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전철은 없다

6월 24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지하철 적자 폭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노인 무임승차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책임은 노인이 아니라 정부한테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빨간색 신분당선은 총 31킬로미터에 걸쳐 서울 강남과 수원 광교를 잇는 광역 철도입니다. 수도권 전철 노선 중에선 운행 거리가 짧은 축에 속하는데 현재 2027년 개통을 목표로 강남에서 용산 구간 연장 사업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지난 4월에는 용산에서 서울역과 은평 뉴타운을 지나 고양 삼송 지구에 이르는 서북부 연장선이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안에 포함됐습니다. 한강을 가로질러 서울과 경기권 신도시를 연결하는 황금라인이 기대됩니다.

같은 기간 늘어난 건 운행 거리뿐만이 아닙니다. 운영 적자 규모도 꾸준히 늘었습니다. 지난해 신분당선 순손실은 503억 2900만 원입니다. 2011년 개통 이후 누적 적자는 4000억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다른 노선보다 요금이 더 비싼데도 말이죠. 4년 전 추진했다가 정부 반대로 무산됐던 노인 무임승차 폐지 카드를 다시 꺼내든 이유입니다. 신분당선은 현재 무료인 만 65세 이상 노인 요금의 유료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노인 무임승차와 적자가 민자 노선인 신분당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감탄한다는 우리나라 전철의 암울한 현실입니다. 이 해묵은 현안을 두고 무임승차 전면 폐지, 50퍼센트 요금 할인제 도입, 노인 기준 연령 상향 조정, 시간대별 차등 요금 적용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묘수는 없습니다. 신분당선이 추진하는 노인 무임승차 폐지가 만년 적자를 해소할 만능열쇠일까요?
 

지공 세대의 출현

신분당선 전동차 ©wikipedia
지공 세대는 ‘지하철 공짜로 타는 세대’의 줄임말로 만 65세 이상 노인들을 가리키는 은어입니다. 해당 노인을 비꼬아 지공거사(地空居士)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세대 갈등과 노인 혐오의 대명사가 된 지공 세대는 1984년 노인복지법 개정과 함께 등장합니다. 1980년 처음으로 만 70세 이상 노인에게 요금의 절반을 깎아준 제도에서 적용 대상과 할인 폭을 크게 늘렸습니다.

지공 세대를 만든 건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1984년 5월 25일 시청역에서 서울대입구역 구간의 공사가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서울 지하철 2호선 43개 역사는 강남과 강북을 한 바퀴 도는 순환선으로 6년 만에 완전 개통합니다. 이날 시승 행사에 참석한 전두환 씨는 현장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하루 뒤 서울시가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합니다. #1984년 2호선 개통 영상

그로부터 36년이 흐른 지난해 8월 정부가 노인 무임승차 제도 손질을 공식화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태스크 포스(TF)를 꾸려 각계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구체적인 시행안은 정해진 바 없었지만 경로 우대 제도의 기준 연령을 현행 65세보다 올리겠다는 방향성은 확실했습니다. 수십 년간 급변해온 우리나라 인구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노인의 나라

1984년 노인 무임승차 제도 도입 당시의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중은 전체의 4퍼센트가 채 안 됐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지하철은 서울에만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공짜 지하철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적었습니다. 노인들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시될 게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 문턱 앞에 서 있습니다.

UN 기준에 따라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퍼센트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퍼센트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퍼센트를 초과하면 초고령 사회라고 부릅니다. UN은 2000년 고령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2026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는 불과 26년 만에 벌어진 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속도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보다도 무려 10년이나 빠르게 일어난 수준입니다.

특히 작년은 우리나라 1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955년생이 65세가 된 해였습니다. 1차 베이비부머는 727만 명 규모로 현재의 65세 이상 인구와 규모에 맞먹습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노인 인구는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경제 성장을 이뤘던 한국이 이제는 가장 늙은 나라로 변해갑니다. 1970년 62.3세였던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2019년 기준 83.3세까지 늘었습니다.
 

