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국회에도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습니다. 일단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을 포함한 범여권 24명도 평등법을 공동 발의했죠. 하지만 존슨 대통령의 사례를 봐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려면 신념 있는 정치인들이 국회에 더 많아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신념을 가진 지도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치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국민의 여론과 정치적 환경이 그런 정치인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차별에 반대하고 차별금지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하나의 정치 세력화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건, 반대 세력은 결집돼 있는 반면에 찬성 측은 흩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2년 전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처음 발의했을 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고 봅니다. 당시에 공동 발의자 10명을 못 모아서 허덕였죠. 이번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혜영 의원의 차별금지법 통과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에 동의했잖아요. 게다가 범여권 의원 24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 그러니까 평등법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발의를 했고요. 분명 나아지고 있습니다.
부족합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이나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가치들은 사실 수 세대에 걸쳐서 축적된 서사에 기반한 겁니다. 그걸 수많은 정치인들이 국민들한테 메시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법률이 된 거죠.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역사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차별 금지라는 개념이 서양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줘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만 돌이켜 봐도 신분제의 폐해가 얼마나 컸어요. 우리가 경험한 차별의 역사에서 우리만의 서사를 찾아내야 합니다. 운동하는 입장과 현실 정치를 하는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운동하는 사람은 더 날카로운 주장을 할 수 있지만 현실 정치에선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아직은 운동의 서사에 치우쳐 있죠. 보수주의자라도 차별금지법을 지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보편적인 설득의 논리란 무엇일까요?
저도 《왜 차별금지법인가》를 쓰면서 어려운 용어는 가능한 피하려고 했어요. 또 당신과 차별이 무관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줘야 하죠.
실화만한 게 없지 않을까요? 미국엔 부티지지나 팀쿡이나 앤더슨 쿠퍼처럼 정치나 경제 그리고 언론계에서 활약하는 소수자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부티지지만 놓고 봐도 정치인인데 게이인 거지 게이인데 정치인인 건 아니거든요.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죠. 공동체 전체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요.
한국에서도 그런 생생한 존재들이 등장하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수도 있겠네요.
그런 롤 모델들이 존재하는 건 분명 희망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차별금지법 통과, 이번엔 가능할까요?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거대 양당 중에서 그래도 좀 더 진보적인 포지션을 가진 정당의 스무 명 정도 의원이 지지하긴 합니다만, 국회의 과반수 정도는 여전히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시기가 안 좋습니다. 대선 직전이잖아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번에 설사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의미는 큽니다. 1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했고, 더 많은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으니까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면 큰 선거에서 진다? 여전히 통하는 정치 상식일까요?
지난 6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퍼센트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3월 유사한 조사에선 찬성률이 72.9퍼센트였거든요. 1년 사이에 15퍼센트가 넘게 높아진 거죠. 심지어 차별금지법을 강하게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조차 찬성이 30퍼센트가 나옵니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정치 지형도가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한 반대 목소리가 강하죠. 이건 강성 반대층의 입장이 과대 대표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종교 단체와 연대하면서 이런 목소리를 키우죠.
정치인이 반대파의 확성기 역할을 하는 거군요. 그렇다는 건 반대 목소리가 커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큰 건 아니란 말씀이네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이 많아져야만 하는 것도 그래서죠. 하지만 아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대변할 만한 대표자를 내세우기엔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저처럼 다수 주류지만 비주류 소수의 시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한 거죠.
“사회적 논의가 부족해서 시기상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차별금지법에 관해 한 코멘트입니다. 어떻게 보세요?
아쉬운 지점입니다.
이준석 대표는 어떤 현안에 대해 참신한 생각을 보여 주는 정치인이라고 봅니다. 논리적이고 일관적이죠. 그런데도 사회적 합의나 시기상조 같은 보수 진영의 전형적인 반대 논리를 내세운 건 구태의연했죠. 이준석 대표가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의 측면에서도 차별 금지는 매우 부합하는데도요. 그래서 첫째로, 아쉽다. 둘째로 본인 의견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의 지지가 증폭됐고 여당이 일부지만 적극적으로 돌아섰다면 야당이 움직여 주면 통과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요. 그런데 30대 젊은 당수가 회피를 해버렸네요.
이것만 봐도, 일반 국민은 준비가 됐는데 정치가 오히려 국민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번엔 아니더라도 차별금지법 입법이 우리 생각보다는 빨리 될 거라고 믿습니다.
국민보다 느려터진 정치를 빨리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정치에선 소수자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2020년 바이든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LGBTQ 커뮤니티가 했어요. 미국 정당 내부의 정당위원회엔 청년위원회와 여성위원회 그리고 성 소수자 위원회까지 여러 마이너리티 위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사회 각 분야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주류 정치권에 들려주죠. 마이너리티들은 정치 기부도 많이 합니다. 돈이 정치를 움직이니까요. 이번에 차별금지법을 공동 발의한 24명에게 단돈 1만 원씩이라도 후원을 한다면, 그것도 정치가 변화하게 만드는 촉매가 될 겁니다. 정치는 국민이 행동할 때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