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레퍼런스 자본주의

6월 28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새우튀김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별점은 자칫 자본주의 인민재판이 될 수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쿠팡이츠로 분식을 주문한 남성이 다음 날 새우튀김 세 개 중 한 개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음식점에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새우튀김값을 돌려받은 후에는 나머지 음식도 환불해 달라고 항의하며 폭언했습니다. 실랑이 끝에 할 수 없이 전액을 돌려준 점주는 쿠팡이츠 측의 시정 요구 전화를 받던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고 지난 22일 결국 숨졌습니다. 그사이 남성은 별점 한 개짜리 리뷰를 남겼습니다. “개념 상실한 주인이에요.”

별점과 리뷰를 앞세운 갑질은 사람을 찌르는 흉기가 됩니다.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당당히 하고 악의적 비방을 일삼는 이들로 인해 피해 사례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6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배달 앱 개선 방안 토론회에선 실태 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배달 앱을 이용하는 자영업자 10명 가운데 6명이 별점 테러나 악성 리뷰를 경험했습니다. 또 10명 중 7명은 이러한 피해가 실제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습니다.

이번 새우튀김 갑질 사건을 특정 플랫폼 기업의 관리 소홀이나 소수 몰지각한 개인의 인격 문제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배달 앱은 물론 홈페이지 게시판, SNS,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의 사용자 리뷰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갈수록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의 구매 활동부터 인사와 채용에 이르기까지 만인이 타인의 평가와 평판에 의존하는 레퍼런스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레퍼런스 자본주의에서 당신의 평가는 우리의 자산이 됩니다. 반대로 당신의 악평은 우리의 부채가 됩니다. 레퍼런스 자본주의는 소비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기업의 평판 관리를 강화하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기업들은 레퍼런스 부채를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 조작을 시도합니다. 일부 소비자들은 소비의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갑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고작 새우튀김 하나 때문입니다. 레퍼런스 자본주의는 폭주하고 있습니다.
 

믿을만한 타인의 경험

지난 2017년 시장 조사 전문 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만 19세에서 49세까지의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리뷰 영향력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86.9퍼센트가 “소비자 리뷰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3년 전 진행한 같은 조사 결과와 비교해 소폭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20대 91.3퍼센트, 30대 85.5퍼센트, 40대 84퍼센트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리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더 컸습니다.

리뷰가 제품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제품 구매 시 항상 소비자 리뷰를 확인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78.6퍼센트였습니다. 이어 “소비자 리뷰가 부정적이면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도 69.4퍼센트에 달했습니다. 10명 중 7명꼴입니다. 특히 40대 응답자와 자녀가 있는 기혼 응답자에서 리뷰 평가가 나쁜 제품을 피하려는 성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습관적으로 리뷰를 확인하고 신뢰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광고에 현혹되지 않은 채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소위 말하는 ‘호갱’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포털에 검색어 몇 개만 입력하면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그 많은 양이 때로는 선택을 더 어렵게 합니다. 이때 가장 유용한 게 누군가의 사용 후기입니다. 특히 이전에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상품이라면 리뷰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집니다. #마크로밀엠브레인 보고서
 

돈으로 사는 가짜 리뷰


이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리뷰의 신뢰도입니다. 모든 리뷰가 실제 소비자 손끝에서 작성되는 건 아닙니다. 리뷰는 하나의 상품이 된 지 오래입니다. 다시 말해 리뷰는 돈이 됩니다. 개인 사업자들은 온라인 광고 대행사에 수십에서 수백만 원을 내고 리뷰를 삽니다. 최근에는 일부 대행사가 커머스 업체와 결탁해 아르바이트생에게 빈 택배 박스를 보낸 뒤 실제 구매자인 척 리뷰를 남기게 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남양유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난해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을 비방하기 위해 악성 글을 올렸다는 혐의였습니다. 조사 결과 홍보 대행사를 끼고 50여 개의 아이디로 맘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유에서 쇠 맛이 난다”는 식의 리뷰를 100일에 걸쳐 79건 게재했습니다. 남양유업은 이미 2009년과 2013년에 같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전적이 있었습니다.