노인과 적자는 정비례


신분당선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하철 운영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노인 무임승차가 적자를 일으킨다고 말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6개 도시 철도 운영 기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 해 도시 철도 무임승차 인원은 4억 8000만 명이며 무임 손실액은 6455억 원에 달합니다. 주목할 건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전체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 가운데 노인 비중이 70퍼센트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겁니다.

현재 수도권 전철을 이용하는 전체 인구 가운데 노인 비중은 대략 20퍼센트입니다. 즉, 지하철을 이용하는 다섯 명 중 한 명은 노인으로 돈을 내지 않습니다.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 자명한 시점에서 적자 폭은 더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경영 합리화를 위해 정원 감축, 대규모 명예퇴직, 지하철 역명 유상 판매, 디지털 광고 도입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적자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지하철 운영 기관의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도 만성 적자에 한몫합니다. 서울교통공사의 1인당 운임 요금 그러니까 지하철 요금은 1250원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으로 지하철 운영을 위한 1인당 수송 원가는 2067원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탑승 인원이 줄어든 영향입니다. 작년만 놓고 보면 한 명의 승객을 태울 때마다 817원씩 손해가 발생했다는 계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임승차가 불붙은 적자에 기름을 부은 꼴입니다.
 

무임승차 폐지가 답일까

©pixabay
여기까지 보면 당장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적자 폭을 줄이는 게 정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무임승차 폐지로 인한 개선 효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무임승차 가능 연령 기준을 높이든 할인율을 10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낮추든 정책 시행 이후에 기존 탑승 노인들이 그대로 전철을 이용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상보다 이용 인구가 적다면 적자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단순 지하철 운영 기관의 적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다 큰 차원에서 고려하면 노인 무임승차가 사회적 편익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이동권을 보장해 신체 활동을 촉진하면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제고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래 노인과의 교류는 우울증과 자살 감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무임승차를 통한 노인 사회 활동 보장은 전체 의료비 절감에도 효과적입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 86조 1100억 원 중 약 42퍼센트가 노인 진료비였습니다. 35조 8000억 원 수준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이 하루 30분 이상 걸을 경우, 걷지 않는 집단에 비해 평균 12만 5300원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노인 만성 질환인 고혈압, 당뇨, 관절증에서 각각 16만 원, 22만 원, 16만 원 절감 효과가 나타납니다.[1]
 

결자해지(結者解之)


노인 무임승차 폐지를 둘러싼 여론은 노소를 불문하고 엇갈립니다. 청년이라고 무조건 찬성하지도 노인이라고 무조건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사회적 합의는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늘어나는 노인 표에 정치인들은 몸을 사리고, 그사이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몇몇 노인들의 안하무인에 젊은 층의 노인 혐오는 날로 높아집니다. 그런데 정작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주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인복지법을 만들고 시행하고 있는 정부입니다.

전철 운영 기관이 채권까지 발행해 적자를 메우는 동안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정부가 법정 무임승차 도입이 지자체 스스로 결정한 사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동안 지자체는 국비 지원이 절실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마지막 카드인 운임 인상을 꺼내 들면 그 화살이 당장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니까요. 적자는 시민의 안전과도 연결됩니다. 정부가 책임 주체에서 빠져있는 사이 노후 전동차 교체 및 시설 개량, 안전 진단 등에서 빈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노인 무임승차는 거주지에 상관없이 조건을 충족하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국가의 복지 사무입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전국에서 동일하게 처리하는 사무는 국가 사무로 분류합니다.[2] 지속 가능한 복지는 정부가 책임 주체일 때 가능합니다. 신분당선이 다시 논란에 불을 지핀 무임승차는 국민 이동권을 위한 공공재로서 가치 철학의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어느 한 주체가 전적으로 책임지라는 식의 폭탄 돌리기가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 아래 모두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개선안을 공론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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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2002두10483; 법령상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사무가 자치사무인지 아니면 기관위임사무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에 관한 법령의 규정 형식과 취지를 우선 고려하여야 하지만 그 외에도 그 사무의 성질이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처리가 요구되는 사무인지 여부나 그에 관한 경비부담과 최종적인 책임귀속의 주체 등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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