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원전은 신기루인가

7월 7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녹색 원전은 원자력 발전의 신기술인가 신기루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우리는 국제 원자력 안전, 핵 안보, 비확산에 대한 가장 높은 기준을 보장하는 가운데 원전 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 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약속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 성명 내용 중 일부입니다. 양국은 원전 공급망을 함께 구성해 해외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실상 ‘원전 동맹’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정부는 최근 소형모듈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을 개발해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SMR은 발전량이 300메가와트 이하인 소형 원전을 말합니다. 정부의 SMR 개발 계획은 기술 확보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올가을, 소형 원전 개발을 위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신청한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탈원전은 유지, 기술은 수출?

문승욱 산자부 장관이 제23차 에너지위원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산업자원통상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있는 체코를 방문해 ‘원전 세일즈’에도 나섰습니다. 문 장관은 국내 기업들이 풍부한 원전 건설 경험이 있고 안전성과 우수성도 높다며 적극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양국 기업과 기관은 7건의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MOU를 맺은 기업 중에는 두산중공업이 포함됐습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에서 원전 설비를 공급하는 유일한 대기업입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고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며 지난해에는 직원 1000여 명이 명예퇴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원전 수출에 적극 나서고, 세계적으로 SMR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이 정부 정책 때문에 생사를 오가고, 그 결과 기업에 속한 구성원들의 밥벌이까지 위협받았던 두산중공업의 사례에서 정부 정책이 얼마나 큰 결정이고, 무게감 있는 것인지 새삼 느낍니다. 동시에 정부의 원전 관련 행보에 의문이 일기도 합니다. 탈원전 정책은 유지하면서 원전 기술을 수출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표리부동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SMR 역시 탈원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정부는 “원전 안전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차세대 SMR 원전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형모듈원전(SMR)에 왜 주목하나

소형 모듈 원전 그래픽 ©한국원자력연구원
일반적인 원전은 1000메가와트의 발전량을 제공합니다. SMR은 300메가와트를 제공하는데, 단순 비교해 1000메가와트와 300메가와트는 각각 100만 가구와 30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기의 양을 뜻합니다. 기존 원전은 거대한 콘크리트 격납 건물 안에 대형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을 건설해 이들을 각각 배관으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SMR은 모듈 안에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재펌프 등 주요 기기를 일체화해서 제작합니다. 대형 원전 건설에 300만여 개에 달하는 부품이 필요했다면, SMR에는 1만 개 정도가 들어갑니다.

획기적인 원자로인 SMR은 사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먼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 스마트(SMART)라는 원자로를 연구한 것이 시초입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12년, 세계 최초로 설계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적합한 터를 찾지 못해 실제 건설로는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비롯한 탄소 중립 에너지 개발 등을 계기로 2029년까지 한국형 SMR 설계를 완성한다는 계획입니다.

SMR이 주목받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가장 핵심은 바로 ‘탄소 중립’을 위한 대안이라는 점입니다. 탄소 중립이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전 세계는 기후 변화 피해를 겪고 있고, 그 원인인 탄소 배출에 대한 경각심이 높습니다. SMR은 탄소 배출이 거의 없어 ‘그린 에너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책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원전 기술을 혁신하고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고 언급하며 기후 재앙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SMR 개발을 제안했습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도 협력해 미국 와이오밍주에 소형 원전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은 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70종이 넘는 SMR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아직 표준 모델이 없어 기술 선점을 위한 각국의 물밑 경쟁이 치열합니다. 특히 미국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에 도달하겠다며 SMR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7년 동안 32억 달러, 우리 돈 3조5840억 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원전 전문 회사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는 지난해 설계 인증 심사를 통과해 상용화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 SMR 발전소 역시 탄소 덩어리”


SMR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지만, 다른 한쪽에선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원자력안전과미래 이정윤 대표는 “SMR 발전소를 짓는 일 역시 기존 원전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토건 사업”이라며 그 과정에서 탄소가 엄청나게 배출돼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수명이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면 SMR도 결국 탄소 덩어리”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SMR을 가동하는 과정에서는 탄소 배출이 거의 없지만 앞뒤를 자른 잘못된 시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탄소 배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핵폐기물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둘러싼 엇갈리는 의견들

중·소형원자로 실험 장치. ©한국원자력연구원
SMR은 안정성과 경제성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원전은 배관으로 연결된 부위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원전 건설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SMR은 일체형이라 사고가 나더라도 용기 내부에서 냉각돼 빠르게 수습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영향을 받는 비상 구역도 300미터에 불과해 원전 인근 주민이 대피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미리 모듈로 제작한 뒤 필요한 곳에 설치하는 방식이라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들어갑니다. 일반 원전이 건설하는데 10조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면 소형 원전은 1조 원 미만으로 가능합니다.

이 부분에서도 반대하는 측에선 반론을 제기합니다. 원전을 처음 만들 당시 사고 확률에 대해 10만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하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부터 시작해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세 번 났다는 것입니다. 이 대표는 “현재 개발 단계인 SMR을 신빙성이 없는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결과에 근거해서 사고 위험성이 낮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건설 비용의 저렴성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이 역시 주객이 전도된 논리라는 입장입니다. 크기가 작은 원자로는 경제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량이 작으면 작을수록 1킬로와트 당 코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라며 “100메가와트 이하일수록 운영 비용이나 건설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성 확보를 위해서 SMR을 여러 개 짓자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소형 원전이 아닌 중형 원전이 되는 것이라는 비판입니다.

청정에너지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면서 탄소 중립에도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에너지가 있을까요? SMR의 장점만 들었을 땐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SMR의 문제와 한계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녹색 원전은 신기루에 불과하게 될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왜 소형모듈원전(SMR)에 주목하는지를 살펴보며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동일본 대지진 10년의 교훈》, 《그린 버블》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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