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수술실 CCTV 설치를 두려워하는가

7월 2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처리 불발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6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제1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여야 간 가장 입장 차가 컸던 부분은 CCTV를 수술실 내부와 외부 중 어디에 설치할지, 촬영 시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만 받을 것인지 등이었습니다.

논의를 거듭했지만, 법안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여야는 CCTV 설치 위치와 설치를 의무화할 것이냐, 자율화할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술실 내부 설치와 의무화를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은 수술실 입구에 CCTV를 달고 자율 설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법안 처리 불발을 놓고 여야가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CCTV 설치 의무화에 찬성하는 견해가 압도적인 여론은 정치권을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사건들


평소 턱선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25세 대학생이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 윤곽 수술을 받다 과다 출혈로 숨졌습니다. 유가족은 어렵게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집도의가 청년의 턱뼈를 절개한 뒤 나갔고, 얼마 후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았습니다. 의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년은 3500cc에 이르는 피를 쏟았지만, 응급 처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병원은 동시에 여러 명의 환자를 수술하는 이른바 ‘공장식 유령 수술’을 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전문의가 “수술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던 병원 측 이야기와는 전혀 딴판이었던 겁니다. CCTV 영상이 없었다면 유족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원히 알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남자 인턴이 마취 상태에서 수술 대기 중인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지속해서 만졌습니다. “더 만지고 싶으니 수술실에 있겠다”라는 등 성희롱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해당 인턴의 수련을 취소했지만 의사 면허는 유효해 면허 취소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환자 신체를 비하하는 성희롱도 허다합니다. 이런 의료진을 신뢰하지 못해 수술실에 녹음기 몰래 들고 간 환자들은 성희롱성 발언이 녹음된 것을 확인한 뒤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찬성, 97.9퍼센트

©Photo by 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모든 수술실에서 항상 불미스러운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족 등 보호자 없이 홀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환자로서는 의료진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의료 사고나 대리 수술이 발생한다고 상상해 보죠. 과연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걸린 일인데 말입니다.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전국 성인 남여 1004명을 대상으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응답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환자의 인권 보호와 의료사고 방지를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1만 3900명 가운데 97.9퍼센트에 달하는 국민이 설치해야 한다고 답변할 정도입니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성명에서 “수술실 내 CCTV 의무화는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의 대리 수술과 의료 사고와 같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부터 수술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 소비자를 보호하고 최소한의 알 권리 확보를 위해 반드시 법으로 보장돼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술실 CCTV 영상은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사안을 명확하게 밝혀 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든, 의료진이든 잘못이 없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죠. 불필요한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하기 전 분쟁을 종료시킬 수도 있습니다.
 

환자 사생활·의사 직업 수행 자유 침해?

©Adobe Stock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단체들은 크게 두 가지 논리로 CCTV 설치를 반대합니다. 우선, 영상이 유출되면 환자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점입니다.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나 진단명, 수술 내용 등 개인 의료 기록이 유출될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따로 입법을 해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면 될 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CCTV가 설치돼 있는 응급실에서도 환자의 신체 등 개인 정보가 노출된다며 응급실은 되고 수술실은 안 된다는 의료계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의료인의 직업 수행 자유가 침해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CCTV에 찍힐 것을 우려해 응급·돌발 상황에서 적극적인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응급의학과나 흉부외과 등 분쟁 소지가 많은 전공 분야 지원자가 줄어 필수 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환자 단체는 “실제 CCTV를 설치해 운영 중인 병원의 의료진 반응은 다르다”라며 “심리적 위축과 소극 진료 부분이 기우라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의료계 모두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와 전북 지역에서는 수술실 CCTV를 실제 운영 중인 병원이 일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남양주 국민병원은 “의사를 보호하고 국민이 의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 수술실 CCTV 설치 찬성이라고 생각했다”며 CCTV 설치로 오히려 “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환자들도 의료진의 실력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도의료원도 “의사들이 우려했던 의료 분쟁은 없었다”며 “CCTV 설치는 선량한 의사가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소수 의사로부터 환자를 보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려 대신 순기능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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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비롯해 도로나 골목 등 없는 곳이 없는 CCTV는 이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없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이죠. 도입 초기만 해도 인권 침해 소지, 개인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설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어린이집 아동 학대나 폭행과 살인, 성범죄 등 각종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데 CCTV는 없어선 안 될 핵심 증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도입 초반 우려했던 지점들이 문제로 비화하기보다 다행스럽게도 순기능이 더 잘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수술실 CCTV 도입과 관련해 조금 더 논의되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CCTV를 운영하려는 이유가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이것만으로 완벽하게 보호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소와 재교부 제한, 공익 제보자 보호 강화 등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쪽에선 개인정보보호법과 상충하는 지점이 있다는 비판을 내놨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장소에 CCTV 설치를 금지하고 있어 의료법 개정안 내용에 관련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겁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학 윤리를 담은 대표적인 지침으로 유명하죠. 1948년, 이 내용을 이어받아 세계의사총회에서 만든 ‘제네바 선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 환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불발된 수술실 CCTV 설치법이 7월 국회에서 통과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쟁점들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가장 기소하기 어려운 범죄》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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