유통 업계도 리뷰와 전쟁을 치릅니다. 이제 진짜 리뷰와 가짜 리뷰를 구분, 처리하는 게 주요 업무로 꼽힐 정도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리뷰 장사하는 대행사가 우후죽순 생겨났을뿐더러 대형 플랫폼의 경우 사람이 모든 리뷰를 하나하나 검토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짜 리뷰를 골라내는 AI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만 아직까진 효과가 100퍼센트 검증되지 못한 실정입니다.
 

별점 테러 금지법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6월 24일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의당
이런 가운데 지난달 서울동부지법이 돈을 받고 가짜 리뷰를 올린 홍보 대행사 운영자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리뷰 악용 사례에 내린 사실상 첫 실형이었습니다. 전국 수십여 개 음식점에서 의뢰를 받고 실제 소비자인 척 ‘맛있다’는 리뷰를 쓴 이 업자는 회당 100개의 리뷰 작성을 조건으로 100만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그렇게 2017년 9월부터 작년 5월까지 작성한 리뷰는 총 350회에 걸쳐 3만 5000개입니다.

앞으로 리뷰에 대한 관리 감독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4일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별점 테러 금지법’으로도 불리는 이 개정안의 골자는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대가성 허위 리뷰 작성자를 제대로 처벌하겠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리뷰에 관한 명확한 의무 항목이 없습니다. 근거가 없으니 지금껏 대부분의 리뷰 악용 사례를 처벌하지 못한 거고요.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누구든지’ 허위 리뷰 작성 시 처벌받는다는 경고 문구를 의무 표기하게 됩니다. 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플랫폼은 리뷰 수집 방법, 정렬 기준 등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현재 상당수 플랫폼이 리뷰나 별점이 높은 제품과 매장을 상위에 노출하기 때문입니다. 영세 개인 사업자가 갑질과 가짜 리뷰에도 울며 견뎌 온 이유입니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자본주의 인민재판

6월 22일 서울 송파 쿠팡 본사 앞에서 배달 앱 리뷰·별점 제도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여연대
지난 4월 방영된 MBC 〈PD수첩〉 “리뷰를 믿으세요? 상위 노출의 덫” 편에 등장한 자영업자 황모 씨는 별점을 ‘자본주의 인민재판’에 빗댔습니다.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 배달을 시작했는데, 신규 업체라 플랫폼 내 리뷰가 적어 노출이 잘 안 됐고, 그나마도 별점 테러 이후 상황이 더 악화했습니다. 결국 그는 배달을 접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리뷰를 더 나은 선택을 돕는 도구가 아닌 이른바 믿고 거르는, 배제를 위한 수단으로만 쓰고 있는 게 아닐까요.

네이버가 올 3분기 정식 론칭을 준비하는 ‘태그 구름’ 서비스가 새로운 리뷰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받고 있습니다. 태그 구름은 네이버 지도에 등록된 상점이나 음식점의 기존 별점을 대체합니다. 방문자가 리뷰를 남기면 그중 핵심 키워드를 해시태그로 만든 후 공통되게 많이 언급되는 단어를 한데 모아 구름처럼 둥근 형태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별점이라는 일률적인 척도로 담기 어려웠던 장점과 개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게 네이버 측의 설명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평가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겁니다. 특히 소비 영역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작년 12월, 전체 소매 판매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30퍼센트를 돌파했습니다.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사상 최초로 100조 원대가 넘었습니다. 정비된 법과 제도 아래, 소비자는 넘쳐나는 리뷰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눈을 기르고 판매자는 리뷰를 토대로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일 때 자본주의 인민재판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리뷰와 소비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긱 이코노미의 게이미피케이션〉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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