어졌다고 경찰과 소방당국에 진술했습니다. 평소 경보기 오작동이 잦아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자신을 당일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노동자라고 소개한 시민의 제보가 올라왔습니다. 최초 신고자보다 10분 빨리 화재를 발견하고 보안 요원에게 알렸지만, 믿지 않고 묵살했다는 겁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할 때 휴대전화를 반납합니다. 무전기와 휴대전화를 가진 보안요원이 제때 대응하지 않아 신고가 늦어졌다는 지적입니다.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에 제대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쿠팡은 화재 당일, 창업자인 김범석 전 의장의 등기 임원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실제 사임은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쿠팡은 화재 당일 사임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와 어쩔 수 없이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발표 시점과 별개로 소비자들은 이런 행보가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부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됩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사업주가 안전 확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즉, 김범석 창업자가 계속 의장 자리를 지켰다면 내년부터는 쿠팡 측 부주의로 물류센터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영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런 위험을 피한 셈입니다. 현재 한국 쿠팡의 법적 최고 책임자는 강한승 대표입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죠.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기엔 제격인 인물입니다. 취임할 때도 규제 리스크를 의식해 기용한 대관 전문 인사라는 평이 나왔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지 3일 뒤에 나온 쿠팡 측 공식 사과도 강한승 대표 명의였습니다.

이런 행보는 대기업식 규제 회피로 해석됩니다. 지배 주주로서 권한은 행사하고, 경영상 법적 책임은 회피하기 위해 대기업이 자주 쓰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업 분석 기관인 한국CXO가 지난 5월 국내 200대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수급 지배 주주 200명 중 상장사의 등기 임원이 아닌 경우는 54명에 달했습니다.

한편, 쿠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규제는 피했습니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쿠팡을 대기업 집단에 포함시켰습니다. 대기업 집단이 되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대한 규제, 대규모 내부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깁니다. 그런데 쿠팡은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됐습니다. 공정위는 김범석 전 의장이 아니라 ㈜쿠팡을 동일인(총수)으로 봤습니다. 김범석 전 의장이 주식과 의결권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쿠팡을 지배하고 있음은 인정했지만, 외국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사례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범석 전 의장은 미국 국적입니다. 총수가 외국인인 경우 실질적으로 형사 처벌이 어렵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 등도 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혁신의 이면

김범석 쿠팡Inc 대표 ©Kyle Grillot/Bloomberg via Getty Images
쿠팡은 최근까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2018년 4조 3476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9년 7조 1407억 원으로 뛰었고, 2020년엔 13조 3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각각 전년도의 60퍼센트, 80퍼센트 이상씩 성장한 겁니다. 성장 동력은 물류 혁신입니다. 오늘 주문하면 다음 날 낮에 도착하는 로켓배송, 새벽에 도착하는 로켓프레시가 핵심이죠.

CNBC는 쿠팡을 50대 혁신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김범석 창업자가 ‘긴 시간 일하고, 도시에 밀집해 사는 한국에 필요한 배달 서비스의 기회를 포착했다’고 평가합니다. CNBC가 본 것처럼 쿠팡이 이룬 혁신은 빠른 배송을 위한 물류 기술입니다. 화재가 발생하고, 과로사한 노동자들이 일한 곳 역시 물류센터였습니다.

화재 이전에도 로켓배송 이면의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돼 왔습니다. 1년 4개월간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한 고(故) 장덕준씨는 지난 10월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 자택에서 쓰러져 숨졌습니다. 장씨의 죽음은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습니다. 유족은 쿠팡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주요 원인이 된 야간 노동을 최소화하고, 특수 건강 검진 등을 시행하라는 겁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노동자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지난 1년간 9명에 달합니다.

오늘 저녁 주문한 물건을 내일 배달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야간에 일합니다. 야간 근무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2급 발암 물질’입니다. 밤에는 사고 위험도 높아집니다. 《노동리뷰》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야간 노동자들은 보통 밤 10시에서 오전 7~8시까지 일합니다. 여기엔 휴식 1시간과 추가 근로 1시간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물건을 분류하고, 많게는 100~200개의 상품 배달을 마쳐야 합니다. 주 5일 근무하되 휴무일은 회사와 조율해 정합니다. 일이 힘들어 이틀을 붙여 쉬기보다는 하루씩 쉬는 노동자가 많습니다. 기본급에 야간 수당, 식대, 성과급을 더한 월 급여는 세전 250~390만 원입니다. 비정규직이나 처음 일하는 노동자는 사실상 법정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합니다. 야간 배송의 경우 일이 힘들고 생활 패턴이 무너져 1년 이상 일을 지속하는 노동자가 드물었습니다.
 

쿠팡 없이도 살 수 있는데요


#쿠팡탈퇴 해시태그를 달고 탈퇴 화면을 찍어 올리는 소비자들은 ‘로켓배송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김범석 창업자의 미션에 반기를 드는 거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만 가능한 서비스라면, 차라리 이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기업에는 불매 의사를 표하고, 견제합니다. 이런 사안을 화두로 만들고, 다른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끄는 데도 능숙하죠. 소비자 행동주의, 가치 소비 등의 키워드로 표현되는 트렌드입니다. ESG가 새로운 투자의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이제 가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로켓배송 이면의 노동 문제는 실제로 쿠팡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쿠팡이 지향하는 모델은 아마존입니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이죠. 미국 시장에서 아마존의 점유율은 39퍼센트에 달합니다. 쿠팡의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아직 13퍼센트입니다. 한참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용자가 쿠팡을 이용해야 합니다. 서비스의 핵심인 로켓배송에 ‘나쁜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생기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쿠팡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적자입니다. 미래를 보고 물류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에 생긴 의도된 적자죠. 쿠팡 입장에선 더 성장하고,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시점에 소비자들은 쿠팡의 혁신이 정말 옳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쿠팡은 리스크를 극복하고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혁신의 문법을 고칠 수 있을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을 읽으면서 하신 생각을 댓글로 달아 주세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배달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와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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